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근대사, 3대 운명의 만남
2021.02.03 02:50 |
조회 10836
일본에 기대했던 안중근, 배신을 깨달은 뒤 이토를 총살했다.
문화는 선별과 여과의 오랜 역사입니다. 클릭 한 번이면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리스트를 제출하느냐는 것. 서현 서울대 건축과 교수의 ‘지하철에서 만나는 최고의 풍경 5’, 강호 동양학자 조용헌의 ‘코로나에 숨어있기 좋은 영지 5’,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의 ‘서울의 산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5’, 편의점주이자 작가 봉달호씨의 ‘편의점 24시, 나의 애정·진상 손님 5’에 이은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의 ‘한일 근대사, 3대 운명의 만남’.
구한말의 반일과 친일은 지금 잣대로만은 평가하기 어렵다. 당시 조선을 근대화하고자 했던 개화파 전략가들은, 신흥 강국 일본을 이용하려는 ‘전략적 친일’혹은 ‘용일(用日)’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이 전략이 성공하는 관건은 두 가지였다. 개화파 세력이 일치단결하여 강한 정치력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일본이 침략 야욕을 전략적으로 자제하는 것이다. 둘 중 하나만 이뤄졌어도 개화파는 성공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개화파는 단결하지 못했고, 일본은 개화파를 배신했다.
1. 김옥균과 후쿠자와 유키치
“아아! 비상한 재주를 품고 비상한 시대를 만났으나, 비상한 공을 세우지 못하고 비상한 죽음을 맞이했구나!” 김옥균을 표현한 말이다. 1884년 겨울 김옥균 일파는 갑작스럽기 그지없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갑신정변은 정말 ‘비상한 정변’이었다. 거기에는 일본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조선 주재 일본 공사와 일본 군대가 개입했다. 일본 본국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일본 1만엔권 지폐 초상화에 있는 그 사람이다. 게이오대학을 창립했고 일본 근대 사상의 태두다.

김옥균은 1882년 31세의 나이로 도쿄에서 47세의 후쿠자와를 만났다. ‘일본이 동양의 영국이 되려고 하니 조선은 동양의 프랑스가 되자’던 김옥균이었으니, 후쿠자와에게 바짝 다가가 가르침을 청했다. 일본의 지원을 받아들인 김옥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은 조선에서 청의 세력이 월등한 때였다. 젊은 혁명가들의 눈에 메이지유신이 하나의 모델로 보인 것 역시 무리는 아니다. 김옥균인들 일본 리스크를 몰랐을 리 없다. 일본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그 힘을 빌리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한 김옥균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1894년 김옥균이 비운의 최후를 맞은 후 후쿠자와는 국회의원이었던 제자를 보내 미망인 유씨에게 위패를 전달하게 했다. “아마도 그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공양을 올린 것은 나일 것이다. 그러니 이 위패에 그의 혼이 깃들어 있지 않겠는가”라는 그의 말도 전해졌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0년 전 갑신정변 때와 달리 후쿠자와는 이미 조선 개혁을 넘어 조선 침략을 입에 올리고 있었다. 1916년 김옥균 사거 23주년을 기념하는 책에서 그의 지인들은 조선이 일본 지배 하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걸 보면 김옥균도 기뻐할 거라고들 썼다. 그렇게 김옥균은 일본인들에 의해서 ‘친일파’의 시조가 되어갔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것은 동양의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프랑스였다. 김옥균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일본인들과 타협할 수 없었을 것이다.
2. 김홍집과 이노우에 가오루
김홍집은 조선의 개화 엘리트였다.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는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1880년대 일본 정계를 주름잡았고 특히 외교 방면을 주도한 인물이다. 메이지 원로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서양주의자였다. 이 둘은 인연이 깊다. 1880년 제2차 조선수신사 파견 때 도쿄에서 처음 대면했고, 몇 년 후에는 양국 정부를 대표해서 갑신정변을 수습하기 위해 서울에서 또 만났다.

둘의 인연은 10년 후 다시 이어졌다. 김홍집은 갑오개혁 정부의 총리로 개혁을 주도했고, 이노우에는 이를 백업하는 일본 공사로 왔다. 거의 전적으로 일본의 힘에 의존한 개혁이었으니 김홍집은 친일의 선을 넘나들었다. 아직 일본의 힘이 조선을 간단히 삼킬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청일전쟁 후 조선을 장악한 듯 보였던 일본 세력은 러시아가 삼국간섭을 일으키자 꼬리를 바짝 내렸다. 김홍집⋅박영효 등 개화파만이라도 일치단결했다면 ‘용일(用日) 개혁’과 일본 견제를 동시에 이룰 수도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선 조정 전체는 말할 것도 없고, 개화파 세력 내부도 난장판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아관파천을 단행한 고종은 김홍집 처벌을 명령했고, 그는 군중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시체는 ‘용일 개혁’의 종말을 상징하듯, 서울 시내에 끌려 다니며 누더기가 되었다.
3.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조선 통감으로 부임했을 때, 이미 그의 전성기는 지나있었다. 오쿠보 도시미치가 암살(1878년)된 후 메이지정부 최고 실력자가 되어 20여 년간 군림해왔지만 그의 존재감은 예전 같지 않았다. 무엇에나 자신감이 넘쳤던 그는 정당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를 끌어들인 정당 정치가 호시 도루(星亨)는 “드디어 이토를 포로로 잡았다”며 득의만면했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와 긴장이 고조됐다. 이토는 전쟁을 피하려고 러시아행에 나섰다. 그러나 그가 파리를 경유하고 있을 때 영일동맹 체결 소식이 날아들었다. 영국과 러시아는 패권 경쟁을 벌이는 사이였다. 일본 정부가 이토의 노선을 버린 것이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이토는 조선을 전리품으로 삼는 일에 자원해 나섰다. 이를 기반으로 원로 야마가타 아리토모수상 가쓰라 다로외상 고무라 주타로의 집권 세력에 반격을 꾀하고자 했다.
안중근은 황해도 출신 청년으로 명사수였다. 이토가 강압 체결한 을사보호조약에 이 청년도 분노했다. 1909년 그 이토가 만주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정치가였던 이토의 동선은 안중근도 쉽게 알 수 있었다. 10월 26일 아침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이 쏜 총탄 중 3발이 이토의 노구를 파고들었다. 안중근은 맹목적인 반일주의자는 아니었다.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에는 예상과 달리 백인종 러시아에 맞선 황인종 일본에 대해 그가 기대를 품고 있었음이 표명돼 있다. 그는 러일전쟁에서 한국과 중국 양국 인민이 일본에 협조했음을 지적한 후 “백인종의 선봉을 북 한소리로 대파하였으니 가히 천고에 없는 일이며 만방이 기념할 표적(表蹟)”이라고 상찬했다. 그러나 승전 후 일본은 “뱀과 고양이”같이 한국을 배신했다며, 이렇게 나온다면 한국과 중국인은 백인의 앞잡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에 저항할 것이라고 절규한다.
안중근의 처절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토가 죽은 지 1년 만에 그의 조국은 안중근의 조국을 삼켜버렸지만, 그 기염은 40년도 채 가지 못했다. 대신 그 후유증만 남아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에게는 31세 청년 안중근만 한 백년대계가 없었다.
4. 친일·반일 프레임만으로 구한말을 말할 수 있을까
매국노 이완용은 독립협회 회장, ‘친일파’ 김옥균은 北서 애국지사
구한말 역사를 읽다 보면 일본에 대한 증오감이 절로 생긴다. 그래서 일본과 손잡고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쉽게 ‘친일파’ 딱지를 붙인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세계 유수 국가에 살고 있는 현재가 아니라 당시인들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일본은 밉고 위험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문명 개화 국가였고 상대적으로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나라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 역사에는 참담한 상처와 흉터가 생겼고, 그중 어떤 것은 암 덩어리로 변하기도 했다.

한일 관계사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당혹스러운 장면이 너무 많다. 매국노 이완용은 독립협회 회장이었고, 김옥균과 함께 갑신정변을 주도한 박영효는 일제의 작위를 받았다. 북한까지도 ‘애국지사’로 인정한 김옥균은 한국 병합을 주도한 일본인들에게 추앙받는 존재였다. 쉽게 이해되는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불편하다. 한 인간의 삶에 토착 왜구와 애국지사가 섞여있고, 그 사상에는 친일과 민족주의가 함께 있다. 단칼에 선악정사(善惡正邪)가 구분되기는커녕 무슨 난마처럼 우리 심기를 어지럽힌다. 김구나 이승만처럼 살았다면 판단하기 좋았겠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지 못했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A라는 노선과 규탄해 마지않는 B의 거리가, 당시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는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점을 자부심 가득한 대한민국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세계사상 근대 한일 관계사만큼 복잡하고 착잡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 속에서 뭔가를 해보려던 사람 중 많은 수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자기 분열을 겪었다. 그러니 이에 대해 접근하고 평가하려면 매우 섬세하고 신중해야 한다. 친일과 반일 프레임만 갖고는 이 거대한 착종(錯綜)의 바다를 계측할 수가 없다. 친일파 몇 명 부관참시하고 애국지사 몇 분 신격화하는 역사 서술로는 이 시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 시기 한일 관계의 당혹스러운 지점들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노력이 아직은 부족한 듯하다. 사납게 공격하다 모호한 점이 나타나면 그냥 한 묶음으로 규탄해버리든가, 그래도 처리하기 곤란한 사실들은 그냥 외면하고 쉬쉬한다.
나라가 없을 때나 약했을 때는 이런 태도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이미 세계 주요 국가로 성장한 지금, 이제 우리 역사를 단순화해서 보는 시각에서 좀 벗어날 때가 되었다. 한일 관계사에는 정말로 박멸해야 할 암 덩어리 같은 일과 인물도 있었다. 그것들은 철저히 도려내야 할 것이다. 다만 상처와 흉터는 없는 척하거나, 친일파라며 규탄하고 끝낼 게 아니라, 솔직히 드러내 치열하게 논의했으면 한다.
<참고문헌>
1. 박훈, "일본에 기대 품었던 안중근, 배신을 깨달은 뒤 이토를 쐈다", 조선일보, 2021.2.2일자.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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