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최고의 인재 양성소인 성균관
2021.03.19 0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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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고의 인재 양성소인 성균관

- ▲ /그래픽=양진경
서울 종로구 성균관에 있는 문묘(文廟·공자를 모시는 사당)의 동삼문 지붕이 부서졌습니다. 지난 8일 봄을 맞아 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위해 크레인으로 옮기던 사다리차가 지붕에 떨어진 거예요. 문묘는 보물 141호, 동삼문은 사적 143호로 지정돼 있는데요. 옛 조선의 임금이 문묘에 제사를 지내러 갈 때 출입하던 문이 동삼문이랍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에 인재 양성을 위해 서울에 설치한 교육기관입니다. 지금의 국립대학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성균(成均)'은 '인재로서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풍속으로서 아직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성균관은 당시 국가 지도 이념이었던 유학을 가르치고 공부해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임무였어요. 그래서 공자의 사당이 성균관에 있었죠.
1. 왕이 조언을 구했던 인재 텃밭
1515년 조선 11대 왕인 중종은 불쑥 성균관을 방문했어요. 그는 "이상적인 정치를 이룩하려면 먼저 무엇을 힘써야 하겠는가? 공자의 가르침을 배운 그대들이 한번 논해 보라"고 말했어요. 중종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는데, 자신을 왕좌에 앉힌 주요 신하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자 성균관을 찾아 정치적 조언을 얻으려고 한 거예요.
이때 중종의 마음에 쏙 드는 조언을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성균관 유생(유학을 공부하는 선비) 조광조였는데요. 그는 "법도와 기강의 큰 줄기를 세우십시오. 군주 혼자 정치를 할 수 없으니, 반드시 신하를 믿고 일을 맡기십시오"라고 했어요. 이 일을 계기로 중종의 눈에 든 조광조는 시험만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제를 혁신하고 서얼(첩이 낳은 자식) 차별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등 다양한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이처럼 왕이 찾아와 앞길을 물어볼 정도로 성균관은 국가 인재의 텃밭이었습니다. 조광조 말고도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처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학자들 이 성균관 출신이었습니다. 근대의 민족주의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도 조선 말 성균관에 입학해 공부했어요. 퇴계 이황은 지금의 국립대학 총장 격인 성균관의 책임자에 임명되기도 했었죠.
2. 200명 수재들에게 밭과 노비까지 제공
성균관에는 아무나 입학할 수 없었어요. 조선시대 과거의 한 종류인 생원시, 진사시라는 시험에 합격해야 성균관에 입학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성균관 정원은 세종 때 200명으로 정착됐어요. 성균관 학생인 유생들은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에서 생활했고, 일정한 출석 점수를 얻으면 다음 단계의 과거 시험인 대과에 응시할 수 있었어요. 나라에서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밭과 노비를 제공했고, 교육 경비로 쓰도록 곡식도 지급했어요. 경제적 걱정 없이 기숙사에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죠. 지금의 장학금인 셈이에요.
성균관 유생들이 묵묵히 공부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나라의 정치가 어지러워지면 집단으로 임금에게 글을 올려 충언했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수업을 거부하고 성균관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3. "연회가 보이니 성균관 문을 닫아라"
성균관은 몇 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궁궐인 창덕궁과 맞닿아 있는데요. 왕실 정원인 창덕궁 후원에서 연회를 즐기던 연산군은 "잠깐, 이거 성균관 유생들이 다 들여다보는 거 아니냐"며 벽을 쌓게 하더니, 아예 성균관을 폐쇄하고 유생들을 쫓아내라고 명령했어요. 성균관을 도성 밖 남쪽으로 옮길 생각이었죠. 그러나 앞서 설명한 중종이 연산군을 몰아내면서 성균관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성균관 건물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불타 버리고, 17세기 초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나라의 교육 재정이 줄어들고 과거제도가 공평하게 운영되지 않으면서 성균관의 기능이 약화했어요. 반면 지방 곳곳에 생겨난 서원은 교육의 질이 높아지면서 많은 인재를 낳는 명문 교육기관으로 떠올랐습니다. 인기 많은 명문 사립대와 국립대가 경쟁하는 것처럼요.
성균관은 1910년 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합쳐지면서 경학원으로 바뀌었습니다. 경학원 부설 명륜학원은 1939년 명륜전문학교로 승격됐다가 일제 말 명륜연성소로 개편되면서 사라졌어요. 1945년 광복과 함께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이 대표를 맡은 성균관대학 기성회가 조직돼 '과거 성균관 전통을 계승할 대학'의 수립에 나섰고, 명륜전문학교 재단을 통합한 뒤 1946년 9월 성균관대학교가 돼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에 인재 양성을 위해 서울에 설치한 교육기관입니다. 지금의 국립대학이라고 볼 수 있어요. '성균(成均)'은 '인재로서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풍속으로서 아직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성균관은 당시 국가 지도 이념이었던 유학을 가르치고 공부해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임무였어요. 그래서 공자의 사당이 성균관에 있었죠.
1. 왕이 조언을 구했던 인재 텃밭
1515년 조선 11대 왕인 중종은 불쑥 성균관을 방문했어요. 그는 "이상적인 정치를 이룩하려면 먼저 무엇을 힘써야 하겠는가? 공자의 가르침을 배운 그대들이 한번 논해 보라"고 말했어요. 중종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는데, 자신을 왕좌에 앉힌 주요 신하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자 성균관을 찾아 정치적 조언을 얻으려고 한 거예요.
이때 중종의 마음에 쏙 드는 조언을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성균관 유생(유학을 공부하는 선비) 조광조였는데요. 그는 "법도와 기강의 큰 줄기를 세우십시오. 군주 혼자 정치를 할 수 없으니, 반드시 신하를 믿고 일을 맡기십시오"라고 했어요. 이 일을 계기로 중종의 눈에 든 조광조는 시험만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제를 혁신하고 서얼(첩이 낳은 자식) 차별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등 다양한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이처럼 왕이 찾아와 앞길을 물어볼 정도로 성균관은 국가 인재의 텃밭이었습니다. 조광조 말고도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처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학자들 이 성균관 출신이었습니다. 근대의 민족주의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도 조선 말 성균관에 입학해 공부했어요. 퇴계 이황은 지금의 국립대학 총장 격인 성균관의 책임자에 임명되기도 했었죠.
2. 200명 수재들에게 밭과 노비까지 제공
성균관에는 아무나 입학할 수 없었어요. 조선시대 과거의 한 종류인 생원시, 진사시라는 시험에 합격해야 성균관에 입학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성균관 정원은 세종 때 200명으로 정착됐어요. 성균관 학생인 유생들은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에서 생활했고, 일정한 출석 점수를 얻으면 다음 단계의 과거 시험인 대과에 응시할 수 있었어요. 나라에서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밭과 노비를 제공했고, 교육 경비로 쓰도록 곡식도 지급했어요. 경제적 걱정 없이 기숙사에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죠. 지금의 장학금인 셈이에요.
성균관 유생들이 묵묵히 공부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나라의 정치가 어지러워지면 집단으로 임금에게 글을 올려 충언했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수업을 거부하고 성균관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3. "연회가 보이니 성균관 문을 닫아라"
성균관은 몇 번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궁궐인 창덕궁과 맞닿아 있는데요. 왕실 정원인 창덕궁 후원에서 연회를 즐기던 연산군은 "잠깐, 이거 성균관 유생들이 다 들여다보는 거 아니냐"며 벽을 쌓게 하더니, 아예 성균관을 폐쇄하고 유생들을 쫓아내라고 명령했어요. 성균관을 도성 밖 남쪽으로 옮길 생각이었죠. 그러나 앞서 설명한 중종이 연산군을 몰아내면서 성균관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성균관 건물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불타 버리고, 17세기 초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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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은 1910년 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합쳐지면서 경학원으로 바뀌었습니다. 경학원 부설 명륜학원은 1939년 명륜전문학교로 승격됐다가 일제 말 명륜연성소로 개편되면서 사라졌어요. 1945년 광복과 함께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이 대표를 맡은 성균관대학 기성회가 조직돼 '과거 성균관 전통을 계승할 대학'의 수립에 나섰고, 명륜전문학교 재단을 통합한 뒤 1946년 9월 성균관대학교가 돼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반촌(泮村)
성균관 일대의 마을 이름이었어요. 지금의 서울 종로구 대학로와 상당 부분 지역이 겹치죠. 성균관의 다른 이름인 '반궁'에서 딴 반촌은 서울 도성 안에서도 무척 독특한 동네였는데요. 성균관을 관리하고 유생들의 학업을 지원하는 실무 담당자와 그 가족들이 살았어요. 성균관 노비와 성균관에서 쓰는 고기를 다루는 백정들도 이곳에서 살았죠. 이들은 '우리는 돌아가신 성현들과 오늘날의 최고 인재에게 고기를 공급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고 해요.
반촌 사람들은 성균관 출신의 고관들과 끈끈한 인맥이 있었기 때문에 관리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반촌은 성균관 유생들이 여흥을 즐기는 번화가이면서 요즘 말로 '힙(hip)'한 물건을 다루는 상점도 많았다고 해요. 조선왕조실록에는 '무당이 성균관 근처에서 몰래 굿을 하다가 적발됐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그만큼 이곳을 길(吉)한 곳으로 여겼다는 얘기죠.
<참고문헌>
1. 유석재, "조선 최고 인재 양성소… 나라 어지러우면 왕에게 충언했죠", 조선일보, 2021.3.18일자.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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