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과 윤봉길 의사 의거 90주년을 기념하며
2022.01.22 03:15 |
조회 10611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 의거 90주년을 기념하며
올해는 이봉창(1901~1932) 의사와 윤봉길(1908~1932) 의사가 일제에 항거해 의거를 일으킨 지 9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의거 당시 두 사람은 각각 31세와 24세 청년이었어요.
이들은 독립운동에 본격 투신하기 전에 각각 '도시의 모던보이'와 '농촌의 계몽운동가'로 볼 수 있는 삶을 살았어요.
서로 다른 삶을 살았지만 결국은 조선 독립을 위한 같은 길을 걸었죠. 여기서 '의사(義士)'란 '의로운 뜻을 지닌 선비'란 의미예요.
그들은 어떤 의로운 뜻을 갖고 의로운 행동을 했을까요?
이봉창 "차별받는 동포를 위해 일하겠다"
"일본인의 습관을 빨리 배워 그들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겠다!" 일본인으로부터 기술을 습득해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청년이 있었어요. 이봉창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에 그는 열심히 직장에 다녔어요.
열두 살 때부터 일본인 상점의 점원으로 일했고요. 17세이던 1918년엔 용산역에 취직해 4년 동안 역무원과 운전 수습생 등으로 근무했습니다.
철도는 당시의 최첨단 교통수단이었고 용산은 한반도 철도의 중심지였죠. 그러나 조선인 직원은 일본인에 비해 승진과 봉급에서 철저한 차별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봉창은 '일본에서 일하는 게 오히려 차별이 덜하다'는 말을 듣고 1925년 일본으로 갔습니다. 철공소 같은 여러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했죠.
그는 술 마시고 카페에 가거나 영화를 보고 골프를 치기도 했어요.
이런 모습을 보고 그를 '근대의 최신 소비문화를 누렸던 모던보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1928년 11월 일왕 히로히토의 즉위식이 그의 인생 행로를 완전히 바꿔 놓게 됩니다.
일을 하루 쉬고 즉위식을 보러 갔으나, 경찰이 그를 수색하며 한글 편지를 발견한 뒤 일주일 동안 유치장에 구금한 거예요. 이봉창은 결심했습니다.
"조선인 주제에 일본 임금 같은 것을 볼 필요는 없다는 것 아니냐? 이제 우리 2000만 동포의 자주권을 위해 일해야겠다."
일제의 조선인 차별을 실감하면서 민족정신에 눈을 뜨게 된 거죠.
1931년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인애국단에 들어간 이봉창은 일왕 암살 계획을 밝혔어요. 그리고 김구 선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하겠습니다."
1932년 1월 8일, 그는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일왕 히로히토 마차를 향해 수류탄을 던져 명중시켰지만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어요.
일왕은 다른 마차에 타고 있었던 거지요.
사형선고를 받고 일본 형무소에 갇힌 그는 그해 10월 10일 순국(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침)했습니다.
윤봉길 "나는 일본인의 교육을 받지 않겠다"
충남 예산 출신의 윤봉길은 한때 일본의 사회 체제 속에서 살려고 했던 이봉창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어요.
"일본인의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말한 뒤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자퇴했답니다. 그는 충남 지역에서 일어났던 3·1 운동을 보고 일본의 잔학함을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일본어 시간에 "나는 일본인입니다"란 문장을 따라 하던 짝꿍의 발을 밟으며 "왜놈 된 기분이 어떠냐?"고 쏘아붙였다고 합니다.
이후 한학을 공부하던 청년 선비 윤봉길은 1926년부터 농민 계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월진회'를 만들어 문맹 퇴치와 한글 교육,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는데, 농민을 깨우쳐야 조선이 산다는 생각에서였지요. 이런 결심을 한 계기가 있었다고 해요.
글을 모르는 한 농부가 근처 무덤 묘비를 모두 뽑아 와 윤봉길에게 "아버지 무덤을 찾아 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의 나이 22세이던 1930년 윤봉길은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란 글을 남기고 훌쩍 만주로 떠났습니다.
'장부(건강하고 씩씩한 사내)'가 집을 나가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었죠.
1931년 8월 윤봉길은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가서 이듬해 4월 한인애국단에 입단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이봉창 의사와 같은 일로 써 달라"고 했죠.
1932년 4월 29일, 일본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왕의 생일 겸 전승 기념 행사를 열었습니다. 윤봉길은 이 행사장에서 귀빈석을 향해 폭탄을 던졌습니다.
거사는 성공이었습니다. 시라카와 요시노리 육군 대장 등이 사망했고, 많은 일본인 관리가 증상을 입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사형선고를 받고 그해 12월 19일 순국했습니다.
거사를 앞두고 윤봉길은 새로 산 자신의 회중시계(품에 지니는 시계)를 김구 선생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6원,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바꾸시죠. 제 시계는 앞으로 몇 시간밖에 쓸 일이 없으니까요." 김구는 윤봉길의 시계를 평생 간직했다고 합니다.
우리 독립은 독립운동이 있었기 때문
이봉창 의사의 의거는 실패한 듯 보였지만 그 영향은 컸습니다.
일제 침략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은 물론, 국제적 관심을 일으켰던 거죠.
중국의 민국일보는 이봉창 의거를 보도하면서 일왕이 '불행히도 맞지 않았다'고 써서 일본이 상하이 사변을 일으킨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습니다.
상하이 사변은 1932년과 1937년 두 차례에 걸쳐 상하이에서 일어난 중국과 일본의 무력 충돌 사건이에요.
윤봉길 의거를 보도한 중국 언론은 "수십만 중국 군대가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인 한 명이 해냈다"고 했고, 장제스 중국 총통은 윤 의사 가족에게 '장렬천추(壯烈千秋·씩씩한 의기가 천년을 빛나리라)'란 휘호를 써 줬습니다.
두 의거는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세계인에게 각인시켰고 중국이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광복 이후 김구는 윤봉길의 모친 김원상 여사를 만나 "아드님 덕분에 이렇게 광복이 빨리 찾아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봉창·윤봉길 의거처럼 끈질긴 독립 투쟁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한국인이 일제의 식민 통치에 순종하기만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1943년 연합국이 카이로 선언에서 '일본이 강제 점거한 모든 영토를 탈환한다'고 했을 때 한국은 여기서 제외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일본 영토로 남아있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우리는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연합국 지원으로 독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5년 9월 2일 미국 전함 미주리호에서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이 열렸어요.
이때 일본 대표인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는 지팡이를 짚은 채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던 걸까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로 한쪽 다리를 잃었던 거지요. 우리의 독립운동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려주는 상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도시락 폭탄과 물통 폭탄]
윤봉길 의사가 훙커우 공원 의거 때 던진 폭탄은 무엇이었을까요?
'도시락 폭탄'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과 다릅니다.
윤 의사는 현장에 도시락 모양의 폭탄과 물통 모양의 폭탄 두 개를 가져갔어요.
하지만 실제로 던진 것은 물통 폭탄 하나였습니다.
도시락 폭탄을 자결용으로 준비해 간 것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윤 의사는 "2개를 모두 던질 여유가 없었고 물통 폭탄에 끈이 있어 던지기 쉽다고 생각해 도시락 폭탄을 내려놓고 물통 폭탄을 던졌다"고 했습니다.
원래는 두 폭탄 모두 던질 계획이었다는 것이죠.
<참고문헌>
전체 5,456건 (302/364페이지)
941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 어떻길래??
2011.09.01,
조회 12357
[자유게시글]
진성조
기사 출력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 어떻길래?
[해외시각] "세계화된 자본주의, 국민총행복 외면한 실패작"
기사입력 2011-08-30 오후 2:46:42
다음은 '경제학계의 슈...
940
증산도 도전 홍보 영상
2011.08.31,
조회 13169
[자유게시글]
상생도군
증산도 공식 유튜브에 방문하시면 다양한 동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youtube.com/taeulju50000
939
kbs 1라디오 건강플러스-무료다운
2011.08.28,
조회 12677
[자유게시글]
진성조
http://tune.kbs.co.kr/program/program.php?pgNo=85&encyn=y
아주 유익한 라디오 건강프로 입니다..
매일 10:10쯤 진행되는 프로 입니다..
들어두시면 아주 중요한 건강상식을 많이 접하실수 있습...
938
부와 행복에 관한 단상
2011.08.27,
조회 12081
[자유게시글]
박덕규
행복지수 세계 1위, 바누아투
오세아니아의 작은 섬 바누아투, 이 작은 나라의 국민총생산(GDP)은 전 세계 233개국중 207위에 불과하다.즉, 빈곤국에 속하는 '가난한 나라'이다.
그러나 이 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937
지옥과 악마에 대한 단상
[3]
2011.08.26,
조회 11518
[자유게시글]
박덕규
악마에 대한 기독교의 일화
삼위일체의 수호자라 불리는 '성 아나타시오'가 쓴 글에서는 악마가 초췌한 몰골로 나타나서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 모든 힘을 잃었는데 왜 너희 인간들은 일만 안 풀리면 나를...
936
RE: 동양문화,즉 우리는 서양인과 달리 무얼 악 이라 했던가?
[1]
2011.08.30,
조회 12690
[자유게시글]
진성조
아하~ 신창원 에게 그런 일이 있었던 거군요~~
동양문화 에선 이란, 한문의 우주철학적 해석으로 보면, 죄 ==> 사망(=영적 사망) 이라는 신학논리가 등장하는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일견, 너무 지나친...
935
'나'는 누구인가?
2011.08.26,
조회 10220
[자유게시글]
박덕규
'불안'에 관한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읽다가 머리가 아파진다. 철학용어들이 어렵고 난해한 이유는 철학자들의 '생각'이 언어로 묘사될때 표현하기 어려운 말들로 풀어나오기 때문이란다. 좀 쉽게 생각해보자....
934
생각과 일---철학함의 여유에 대하여 (짧은 생각들)
2011.08.26,
조회 10316
[자유게시글]
진성조
1. 일에 빠지기만 하면 생각할 시간이 없다.
물론 일에 직접 관련된 것은 잘 생각해낸다.
그런데 그게 전부 다 진짜 생각일까?
그건 아마도 창조적 생각은 아닐것 이다.
그냥...
933
절대고독과 수도자
[1]
2011.08.25,
조회 12620
[자유게시글]
만국활계
인도의 고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절대 고독의 가운데 우뚝 선자 , 그가 곧 수도자다.
언제나 꽃처럼 새롭게 피는자, 그 꽃향기로서 넘치는
자, 그가 곧 수도자修道者다.
932
생각을 버린다는 것은
2011.08.25,
조회 10382
[자유게시글]
만국활계
윤동주 시인이 전했던 시구절중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생각을 버린다는것은 무엇보다도 양심을 전제로하며
자신에 대한 믿는마음이 우...
931
봄여름가을겨울 시간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2011.08.23,
조회 14308
[자유게시글]
우주의꿈
오늘도 하루가 과거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모두에게 공평히 주어진 24시간.
그시간 중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시간을 소비하였다.
정말, 그런데 그 천금보다 귀한 시간을...
930
아무리 생각해봐도 좋은책-[철학이 필요한 시간]
[1]
2011.08.21,
조회 11633
[추천도서]
진성조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8.52 | 네티즌리뷰 82건
강신주 저| 사계절 | 2011.02.15
페이지 346| ISBN 9788958285342
판형 A5, 148*210mm
정가 17,800원
Your browser...
929
베스트 역사저술가 이덕일의 신간 - [윤휴와 침묵의 제국]
[1]
2011.08.17,
조회 8444
[역사]
진성조
윤휴와 침묵의 제국
8.63 | 네티즌리뷰 20건
이덕일 저| 다산초당 | 2011.07.12
페이지 413| ISBN 9788963705712
판형 A5, 148*210mm
정가 17,000원 | e-book 10,200원
Your browser...
928
광야 / 이육사
2011.08.15,
조회 11018
[자유게시글]
만국활계
이육사의 "광야" 다시 읽기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927
서바이벌 프로-[나는 대통령 이다] -2012년 1월 상영?
[1]
2011.08.15,
조회 10251
[자유게시글]
진성조
경향닷컴 기사 프린트 페이지
인쇄하기
[오늘]서바이벌 오디션, 나는 대통령이다
오랜 논쟁 끝에 2012년 1월 방송 3사가 공동기획하고, 종합일간지들이 후원하는...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