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면] 역사의 천사
2020.05.23 22:11 |
조회 9639
[문화 이면] 역사의 천사
매일경제 2020-05-23
코로나19가 바꿔놓는 삶의 풍경이 급격하고 가파르다. 인간은 일상이 무너지는 무참함 속에서 대규모 전쟁 말고도 종을 절멸시킬 강력한 요인이 있을 수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전파 속도가 빠르면 치사율이 낮고, 전파 속도가 느리면 치사율이 높은 게 바이러스와 인간의 공존 조건이었지만 돌연변이 앞에서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조건이었다. 역시 과학은 갈 길이 멀었고, 포스트 코로나를 열어야 한다는 여론은 전염보다 빠르게 수렴되고 있다. 과거는 잊어라,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살아남는다. 작금의 삼단논법은 그리스 신탁의 그것보다 준엄하다. 지금 우리는 익숙한 것들과 강제로 결별하고 있다. 유감없는 본능이자 미덕이었던 인간끼리의 접촉은 이제 윤리적 응징의 대상이 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그것을 문화적 밈으로 만들어낸다. 밈이 된다는 건 근본적인 원리로 자리한다는 걸 의미한다. 주변을 보면 그런 조짐이 느껴진다. 이제 마스크를 벗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고들 한다. 표정을 가린 채 눈만 내놓은 모습이 인간의 얼굴을 표상한다. 마스크에 대한 서양인들의 저항은 방역의 주체로선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그래도 인간적이다. 모이는 것 자체가 께름칙하고, 업무가 아닌 회식은 불필요한 낭비와 갑질로 매도된다. 혼밥과 혼술은 사회적으로 더 강하게 세팅되고, 집단이나 불특정다수에 대한 면역력은 저하된 채 나 홀로 있으면서도 같이 있는 느낌을 주는 가상의 연결성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도 무슨 다른 말을 해볼 틈도 없이 미래로 떠밀려가고 있다. 이와 같은 심정은 나만의 것일까. 스스로가 만들어낼 미래 사회의 풍경에 몸서리치면서도 우리는 이대로 미래로 밀려가도 되는 걸까.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가 떠오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뒤인 1921년, 28세의 젊은 벤야민은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라는 그림에 한눈에 매료되었다. 그 그림에는 한 천사가 그려져 있는데, 자신이 응시하고 있는 무언가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는 모습처럼 보인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이 헤벌어져 있는 천사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벤야민은 말했다. "천사의 얼굴은 과거를 향해 있다. 그는 파국만을 본다. 그 파국은 쉬지 않고 폐허 위에 폐허를 쌓고 그것을 그의 코앞에 들이댄다. 낙원에서 불어오는 강풍의 기세가 워낙 강해서, 천사는 이제 날개를 접을 수도 없다. 강풍은 천사를, 그가 등지고 있는 미래 쪽으로 막무가내로 데려간다. 그의 눈앞에 있는 산더미 같은 폐허는 하늘에 닿을 만큼 높아진다.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강풍이다."('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코로나와 좀 더 부대껴보지도 않고, 코로나가 없는 미래로 달려가는 심리는 부조리하다. 그것은 바이러스의 신격화와도 맞닿아 있다. 사실 요즘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게 존재할까? 게다가 그것의 존재 양태는 전형적인 신의 모습이다.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언제나 존재한다. 하지만 경외의 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좀비스러운데 무차별적인 공격과 동서남북에서 가리지 않고 달려들며, 죽여도 죽여도 죽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좀비와 겹친다. 우리의 신학적 유전자와 좀비의 대중문화적 확산은 코로나의 이미지 메이킹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곧 합리적 사유의 자리에서 밀어낸다는 의미다. 합리적 사유는 문을 닫아건 채 방어벽 안에 있는 인간끼리 해도 충분하다는 듯이. 하얗게 질린 표정의 역사의 천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우리는 종(種)의 이름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려는 종 보존의 광기에 휩싸여 있다. 오히려 필요한 건 생명의 문법을 다시 읽어내는 일이 아닐까.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
전체 5,456건 (85/364페이지)
4196
소산 박대성의 몽유신라도원도 감상
2022.03.11,
조회 11648
[역사공부방]
신상구
소산 박대성의 몽유신라도원도 감상글자 크기 변경출력하기 카카오톡 공유 카카오스토리 공유 주소복사글자 크기 변경출력하기 카카오톡 공유&...
4195
우크라이나 사태, 우리 안보문제 재정립 기회
2022.03.11,
조회 10095
[역사공부방]
신상구
 ...
4194
세계 여성의 날
2022.03.08,
조회 9374
[시사정보]
김준범
세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날로,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여건 개선과 참정권 등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인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유엔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7년 3월...
4193
[영어성구] 처세(30) 한 번 뜻을 세우면 평생을 일관해야
2022.03.07,
조회 9254
[오늘의영어성구]
김준범
Once an Aspiration Is Determined,a Lifetime of Constant Effort Must Follow한 번 뜻을 세우면 평생을 일관해야
1 Sangjenim one day revealed to the disciples, “All proverbs are sacred sayings; they...
4192
[영어성구] 처세(29) 세상을 사는 처세의 도(道)
2022.03.03,
조회 8030
[오늘의영어성구]
김준범
The Dao of Living in the World세상을 사는 처세의 도(道)
1 Sangjenim one day recited a poem, commanding Hyeong-ryeol, “Remember this well.”하루는 형렬에게 옛 글을 외워 주시며 “잘 기억하라” 하시...
4191
책 바보 이덕무의 죽음과 깨뜨리지 못한 서얼 차별
2022.03.03,
조회 13687
[역사공부방]
신상구
책 바보 이덕무의 죽음과 깨뜨리지 못한 서얼 차별창덕궁 주합루에서 바라본 후원 전경. 정조...
4190
문재인 대통령 제103주년 3‧1절 기념식 경축사 전문
2022.03.01,
조회 10648
[역사공부방]
신상구
문재인 대통령 제103주년 3‧1절 기념...
4189
모든 것은 우리 탓이다
2022.03.01,
조회 9498
[역사공부방]
신상구
모든 것은 우리 탓이다 [...
4188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타계를 애도하며
2022.02.27,
조회 11174
[역사공부방]
신상구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타계를 애도하며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
4187
[특별기고] 2022년 임인년의 민속과 국운
2022.02.26,
조회 11004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 2022년 임인년의 민속과 국운 &n...
4186
<특별기고> 항일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6주년을 기념하며
2022.02.26,
조회 11769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 항일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6주년을 기념하며 신상구 서기 2022년(단기&nb...
4185
대수술 필요한 노벨상 프로젝트
2022.02.25,
조회 11277
[역사공부방]
신상구
대수술 필요한 노벨상 프로젝트 2005년 민동필 전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를 비롯한 과학·예술·인문학...
4184
중국 내 조선족
2022.02.23,
조회 13066
[역사공부방]
신상구
|중국 내 조선족지난 4일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 입은 여성이 등장해 ‘중국의 문화 침탈’이라는 논란이 일었어요. 중국은...
4183
‘고조선 강역’ 한중 고대사 전쟁
2022.02.23,
조회 11211
[역사공부방]
신상구
&nbs...
4182
윤행임의 8도 사람 4자 평과 재치
2022.02.23,
조회 10131
[역사공부방]
신상구
윤행임의 8도 사람 4자 평과 재치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조선시대 정조 때 윤행임이라는 사람이...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