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리더쉽
2022.04.06 15:14 |
조회 11073
세종대왕의 리더쉽
“왜 길가에 구경하는 백성이 한 명도 없는가?” 1444년(세종 26년) 5월 5일 청주 초수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세종이 한 말이다. 두 달 전 내려갈 때와 달리 관광(觀光)하는 백성이 안 보이는 이유를 승정원에 알아보게 했다. 조사 결과, 인민들의 왕의 수레 앞 하소연을 경기관찰사 이선(李宣)이 금지시켰음이 드러났다. 이 보고를 받은 세종은 “국가에서 사람을 보내 백성들의 이해를 살피려 하면, 수령들이 미리 단속해서 감춘다는 말을 내가 일찍이 들었는데, 이제 비로소 그 실상을 알았다”면서 자기 허물을 덮어 가리려는[欲掩己過·욕엄기과] 경기관찰사를 파직시켰다. 세종까지도 경험한 “옹폐(壅蔽)”, 즉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지도자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히 발생하는 현상이다. 옹폐라는 말은 조선왕조실록에 333회나 검색된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세종은 어떻게 옹폐의 장막에서 벗어났나? 첫째, 세종은 백성들의 실태를 잘 알고 있는 낮은 직급의 관리인 수령을 자주 만났다. 재위 기간 세종이 수령을 친견한 횟수는 무려 392회나 됐다(월 1.03회). 조선 왕조에서 왕이 지방 수령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은 세종 때부터였다. “수령의 임무는 지극히 무겁다”면서 세종은 “내가 백성의 일을 직접 살필 수 없으므로 그대들을 보내는 것이니, 부디 백성 사랑하는 일을 힘써 행하라”고 당부하곤 했다.
둘째, 세종은 관리들을 돌아가며 만나는 윤대(輪對)라는 제도를 도입해 국사를 보고받고 세세한 내용까지 파악했다. 재위 초반인 1425년(세종 7년) 6월 23일 예문관 대제학 변계량은 왕의 총명을 넓혀서[廣聰明·광총명] 왕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막는 폐단[壅蔽之患·옹폐지환]을 없게 할 뿐 아니라, 신하들의 뛰어나고 그렇지 못한 점[群臣之賢否·군신지현부]까지도 임금이 헤아릴 수 있는[聖鑑·성감]” 윤대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세종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약 4개월 뒤인 1425년 10월 6일부터 1437년(재위 19년)까지 거의 12년 동안 윤대를 거행했다. 윤대하는 신하들에게 세종은 “이 제도를 마련한 것은 임금의 과실(過失)과 시행하는 정책의 잘잘못[得失·득실]과, 민간의 어려운 사정[疾苦·질고], 그리고 신하들의 사사로움과 정대함[邪正·사정]을 듣기 위함”이며, 아울러 숨어 있는 인재를 뽑고자 함이니 소속 관청의 작은 문제까지 두루 아뢰라고 지시했다(세종실록 12년 윤12월 8일).
셋째, 옹폐를 벗어나기 위해 세종이 가장 중시한 점은 어전회의의 활성화였다. 즉위 후 첫째로 한 말이 “의논하자”였던 세종은 신하들이 속에 있는 진실된 말을 다 하게 했다. 그는 경연이라는 세미나식 어전회의를 매주 한 번 이상 개최했다. 왕 앞에서 머리를 숙이거나 땅에 엎드리지 말고[無俛伏·무면복] 곧은 자세로 말하게 했다. 그럼에도 자유롭게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세종은 “내가 의논하라고 한 것은 서로 논박하면서[互相論駁·호상논박], 각기 마음속에 쌓인 바는 진술하라[各陳所蘊·각진소온]”는 뜻이라면서 속말 꺼내기를 당부하곤 했다. 긴급 사안이 발생하면 관계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會于一處·회우일처) 의논하게 하되, 일의 잘된 것과 잘못된 것을 모두 말하게 했다. 반대 의견이라도 끝까지 경청했으며, 토의가 미흡하면 종일토록 토론하게 했다(세종실록 1년 12월 17일).
인의 장막을 벗어나기 위한 세종의 노력은 재위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재위 7년째인 1425년 7월에 그는 “가뭄이 너무 심하다. 기후가 순조롭지 못하여 이러하니, 장차 벼농사 형편을 나가보리라”하면서 서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금년 벼농사는 꽤 잘 되었다는 주위 관리들의 말과 달리 논들이 말라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세종은 “오늘 이곳에 와 보니 실로 눈물이 날 지경이다”라면서 관리들의 거짓 보고를 탄식했다. 이날 행차에 세종은 다만 그날 당번인 호위군관만 거느리고 다니면서, 벼가 잘 되지 못한 곳을 보면 반드시 말을 멈추고 농부에게 까닭을 물었다고 한다[問於農夫·문어농부]. 경호를 최소화하고 단기 필마로 백성들 속으로 들어간 세종은 들판의 농부들에게 무엇이 제일 아쉬우며, 어떤 것을 도와주면 좋을지를 물었다.
이제 곧 새 대통령이 대한민국호를 이끌게 된다. 거의 모든 최고 권력자가 놓쳤던 점이 옹폐의 장막이었다. 현장을 찾아가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백성과 더불어 문제를 풀어나갔던 세종의 지혜에서 배우길 바란다.
<참고문헌>
1. 박현모, "세종은 어떻게 인의 장막을 극복했나?", 조선일보, 2022.4.5일자. A33면.
전체 5,456건 (11/364페이지)
5306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
2026.01.12,
조회 2629
[역사공부방]
신상구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
5305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 새해에 바란다.
2026.01.11,
조회 1575
[시사정보]
신상구
2026년은 붉은 말의 해다. 험난한 시대를 달려야 한다. 지혜의 힘이 필요한 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한 해라고 생각한다.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 예로부터 말은 기백과...
5304
대한민국 중등학교 역사교육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2026.01.11,
조회 2554
[역사공부방]
신상구
대한민국 중등학교 역사교육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대한민국의 역사교육은 역사적 사...
5303
문명사적 전환기, 걱정되는 ‘정치 붕괴’
2026.01.10,
조회 2356
[역사공부방]
신상구
2026년의 대한민국은 문명의 전환을 마주하고 있다. 문명사적 전환기란 정권의 교체나 정책의 미세 조정으로 규정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의 변화가 인간의 인식과 노동의 형태를 바꾸고, 그...
5302
235년 만에 역적에서 복권된 성삼문
2026.01.10,
조회 2613
[역사공부방]
신상구
235년 만에 역적에서 복권된 성삼문 “1672년 4월, 인왕산의 무너진 벼랑 돌무더기 사...
5301
한강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 있는 한국 문인
2026.01.10,
조회 2288
[시사정보]
신상구
한강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 있는 한국 문인 한강 작가 이후 노벨...
5300
대한민국 역사 교육의 현주소
2026.01.10,
조회 2370
[역사공부방]
신상구
대한민국 역사 교육의 현주소.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스토리URL복사기사공...
5299
역사가 권력에 물들면
2026.01.10,
조회 2136
[역사공부방]
신상구
역사가 권력에 물들면 &nb...
5298
문희순의 충청女지도
2026.01.09,
조회 2394
[역사공부방]
신상구
[문희순의 충청女지도] 붓을 놓지 않았던 삶, 지역의 정신으로 남았다 "어머니는 천성적으로 글을 좋아하여 대의를...
5297
‘로봇의 미래’를 경고하다
2026.01.09,
조회 1457
[시사정보]
신상구
 ...
5296
나태주 시인 이야기
2026.01.08,
조회 1839
[좋은글]
신상구
나태주 시인 이야기 쓸개...
5295
김구와 중국
2026.01.08,
조회 2189
[시사정보]
신상구
일제의 탄압으로 중국 곳곳을 전전하던 김구의 임시정부는 1940년 충칭으로 옮겨 그해 9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1941년 12월엔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종전 후 한국의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한 올바른 정세 판단이...
5294
한민족의 소도蘇塗 문화
2026.01.07,
조회 2098
[역사공부방]
신상구
단군조선이 말기에 접어들자 중앙집권 세력은 점차 약화되기 시작한다. 그러자 지방 세력들이 새롭게 일어나면서 열국시대列國時代가 전개되는데, 이것이 일명 부여시대夫餘時代이다. 부여에서 신교에 뿌리를 둔 낭...
5293
내가 살아 온 100년의 역사, 살고 싶은 나라를 위하여
2026.01.07,
조회 2071
[좋은글]
신상구
내가 살아 온 100년의 역사, 살고 싶은 나라를 위하여.내 인생의 4반세기를 일제강점기에...
5292
대한민국이 만들어야 할 ‘세 번째 한강의 기적’
2026.01.07,
조회 2368
[역사공부방]
신상구
대한민국이...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