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정신적 지도자인 장암 지헌영 선생 이야기
2016.05.23 0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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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정신적 지도자인 장암 지헌영 선생 이야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辛相龜
장암(藏菴) 지헌영(池憲英, 1911~1981)은 1911년 3월 8일 대전시 선화동 123번지의 청주지씨(淸州池氏) 문중에서 부인 지영식(池永植)과 모인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10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려 고종 때 시중을 지낸 덕산공 지순의 14대손이며 시조의 35대손이다.
할아버지는 학자 계열이나 아버지가 상업으로 자산을 일궈낸 선화동 본토백이다. 선화동 일대에서는 공주갑부 김갑순 못지않게 장암의 선친 땅이 많았다. 사위인 금선씨의 증언에 의하면 지금의 대전세무서(옛 대전지방법원)와 목동의 옛 대전형무소 일대 수만평의 땅이 모두 장암 선친의 소유였다고 하니 그 재산의 규모가 얼마나 컸나를 짐작할 수 있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9백석지기였다. 농지개혁 이후에도 땅이 많아 땅 팔아 살았음으로 곤궁하지 않았다. 덕분에 책도 무던히 샀고. 집에서는 한복을 즐겨 입고 밖에서는 양복을 입었다. 종교는 불교를 믿었다. 스스로 화엄에 조예 있으면서도 예의, 염치, 성리학적 의리를 중시했다. 사회참여를 좋아해 회를 할 때에는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선화동의 도로변(선화사거리 동양오리온투신 건너편 주상복합건물 자리)에 대전에서 가장 큰 기와집이 있었다. 이곳에서 국문학자이자 언론인이며 문인이었던 장암 지헌영선생이 태어났다. 그는 이 집에서 일제강점기 항일운동부터 해방후 교육계와 언론계에 몸을 담으면서 평생을 살다가 1981년 1월 1일 노환으로 7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일제강점기에 그의 집은 독립운동 그룹인 젊은 청년들의 집합장소였다. 그래서 장암의 부인은 뒷바라지에 많은 고생을 했다. 대전고 후배로 항일독립운동가였던 권용두는 장암집에서 살다시피 했고 정훈, 박용래, 사재동, 송백헌, 조종업, 최원규, 김용재 등 대전의 수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수시로 찾아와 때로는 기숙까지 하는 대전의 문화사랑방이었다. 정훈이나 박용래 등 문인들이 찾아오면 나무람을 주면서도 "내가 시를 쓰면 문인들이 설 자리가 없다."며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장암은 연희전문 스승인 이병도 ? 최현배 ? 정인보 선생 등을 곧잘 모셨고, 시인 김억 ? 이상화 ? 정훈 등이 와서 시를 짓곤 했다. 중경공전 강전섭 교수는 기식을 했다. 경향각지에서 풍수가들이 찾아오면 풍수와 지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장암(藏菴) 지헌영(池憲英)은 어려서부터 신동소리를 들었으며, 아버지가 초빙한 독선생으로부터 한문을 배웠다. 1926년 대전보통학교(지금의 삼성초등학교)를 수료하였고, 1931년 대전공립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32년 연희전문 문과 3학년 때에 항일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퇴교당하였다. 연세대학교 재학 시에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를 사사하였다.
장암은 일제강점기에 대전지역 독립운동의 지주 역할을 했다. 그가 잡혀가면 독립운동을 할 수가 없어 송도용씨가 운영하는 토건회사 직원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일제는 장암에게 징용통지서를 9번이나 보냈지만 그때마다 대전의 외진 지역으로 피신해 징용을 피했다.
애국운동을 할 수 없어 한 때 방황했다. 사방공사 하는 송도영씨를 따라다니며 일하고, 5만분지1 지도를 갖고 다니며 지명과 풍수를 연구했다. 기름 장사하다가 실패했다. 그러다가 징용을 피해 답사를 하거나 집에 앉아 독서를 했다. 25세 때에는 압록강에서 대들보를 해가지고 와, 3,000평 정도의 선화동 땅에, 오동나무 서있는 흙담 울타리 집 3채를 지었다. 일제 말에는 유성 노은리에 피신하여 서평 등의 글을 계속 쓰면서 고전 학습, 자연과학, 사회과학, 미술 등을 공부했다.『개벽』에 풍수지리 관계 글들을 집필했고, 집에는 전속 지관(地官)이 늘 거주했다.
장암은 평소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인물을 키워주느라고 애를 썼다. 정훈이 세운 호서중학도 장암이 배후에서 일을 했으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생색을 하지 않았다.
1945년 광복과 동시에 대전중학교 교유(敎諭=敎師)로 부임했다. 대전중 10회 졸업생으로 모교 교사로 들어가서는 교가와 응원가 등을 짓기도 했다. 그리고 1945년 10월에 우리 민족의 문화 향상을 위해 발족한 이색적이고 비정치적인 시민단체인 계림학회(鷄林學會)가 종량도(宗郞徒)로 이름을 바꾸고 좌우익의 대립과 충돌 과정에서 방황하는 대전 시민들에게 이념을 떠나서 우리 민족의 슬기를 각인시키고 새로운 국가 건설에 이바지하자는 뜻으로 활동범위를 넓히자 대표를 맡아 봉사했다. 1949년부터는 전주 명륜대학(明倫大學, 전북대)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전쟁 때에 아군들이 인민군이 들어오기 전, 철수할 때 큰 집들을 태웠는데, 그 때에 개인 최고의 장서랄 수 있는 책 만 권 정도가 같이 탔다. 부인 지영식(池永植)이 9.28 수복 후 돌아와 남은 주춧돌에 400평 정도의 집을 적당히 지었다. 그 당시 주역(周易)을 보면서 음악, 미술, 과학이 어느 점에서는 서로 통한다고 보았다. 1951년에는중도일보(中都日報) 논설위원, 1952년에는 충남대학교 국문과 교수, 1956년에는 호서문학회(湖西文學會) 대표를 역임했다. 그 후에는『대전일보(大田日報)』 논설위원 및 사장,『충남도지』와『대전시지』 편찬위원, 어문연구회(語文硏究會) 회장, 한국언어문학회(韓國言語文學會) 회장, 충남도 문화재 관리위원, 한글학회 대전지회장, 외솔회 대전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2년 충대가 설립되자 1953년에 국문과 창설 멤버가 되었다. 충남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시에는 후진양성에 온갖 정성을 기울여 조종업(한문학), 강전섭(고전문학, 고전시가), 도수희(고대국어, 지명학), 박계홍(민속학), 사재동(고대소설, 불교문학) 등 역량 있는 학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비교문학, 시, 소설에 관심이 많았고, 그림을 좋아해 가끔 이삼일씩 상경하여 관람했다. 학생들이 희곡을 공부할 때에는 김동원 씨나 유치진 씨의 연극도 구경시켰고, 일부 학생은 비용을 대어 공부시켰다. 고대 문학사를 강의할 때에는 미술, 음악을 절대 떼어놓을 수 없다고 함께 강의했다. 지명과 풍수에 관심이 대단하여, 수업시간에 특히 답사한 곳을 많이 말씀했다. 학생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도 학문을 좋아해 오후 4시부터 아침 11시까지 연구했다. 학생들에게 학점을 짜게 주었는데, 이는 실력있는 사람을 키워 사회에 내보내야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현재 그 문하생들이 학통을 이어받아 국어국문학계에서 맹활약을 함으로써 많은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충남대 초대 도서관장을 할 때에는 총장인 민태식씨(동양사 전공)와 짜고서, 시중에 나도는 헌책들을 근으로 사다가 트럭으로 실어날라 도서관의 기초를 닦았다. 한강 이남에서 충남대 도서관처럼 고서를 많이 소장한 데가 없는 것은 그의 덕이다. 그런데 당시 학장의 인사문제에 편파와 정실이 있다고 정식 항의하면서 불화가 생겨 1957년에 사직했다. 1975년에 제자인 사재동 교수의 배려로 충남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향가'와 '려요'을 강의했다. 지금 40대 중반의 학자들이 그 강의를 들었다. 1970년 회갑을 맞아 제자들이『회갑기념논문집』을 발간했다.
장암은 국문학(특히 향가) 및 지명학의 권위자로 일찍이 호서·호남을 중심으로 한 학문의 활동무대인 어문연구회와 한국언어문학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에는 도지, 시지 등 향토사 관계의 책임편찬위원을 역임했다.
한편 196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이 들어설 무렵, 민주화운동에 서명, 동참했다가 많은 고초를 겪었다. 옥고는 치루지 않았으나 충남대 국민윤리 교수로 근무하던 사위가 된서리를 맞았다. 사위는 나중에 순천향대로 복직했다.
장암은 품격이 고결하여 불의와 부정에는 조금도 굴하지 않는 강직한 기풍이 있어 학창시절에는 항일·배일사상으로 한때 옥고를 치른 일까지 있다.
“학문은 열정이다.” 라고 말하면서 서구의 방법론을 중요시하여 서양의 분석방법론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학의 경우, 보조과학적 방법론, 즉 인접학문인 철학, 역사, 종교, 민속, 심리학 등을 도입해야만 그 정체가 분명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향가를 연구할 때 음악, 미술(제망매가와 석가탑 비교 같은), 백남운 등의 사회경제사 연구 성과를 도입하여, 경제적 토대위의 문학연구라는 종합과학적 방법을 제시했다.
작가치고 작품 안 쓰는 사람, 학자치고 글 안 쓰는 사람, 글 쓰되 어렵고 말도 안 되는 작품이나 글 쓰는 사람을 싫어했다. 그러다보니 혼자 잘난 체하는 유아독존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기도 했다.
은사인 의당 정인보 ? 두계 이병도 ? 외솔 최현배를 존경하고, 나이차가 나지만 연대 민영규 교수와 친하게 지냈다.
미술품에 대해서는 전문가여서 감식이나 연대고증을 했고, 회화 ? 서예 ? 도자기를 다수 소장했다. 대고(옛날의 대전중)에 책 2천여 권을 기증했고, 충대 장암문고에 도서 3천권을 기증했다.
말년에 목척다리를 지나다가 더러워진 수면을 보고 "환하게 트였다(豁然大悟)"고 일갈했다. 향가 연구의 영향으로 화엄의 세계에 들어 '다즉일 일즉다(多卽一一卽多)' '함유시방(含有十方)'하는 이해를 가졌다. 자연에 대한 외경심은 물론이거니와, 일월성신도 그렇지만, 특히 산천은 혈맥이 통하는 것으로 보아, 우주와 생명을 호흡하는 것이라 하여,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간주했다. 학자로서 진리를 수호하고, 기존의 종교철학 등도 포함하여 일원화한 창조적 현인이 되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명예를 쫓기보다는 시대를 지도할 수 있도록 영화(靈化)된 이념을 꿈꾸었다. 쉬고 있을 때에 서울 모 대학에서 초청했으나 고향 지킨다고 안 가실 정도로 대전 터줏대감을 자처했다.
보통 때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젊은이들과 만나 이야기할 때에는 조금씩 술을 마셨고, 담배는 엄청히 많이 피웠다. 대전극장통 '르네상스'에서 고전음악 듣기를 좋아했다.
주요 논저로는『향가여요신석(鄕歌麗謠新釋)』(서울정음사, 1947)을 비롯해「조선지명의 특성」(조광 제8권 9호, 1942),「정읍사(井邑詞)의 연구」(『아세아연구』3-1),「단가정형의 형성」(호서문학 제4집, 1959),「탄현에 대하여」(어문연구 제6집, 1970),『한국 지명의 제문제』(서울경인문화사, 2001) 등 20여 편이 있다.「아, 대전아」라는 장편 서사시를 지었다. 1957년 충청남도문화상을 수상하였고, 1967년에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14세 때에 청원군 현도면 배오개 사는 18세의 오약한(1991년 작고)과 결혼하여 슬하에 외동딸 지상경(池尙卿, 82세)을 두었다. 지상경은 충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가정주부로 평범하게 살고 있으며, 남편은 고려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충남대와 순천향대 교수를 역임한 금선(琴宣, 84세)씨 이다.
장암 지헌영 선생은 금세기 대전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이자 언론인이자 문인으로 70평생을 대쪽같은 선비로서, 사자같은 스승으로서, 활화산같은 학자로서, 항일독립운동가로서 훌륭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여 대전의 정신적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하여 구 충남도청에 들어선 대전시민대학에는 장암관이 마련되어 있고, 대전시청 광장에는 장암시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사정공원에는 장암 학술비가 세워져 있어, 장암 선생의 고결한 인격과 인문학 연구 성과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참고문헌>
1. 장암지헌영선생 고희기념논총간행회,『장암지헌영선생고희기념논총(藏菴池憲英先生古稀紀念論叢)』, 1980.
2. 추만호,『장암지헌영선생고희기념논총(藏菴池憲英先生古稀紀念論叢)』, 대전광역시 동구, 1995.
3.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세국학연구사』, 연세대학교출판부, 2005.
4. 최문휘, "되돌아본 대전 100년, 지난 이야기 4(1940-1950)", 월간 토마토 제51호, 2011.7. p.7.
5. “지헌영(池憲英),『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11.30.
6. 무위당, “학문은 열정이다 - 장암 지헌영”, http://blog.daum.net/taoshi/329, 2013.1.3.
7. 사재동, "나의 학문생활과 서포의 문학 예술", 사단법인 한국예총 대전광역시연합회,『대전예술』251권, (주)유선애드플랜, 2016.4.
8. "대전학의 선구자 장암 지헌영", 조성남,『선화동 이야기』, (주)월간토마토, 2015.12.30.
9. 조성남, “선화동이야기”, 중도일보, 2015.7.6일자. 18면.
<도움말 주신 분>
1. 대전광역시 서구 유천동 현대APT 104-503호 지상경-금선 부부.< 042-543-8451, 010-8328-2451>
2. 대전광역사 동구 자양동 115-22번지(동대전로 154번길 60)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 사재동(史吊, 82세) 박사.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7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한비문학>?<오늘의문학> 문학평론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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