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면] 역사의 천사
2020.05.23 22:11 |
조회 10234
[문화 이면] 역사의 천사
매일경제 2020-05-23
코로나19가 바꿔놓는 삶의 풍경이 급격하고 가파르다. 인간은 일상이 무너지는 무참함 속에서 대규모 전쟁 말고도 종을 절멸시킬 강력한 요인이 있을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전파 속도가 빠르면 치사율이 낮고, 전파 속도가 느리면 치사율이 높은 게 바이러스와 인간의 공존 조건이었지만 돌연변이 앞에서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조건이었다. 역시 과학은 갈 길이 멀었고, 포스트 코로나를 열어야 한다는 여론은 전염보다 빠르게 수렴되고 있다. 과거는 잊어라,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살아남는다. 작금의 삼단논법은 그리스 신탁의 그것보다 준엄하다. 지금 우리는 익숙한 것들과 강제로 결별하고 있다. 유감없는 본능이자 미덕이었던 인간끼리의 접촉은 이제 윤리적 응징의 대상이 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그것을 문화적 밈으로 만들어낸다. 밈이 된다는 건 근본적인 원리로 자리한다는 걸 의미한다. 주변을 보면 그런 조짐이 느껴진다. 이제 마스크를 벗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고들 한다. 표정을 가린 채 눈만 내놓은 모습이 인간의 얼굴을 표상한다. 마스크에 대한 서양인들의 저항은 방역의 주체로선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그래도 인간적이다. 모이는 것 자체가 께름칙하고, 업무가 아닌 회식은 불필요한 낭비와 갑질로 매도된다. 혼밥과 혼술은 사회적으로 더 강하게 세팅되고, 집단이나 불특정다수에 대한 면역력은 저하된 채 나 홀로 있으면서도 같이 있는 느낌을 주는 가상의 연결성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도 무슨 다른 말을 해볼 틈도 없이 미래로 떠밀려가고 있다. 이와 같은 심정은 나만의 것일까. 스스로가 만들어낼 미래 사회의 풍경에 몸서리치면서도 우리는 이대로 미래로 밀려가도 되는 걸까.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가 떠오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뒤인 1921년, 28세의 젊은 벤야민은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라는 그림에 한눈에 매료되었다. 그 그림에는 한 천사가 그려져 있는데, 자신이 응시하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는 모습처럼 보인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이 헤벌어져 있는 천사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벤야민은 말했다. "천사의 얼굴은 과거를 향해 있다. 그는 파국만을 본다. 그 파국은 쉬지 않고 폐허 위에 폐허를 쌓고 그것을 그의 코앞에 들이댄다. 낙원에서 불어오는 강풍의 기세가 워낙 강해서, 천사는 이제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강풍은 천사를, 그가 등지고 있는 미래 쪽으로 막무가내로 데려간다. 그의 눈앞에 있는 산더미 같은 폐허는 하늘에 닿을 만큼 높아진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강풍이다."('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코로나와 좀 더 부대껴보지도 않고, 코로나가 없는 미래로 달려가는 심리는 부조리하다. 그것은 바이러스의 신격화와도 맞닿아 있다. 사실 요즘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게 존재할까? 게다가 그것의 존재 양태는 전형적인 신의 모습이다.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경외의 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좀비스러운데 무차별적인 공격과 동서남북에서 가리지 않고 달려들며, 죽여도 죽여도 죽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좀비와 겹친다. 우리의 신학적 유전자와 좀비의 대중문화적 확산은 코로나의 이미지 메이킹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곧 합리적 사유의 자리에서 밀어낸다는 의미다. 합리적 사유는 문을 닫아건 채 방어벽 안에 있는 인간끼리 해도 충분하다는 듯이. 하얗게 질린 표정의 역사의 천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는 종(種)의 이름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려는 종 보존의 광기에 휩싸여 있다. 오히려 필요한 건 생명의 문법을 다시 읽어내는 일이 아닐까.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
전체 5,456건 (185/364페이지)
2696
[영어성구] 태을주(3) 천하인종을 병으로 솎는다
2020.06.17,
조회 8557
[오늘의영어성구]
환이
The Disease Will Cull the World’s People 천하 인종을 병으로 솎는다 (도전 2:140)In the future, the world will be cleansed by a disease.장차 세상을 병으로 쓸어버리리라. All who have in...
2695
대학의 기원과 역사
2020.06.17,
조회 10807
[역사공부방]
신상구
&n...
2694
<특별기고>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20주년을 계기로 남북한 간의 교류와 협력 더욱더 강화해야
2020.06.16,
조회 9120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20주년을 계기로 남북한 간의 교류와 협력 더욱더 강화...
2693
문재인 대통령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 축사 전문
2020.06.16,
조회 9159
[역사공부방]
신상구
&n...
2692
문재인 대통령 6.15 남북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 축사 전문
2020.06.15,
조회 8946
[역사공부방]
신상구
&n...
2691
청계천에서 6.15공동선언 발표 20주년 기념 평화통일대회 개최
2020.06.14,
조회 9630
[역사공부방]
신상구
&n...
2690
만회(晩悔) 권득기(權得己)의 생애와 업적과 학술정신
2020.06.13,
조회 10902
[역사공부방]
신상구
만회(晩悔) 권득기(權得己)의 생애와 업적과 학술정신 ...
2689
18세기 경상도 고성 선비 구상덕의 일기 승총명록
2020.06.11,
조회 10936
[역사공부방]
신상구
18세기 경상도 고성 선비 구상덕의 일기 승총명록조...
2688
문재인 대통령 6.10민주항쟁 기념사 전문
2020.06.10,
조회 9044
[역사공부방]
신상구
&n...
2687
6.10민주항쟁 33주년을 경축하며
2020.06.10,
조회 8493
[역사공부방]
신상구
&n...
2686
광복 후 국사교과서 단군조선 기술 어떻게 바뀌어 왔나?
2020.06.10,
조회 10441
[역사공부방]
신상구
&n...
2685
코로나19사태 이후 7가지 전망
2020.06.10,
조회 8408
[역사공부방]
신상구
코로나19사태 이후 7가지 전망코로나19가 처음 보고된 것은 지난해 12월 31일이었다. 중국 우한에서였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사회를 뒤흔들었다. 코로나19 충격은 현재진...
2684
[영어성구] 태을주(2) 60년 공덕을 들이는 천상 선령신
2020.06.09,
조회 8672
[오늘의영어성구]
냐옹냥
The Sixty-Year Devotion and Virtue of Ancestral Spirits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그러므로 모든 선령신(先靈神)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2683
내재적 발전론과 한국학
2020.06.09,
조회 9086
[역사공부방]
신상구
내재적 발전론과 한국학
‘내재적 발전론’으로 한국 사학계의 ‘숨은 신’으로까지 불린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다가오는 14일은 막스 베버가 지구라는 행성을 떠난 지 100년이...
2682
올해 ‘탄생 100주년’ 맞는 문학인 기념문학제 열려
2020.06.09,
조회 9583
[역사공부방]
신상구
올해 ‘탄생 100주년’ 맞는 문학인 기념문학제 열려 올...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