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면] 역사의 천사
2020.05.23 22:11 |
조회 9605
[문화 이면] 역사의 천사
매일경제 2020-05-23
코로나19가 바꿔놓는 삶의 풍경이 급격하고 가파르다. 인간은 일상이 무너지는 무참함 속에서 대규모 전쟁 말고도 종을 절멸시킬 강력한 요인이 있을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전파 속도가 빠르면 치사율이 낮고, 전파 속도가 느리면 치사율이 높은 게 바이러스와 인간의 공존 조건이었지만 돌연변이 앞에서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조건이었다. 역시 과학은 갈 길이 멀었고, 포스트 코로나를 열어야 한다는 여론은 전염보다 빠르게 수렴되고 있다. 과거는 잊어라,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살아남는다. 작금의 삼단논법은 그리스 신탁의 그것보다 준엄하다. 지금 우리는 익숙한 것들과 강제로 결별하고 있다. 유감없는 본능이자 미덕이었던 인간끼리의 접촉은 이제 윤리적 응징의 대상이 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그것을 문화적 밈으로 만들어낸다. 밈이 된다는 건 근본적인 원리로 자리한다는 걸 의미한다. 주변을 보면 그런 조짐이 느껴진다. 이제 마스크를 벗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고들 한다. 표정을 가린 채 눈만 내놓은 모습이 인간의 얼굴을 표상한다. 마스크에 대한 서양인들의 저항은 방역의 주체로선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그래도 인간적이다. 모이는 것 자체가 께름칙하고, 업무가 아닌 회식은 불필요한 낭비와 갑질로 매도된다. 혼밥과 혼술은 사회적으로 더 강하게 세팅되고, 집단이나 불특정다수에 대한 면역력은 저하된 채 나 홀로 있으면서도 같이 있는 느낌을 주는 가상의 연결성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도 무슨 다른 말을 해볼 틈도 없이 미래로 떠밀려가고 있다. 이와 같은 심정은 나만의 것일까. 스스로가 만들어낼 미래 사회의 풍경에 몸서리치면서도 우리는 이대로 미래로 밀려가도 되는 걸까.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가 떠오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뒤인 1921년, 28세의 젊은 벤야민은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라는 그림에 한눈에 매료되었다. 그 그림에는 한 천사가 그려져 있는데, 자신이 응시하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는 모습처럼 보인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이 헤벌어져 있는 천사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벤야민은 말했다. "천사의 얼굴은 과거를 향해 있다. 그는 파국만을 본다. 그 파국은 쉬지 않고 폐허 위에 폐허를 쌓고 그것을 그의 코앞에 들이댄다. 낙원에서 불어오는 강풍의 기세가 워낙 강해서, 천사는 이제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강풍은 천사를, 그가 등지고 있는 미래 쪽으로 막무가내로 데려간다. 그의 눈앞에 있는 산더미 같은 폐허는 하늘에 닿을 만큼 높아진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강풍이다."('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코로나와 좀 더 부대껴보지도 않고, 코로나가 없는 미래로 달려가는 심리는 부조리하다. 그것은 바이러스의 신격화와도 맞닿아 있다. 사실 요즘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게 존재할까? 게다가 그것의 존재 양태는 전형적인 신의 모습이다.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경외의 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좀비스러운데 무차별적인 공격과 동서남북에서 가리지 않고 달려들며, 죽여도 죽여도 죽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좀비와 겹친다. 우리의 신학적 유전자와 좀비의 대중문화적 확산은 코로나의 이미지 메이킹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곧 합리적 사유의 자리에서 밀어낸다는 의미다. 합리적 사유는 문을 닫아건 채 방어벽 안에 있는 인간끼리 해도 충분하다는 듯이. 하얗게 질린 표정의 역사의 천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는 종(種)의 이름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려는 종 보존의 광기에 휩싸여 있다. 오히려 필요한 건 생명의 문법을 다시 읽어내는 일이 아닐까.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
전체 5,456건 (48/364페이지)
4751
회개란 무엇인가
[1]
2024.06.14,
조회 7647
[역사공부방]
신상구
회개란 무엇인가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상담하면서 신앙적 언어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으로 인해 신앙생활을 즐거움이 아니라 짐으로 느끼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심지어 정신적...
4750
한글 우수성 외국에 알린 호머 헐버트 선교사
2024.06.14,
조회 8140
[역사공부방]
신상구
한글 우수성 외국에 알린 호머 헐버트 선교사국립한글박물관이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한글을 통해 세상을 일깨운 ‘한글 보훈 인물’ 10여 명을 선정했어요. 이 중에 유일한 외...
4749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禪명상 보급 진두지휘
2024.06.13,
조회 8289
[역사공부방]
신상구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禪명상 보급 진두지휘1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조계사 관음전에서 좌선하고 있다. 진우 스님은 "명상을 통해 국민적인 '마음 평안 운동'을 펼치고...
4748
도산 안창호선생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의
2024.06.13,
조회 8601
[역사공부방]
신상구
도산 안창호선생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의민병찬 국립한밭대 산...
4747
한 최초 칸 취화선 속 달항아리, 세계에 우리의 것 위상 높였다.
2024.06.12,
조회 8266
[역사공부방]
신상구
한 최초 칸 취화선 속 달항아리, 세계에 우리의 것 위상 높였다.60여 년간 영화 102편을 연출하며 한국...
4746
베네치아 비엔날래와 한국 작가들
2024.06.11,
조회 7733
[역사공부방]
신상구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한국 작가들 ▲ 작...
4745
보문산 동굴 일제 군사용 목적과 민간신앙 활용 독특
2024.06.11,
조회 9132
[역사공부방]
신상구
보문산 동굴 일제 군사용 목적과 민간신앙 활용 독특한 사례전북 군산시 일원에서 일제강점기 지하 군사시설에 대한 조사를 벌인 연...
4744
6.10 정신으로 민주주의 되살려야
2024.06.11,
조회 8286
[역사공부방]
신상구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명예교수필자 세대에게 6·10은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아있는 날이다. 1987년 6월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은 수십만 민주화 시민들로 터질 듯했다. 뜨거운 날씨 속에 흰 셔츠와 넥타이 차...
4743
세계 양자 물리학계 스타였던 한국계 과학자 남세우 박사 별세
2024.06.11,
조회 9316
[역사공부방]
신상구
세계 양자 물리학계 스타였던 한국계 과학자 남세우 박사 별세 &nbs...
4742
한국 저출산 원인과 해결책
2024.06.10,
조회 4018
[행사알림]
신상구
...
4741
삶의 추억 원로시인 김광림 별세
2024.06.10,
조회 8181
[역사공부방]
신상구
...
4740
단오절의 유래와 풍습
2024.06.10,
조회 8459
[역사공부방]
신상구
...
4739
호암미술관 고미술 기획전'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6월16일 폐막
2024.06.09,
조회 8528
[역사공부방]
신상구
호암미술관 고미술 기획전'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6월16일 폐막23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전시에 나온 백제 7세기 중반 ‘금동 관음보살 입상’을 한 관계자가 살펴...
4738
불교 조계종 대종사 옹산 스님, 불교의 '참된 진리' 사람들에 전하며 올곧은 이타행 실천
2024.06.09,
조회 8422
[역사공부방]
신상구
불교 조계종 대종사 옹산 스님, 불교의 '참된 진리' 사람들에 전하며 올곧은 이타행 실천대종사옹산스님<그대있어 나라의 복이로다> 에세이집 1966년, 수덕사에서 원담...
4737
덕혜옹주의 기구한 살
2024.06.08,
조회 8503
[역사공부방]
신상구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0 1989년 4월21일 덕혜옹주가 낙선재에서 눈을 감았다. 사진은 유치원 시절 덕혜옹...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