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발언에 대해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를 아프리카에 비유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지금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굳이 ‘아프리카’를 언급한 건 부적절했다고 보지만, 나는 이 지사가 한 말의 취지는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기도지사의 발언으로선 옳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동시에 대선 경선 후보(이하 ‘대선 후보’)다. 대선 후보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유리하냐 불리하냐’의 문제로 접근하는 게 현실적일 게다.
이 지사는 아마도 "불리할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판단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즐거운 기분으로 그렇게 보는 건 아니다. 나는 이 문제가 "왜 ‘지방 소멸’은 대선 이슈가 되지 않는가?"라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 후보들끼리 치고받는 발언들이 언론의 일용할 양식을 풍성하게 제공해주고 있는 상황에서도 ‘지방 소멸’은 그 중요성에 상응하는 대선 이슈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이는 포털에서 검색해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대선 후보들은 수시로 지방을 방문하지만, 그런 자리에서도 ‘지방 소멸’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나름의 국가균형발전 공약을 제시한 대선 후보들은 그렇지 않다는 반론을 제기하겠지만, 나는 유권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제성 중심으로 언론 보도의 문제를 지적하려는 것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지방 소멸’이 주요 이슈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각 지역의 유권자들은 자기 지역에 국한된 이익이 될 어떤 말이나 공약을 기대하는 것이지 지방 전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이야기를 원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다수 지방민들은 자식을 서울로 보냈거나 서울로 보내고 싶기에 ‘지방 소멸’에 대한 문제의식도 의외로 강하지 않은 편이다. 즉, 대선 후보들에게 강한 요구를 할 수요가 활성화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지방 소멸’과 국가균형발전을 상품성이 떨어지는 뉴스 주제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그것도 문제지만, 나는 한국의 언로(言路)를 사실상 장악한 서울 언론이 지방 문제를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이해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는 지방 문제와 관련된 기사에 달린 댓글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방을 폄하하고 모독하는 댓글이 많다. 나는 "아니 지방 사람들은 댓글도 안 다나?"라고 푸념한 적도 있지만, 뭔가 큰 오해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갈등’이라는 프레임은 수도권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자기 검열의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그건 사실과 전혀 다른 허구다. ‘지방 소멸’의 피해자는 지방만이 아니다. 수도권 주민의 대부분은 지방 출신이다. 지방에서 먹고 살기 어려워 수도권으로 갔지만 여전히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고향 사람들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승자로 여겨질 수도 있다.
수도권 주민들은 인구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주택과 교통·환경 문제에서 큰 피해를 겪고 있다. 지방의 많은 지역이 소멸되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죽지 않기 위해 일자리가 몰려 있는 수도권을 찾을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난민은 막을 수 있을망정 같은 동족이요 국민인데 그런 인구 유입을 막을 수 있겠는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안 되시는가?
4년 전 마강래 중앙대 교수가 [지방도시 살생부]란 책에서 잘 지적했듯이, 어느 지방 도시 인구가 20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줄었다고 해도 그 도시의 도로·수도·전선·통신망을 절반으로 줄일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도시나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인프라 비용이 있기 마련이며, 게다가 똑같은 면적에 절반의 인구만 살게 되면 재정 효율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지방 중소도시들은 정부예산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결국 국가 파산의 위기로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게 마 교수의 진단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의 출산율은 유엔의 조사 대상 198개국 중 198등으로 2년 연속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많다. 저출산의 주요 이유 중 하나인 주택문제는 수도권 집중 문제, 즉 ‘지방 소멸’과 직결돼 있는 사안이다. 이렇듯 지방이 죽어가는 게 수도권 주민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이 되면서 국가의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왜 지방 문제를 지방만의 문제로 보려고 하는가?
그간 국토균형발전의 주요 수단이 수도권 규제 중심으로 이루어진 데에 일부 책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률적 규제는 때로 합리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정말 분통 터지는 일일 게다. 그런 규제가 성공이라도 했으면 또 모르겠다. ‘수도권 규제’는 지난 40년 넘게 외쳐져 왔음에도 이미 2년 전 수도권 인구 비중이 역사상 최초로 50%를 돌파했다는 건 그런 ‘네거티브 방식’의 명백한 한계를 웅변해주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생에 기반한, 더욱 과감한 ‘포지티브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걸 논의하고 고민하는 공론장이 바로 대선이다. 재난지원금도 중요한 이슈이긴 하지만, ‘지방 소멸’의 중요성엔 미치지 못한다. 나는 이 지사가 대선 후보라기보다는 경기도지사의 역할에 충실했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지방 소멸’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이슈 파이팅’을 해주면 좋겠다. 자신의 장기인 ‘사이다 기질’로 치고 나가면 제20대 대선은 과거 그 어느 대선보다 더 국가의 장래를 위한 생산적인 ‘비전 경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 강준만, "왜 ‘지방 소멸’은 대선 이슈가 되지 않는가", 충청투데이, 2021.8.24일자. ? " , 충청투데이, 2021.8.24일자. 18면.
지방 소멸과 대선
2021.08.24 1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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