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원로 시인 우봉 임강빈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고 명복을 빌며
2016.07.19 13:14 |
조회 12597
대전 원로 시인 우봉 임강빈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고 명복을 빌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辛相龜
대전 문단(文壇)의 원로 문인인 우봉(又峰) 임강빈(任剛彬) 선생이 지난 2016년 7월 16일 오후 2시에 향년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충청도 선비, 충청도 문학계의 거장 또는 터줏대감, 원로 글쟁이, 순수서정 시인 등으로 알려져 있다. 중?고등학교 학생 시절부터 무려 60여 년간 쉬지 않고 줄곧 순수 서정시를 쓰다 보니 13권의 서정 시집을 상재했다.
그의 대표 시로는 <동목(冬木)>, <벽(壁)>, <백목련>, <버들> 등이 있다. 황희순은 <동목(冬木)>을, 리헌석은 <백목련>과 <버들>을,『국어국문학자료사전』에는 <벽(壁)>을 대표시로 꼽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버들>을 임깅빈 시인의 대표 시로 추천하고 싶다.
꺽이지 마라
늘어진 가지야.
전봉준의
혁명처럼 꺽이지 마라.
춥고 어두운 겨울을
견딘 버들아.
봄추위가
아직은 골목에 남아 있지만
맨 먼저 눈 뜨거라.
춤 추거라.
뿌리박은 나의 땅
늘어진 가지야
바람 따라 서러운 버들아
진정 꺾이지 않는
힘을 보여라
<버들> 전문
이 시는 간결하면서도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여 시의 특징인 단순성과 애매모호성을 잘 살렸고, 실패한 동학혁명을 소재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성장한 시인의 무의식 속에 연면하게 녹아있는 항일정신과 겨레사랑 정신을 잘 표출하고 있어, 재야 민족사학자인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고 임강빈 시인은 전통적 순수서정을 노래해 온, 일관된 서정 시인으로 주로 짧은 시를 창작했다. 그의 시들엔 ‘나’란 자아가 빠져 있고, 무욕(無慾 : 비우고자 함이나 비운 상태)의 시심과 허정(虛靜 : 예술적 창조와 미적 관조의 바탕이 되는 순수의식)의 경지에 이르는 심재(心齋) 과정을 통해 내면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반도시적인 시골의 사물을 대상으로 쓴 시가 많다. 그의 시를 보면 사물이 곧 화자가 되고, 사물이 그림처럼 시각적으로 단순하게 서술되어 있는가 하면, 한폭의 정물화(靜物畵)처럼 그 기법이 섬세하고, 이미지가 극도로 압축되어 있다.
그는 해방 직후 공주시장에서 우연히『문장(文章)』이란 문학잡지를 보고 운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시작을 하기 시작했다. 공주중 6학년 재학 시에 시집『해바라기』단권을 발간했는데, 혼란기에 분실했다. 1959년『중학생』이라는 잡지에 시가 게재된 적이 있다. 1950년 6월 1일 공주사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해 금당(錦塘) 이재복(李在福, 1918-1991) 교수와 물재(勿齋) 이원구(李元九) 교수 지도로 김구용(金丘庸), 정한모(鄭漢模), 장서언(張瑞彦, 교사), 김상억(金尙億, 교사), 최원규(崔元圭), 임성숙(林星淑) 등과 학내 문학서클인 시회(詩會)를 창립하고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임강빈 시인은 정한모(鄭漢摸, 1923-1991), 박목월(朴木月, 1915-1978),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서정주(徐廷柱, 1915-2000) 등을 존경했고 그들이 쓴 시를 좋아했다. 그는 일평생 산문은 쓰지 않고 운문인 시만 썼다. 민중시, 참여시는 쓰지 않고 서정시만을 창작했다.
문단활동으로는 1977년 한국문인협회 충남지회장을 역임했고, 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했다. 그는 문단활동을 하면서 김구용(金丘庸, 1922-2001), 박용래(朴龍來, 1925-1980), 한성기(韓性祺, 1923-1984), 최원규(崔元圭), 나태주(羅泰柱) 등과 자주 어울려 술집을 전전하며 인생과 문학을 논했다.
고인은 2016년 5월 10일 발간한 마지막 시집인『바람, 만지작거리다』서문에서 “무려 60년이나 시를 창작했지만, 널리 회자되는 시, 번번한 애송시 하나 없어 허무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박용래, 한성기 시인과는 달리 중앙문단에 기웃거리지 않고 충남과 대전의 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김용재(金容材), 김영훈(金榮薰), 리헌석(李憲錫), 고 전영관(全榮寬, 1950-2016), 고 홍희표 (洪禧杓, 1946-2014) 등 훌륭한 문인들을 많이 배출해 향토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
우봉 임강빈 시인은 1931년 2월 22일(음력 12월 7일) 충남 공주군 반포면 봉암리의 풍천임씨(豊川任氏) 가문에서 부인 만당(晩堂) 임영순(任瑛淳)과 모 정순모(鄭順謨) 사이에 3남 중 2남으로 태어났다. 공주중학교,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52년 청양중학교 교사로 교육계에 입문했다. 그 후 충남과 대전에서 44년간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96년 대전 용전중학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1956년『현대문학』에 <항아리>, <코스모스>, <새> 등의 시 작품이 추천돼 등단한 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여 시집『당신의 손』,『동목(冬木)』,『매듭을 풀며』,『등나무 아래에서』,『조금은 쓸쓸하고 싶다』,『버리는 날의 반복』, 『버들강아지』,『버리는 날의 향기』,『쉽게 시가 쓰여진 날은 불안하다』,『한 다리로 서 있는 새』,『집 한 채』,『이삭줍기』,『바람, 만지작거리다』등 13권을 발간했다. 1966년 충청남도 문화상, 1989년 요산문학상, 1994년 공산교육상(예술부문), 1996년 대전시인상, 1998년 상화시인상, 2002년 정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우봉 임강빈 시인은 평소에 고독한 시인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인들을 만나면 수시로 다음과 같은 경구와 어록을 말씀해 일평생 교훈으로 삼도록 했다.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 :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나무 밑에는 길이 저절로 생긴다.)
“사과는 제맛을 모르면서 익어간다. 시인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100편의 시를 쓰는 것보다 100명이 감동한 시 1편을 써야 한다.”
임강빈 시인은 1954년 10월 25일 25세 때에 공주시 봉황동에 거주하는 23세의 이석희(李石姬, 85세)와 결혼해 슬하에 2남(임창우. 임창준) 1녀(임창숙)를 두었다.
고인의 빈소는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영결식은 18일 오전 9시 대전문인협회장으로 치러졌다. 장지는 대전공원묘원(세종시 장군면 금암리)이다. 장례위원장은 문학사랑협의회 이헌석 회장이 맡았고, 장례식에는 60여 명의 가족과 문인과 지인들이 참여해 애도했다.
필자는 지난 2016년 4월 28일 가수원 자택(은아아파트 103동 807호)을 방문해 인터뷰를 하고 돌아와 생애와 업적을 정리하고 있다.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소천하실 지는 미처 몰랐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참고문헌>
1. 리헌석, “순수 서정시에 담긴 증언과 의식-등단 60주년을 맞은 임강빈 시인의 작품을 중심으로”,『문학사랑』116호(2016년 여름호), 오늘의 문학사, 2016.6.1.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9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한비문학>?<오늘의문학> 문학평론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대전 문단(文壇)의 원로 문인인 우봉(又峰) 임강빈(任剛彬) 선생이 지난 2016년 7월 16일 오후 2시에 향년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충청도 선비, 충청도 문학계의 거장 또는 터줏대감, 원로 글쟁이, 순수서정 시인 등으로 알려져 있다. 중?고등학교 학생 시절부터 무려 60여 년간 쉬지 않고 줄곧 순수 서정시를 쓰다 보니 13권의 서정 시집을 상재했다.
그의 대표 시로는 <동목(冬木)>, <벽(壁)>, <백목련>, <버들> 등이 있다. 황희순은 <동목(冬木)>을, 리헌석은 <백목련>과 <버들>을,『국어국문학자료사전』에는 <벽(壁)>을 대표시로 꼽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버들>을 임깅빈 시인의 대표 시로 추천하고 싶다.
꺽이지 마라
늘어진 가지야.
전봉준의
혁명처럼 꺽이지 마라.
춥고 어두운 겨울을
견딘 버들아.
봄추위가
아직은 골목에 남아 있지만
맨 먼저 눈 뜨거라.
춤 추거라.
뿌리박은 나의 땅
늘어진 가지야
바람 따라 서러운 버들아
진정 꺾이지 않는
힘을 보여라
<버들> 전문
이 시는 간결하면서도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여 시의 특징인 단순성과 애매모호성을 잘 살렸고, 실패한 동학혁명을 소재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성장한 시인의 무의식 속에 연면하게 녹아있는 항일정신과 겨레사랑 정신을 잘 표출하고 있어, 재야 민족사학자인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고 임강빈 시인은 전통적 순수서정을 노래해 온, 일관된 서정 시인으로 주로 짧은 시를 창작했다. 그의 시들엔 ‘나’란 자아가 빠져 있고, 무욕(無慾 : 비우고자 함이나 비운 상태)의 시심과 허정(虛靜 : 예술적 창조와 미적 관조의 바탕이 되는 순수의식)의 경지에 이르는 심재(心齋) 과정을 통해 내면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반도시적인 시골의 사물을 대상으로 쓴 시가 많다. 그의 시를 보면 사물이 곧 화자가 되고, 사물이 그림처럼 시각적으로 단순하게 서술되어 있는가 하면, 한폭의 정물화(靜物畵)처럼 그 기법이 섬세하고, 이미지가 극도로 압축되어 있다.
그는 해방 직후 공주시장에서 우연히『문장(文章)』이란 문학잡지를 보고 운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시작을 하기 시작했다. 공주중 6학년 재학 시에 시집『해바라기』단권을 발간했는데, 혼란기에 분실했다. 1959년『중학생』이라는 잡지에 시가 게재된 적이 있다. 1950년 6월 1일 공주사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해 금당(錦塘) 이재복(李在福, 1918-1991) 교수와 물재(勿齋) 이원구(李元九) 교수 지도로 김구용(金丘庸), 정한모(鄭漢模), 장서언(張瑞彦, 교사), 김상억(金尙億, 교사), 최원규(崔元圭), 임성숙(林星淑) 등과 학내 문학서클인 시회(詩會)를 창립하고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임강빈 시인은 정한모(鄭漢摸, 1923-1991), 박목월(朴木月, 1915-1978),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서정주(徐廷柱, 1915-2000) 등을 존경했고 그들이 쓴 시를 좋아했다. 그는 일평생 산문은 쓰지 않고 운문인 시만 썼다. 민중시, 참여시는 쓰지 않고 서정시만을 창작했다.
문단활동으로는 1977년 한국문인협회 충남지회장을 역임했고, 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했다. 그는 문단활동을 하면서 김구용(金丘庸, 1922-2001), 박용래(朴龍來, 1925-1980), 한성기(韓性祺, 1923-1984), 최원규(崔元圭), 나태주(羅泰柱) 등과 자주 어울려 술집을 전전하며 인생과 문학을 논했다.
고인은 2016년 5월 10일 발간한 마지막 시집인『바람, 만지작거리다』서문에서 “무려 60년이나 시를 창작했지만, 널리 회자되는 시, 번번한 애송시 하나 없어 허무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박용래, 한성기 시인과는 달리 중앙문단에 기웃거리지 않고 충남과 대전의 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면서 김용재(金容材), 김영훈(金榮薰), 리헌석(李憲錫), 고 전영관(全榮寬, 1950-2016), 고 홍희표 (洪禧杓, 1946-2014) 등 훌륭한 문인들을 많이 배출해 향토문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
우봉 임강빈 시인은 1931년 2월 22일(음력 12월 7일) 충남 공주군 반포면 봉암리의 풍천임씨(豊川任氏) 가문에서 부인 만당(晩堂) 임영순(任瑛淳)과 모 정순모(鄭順謨) 사이에 3남 중 2남으로 태어났다. 공주중학교,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52년 청양중학교 교사로 교육계에 입문했다. 그 후 충남과 대전에서 44년간 교직 생활을 하다가 1996년 대전 용전중학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1956년『현대문학』에 <항아리>, <코스모스>, <새> 등의 시 작품이 추천돼 등단한 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여 시집『당신의 손』,『동목(冬木)』,『매듭을 풀며』,『등나무 아래에서』,『조금은 쓸쓸하고 싶다』,『버리는 날의 반복』, 『버들강아지』,『버리는 날의 향기』,『쉽게 시가 쓰여진 날은 불안하다』,『한 다리로 서 있는 새』,『집 한 채』,『이삭줍기』,『바람, 만지작거리다』등 13권을 발간했다. 1966년 충청남도 문화상, 1989년 요산문학상, 1994년 공산교육상(예술부문), 1996년 대전시인상, 1998년 상화시인상, 2002년 정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우봉 임강빈 시인은 평소에 고독한 시인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인들을 만나면 수시로 다음과 같은 경구와 어록을 말씀해 일평생 교훈으로 삼도록 했다.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 :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나무 밑에는 길이 저절로 생긴다.)
“사과는 제맛을 모르면서 익어간다. 시인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100편의 시를 쓰는 것보다 100명이 감동한 시 1편을 써야 한다.”
임강빈 시인은 1954년 10월 25일 25세 때에 공주시 봉황동에 거주하는 23세의 이석희(李石姬, 85세)와 결혼해 슬하에 2남(임창우. 임창준) 1녀(임창숙)를 두었다.
고인의 빈소는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영결식은 18일 오전 9시 대전문인협회장으로 치러졌다. 장지는 대전공원묘원(세종시 장군면 금암리)이다. 장례위원장은 문학사랑협의회 이헌석 회장이 맡았고, 장례식에는 60여 명의 가족과 문인과 지인들이 참여해 애도했다.
필자는 지난 2016년 4월 28일 가수원 자택(은아아파트 103동 807호)을 방문해 인터뷰를 하고 돌아와 생애와 업적을 정리하고 있다.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소천하실 지는 미처 몰랐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참고문헌>
1. 리헌석, “순수 서정시에 담긴 증언과 의식-등단 60주년을 맞은 임강빈 시인의 작품을 중심으로”,『문학사랑』116호(2016년 여름호), 오늘의 문학사, 2016.6.1.
2. 최일, “대전 원로 문인 임강빈 선생 별세”, 금강일보, 2016.7.18일자. 18면.
3. 박영문, “대전지역 원로시인 임강빈 선생 별세”, 대전일보, 2016.7.18일자. 20면.
4. 신상구, “대전 원로시인 ‘우봉 임강빈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고 명복을 빌며”, 충남일보, 2016.7.19일자. 6면.
5. 신상구, “우봉 임강빈 선생의 타계를 슬퍼하며”, 대전 디트뉴스, 2016.7.19일자.
6. 신상구, “대전 원로 시인 우봉 임강빈 선생의 생애와 업적”, 중앙매일, 2016.7.20일자. 16면.
7. 신상구, “대전 원로시인 우봉 임강빈 선생의 명복을 빌며”, 금강일보, 2016.7.20일자. 10면.
8. 나태주, “오늘 잊지말고 내일잊자-임강빈 선생 부음에”, 특급뉴스, 2016.7.22일자.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9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한비문학>?<오늘의문학> 문학평론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전체 5,456건 (348/364페이지)
251
'인셉션'… 놀라운 상상력
[3]
2010.07.21,
조회 10554
[자유게시글]
상생도군
1
타인의 꿈속에 침투해 생각을 바꾼다.'다크 나이트'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각본, 연출, 제작을 맡은 영화 '인셉션'은 남의 꿈속에 침투해 생각을 훔치고, 생각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야기를 큰...
250
세계의 종가는 수도이전으로 부터.
[2]
2010.07.21,
조회 12525
[자유게시글]
노재웅
서양의 울타리라는 의미의 서울로부터세계의 종가를 상징하는 세종시(世宗) 로써의 부처이동은세계의 중심에 대한민국을 우뚝 세워 놓을 것입니다.이는 상당히 한국사회의 상당히 많은 변화를 만들어 줄 것임이 분명...
249
증산도 홈페이지 QR 코드
2010.07.20,
조회 12878
[자유게시글]
알캥이
아이폰이나 기타 스마트 폰에서 QR 코드 리더로 비추면 증산도 홈페이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광고도 한다고 해서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다음 사이트에서 만들 수 있습니다. http://qrcode.kaywa.com/ *...
248
`한국 기업이었으면 좋겠는가?` 미국 오피니언 리더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이미지는?
[2]
2010.07.20,
조회 12382
[자유게시글]
가을하늘
“애플이 한국 기업이었으면 좋겠는가?”(스티브 잡스)“(러시아 스파이가 아니라) 한국인 스파이였다면 기뻤을텐데”(토머스 프리드먼)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잇달아 언론을 통해 한국을 언급해 배경에 관심이 쏠리...
247
"(기독)신은 죽었다"(니체)-"천주님이 오신다"(수운)-그때 천지공사 전후에
2010.07.18,
조회 13173
[자유게시글]
진성조
# 제목: 유럽신학의 근황
-- 박아론 박사 (총신대 교수)
1. 자유주의 삼총사의 몰락과 칼바르트의 등장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유럽신학은 리츨과 하르낙 헤르만 등 자유...
246
한 제자가 물었다
2010.07.16,
조회 12781
[자유게시글]
박덕규
한 제자가 석가모니에게 道를 구하고자했다.
아무 말 없이 석가모니는 앉은 그 자리에 정좌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시如始.. (지금 이렇게)'
天是天非修道道요 不求俗地得長...
245
전쟁은 신을 생각하게 한다
[1]
2010.07.16,
조회 12755
[자유게시글]
진성조
< 드디어 미쳤다>
- 안도현
제 여인의 허리를 껴안던 팔로
남의 여인의 허리를 쏘려고 조준을 한다
제 딸아이의 볼을 쓰다듬던 손으로
남의 딸아이의 볼을...
244
진리를 전하는 사람은 이 세상 어느 누구와도 싸우지 않나니
[2]
2010.07.16,
조회 15289
[자유게시글]
진성조
사진: http://www.flickr.com/photos/slimjim/4794368504/ --------------------------------------------------------------------
"이 자들은 쥐를 기다리는 고양이처럼 앉아서 명상만 하는 사이비들이다" 하며...
243
선영의 음덕으로 나를 믿게 되나니
[1]
2010.07.15,
조회 11379
[자유게시글]
박덕규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천하의 백성들을 위함이니라.
내가 이제 천지를 개벽하여 하늘과 땅을 뜯어고치고 무극대도를 세워 선천 상극의 운을 닫고
조화선경을 열어 고해에 빠...
242
"남문을 열고 파루를 치니.."
[2]
2010.07.15,
조회 12647
[자유게시글]
박덕규
전주 풍남문(豊南門)에 오르시어 천지가 떠나갈 듯이 큰 소리로 “남문을 열고 파루(罷漏)를 치니 계명산천(鷄鳴山川)이 밝아온다!” 하며 노래하시니라 [도전 2:12:10]
신축년(1901년),
상제님께서 대원사 칠성...
241
도연명의 사시四時와 우주일년
2010.07.13,
조회 15994
[자유게시글]
만국활계
오늘 트윗터에서 누가 도연명의 사시에 대해서
질문을하길래 답하다가 생각나서 여기에 한번 적어봅니다.
陶 淵 明 도연명
사시(四時)
春水滿四澤 춘수만사택 봄이면 못...
240
민들레의 꿈
[3]
2010.07.13,
조회 11419
[자유게시글]
박덕규
몇년전 무더운 여름의 어느날..
사무실 창가에 서서 무심히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회사 담장 아래로 시선이 머물렀고..
그곳에서 애처로이 피어있는 들꽃 민들레를 발견했습니다...
239
증산도 우주원리 순환역사관 과 유사한 슈펭글러의 역사관
2010.07.09,
조회 9402
[역사]
진성조
증산도의 역사관의 우주섭리와 아주 유사한게 바로, 근현대 서구사상 에선 슈펭글러(1880~1936) , 니체(1844~1900) 몇사람 정도 일뿐 입니다.
물론 고대 그리스 문명 속에서 "이 우주에는 큰 봄, 큰...
238
진리에 대한 단상(短想)
2010.07.09,
조회 11729
[자유게시글]
진성조
깨달음을 여는 진리 란, 일방적으로 가르쳐서는 알수없는게 아닐까요?
다만 깨달음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 즉 배울려는 사람에게만 진리를 가르킬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기독교 성경--...
237
아이폰 활용 강의안
[1]
2010.07.08,
조회 13528
[자유게시글]
태양의전사
다운로드 받기 http://drop.io/bzeyszo/asset/iphone-ppt (페이지 접속 후 오른쪽의 Download 버튼 클릭, 저장)
아이폰 활용 강의안 목차
1. 강사소개2. 스티브 잡스 Biography3. 스티브 잡스 Philosophy+ 2005...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