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류인식 선생의 생애와 업적
2016.03.21 02:58 |
조회 10338
민족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류인식 선생의 생애와 업적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辛相龜
류인식(柳寅植, 1865-1928)은 고종 2년이 1865년 5월 3일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 삼산마을에서 류필영(柳必永)과 청주 정씨(淸州 鄭氏) 사이에서 2남 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래(聖來), 호는 동산(東山)이다. 후에 큰집 9촌 아저씨 기영(祈永)의 아들로 입양되었다.
부인 류필영은 퇴계 학통을 이어받은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문하로 1881년의 영남만인소에 참가하였고, 1919년에는 유림들의 독립운동인 ‘파리장서’에도 참여하는 등 철저한 위정척사사상을 지닌 인물이었다. 따라서 협동학교를 설립하는 등 개화계몽운동을 펼치려는 아들 동산과의 관계는 좋을 리 없었다. 부자간 불화의 결정적 계기는 동산이 개화사상가로 전회하여 서울에서 단발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일이었다.
동산은 태어나면서부터 영민하고 재주가 뛰어났는데 6~7세경부터 할아버지 용재공(容齋公, 성진을 말함)에게서 한학을 배우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리고 김도화(金道和, 1825-1912)의 문하에서 전통적인 영남유학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그런데 류인식은 혁신유림으로서 혁구유신(革舊維新)을 추구하는 바람에 스승 김도화로부터 사제관계를 끊기는 파문을 당하여 슬퍼하고 괴로워했다.
28세 되던 1893년 과거를 보러 상경하였으나 조선조의 마지막 시험이었던 이 과거에서 제도의 문란과 조정의 부패를 목격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귀향하였다. 귀향 후 학문에 전념하던 류인식은 곧 외세의 침략을 감지하고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가하였다.
류인식의 독립운동은 1895년 말 의병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의병이 실패로 끝나자 그는 국내의 산수를 돌아보며 10년 동안 민족의 길을 찾는 데 몰입하였다. 그러다가 1903년 성균관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이 때 류인식은 신채호(申采浩)·장지연(張志淵) 등과 교류하며 서구의 근대사상과 학문에 심취하게 되었다. 특히 신채호와의 만남은 류인식의 사상과 행동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전기가 되었다.
1904년부터 류인식은 본격적으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신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고향인 안동에 근대식 학교 설립을 시도하였다. 이에 따라 1907년 봄 임하 내앞(川前)에 근대식 중등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설립하고 교감에 취임하였다. 협동학교는 1908년부터 1918년까지 모두 80명 정도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졸업생들은 대부분 만주로 망명하거나 고향에서 전개된 3?1운동이나 신간회 지회의 핵심인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였다. 협동학교 설립 이후 류인식의 계몽운동 행보는 계속되었다. 1907년 11월에는 대한협회 조직에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으며, 안창호(安昌浩)·양기탁(梁起鐸)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신민회에도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에 참여하여 교육구국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해외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협동학교의 업무를 류동태에게 위임하고, 이상룡(李相龍)·김동삼 등과 함께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서간도 봉천성 유하현에 정착한 류인식은 경학사(耕學社) 조직에 참여하고, 교육부장을 맡아 독립운동 기지 건설 및 이주 한인들의 생활 안정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흉작이 거듭되어 경학사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류인식은 1912년 7월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잠시 귀국하였다가 일제에 체포되었다. 석방 후 류인식은 망명을 포기하고 국내에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1910년대 류인식의 국내 활동은 교육운동과 역사서 서술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대별된다. 류인식은 1917년 다시 협동학교를 맡으면서 망명으로 못다 한 그의 교육 이념을 실천에 옮겼다. 또한 귀국 후『대동사(大東史)』의 저술에 심혈을 기울였다.『대동사』는 단군에서 시작하여 경술국치까지 4243년간의 우리나라 역사를 편년체 형식으로 서술한 총 21권 11책의 통사이다. 이 저서는 교육이 철저히 억압당하고 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귀중한 작업이었으며, 그 자체가 바로 적극적인 항일운동이었던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런데 임나일본부를 역사적 사실로 서술한 것은 무비판적으로 식민사학의 굴레에 빠진 한말 사학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한 큰 결점이다.
류인식의 교육운동은 1920년에도 계속되었다. 1920년 이상재(李商在)·류진태(柳鎭泰) 등과 함께 전국 교육기관을 통일하여 조선교육회를 창립하였다. 1923년 3월에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 발기총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선전부장으로서 경상도를 순회하며 강연을 통해 지방의 청년·지식인들을 고무시켰다. 교육운동을 전개하던 류인식은 1920년대 들어와 대중을 지도하는 사회운동에 눈을 돌렸다. 1920년 류인식은 박중화(朴重華)와 함께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 설립에 참가,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는데 이는 3·1운동을 통해 그가 대중을 인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독립운동계에 좌우합작운동의 결과인 신간회가 탄생하자 8월에 안동지회를 결성하고 회장으로 활동하며, 안동 지역의 사회운동을 이끌었다. 이와 같이 협동학교에서 출발하여 계몽운동가, 역사 서술가, 사회운동가를 넘나들며 줄기차게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류인식은 1928년 4월 29일 생을 마감하였다. 신간회 안동지회를 비롯한 안동의 청년운동단체들은 류인식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르려 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졌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류인식의 저서로는『대동사(大東史)』,『대동시사(大東詩史)』,『동산전서(東山全書)』, 『동산문고(東山文稿)』가 있다.
<참고문헌>
1. 류인식,『동산문고』,동산선생기념사업회, 1978.
2. 김희곤, 「동산 유인식의 생애와 독립운동」,『민족 위해 살다간 안동의 근대인물』, 안동청년유도회, 2003.
3. “류인식(柳寅植)”, 네이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3.20.
4. “류인식(柳寅植)”, 네이버캐스트, 2016.3.20.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류인식(柳寅植, 1865-1928)은 고종 2년이 1865년 5월 3일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 삼산마을에서 류필영(柳必永)과 청주 정씨(淸州 鄭氏) 사이에서 2남 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래(聖來), 호는 동산(東山)이다. 후에 큰집 9촌 아저씨 기영(祈永)의 아들로 입양되었다.
부인 류필영은 퇴계 학통을 이어받은 정재(定齋) 류치명(柳致明)의 문하로 1881년의 영남만인소에 참가하였고, 1919년에는 유림들의 독립운동인 ‘파리장서’에도 참여하는 등 철저한 위정척사사상을 지닌 인물이었다. 따라서 협동학교를 설립하는 등 개화계몽운동을 펼치려는 아들 동산과의 관계는 좋을 리 없었다. 부자간 불화의 결정적 계기는 동산이 개화사상가로 전회하여 서울에서 단발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일이었다.
동산은 태어나면서부터 영민하고 재주가 뛰어났는데 6~7세경부터 할아버지 용재공(容齋公, 성진을 말함)에게서 한학을 배우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리고 김도화(金道和, 1825-1912)의 문하에서 전통적인 영남유학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그런데 류인식은 혁신유림으로서 혁구유신(革舊維新)을 추구하는 바람에 스승 김도화로부터 사제관계를 끊기는 파문을 당하여 슬퍼하고 괴로워했다.
28세 되던 1893년 과거를 보러 상경하였으나 조선조의 마지막 시험이었던 이 과거에서 제도의 문란과 조정의 부패를 목격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귀향하였다. 귀향 후 학문에 전념하던 류인식은 곧 외세의 침략을 감지하고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가하였다.
류인식의 독립운동은 1895년 말 의병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의병이 실패로 끝나자 그는 국내의 산수를 돌아보며 10년 동안 민족의 길을 찾는 데 몰입하였다. 그러다가 1903년 성균관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이 때 류인식은 신채호(申采浩)·장지연(張志淵) 등과 교류하며 서구의 근대사상과 학문에 심취하게 되었다. 특히 신채호와의 만남은 류인식의 사상과 행동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전기가 되었다.
1904년부터 류인식은 본격적으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신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고향인 안동에 근대식 학교 설립을 시도하였다. 이에 따라 1907년 봄 임하 내앞(川前)에 근대식 중등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설립하고 교감에 취임하였다. 협동학교는 1908년부터 1918년까지 모두 80명 정도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졸업생들은 대부분 만주로 망명하거나 고향에서 전개된 3?1운동이나 신간회 지회의 핵심인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였다. 협동학교 설립 이후 류인식의 계몽운동 행보는 계속되었다. 1907년 11월에는 대한협회 조직에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으며, 안창호(安昌浩)·양기탁(梁起鐸)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신민회에도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에는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에 참여하여 교육구국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해외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협동학교의 업무를 류동태에게 위임하고, 이상룡(李相龍)·김동삼 등과 함께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서간도 봉천성 유하현에 정착한 류인식은 경학사(耕學社) 조직에 참여하고, 교육부장을 맡아 독립운동 기지 건설 및 이주 한인들의 생활 안정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흉작이 거듭되어 경학사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류인식은 1912년 7월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해 잠시 귀국하였다가 일제에 체포되었다. 석방 후 류인식은 망명을 포기하고 국내에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1910년대 류인식의 국내 활동은 교육운동과 역사서 서술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대별된다. 류인식은 1917년 다시 협동학교를 맡으면서 망명으로 못다 한 그의 교육 이념을 실천에 옮겼다. 또한 귀국 후『대동사(大東史)』의 저술에 심혈을 기울였다.『대동사』는 단군에서 시작하여 경술국치까지 4243년간의 우리나라 역사를 편년체 형식으로 서술한 총 21권 11책의 통사이다. 이 저서는 교육이 철저히 억압당하고 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귀중한 작업이었으며, 그 자체가 바로 적극적인 항일운동이었던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런데 임나일본부를 역사적 사실로 서술한 것은 무비판적으로 식민사학의 굴레에 빠진 한말 사학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한 큰 결점이다.
류인식의 교육운동은 1920년에도 계속되었다. 1920년 이상재(李商在)·류진태(柳鎭泰) 등과 함께 전국 교육기관을 통일하여 조선교육회를 창립하였다. 1923년 3월에는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 발기총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선전부장으로서 경상도를 순회하며 강연을 통해 지방의 청년·지식인들을 고무시켰다. 교육운동을 전개하던 류인식은 1920년대 들어와 대중을 지도하는 사회운동에 눈을 돌렸다. 1920년 류인식은 박중화(朴重華)와 함께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 설립에 참가,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는데 이는 3·1운동을 통해 그가 대중을 인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독립운동계에 좌우합작운동의 결과인 신간회가 탄생하자 8월에 안동지회를 결성하고 회장으로 활동하며, 안동 지역의 사회운동을 이끌었다. 이와 같이 협동학교에서 출발하여 계몽운동가, 역사 서술가, 사회운동가를 넘나들며 줄기차게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류인식은 1928년 4월 29일 생을 마감하였다. 신간회 안동지회를 비롯한 안동의 청년운동단체들은 류인식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르려 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졌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류인식의 저서로는『대동사(大東史)』,『대동시사(大東詩史)』,『동산전서(東山全書)』, 『동산문고(東山文稿)』가 있다.
<참고문헌>
1. 류인식,『동산문고』,동산선생기념사업회, 1978.
2. 김희곤, 「동산 유인식의 생애와 독립운동」,『민족 위해 살다간 안동의 근대인물』, 안동청년유도회, 2003.
3. “류인식(柳寅植)”, 네이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6.3.20.
4. “류인식(柳寅植)”, 네이버캐스트, 2016.3.20.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전체 5,456건 (352/364페이지)
191
단재 신채호 선생에 대한 단상
2010.03.31,
조회 19818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출처: 박덕규 님의 글
어제 밤에는 단재 선생의 [조선상고사]와 총론을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낯선 이가 나와 조선상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어, 하염없이 듣다가 잠이 깨었습니다.빼앗긴 우리...
190
日 "초등교과서에 '독도' 경계선 표시하라"
2010.03.31,
조회 11361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연합뉴스 기사전송 2010-03-30 10:27 최종수정 2010-03-30 11:22 관심지수11관심지수 상세정보 최소 0 현재 최대 100 조회 댓글 올려 스크랩 [전송시간 기준 7일간 업데이트] 도움말 닫기 글씨 확대 글씨 축소 검정...
189
스마트폰 열풍에 지상파 방송사 '비상'
2010.03.31,
조회 11916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2010-03-29 스마트폰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TV와 DMB 단말기 중심의 지상파 방송사 정책에 비상이 걸렸다.그동안 지상파 DMB 외에 지상파 방송사들은 라디오 애플리케이션 정도만을 내놓을 뿐 TV방송에서 대해서...
188
물… 물… 물… 가뭄·물부족에 지구촌 탈진
2010.03.31,
조회 11978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매일 어린이 4000명 숨져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관련기사 전 세계가 극심한 가뭄과 불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중국 서남부 지역은 100년 이래 최악의 가뭄이 몰아쳤고, 아마존강 유역은 수십년간 지속된...
187
글로벌 2대 버블은 미 국채와 중국 부동산"
2010.03.31,
조회 11855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 짐 로저스 "글로벌 2대 버블은 미 국채와 중국 부동산" "유로화, 15~20년 내에 사라질 것" "2012년까지 또 한 차례 경기후퇴 온다" "금과 원유 등 상품에 주목" -- 뉴스 토마토 2010-03-18 08:25 [뉴스토...
186
급변하는 북한 소식
2010.03.31,
조회 11407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 "북한 굶주림 심각...중국 개입해야" -- 2010-03-23 미투데이 북한 주민들이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를 완화하려면 중국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지적했습니다.이 신...
185
이스라엘, 이란 공습 가능성 높아져"
2010.03.31,
조회 11600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AIPAC "美-이스라엘 관계 위기의 여파"(워싱턴 AFP=연합뉴스) 동(東)예루살렘 유대인 정착촌 건설문제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례 없는 냉각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21일 워싱턴에서 열린 친 이스라엘 단체...
184
대한민국, 실업률 최악사태 !!
2010.03.31,
조회 10760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집안일 돌보는 인구 600만명 넘어연합뉴스 | 입력 2010.03.18 06:18 | 수정 2010.03.18 10:27 | 누가 봤을까? 10대 여성, 강원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 지난달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가 최대치를 기록한...
183
우리는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
2010.05.08,
조회 12270
[자유게시글]
운영자
[오마이뉴스 강인규 기자]대학에서 뉴미디어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깨달은 게 있다. 기술과 사회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기술이나 혁신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182
석유 자원
2010.03.31,
조회 10462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불을 밝히기 위해 동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던 인간이 등유를 사용하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인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이후 휘발유 자동차가 개발됐고 경유를 사용하는 디젤차가 등장했다. 각종 연료로 사용되던 석탄...
181
달러, 2년내에 휴지조각 된다
2010.03.31,
조회 12212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오바마 당선ㆍ리먼 브러더스 파산 등을 미리 예측했던 日 경제학자의 새 전망"미국 달러가 휴지 조각이 된다. 전 세계는 곧 또 한 차례 최대의 금융위기를 맞는다." 달러의 위상이 저하돼 향후 기축통화 역할을 하기...
180
가톨릭, ‘토마스’ 안중근 의사에 100년만에
2010.03.31,
조회 10971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2010년 3월 26일 명동대성당에선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안중근(1879~1910)의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는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한국가톨릭의 최고 지도자가 명동대성당에서 교구 차원의 공식적인 안의사 추모 미...
179
NASA 과학자 “칠레지진으로 지구자전축 8cm 이동”
2010.03.31,
조회 14251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과학자들이 이번 칠레지진으로 지구자전축이 이동했으며, 자전주기의 변화로 하루길이가 줄어들었다는 주장을 발표했다.미항공우주국(NASA)의 제트추진연구소 지구물리학 과학자 리처드 그로스(Richard Gross)는 칠...
178
재앙 앞에 무너진 지구촌…칠레 대지진 후 지진 공포 커져
2010.03.31,
조회 12199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여진으로 떨고 있는 칠레 차라리 집 밖에서 노숙하는 시민 늘어 필리핀에서 규모 6.1의 지진 발생해 우간다서 발생한 산사태로 마을 하나가 통째로 매몰…수백명 사망·실종
2010-03-03 00:44:09 [ 이슬 기자 ]...
177
집단묘지로 변한 아이티 지진 대재앙
2010.03.31,
조회 13014
[자유게시글]
대한의혼
아이티 강진 발생(종합)
(로이터=연합뉴스) 중앙아메리카 아이티에서 12일 오후(현지시각) 200여년만에 최악의 강진이 발생, 대통령궁을 비롯해 정부기관 건물과 병원, 호텔, 가옥들이 붕괴되는...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