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반도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해왔다.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 때는 항왜원조(抗倭援朝)를 명분으로 참전했고, 6·25 때는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내걸었다. 미·중 신냉전 시대에 중국은 한반도에 어떤 의미일까. 소중화와 사대주의를 내세웠던 조선 시대의 한·중 관계에서 시사점을 찾아본다.
공자(孔子)가 천하를 주유하던 어느 날, 황하 변에 이르러 동쪽으로 흘러가는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제자 자공(子貢)이 “왜 물만 바라보십니까”하고 여쭈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물의 이치를 생각하고 있다. 물은 참으로 위대하다. 물은 만 번 꺾여 흐르지만,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가니 이는 사람이 사는 의지와 같다(萬折也必東 似志)”고 했다. (『순자(荀子)』유좌(宥坐) 편)
공자는 중국의 지형이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음에 따라 흐르는 물의 이치를 설명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를 숭모하는 유학자들이 거기에 의미를 보탰다. 조선의 유생들은 명나라(1368~1644)가 멸망하고 중화의 맥이 끊어지는 상황에서 이제 공자의 가르침이 끝내 동방인 조선에만 남아 있다고 감격하면서 팔도 각처에 만절필동(萬折必東)을 석벽에 새겨 넣었다. 그 가운데 선조(宣祖) 임금의 어필(御筆)이라 해서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의 암각을 가장 큰 볼거리로 여겼다.
중국 환상과 경도 벗어나야 산다
2020.06.25 03:08 |
조회 9144
중국 환상과 경도 벗어나야 산다
충북 괴산 만동묘 인근 암벽에 조선시대 선조 임금의 '만절필동' 필체가 새겨져 있다. 장세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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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고향은 괴산이고 어머니의 친정이 화양동이라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일로 여러 차례 그곳에 갔다. 그 마을의 이름은 본디 솔맹이(松面里)였는데 송시열이 그곳에 정착해 "중화(華)의 햇살(陽)이 따스하게 비치는 골짜기(洞)라는 뜻으로 이름도 화양동으로 바꿨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만동묘(萬東廟)로 올라가는 돌계단의 경사가 70도라는 사실이 위험하고 짜증스러웠다.
뒷날 세상에 눈뜨고 글을 읽은 다음에는 "소중화 나라 백성이 어찌 중국 천자를 뵈러 올라가면서 똑바로 서서 올라갈 수 있겠는가. 개처럼 기어 올라갔다가 개처럼 기어 내려오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음을 알았을 때 우리에게 중국은 누구인가를 두고두고 곱씹게 됐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소중화 논리인즉 임진왜란(1592~1598) 때 다 망해가던 조선을 살려준 대명 천자의 재조지은(再造之恩)에 대한 보답과 병자호란(1636~1637)의 국치를 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시각은 주자학이라는 대롱(管見)에 갇혀 있었다.
임진왜란 때 도와준 명나라 황제를 제사 지내는 충북 괴산 만동묘. 사대주의 상징물이다. 장세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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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들은 동굴 입구가 남향인데도 동쪽인 줄로만 알고 살았다. 베이컨이 지적한 원시인들의 '동굴의 편견'(Idola specus)에 사로잡혔던 조선의 유생들은 마치 '갈라파고스 증후군'처럼 퇴화하면서 주자학 안에 자신을 가뒀다. 그들은 안짱다리(矮)로 비하한 왜(倭)의 난학(蘭學)을 거부하면서 세계 조류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망국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여진족의 하급 무사 출신이라 명나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아야 했던 이성계(1335~1408)의 “큰 나라를 거역할 수 없다”(以小逆大不可)는 개국의 명분에서 중국에 대한 종속이 시작됐다. "현대적 개념으로 보면 사대란 굴욕이 아니다"고 강변하는 점에서 한국사는 정직하지 않다. 한국이 중국에 조공과 인질을 바쳤다는 서술은 국사책에서 금기어가 됐다.
그런 일련의 역사 인식을 대변하는 것이 삼전도비(三田渡碑)를 땅에 묻은 사건이었다. 치욕스러운 역사도 가르쳐야 한다. 어두운 역사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가 없다. 한나라 황제는 북쪽 오랑캐라 부른 흉노에 공주를 바쳤다. 민족 분노의 시대에 신채호(1880~1936)처럼 비분강개할 수는 있겠지만, 역사는 화해하는 것이지 적개심을 함양하는 도량은 아니다.
대한민국 발전의 상징물이 된 123층 롯데월드타워를 배경으로 삼전도비를 바라보노라면 심경이 착잡하다. 끝까지 싸우자던 척화파 김상헌(1570~1652)보다는 주화파 최명길(1586~1647)의 고민이 더 깊었을 것이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죽음(黃泉)을 뜻하는 황토를 길에 깔고 시체를 상징하듯 몸을 일곱 번 새끼줄로 묶고 상여에 올라 산성에서 내려왔다. 그때 그와 울며 따르는 신하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공원에 서 있는 삼전도비.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복한 이후 세웠다. 장세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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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경쟁으로 신냉전이 시작됐다는데 이 시대의 민초들은 물론이고 지도자들도 지금의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한 가지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점이 있다. 중국이 '사면팔방 오랑캐'라 부르는 사이팔만(四夷八蠻) 가운데 지금 독립 국가로 남아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과 베트남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에 대한 애증이 더욱 깊어만 간다. 중국 지도부는 아직도 리훙장(李鴻章)이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것같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물론 우리가 중국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역사학을 보면 '착한 사마리아인'은 종교적 이상주의에서나 볼 수 있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은원(恩怨)의 5000년 역사에서 아름다운 추억보다 쓰린 기억이 더 많다. 선린(善隣)이란 외교적 수사일 뿐 한·중 관계에서 그런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사학은 민중의 눈으로부터 백내장(白內障)을 제거해야 한다. 그 백내장의 정체는 무엇인가. 첫째는 중국이 '큰 시장'이라는 막연한 기대다. 이는 이미 194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오판임이 입증됐다. 생선 뱃속에 납덩이를 넣어서 파는 것이 중국의 진정한 모습 아닌가. 베이징대 교수 시절 사상가 후스(胡適)는 “중국이 협상하러 올 때는 그들의 속임수(虛僞)를 조심하라”는 말을 남겼다.
둘째, "중국이 남북통일의 지렛대"라는 몽환적 대국주의다. 중국은 남북통일을 시켜줄 힘은 없어도 저지할 힘은 있다. 이게 비극적이다.
지금처럼 한국이 중국에 경도될 경우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첫째는 미국과의 관계다. 외교에서는 “적의 적은 동지이며, 적의 동지는 적”이라 셈법이 성립하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에 맞서 일본의 재무장이 끝날 때까지는 한국을 지켜줄 것이다. 그 뒤에는 한국을 버릴 수도 있다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1905년 을사늑약 때 제일 먼저 일본을 위한 축배를 든 것은 미국이었다. 처음 버리기가 어렵지 재차 버릴 때는 덜 망설일 것이다. 미·중 패권 충돌이 어떻게 끝날지 예견하기 어렵지만 길게 가면 중국이 이길 것이다. 중국은 어떤 사태를 놓고 시계와 달력을 잘 보지 않는 민족이다. 미국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둘째 걸림돌은 일본과의 관계다. 한국인 치고 누구인들 일본에 거부감이 없을까마는 우리는 대일 관계에서 일정한 체념이 필요하다. 신숙주(1417~1475)가 운명하기 전에 성종이 승지를 보내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이 무엇이오”라고 물었었을 때 신숙주는 “일본과 등지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아무리 미워도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안전문 유리에 “일본놈 저며 죽이자(屠戮)”는 시를 써 붙인 것은 문명국가가 할 일은 아니다. 도쿄 긴자(銀座) 역에 “조센징 찢어 죽이자”는 광고가 걸리면 우리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왜 지식인은 이에 침묵하는가. 적어도 우리에게 일본은 지금 중국보다 가깝지 않나.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끌려간 환향녀(還鄕女)의 역사는 잊어버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만 문제 삼는가.
지금처럼 한국이 중국에 경도될 경우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첫째는 미국과의 관계다. 외교에서는 “적의 적은 동지이며, 적의 동지는 적”이라 셈법이 성립하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에 맞서 일본의 재무장이 끝날 때까지는 한국을 지켜줄 것이다. 그 뒤에는 한국을 버릴 수도 있다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1905년 을사늑약 때 제일 먼저 일본을 위한 축배를 든 것은 미국이었다. 처음 버리기가 어렵지 재차 버릴 때는 덜 망설일 것이다. 미·중 패권 충돌이 어떻게 끝날지 예견하기 어렵지만 길게 가면 중국이 이길 것이다. 중국은 어떤 사태를 놓고 시계와 달력을 잘 보지 않는 민족이다. 미국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둘째 걸림돌은 일본과의 관계다. 한국인 치고 누구인들 일본에 거부감이 없을까마는 우리는 대일 관계에서 일정한 체념이 필요하다. 신숙주(1417~1475)가 운명하기 전에 성종이 승지를 보내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이 무엇이오”라고 물었었을 때 신숙주는 “일본과 등지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아무리 미워도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안전문 유리에 “일본놈 저며 죽이자(屠戮)”는 시를 써 붙인 것은 문명국가가 할 일은 아니다. 도쿄 긴자(銀座) 역에 “조센징 찢어 죽이자”는 광고가 걸리면 우리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왜 지식인은 이에 침묵하는가. 적어도 우리에게 일본은 지금 중국보다 가깝지 않나.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끌려간 환향녀(還鄕女)의 역사는 잊어버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만 문제 삼는가.
중대한 역사의 갈림길에서 다시 묻는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나.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Pericles)는 “강대국은 베푸는 것으로 동맹을 맺지, 받는 기쁨으로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은 베푸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이 우리를 동맹이나 '아픔을 나눌 형제'로 여길까. 그렇지 않다. 왜 그들의 레이더는 우리를 샅샅이 들여다보는데 우리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하면 안 되는가.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사 몇 구절을 인용했다고 금세 우방이 될 만큼 중국은 그리 가볍지 않다.
이제 우리의 살길은 '강소(强小) 국가'로 가는 것이다. 이제는 봉신(封臣)의 시대도 아니고, 주한 미국대사관 담장에 올라가 '주한미군 철수 반대'라는 혈서를 쓰는 것이 우국이던 시대도 아니다. 우리 운명의 주인은 우리밖에 없다.
국난기에 애국자가 넘쳐나는 때도 있었지만, 애국자가 없었던 시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에는 지사(志士)도 없고 책사(策士)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빨대' 뿐이다. 그 점이 두렵고 걱정스럽다. 지정학과 시대를 탓하고 운명이라 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슬프다. 우리는 어차피 그렇게 살았지만, 이런 삶을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수야 없지 않은가.
그러나 중국은 베푸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이 우리를 동맹이나 '아픔을 나눌 형제'로 여길까. 그렇지 않다. 왜 그들의 레이더는 우리를 샅샅이 들여다보는데 우리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하면 안 되는가. 펑유란(馮友蘭)의 중국철학사 몇 구절을 인용했다고 금세 우방이 될 만큼 중국은 그리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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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복룡 전 석좌교수=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및 대학원장,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역임. 저서로는 『한국 분단사 연구』,『한국 정치사상사』등이 있고,『한말 외국인 기록』(총 23권) 등을 번역했다. 논문으로『청일전쟁』『동이 3국을 바라보는 당 태종의 시선』 등이 있다. 『삼국지』『플루타르크 영웅전』 완역본을 연내 출간할 예정이다.
<참고문헌>
1. 신복룡, "6·25전쟁 70주년,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앙일보, 2020.6.24일자. 24-25면.
1. 신복룡, "6·25전쟁 70주년,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앙일보, 2020.6.24일자. 24-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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