서지학자이자 국학자인 이겸로 이야기
2015.12.12 21:38 |
조회 11146
서지학자이자 국학자인 이겸로 이야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辛相龜)
이겸로는 서울의 전통문화거리인 인사동 통문관의 옛 주인이다. 통문관은 1934년에 문을 연 뒤 인사동 골목을 지켜온 고서점이다. 통문관(通文館)에는 ‘적서승금(積書勝金)'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적서승금이란 책을 쌓아 두는 것이 금보다 낫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통문관에는 4만~5만 권 가량의 고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귀한 서적들의 경우 집에 보관하는데, 방 2개가 모두 고서적들로 가득 차 있다.
한국에서 역사적·사료적 가치가 높은 희귀 서적을 취급하는 유일한 곳이 바로 통문관이다. 그런 때문인지 통문관이 발굴한 다양한 고문헌들이 이곳을 떠나 여러 박물관과 도서관으로 향했다. 최근에는 국학계에 유일본으로 널리 알려진『월인석보』를 찾아내 연세대 도서관이 소장하도록 했고, 한국전쟁으로 한 때 행방불명이 됐던 사학자 황의돈 선생이 소장했던 보물 419호『삼국유사』를 서울대 도서관이 소장하도록 했는가 하면, 조선 후기 시조작가인 김천택 선생의『청구영언』자필본이 한글박물관에 안착하도록 했다. 한편 상해임시정부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을 연세대 도서관이 소장하도록 하고, 기미독립선언 33인 중의 한 분인 오세창 선생의 장서 3489권을 위탁받아 국립중앙도서관에 자리잡게 하는 등 수없이 많은 고서 유통의 해결사 노릇을 했다.
서점이 쇄락하고 통신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자연히 통문관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줄었지만 여전히 연구하는 대학원생과 학자, 장서가들에게는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통문관은 사라져가는 우리 고서적을 수집하고 잘 보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하는 가교역할까지도 하고 있다.
산기(山氣) 이겸로(李謙魯, 1909~2006)는 평안남도 용강 출신으로 삼화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집안의 경제형편이 어려워 도일하여 고학하려고 했으나 부산 해안에서 일본 헌병에게 강제 저지당하여 좌절되고 말았다. 16세 때에 서울로 와 노숙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서점 직원으로 일하는 보통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 동창의 소개로 서점 직원으로 들어가 8년 동안 근무했다. 그러다가 서점 점원 생활을 청산하고 23세 때인 1934년 3월 종로구 관훈동에 4평 남짓한 고서점을 차렸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보관하고 있던 비밀문서를 팔고 20여 일 동안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진 일도 있다. 그리고 1938년 가을에는 상해, 만주, 시베리아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자들에 관한 자료와 문서를 일본 경찰의 사찰대상이었던 성재 이관구씨가 대표로 있던 대동출판사에 넘겼다가 적발돼 곤욕을 치른 일도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인사동으로 옮겨 상호를 통문관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고서 수집과 보급에 평생을 바쳤다.
6·25동란 중 폐허 속에 나뒹구는 책더미 속에서 <월인천강지곡>을 찾아낸 것을 선생은 생애 가장 큰 기쁨으로 얘기하곤 했다.
통문관은 괜찮은 고서적이 한 데 모인 장소이다 보니 과거 이곳은 국학 원로들의 사랑방이었다. 그래서 국학 연구자치고 통문관에 드나들지 않은 분이 없었다. 최남선, 이희승, 이병기, 김상기, 이홍직, 이선근, 황수영, 황의돈, 이윤재, 최순우, 김원용….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이겸로는 전문학자마저 없던 우리나라 고활자·목판화·능화판(菱花板)·시전지(詩箋紙)를 모아 이를 하나의 장르로 제시하셨다. 영남대박물관이 자랑하고 있는 한국의 고지도 800여 점과 능화판 200여 점은 바로 통문관 컬렉션이었다.
이겸로는 1975년 6월 대한출판문화협회 창립을 기념해 출판박물관이 건립되기를 기대하고 자신의 소장도서 가운데 우리나라 활자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고려말부터 조선조말까지의 책자 660여 점을 기증했으나 흐지부지해 못내 아쉬워했다.
이겸로는 애서가로 고서를 많이 수집했고, 책마다 뒷면에 연필로 가격을 매겨놓고 정찰 판매를 했다. 그리고 남에게 진 신세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2000년 8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이야기다. 당시 월북 국어학자 류열 박사가 딸을 만나기 위해 남한에 왔다. 통문관은 해방을 맞은 기념으로 1946년에 류열 박사의 <농가월령가>를 펴낸 바 있었다. 선생은 류열 박사가 왔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는 일행이 방문한다는 롯데월드 민속관 앞에서 기다렸다가 류열 박사에게 달려가 <농가월령가> 두 권과 50만 원이 든 흰 봉투를 불쑥 건넸다.
이겸로의 저서로는『통문관책방비화』가 있다. 이 책에는 국학과 인생의 향기가 어려 있다. 그리고 국학 서적인 『양금신보』, 이상백의『한글기원』, 『주 훈민정음』,『청구영언』,『두시언해』,『월인천강지곡』 영인본을 펴냈고, 이윤재의『성웅 이순신』, 고유섭의 『한국미술문화사논총』도 출간하였다. 특히『양금신보』는 조선조 광해군 2년인 1610년에 개간한 거문고의 악보를 담은 휘귀본으로 1955년에 입수해 4년 뒤인 1959년에 영인판으로 발행했다. 또한 전문학자들에게 자기가 수집한 휘귀본을 복사해 주어 연구자료로 활용하도록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7년 5월 대한민국은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이겸로 선생은 2006년 10월15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언으로 수목장을 해달라고 말했다. 선생은 진실로 인생을 잘 사신 인사동의 큰 어른이었다. 지금 통문관은 손자인 이종운씨가 가업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끊겨 문을 닫고 있는 때가 많아 쓸쓸하다.
이겸로의 둘째 아들인 이동호씨는 통문관과 이웃한 곳에서 고서점 신문관을 운영하고 있고, 셋째 아들인 이동향은 고려대 중문과 명예교수이다. 이 교수도 선친을 닮아 학자들에게 휘귀한 고서를 기증해 연구자료로 쓰도록 하고 있다.
2016년은 이겸로 선생의 10주기가 되는 뜻깊은 해이다.
<참고문헌>
1. 현이섭, “이검로 민족의 얼 담긴 고서 발굴 외길”, 한겨레신문, 1992.10.14일자.
2. 정현희, “이종운 관장 - 어느 80세 고서점의 이야기”, 문화재청, 2014.3.12.
3. 유흥준, “통문관 옛주인, 이겸로 선생”, 한겨레신문, 2015.12.11일자. 30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2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그래서 그런지 지금 통문관에는 4만~5만 권 가량의 고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귀한 서적들의 경우 집에 보관하는데, 방 2개가 모두 고서적들로 가득 차 있다.
한국에서 역사적·사료적 가치가 높은 희귀 서적을 취급하는 유일한 곳이 바로 통문관이다. 그런 때문인지 통문관이 발굴한 다양한 고문헌들이 이곳을 떠나 여러 박물관과 도서관으로 향했다. 최근에는 국학계에 유일본으로 널리 알려진『월인석보』를 찾아내 연세대 도서관이 소장하도록 했고, 한국전쟁으로 한 때 행방불명이 됐던 사학자 황의돈 선생이 소장했던 보물 419호『삼국유사』를 서울대 도서관이 소장하도록 했는가 하면, 조선 후기 시조작가인 김천택 선생의『청구영언』자필본이 한글박물관에 안착하도록 했다. 한편 상해임시정부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을 연세대 도서관이 소장하도록 하고, 기미독립선언 33인 중의 한 분인 오세창 선생의 장서 3489권을 위탁받아 국립중앙도서관에 자리잡게 하는 등 수없이 많은 고서 유통의 해결사 노릇을 했다.
서점이 쇄락하고 통신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자연히 통문관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줄었지만 여전히 연구하는 대학원생과 학자, 장서가들에게는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다.
통문관은 사라져가는 우리 고서적을 수집하고 잘 보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하는 가교역할까지도 하고 있다.
산기(山氣) 이겸로(李謙魯, 1909~2006)는 평안남도 용강 출신으로 삼화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집안의 경제형편이 어려워 도일하여 고학하려고 했으나 부산 해안에서 일본 헌병에게 강제 저지당하여 좌절되고 말았다. 16세 때에 서울로 와 노숙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서점 직원으로 일하는 보통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 동창의 소개로 서점 직원으로 들어가 8년 동안 근무했다. 그러다가 서점 점원 생활을 청산하고 23세 때인 1934년 3월 종로구 관훈동에 4평 남짓한 고서점을 차렸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보관하고 있던 비밀문서를 팔고 20여 일 동안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진 일도 있다. 그리고 1938년 가을에는 상해, 만주, 시베리아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자들에 관한 자료와 문서를 일본 경찰의 사찰대상이었던 성재 이관구씨가 대표로 있던 대동출판사에 넘겼다가 적발돼 곤욕을 치른 일도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인사동으로 옮겨 상호를 통문관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고서 수집과 보급에 평생을 바쳤다.
6·25동란 중 폐허 속에 나뒹구는 책더미 속에서 <월인천강지곡>을 찾아낸 것을 선생은 생애 가장 큰 기쁨으로 얘기하곤 했다.
통문관은 괜찮은 고서적이 한 데 모인 장소이다 보니 과거 이곳은 국학 원로들의 사랑방이었다. 그래서 국학 연구자치고 통문관에 드나들지 않은 분이 없었다. 최남선, 이희승, 이병기, 김상기, 이홍직, 이선근, 황수영, 황의돈, 이윤재, 최순우, 김원용….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이겸로는 전문학자마저 없던 우리나라 고활자·목판화·능화판(菱花板)·시전지(詩箋紙)를 모아 이를 하나의 장르로 제시하셨다. 영남대박물관이 자랑하고 있는 한국의 고지도 800여 점과 능화판 200여 점은 바로 통문관 컬렉션이었다.
이겸로는 1975년 6월 대한출판문화협회 창립을 기념해 출판박물관이 건립되기를 기대하고 자신의 소장도서 가운데 우리나라 활자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고려말부터 조선조말까지의 책자 660여 점을 기증했으나 흐지부지해 못내 아쉬워했다.
이겸로는 애서가로 고서를 많이 수집했고, 책마다 뒷면에 연필로 가격을 매겨놓고 정찰 판매를 했다. 그리고 남에게 진 신세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2000년 8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이야기다. 당시 월북 국어학자 류열 박사가 딸을 만나기 위해 남한에 왔다. 통문관은 해방을 맞은 기념으로 1946년에 류열 박사의 <농가월령가>를 펴낸 바 있었다. 선생은 류열 박사가 왔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는 일행이 방문한다는 롯데월드 민속관 앞에서 기다렸다가 류열 박사에게 달려가 <농가월령가> 두 권과 50만 원이 든 흰 봉투를 불쑥 건넸다.
이겸로의 저서로는『통문관책방비화』가 있다. 이 책에는 국학과 인생의 향기가 어려 있다. 그리고 국학 서적인 『양금신보』, 이상백의『한글기원』, 『주 훈민정음』,『청구영언』,『두시언해』,『월인천강지곡』 영인본을 펴냈고, 이윤재의『성웅 이순신』, 고유섭의 『한국미술문화사논총』도 출간하였다. 특히『양금신보』는 조선조 광해군 2년인 1610년에 개간한 거문고의 악보를 담은 휘귀본으로 1955년에 입수해 4년 뒤인 1959년에 영인판으로 발행했다. 또한 전문학자들에게 자기가 수집한 휘귀본을 복사해 주어 연구자료로 활용하도록 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7년 5월 대한민국은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이겸로 선생은 2006년 10월15일, 향년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언으로 수목장을 해달라고 말했다. 선생은 진실로 인생을 잘 사신 인사동의 큰 어른이었다. 지금 통문관은 손자인 이종운씨가 가업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끊겨 문을 닫고 있는 때가 많아 쓸쓸하다.
이겸로의 둘째 아들인 이동호씨는 통문관과 이웃한 곳에서 고서점 신문관을 운영하고 있고, 셋째 아들인 이동향은 고려대 중문과 명예교수이다. 이 교수도 선친을 닮아 학자들에게 휘귀한 고서를 기증해 연구자료로 쓰도록 하고 있다.
2016년은 이겸로 선생의 10주기가 되는 뜻깊은 해이다.
<참고문헌>
1. 현이섭, “이검로 민족의 얼 담긴 고서 발굴 외길”, 한겨레신문, 1992.10.14일자.
2. 정현희, “이종운 관장 - 어느 80세 고서점의 이야기”, 문화재청, 2014.3.12.
3. 유흥준, “통문관 옛주인, 이겸로 선생”, 한겨레신문, 2015.12.11일자. 30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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