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종교 보천교 연혁
2015.12.22 14:42 |
조회 12946
민족종교 보천교 연혁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가장 두려워하고 가혹하게 탄압했던 민족종교는 철종 11년인 1860년) 4월에 최제우(崔濟愚)가 창도한 동학(東學)과 보천교(普天敎)이다. 보천교는 1921년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이 창시한 증산교 계열의 신종교이다. 보천교 중앙본소는 전북 정읍군 입암면 대흥리에 있다.
차경석은 1880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동학 접주(接主) 중의 한 명으로 관군(官軍)에 의해 처형당한 차지구(車致久)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동학운동에 가담하여 전라북도 순회관(巡廻官)을 지내기도 하였다.
차경석은 증산교를 창교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을 만난 뒤로는 자신의 이종사촌 누이인 고판례(高判禮, 1880~1935)를 강일순의 부인으로 추천할 정도로 착실한 제자가 되었다.
강일순의 사망에 따라 흩어졌던 그의 제자들이 1911년 고판례의 종교 체험을 계기로 재집결하여 선도교(仙道敎)라는 신종교를 세울 때, 차경석은 중심적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신도들이 크게 늘어나게 되자, 차경석은 교권을 장악하고 신도들과 고판례와의 접촉을 차단하였다. 이에 고판례는 1918년 차경석과 결별하고 전라북도 김제군 백산면 조종리로 장소를 옮겨 태을교(太乙敎)라는 별도의 종단을 세웠다. 1931년 고판례는 교단 관리를 강응칠(姜應七)에게 넘겨주고 증산교의 또 다른 종파인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 용화동에 소재한 이상호(李祥昊)의 동화교(東華敎)로 옮겨가 통합종단을 형성하여 조직과 체계를 강화시켰다.
차경석은 천지개벽의 문로(門路)가 자기에 의하여 열린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동방연맹(東邦聯盟)의 맹주가 될 것이고 조선은 세계통일의 종주국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1920년에는 전국의 신도를 60방주(方主)의 조직으로 묶고, 55만 7,700명에 달하는 간부를 임명하기도 하였다.
1921년 차경석은 일본 경찰의 체포령과 비상망 속에서도 경상남도 덕유산 기슭의 황석산(黃石山)에서 대규모의 천제(天祭)를 올리고 국호를 <시국(時國)>, 교명을 <보화(普化):뒤에 보천교라 함.>로 선포하였다. 이 때부터 교단 안팎에서는 차경석이 천자로 등극할 것이라는 소문이 크게 떠돌아 갑자등극설(甲子登極說)·기사등극설(己巳登極說)로 구체화되고, 민간에서는 차경석을 차천자(車天子)라 부르게 되었다.
1922년에는『보광(普光)』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1924년에는 시대일보(時代日報)를 인수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
1922년에는 정읍군 입암면 대흥리에 대규모 교당을 신축하였는데, 건축자재를 백두산의 원시림에서 가져다 쓰면서 6백만 신도를 호칭할 정도로 교세가 대단하였다.
보천교의 세력이 커지자 일제는 교단에 대한 탄압을 가하는 한편, 회유하기 시작하였다.
차경석은 종교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내각총리대신에게 친일사절을 파견하는 한편, <시국대동단(時局大同團)>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전국토를 순회하면서 보천교의 소개와 함께 대동아단결(大東亞團結)을 강조하는 친일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이에 반대하는 보천교혁신운동이 일어났고, 고위간부들이 신도를 이끌고 별도의 교단을 세우는 사태가 일어나게 되어 교세는 크게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 분파는 신현철(申鉉喆)의 태을교를 비롯하여 동화교(東華敎)·삼성교(三聖敎)·수산교(水山敎)·보화교·선도교·무을교(戊乙敎)·임무교(任務敎)·서상근파(徐相根派)·금산사미륵불교포정소(金山寺彌勒佛敎布政所)·인천교(人天敎)·원군교(元君敎) 등이었다. 1936년차경석이 죽고 이어 조선총독부가 <유사종교해산령>을 선포함에 따라 교단은 해체되고 말았다.
8·15광복 후 다시 조직화되었지만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 신파와 구파로 분열되어 있다. 신파는 차경석의 아들 차용남(車龍南)이 주축이 되어 차경석의 교의를 신봉하고 교조로 받드는 반면, 구파는 강일순을 교조로 하고 본부에서 떨어져 나와 같은 마을에 별파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신파와 구파를 합하여 1만여 명의 신도가 있다.
신앙대상은 초기에는 옥황상제하감지위(玉皇上帝下鑑之位)·구천하감지위(九天下鑑之位)·칠성성군하감지위(七星聖君下鑑之位)를 써 붙이고 경천(敬天)이 위주였으나 지금은 삼광영(三光影)을 받든다.
삼광영이란 일(日)·월(月)·성(星)을 말하며 이는 모든 조직의 기본이 된다. 기본교리는 인의(仁義)이다. 즉, 인으로 생하고 의로 이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의를 행하는 것이 인도(人道)의 시종(始終)이 된다고 한다. 또, 경천(敬天)·명덕(明德)·정륜(正倫)·애인(愛人)의 4대 강령과 상생(相生)·대동(大同)을 강조한다. 의례행사는 4절후 치성과 다섯 차례의 정례치성을 지낸다.
경전은『대도지남(大道指南)』,『이사전서(二師全書)』,『교조약사(敎祖略史)』등을 신구파가 공동으로 쓰고 있으며, 각기 다른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1. 보천교 중앙총정원,『보천교연혁사』 상·하 속편, 1948·1958.
2. 이정립,『증산교사』, 증산교본부, 1977.
3. 김홍철·류병덕·양은용,『한국 신종교 실태조사 보고서』,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4. “보천교(普天敎)”, 네이버『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12.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지역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한국선도의 맥을 이은 일십당 이맥의 괴산 유배지 추적과 활용방안”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가장 두려워하고 가혹하게 탄압했던 민족종교는 철종 11년인 1860년) 4월에 최제우(崔濟愚)가 창도한 동학(東學)과 보천교(普天敎)이다. 보천교는 1921년 차경석(車京石, 1880-1936)이 창시한 증산교 계열의 신종교이다. 보천교 중앙본소는 전북 정읍군 입암면 대흥리에 있다.
차경석은 1880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동학 접주(接主) 중의 한 명으로 관군(官軍)에 의해 처형당한 차지구(車致久)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동학운동에 가담하여 전라북도 순회관(巡廻官)을 지내기도 하였다.
차경석은 증산교를 창교한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을 만난 뒤로는 자신의 이종사촌 누이인 고판례(高判禮, 1880~1935)를 강일순의 부인으로 추천할 정도로 착실한 제자가 되었다.
강일순의 사망에 따라 흩어졌던 그의 제자들이 1911년 고판례의 종교 체험을 계기로 재집결하여 선도교(仙道敎)라는 신종교를 세울 때, 차경석은 중심적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신도들이 크게 늘어나게 되자, 차경석은 교권을 장악하고 신도들과 고판례와의 접촉을 차단하였다. 이에 고판례는 1918년 차경석과 결별하고 전라북도 김제군 백산면 조종리로 장소를 옮겨 태을교(太乙敎)라는 별도의 종단을 세웠다. 1931년 고판례는 교단 관리를 강응칠(姜應七)에게 넘겨주고 증산교의 또 다른 종파인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 용화동에 소재한 이상호(李祥昊)의 동화교(東華敎)로 옮겨가 통합종단을 형성하여 조직과 체계를 강화시켰다.
차경석은 천지개벽의 문로(門路)가 자기에 의하여 열린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동방연맹(東邦聯盟)의 맹주가 될 것이고 조선은 세계통일의 종주국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1920년에는 전국의 신도를 60방주(方主)의 조직으로 묶고, 55만 7,700명에 달하는 간부를 임명하기도 하였다.
1921년 차경석은 일본 경찰의 체포령과 비상망 속에서도 경상남도 덕유산 기슭의 황석산(黃石山)에서 대규모의 천제(天祭)를 올리고 국호를 <시국(時國)>, 교명을 <보화(普化):뒤에 보천교라 함.>로 선포하였다. 이 때부터 교단 안팎에서는 차경석이 천자로 등극할 것이라는 소문이 크게 떠돌아 갑자등극설(甲子登極說)·기사등극설(己巳登極說)로 구체화되고, 민간에서는 차경석을 차천자(車天子)라 부르게 되었다.
1922년에는『보광(普光)』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1924년에는 시대일보(時代日報)를 인수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
1922년에는 정읍군 입암면 대흥리에 대규모 교당을 신축하였는데, 건축자재를 백두산의 원시림에서 가져다 쓰면서 6백만 신도를 호칭할 정도로 교세가 대단하였다.
보천교의 세력이 커지자 일제는 교단에 대한 탄압을 가하는 한편, 회유하기 시작하였다.
차경석은 종교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내각총리대신에게 친일사절을 파견하는 한편, <시국대동단(時局大同團)>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전국토를 순회하면서 보천교의 소개와 함께 대동아단결(大東亞團結)을 강조하는 친일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이에 반대하는 보천교혁신운동이 일어났고, 고위간부들이 신도를 이끌고 별도의 교단을 세우는 사태가 일어나게 되어 교세는 크게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 분파는 신현철(申鉉喆)의 태을교를 비롯하여 동화교(東華敎)·삼성교(三聖敎)·수산교(水山敎)·보화교·선도교·무을교(戊乙敎)·임무교(任務敎)·서상근파(徐相根派)·금산사미륵불교포정소(金山寺彌勒佛敎布政所)·인천교(人天敎)·원군교(元君敎) 등이었다. 1936년차경석이 죽고 이어 조선총독부가 <유사종교해산령>을 선포함에 따라 교단은 해체되고 말았다.
8·15광복 후 다시 조직화되었지만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 신파와 구파로 분열되어 있다. 신파는 차경석의 아들 차용남(車龍南)이 주축이 되어 차경석의 교의를 신봉하고 교조로 받드는 반면, 구파는 강일순을 교조로 하고 본부에서 떨어져 나와 같은 마을에 별파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신파와 구파를 합하여 1만여 명의 신도가 있다.
신앙대상은 초기에는 옥황상제하감지위(玉皇上帝下鑑之位)·구천하감지위(九天下鑑之位)·칠성성군하감지위(七星聖君下鑑之位)를 써 붙이고 경천(敬天)이 위주였으나 지금은 삼광영(三光影)을 받든다.
삼광영이란 일(日)·월(月)·성(星)을 말하며 이는 모든 조직의 기본이 된다. 기본교리는 인의(仁義)이다. 즉, 인으로 생하고 의로 이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의를 행하는 것이 인도(人道)의 시종(始終)이 된다고 한다. 또, 경천(敬天)·명덕(明德)·정륜(正倫)·애인(愛人)의 4대 강령과 상생(相生)·대동(大同)을 강조한다. 의례행사는 4절후 치성과 다섯 차례의 정례치성을 지낸다.
경전은『대도지남(大道指南)』,『이사전서(二師全書)』,『교조약사(敎祖略史)』등을 신구파가 공동으로 쓰고 있으며, 각기 다른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1. 보천교 중앙총정원,『보천교연혁사』 상·하 속편, 1948·1958.
2. 이정립,『증산교사』, 증산교본부, 1977.
3. 김홍철·류병덕·양은용,『한국 신종교 실태조사 보고서』,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4. “보천교(普天敎)”, 네이버『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12.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지역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한국선도의 맥을 이은 일십당 이맥의 괴산 유배지 추적과 활용방안”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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