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산책] 공존하는 두 개의 세상
2020.04.01 20:56 |
조회 10449
[마음 산책] 공존하는 두 개의 세상
중앙일보 2020-04-01
잠시 휴대폰 두고 밖으로 나오라
삶은 잠시 동안 주어진 선물임을
우주의 생명을 발견하게 되리니
어쩌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불안해질 수도 있고, 나 자신이 사라진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혹자는 옷을 입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용기를 내서 하지 않으면 공존하는 두 개의 세상 가운데 하나의 세상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세상을 어떻게 가는지 입구조차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전설로만 남을 수도 있다.
우선 그 세상을 두 개의 단어로 묘사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먼저 ‘선명하고’와 ‘생기가 넘치는’이라는 언어를 사용하겠다. 왜냐하면 일단 그 세상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색깔이다. 그것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살아있는 색깔들이다. 특히 지금처럼 꽃 피는 시절에는 아무런 노력 없이도 눈앞에 펼쳐진 살아있는 색깔들에 경탄하기에 바쁘다. 물론 그 세상으로 들어온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기쁨이다. 예를 들어 오늘처럼 햇살이 따뜻한 날에는 노란색 개나리, 시냇물 속 회색 돌멩이, 연두색 이끼, 황토색 길과 파란색 하늘, 너무도 찬란해서 가슴이 뛴다. 맞다, 선명하다는 말보다 ‘찬란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도 같다.
그다음으로 그 세상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무관심해서 편하다”라고 이야기하겠다. 그 세상으로 들어와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누구나 깨닫게 될 것이다. 시냇물 소리는 내가 누군지, 나를 힘들게 하는 고민이 무엇인지, 어떤 뉴스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지, 지금 현 정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시냇물 소리가 주변에 없으면 새소리나 나뭇가지를 스치고 가는 바람 소리에 물어봐도 좋다. “너는 내 생각에 관심이 있니?” 하고 말이다. 그러면 복잡한 생각 감옥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시원한 대답이 시냇물 소리나 새소리, 바람 소리로 돌아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세상에 대해 하나만 더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존재만으로 이미 충분하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 세상 안으로 들어가 편안한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얼굴이나 손에 닿는 햇볕을 가만히 느끼고 있으면 존재 자체가 축복받는 것 같이 감사하다. 왜냐면 이곳은 ‘미래를 향한 개발’이라든가 ‘일의 능률’이라든가 ‘경제적 가치’라는 언어가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직선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아니고, 시간의 흐름을 잘 느낄 수 없는 영원한 순환 속에 있다.
더불어 그 세상은 인간이 다른 생명이 있는 존재들보다 우선이 된다거나, 인간 마음대로 착취해서 쓰라고 다른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존재는 길가에 아름답게 핀 벚꽃이나 맑은 시냇물만큼 평등하게 소중하다.
그렇다면 그 세상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왜 들어갈 때 마음이 불안해질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일까? 이유는, 그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휴대폰 없이 집 밖으로 나와 홀로 걷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라는 세상과 연결되지 않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해야 만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문명 이전부터 존재해 온 우주를 내 몸의 감각을 통해 직접 보고, 만지고, 듣고, 느끼게 되면 처음에는 좀 이상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 자체가 주는 단순한 행복과 만나게 된다.
어떤 이는 끝없이 옳고 그른 것을 시비하는 인터넷 세상에서 잠시라도 탈출할 수 있어서 좋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내 몸이 뭐라고 하는지 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할 것이다. 지금 너무도 크게 느껴지는 자기중심적 고민이라든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걱정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자연을 보면서 걷다 보면 그 크기가 많이 줄어든다. 또한, 내 머리를 가득 채운 생각들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자연에 치유를 받을 것이다. 굳이 큰 성과를 내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내 존재를 받아주는 자연에 감사함도 느낄 것이다.
가끔씩 용기를 내서 휴대폰을 두고 밖으로 나와 동네 공원이나 산으로 가보자. 끝없이 울리는 문자 수신 소리나 읽고 나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뉴스에서도 잠시 거리를 둬보자. 인터넷에서 멀어질수록 당신은 잊고 있었던 자신과 우주의 생명을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의 삶이 잠시 동안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혜민스님 마음치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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