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천착했던 모네의 수련, 용산에 피다
2022.06.01 10:26 |
조회 13827
30년간 천착했던 모네의 수련, 용산에 피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수련 연못이 생겼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전시실 바닥에 연못을! 궁금하다면 당장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가면 된다. 이 전시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기증 1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기념전이다. 여기서 ‘어느 수집가’는 당연히 이건희 회장이다. 이 회장의 별세 이후 유족은 수집품을 박물관과 미술관에 나눠 기증했다. 물경, 2만3000점이 넘는다. 기증품의 물량도 놀랍지만 수준 또한 놀라웠다. 미술관에 기증한 약 1500점 가운데 서양회화 작품 7점이 포함되어 있는바,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년)이다. 박물관은 이 작품 바로 앞에 원작을 촬영한 영상을 바닥에 비춰주고 있다. 관객은 실제의 수련 연못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수련이 있는 연못.
모네는 인상주의를 연 대표 화가로 미술 애호가로부터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다. 모네는 화가이지만 정원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정원 가꾸기에 열정을 바쳤다. 화가는 말했다. “내가 화가가 된 것은 모두 꽃 덕분이다.” 정말 꽃을 좋아한 화가다운 말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72km 가면 지베르니라는 아담한 동네가 나온다. 40대의 모네는 여기 지베르니로 이사한 뒤 전문 정원사를 고용해 정원을 가꾸었다. 꽃과 나무를 사랑한 화가의 마음은 대지 위에 나타났다. 그러면서 모네는 캔버스 위에 꽃을 숱하게 그렸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소재는 수련이었다. 모네는 말년의 30년가량을 수련 그리기에 집중한바, 250점 정도를 그렸다. 모네가 얼마나 수련을 사랑했는지 그의 작품은 말해주고 있다. 수련의 화가. 사실 나는 오래전에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을 방문한 바 있다. 수련이 있는 연못은 일본식 다리로 치장했고, 집 안에는 화가가 좋아한 일본의 다색 목판화(우키요에)가 걸려 있었다.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유행했던 ‘일본풍’을 짐작하게 했다.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는 유럽 미술계에 하나의 혁명처럼 각인됐다. 인상주의 하면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1873년)라는 작품이 우선 떠오른다. 르아브르 항구의 일출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항구는 아침 안개 때문인지 뿌옇고 사물들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모네의 그림 역시 칙칙한 색깔에 기중기, 범선, 공장 굴뚝 같은 것들이 불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다만 화면 중앙의 붉은 태양만이 강렬하게 위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다 수면 위에 붉고 기다랗게 빛나고 있는 태양광이다. 당시 이런 화풍은 높게 평가받을 수 없었다. 사실 인상주의라는 용어도 한 비평가가 야유와 비판을 하기 위해 사용한 데서 생기게 되었다. 인상주의를 비판한 당시의 캐리커처에 이런 것도 있다. 캔버스 위의 색깔을 두고 ‘시체 색깔’이라고 야유하니 화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냄새까지 그리지는 못했다.” 빛과 색깔을 중요시 여긴 인상주의 화가에게 색깔을 ‘시체의 색깔’이라고 폄하한 당대 사람들. 하지만 인상주의 작품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고, 사실 그림값도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다.
인상주의 이전의 화가들은 대개 실내에서 작업했다. 다행스럽게도 인상주의 시절 물감을 담는 용기, 즉 휴대용 금속튜브가 발명되었다. 그래서 화가들은 야외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되었고, 태양의 존재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빛은 중요해졌고, 더불어 색깔 표현에도 민감하게 되었다. 햇빛에 따라 사물의 색깔은 변했고, 당시 화가들은 이런 미묘한 변화를 화면에 담았다. 모네 역시 야외에서 많은 작업을 했다. 그가 정원에서 숱한 작품을 남긴 것도 인상주의 시대의 사회 환경과 직결된다.
모네는 인상주의를 연 대표 화가로 미술 애호가로부터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다. 모네는 화가이지만 정원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정원 가꾸기에 열정을 바쳤다. 화가는 말했다. “내가 화가가 된 것은 모두 꽃 덕분이다.” 정말 꽃을 좋아한 화가다운 말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72km 가면 지베르니라는 아담한 동네가 나온다. 40대의 모네는 여기 지베르니로 이사한 뒤 전문 정원사를 고용해 정원을 가꾸었다. 꽃과 나무를 사랑한 화가의 마음은 대지 위에 나타났다. 그러면서 모네는 캔버스 위에 꽃을 숱하게 그렸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소재는 수련이었다. 모네는 말년의 30년가량을 수련 그리기에 집중한바, 250점 정도를 그렸다. 모네가 얼마나 수련을 사랑했는지 그의 작품은 말해주고 있다. 수련의 화가. 사실 나는 오래전에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을 방문한 바 있다. 수련이 있는 연못은 일본식 다리로 치장했고, 집 안에는 화가가 좋아한 일본의 다색 목판화(우키요에)가 걸려 있었다.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유행했던 ‘일본풍’을 짐작하게 했다.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는 유럽 미술계에 하나의 혁명처럼 각인됐다. 인상주의 하면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1873년)라는 작품이 우선 떠오른다. 르아브르 항구의 일출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항구는 아침 안개 때문인지 뿌옇고 사물들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모네의 그림 역시 칙칙한 색깔에 기중기, 범선, 공장 굴뚝 같은 것들이 불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다만 화면 중앙의 붉은 태양만이 강렬하게 위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다 수면 위에 붉고 기다랗게 빛나고 있는 태양광이다. 당시 이런 화풍은 높게 평가받을 수 없었다. 사실 인상주의라는 용어도 한 비평가가 야유와 비판을 하기 위해 사용한 데서 생기게 되었다. 인상주의를 비판한 당시의 캐리커처에 이런 것도 있다. 캔버스 위의 색깔을 두고 ‘시체 색깔’이라고 야유하니 화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냄새까지 그리지는 못했다.” 빛과 색깔을 중요시 여긴 인상주의 화가에게 색깔을 ‘시체의 색깔’이라고 폄하한 당대 사람들. 하지만 인상주의 작품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고, 사실 그림값도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다.
인상주의 이전의 화가들은 대개 실내에서 작업했다. 다행스럽게도 인상주의 시절 물감을 담는 용기, 즉 휴대용 금속튜브가 발명되었다. 그래서 화가들은 야외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되었고, 태양의 존재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빛은 중요해졌고, 더불어 색깔 표현에도 민감하게 되었다. 햇빛에 따라 사물의 색깔은 변했고, 당시 화가들은 이런 미묘한 변화를 화면에 담았다. 모네 역시 야외에서 많은 작업을 했다. 그가 정원에서 숱한 작품을 남긴 것도 인상주의 시대의 사회 환경과 직결된다.

다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로 가보자. 모네의 수련 작품은 말년에 그려서 그런지 색감이 화려하지 않다. 무엇보다 수련은 화면의 구석으로 밀려나 있고, 그나마도 듬성듬성 몇 개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화면의 반 이상을 하얗게 처리한바, 마치 하늘의 구름이 내려온 것처럼 보인다. 물론 노년에 시력을 잃게 된 화가의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해석하면 추상적인 표현은 뒤에 추상회화의 선구로 자리매김하게도 한다. ‘수련이 있는 연못’은 모네의 야심작으로 눈길을 오랫동안 붙들어 맨다. 연꽃은 흙탕물에서 살아도 자신의 몸에 흙탕물을 적시지 않고 오히려 연못을 정화시킨다. 청정의 상징 연꽃. 모네의 수련은 우리의 마음을 닦게 한다.
모네는 86세에 이승을 떠나면서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장례식에 꽃 장식을 하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자신의 정원에 있는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이라고 했다. 꽃 사랑의 위대한 경지이다. 정원의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왜 꽃을 꺾어 장례식장을 꾸미려 하는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경책과도 같다. 꽃으로 장식하지 말라.
모네는 86세에 이승을 떠나면서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장례식에 꽃 장식을 하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자신의 정원에 있는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이라고 했다. 꽃 사랑의 위대한 경지이다. 정원의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왜 꽃을 꺾어 장례식장을 꾸미려 하는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경책과도 같다. 꽃으로 장식하지 말라.
<참고문헌>
1. 윤범모, "30년간 천착했던 모네의 수련, 용산에 피다", 동아일보, 2022.5.31일자. A28면.
전체 5,456건 (38/364페이지)
4901
대학의 우수 인재 유치 없이는 대한민국 미래도 없다
2024.09.19,
조회 7818
[역사공부방]
신상구
대학의 우수 인재 유치 없이는 대한민국 미래도 없다  ...
4900
뉴라이트의 함정
2024.09.18,
조회 7917
[역사공부방]
신상구
&nbs...
4899
사찰 최초 국가현충시설, 양산 통도사
2024.09.15,
조회 7524
[역사공부방]
신상구
한국 사찰 최초 국가현충시설, 양산 통도사 ...
4898
패자부활전 가능하도록 ‘소득 이동 사다리’ 만들어야
2024.09.15,
조회 7632
[역사공부방]
신상구
패자부활전 가능하도록 ‘소득 이동 사다리’ 만들어야한국은 노벨경제학...
4897
한·일 관계 퇴행 막는 장치 필요, DJ·오부치 선언 2.0 만들어야
2024.09.15,
조회 7469
[역사공부방]
신상구
한·일 관계 퇴행 막는 장치 필요, DJ·오부치 선언 2.0 만들어야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오는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를 끝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기시다 총리는...
4896
<특별기고> 추석의 의미와 유래와 민속놀이
2024.09.12,
조회 7684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 추석의 의미와 유래와 민속놀이 &nbs...
4895
북한 MZ 탈북 사유
2024.09.08,
조회 6807
[역사공부방]
신상구
북한 MZ 탈북 사유 &nb...
4894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
2024.09.08,
조회 7331
[역사공부방]
신상구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  ...
4893
친일파 영국 데일리메일 특파원인 프레더릭 아서매켄지가 1907년 고발한 의병 양민 학살 참상 고발
2024.09.07,
조회 8472
[역사공부방]
신상구
친일파 영국 데일리메일 특파원인 프레더릭 아서매켄지가 &nbs...
4892
이중섭은 늘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그릴 것인가 고민했다.
2024.09.07,
조회 7491
[역사공부방]
신상구
이중섭은 늘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그릴 것인가 고민했다. 5일 열린 ‘2024 이중섭 세미나’에서 스토리텔링 전시를 주제로 발표하...
4891
이승만의 북진통일론, 당시 국회도 만장일치 지지
2024.09.07,
조회 7479
[역사공부방]
신상구
이승만의 북진통일론, 당시 국회도...
4890
역성혁명 성공한 삶, 땅 욕심이 화 불렀나
2024.09.07,
조회 8007
[역사공부방]
신상구
역성혁명 성공한 삶, 땅 욕심이 화...
4889
학력평가원 역사 교과서 해부
2024.09.07,
조회 7626
[역사공부방]
신상구
학력평가원 역사 교과서 해...
4888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는 현실적인 세 가지 방법
2024.09.07,
조회 7704
[역사공부방]
신상구
 ...
4887
이승만의 '정읍 선언'
2024.09.06,
조회 7930
[역사공부방]
신상구
[뉴스 속의 한국사] '분단 초래' 비판받은 연설… 넉 달 전 북한엔 사실상 정부 들어섰죠이승만의 '정읍 선언'▲ 1946년 6월 5일 자 조선일보 1면에 이승만의 '정읍 발언'에 대한 기사가 실렸어요. 이승만은 1946...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