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천착했던 모네의 수련, 용산에 피다
2022.06.01 10:26 |
조회 13834
30년간 천착했던 모네의 수련, 용산에 피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수련 연못이 생겼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전시실 바닥에 연못을! 궁금하다면 당장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가면 된다. 이 전시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기증 1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기념전이다. 여기서 ‘어느 수집가’는 당연히 이건희 회장이다. 이 회장의 별세 이후 유족은 수집품을 박물관과 미술관에 나눠 기증했다. 물경, 2만3000점이 넘는다. 기증품의 물량도 놀랍지만 수준 또한 놀라웠다. 미술관에 기증한 약 1500점 가운데 서양회화 작품 7점이 포함되어 있는바,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년)이다. 박물관은 이 작품 바로 앞에 원작을 촬영한 영상을 바닥에 비춰주고 있다. 관객은 실제의 수련 연못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수련이 있는 연못.
모네는 인상주의를 연 대표 화가로 미술 애호가로부터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다. 모네는 화가이지만 정원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정원 가꾸기에 열정을 바쳤다. 화가는 말했다. “내가 화가가 된 것은 모두 꽃 덕분이다.” 정말 꽃을 좋아한 화가다운 말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72km 가면 지베르니라는 아담한 동네가 나온다. 40대의 모네는 여기 지베르니로 이사한 뒤 전문 정원사를 고용해 정원을 가꾸었다. 꽃과 나무를 사랑한 화가의 마음은 대지 위에 나타났다. 그러면서 모네는 캔버스 위에 꽃을 숱하게 그렸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소재는 수련이었다. 모네는 말년의 30년가량을 수련 그리기에 집중한바, 250점 정도를 그렸다. 모네가 얼마나 수련을 사랑했는지 그의 작품은 말해주고 있다. 수련의 화가. 사실 나는 오래전에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을 방문한 바 있다. 수련이 있는 연못은 일본식 다리로 치장했고, 집 안에는 화가가 좋아한 일본의 다색 목판화(우키요에)가 걸려 있었다.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유행했던 ‘일본풍’을 짐작하게 했다.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는 유럽 미술계에 하나의 혁명처럼 각인됐다. 인상주의 하면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1873년)라는 작품이 우선 떠오른다. 르아브르 항구의 일출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항구는 아침 안개 때문인지 뿌옇고 사물들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모네의 그림 역시 칙칙한 색깔에 기중기, 범선, 공장 굴뚝 같은 것들이 불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다만 화면 중앙의 붉은 태양만이 강렬하게 위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다 수면 위에 붉고 기다랗게 빛나고 있는 태양광이다. 당시 이런 화풍은 높게 평가받을 수 없었다. 사실 인상주의라는 용어도 한 비평가가 야유와 비판을 하기 위해 사용한 데서 생기게 되었다. 인상주의를 비판한 당시의 캐리커처에 이런 것도 있다. 캔버스 위의 색깔을 두고 ‘시체 색깔’이라고 야유하니 화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냄새까지 그리지는 못했다.” 빛과 색깔을 중요시 여긴 인상주의 화가에게 색깔을 ‘시체의 색깔’이라고 폄하한 당대 사람들. 하지만 인상주의 작품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고, 사실 그림값도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다.
인상주의 이전의 화가들은 대개 실내에서 작업했다. 다행스럽게도 인상주의 시절 물감을 담는 용기, 즉 휴대용 금속튜브가 발명되었다. 그래서 화가들은 야외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되었고, 태양의 존재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빛은 중요해졌고, 더불어 색깔 표현에도 민감하게 되었다. 햇빛에 따라 사물의 색깔은 변했고, 당시 화가들은 이런 미묘한 변화를 화면에 담았다. 모네 역시 야외에서 많은 작업을 했다. 그가 정원에서 숱한 작품을 남긴 것도 인상주의 시대의 사회 환경과 직결된다.
모네는 인상주의를 연 대표 화가로 미술 애호가로부터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다. 모네는 화가이지만 정원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정원 가꾸기에 열정을 바쳤다. 화가는 말했다. “내가 화가가 된 것은 모두 꽃 덕분이다.” 정말 꽃을 좋아한 화가다운 말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72km 가면 지베르니라는 아담한 동네가 나온다. 40대의 모네는 여기 지베르니로 이사한 뒤 전문 정원사를 고용해 정원을 가꾸었다. 꽃과 나무를 사랑한 화가의 마음은 대지 위에 나타났다. 그러면서 모네는 캔버스 위에 꽃을 숱하게 그렸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소재는 수련이었다. 모네는 말년의 30년가량을 수련 그리기에 집중한바, 250점 정도를 그렸다. 모네가 얼마나 수련을 사랑했는지 그의 작품은 말해주고 있다. 수련의 화가. 사실 나는 오래전에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을 방문한 바 있다. 수련이 있는 연못은 일본식 다리로 치장했고, 집 안에는 화가가 좋아한 일본의 다색 목판화(우키요에)가 걸려 있었다.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유행했던 ‘일본풍’을 짐작하게 했다.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는 유럽 미술계에 하나의 혁명처럼 각인됐다. 인상주의 하면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1873년)라는 작품이 우선 떠오른다. 르아브르 항구의 일출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항구는 아침 안개 때문인지 뿌옇고 사물들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모네의 그림 역시 칙칙한 색깔에 기중기, 범선, 공장 굴뚝 같은 것들이 불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다만 화면 중앙의 붉은 태양만이 강렬하게 위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바다 수면 위에 붉고 기다랗게 빛나고 있는 태양광이다. 당시 이런 화풍은 높게 평가받을 수 없었다. 사실 인상주의라는 용어도 한 비평가가 야유와 비판을 하기 위해 사용한 데서 생기게 되었다. 인상주의를 비판한 당시의 캐리커처에 이런 것도 있다. 캔버스 위의 색깔을 두고 ‘시체 색깔’이라고 야유하니 화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냄새까지 그리지는 못했다.” 빛과 색깔을 중요시 여긴 인상주의 화가에게 색깔을 ‘시체의 색깔’이라고 폄하한 당대 사람들. 하지만 인상주의 작품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고, 사실 그림값도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다.
인상주의 이전의 화가들은 대개 실내에서 작업했다. 다행스럽게도 인상주의 시절 물감을 담는 용기, 즉 휴대용 금속튜브가 발명되었다. 그래서 화가들은 야외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되었고, 태양의 존재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빛은 중요해졌고, 더불어 색깔 표현에도 민감하게 되었다. 햇빛에 따라 사물의 색깔은 변했고, 당시 화가들은 이런 미묘한 변화를 화면에 담았다. 모네 역시 야외에서 많은 작업을 했다. 그가 정원에서 숱한 작품을 남긴 것도 인상주의 시대의 사회 환경과 직결된다.

다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로 가보자. 모네의 수련 작품은 말년에 그려서 그런지 색감이 화려하지 않다. 무엇보다 수련은 화면의 구석으로 밀려나 있고, 그나마도 듬성듬성 몇 개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화면의 반 이상을 하얗게 처리한바, 마치 하늘의 구름이 내려온 것처럼 보인다. 물론 노년에 시력을 잃게 된 화가의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해석하면 추상적인 표현은 뒤에 추상회화의 선구로 자리매김하게도 한다. ‘수련이 있는 연못’은 모네의 야심작으로 눈길을 오랫동안 붙들어 맨다. 연꽃은 흙탕물에서 살아도 자신의 몸에 흙탕물을 적시지 않고 오히려 연못을 정화시킨다. 청정의 상징 연꽃. 모네의 수련은 우리의 마음을 닦게 한다.
모네는 86세에 이승을 떠나면서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장례식에 꽃 장식을 하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자신의 정원에 있는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이라고 했다. 꽃 사랑의 위대한 경지이다. 정원의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왜 꽃을 꺾어 장례식장을 꾸미려 하는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경책과도 같다. 꽃으로 장식하지 말라.
모네는 86세에 이승을 떠나면서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장례식에 꽃 장식을 하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자신의 정원에 있는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이라고 했다. 꽃 사랑의 위대한 경지이다. 정원의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왜 꽃을 꺾어 장례식장을 꾸미려 하는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경책과도 같다. 꽃으로 장식하지 말라.
<참고문헌>
1. 윤범모, "30년간 천착했던 모네의 수련, 용산에 피다", 동아일보, 2022.5.31일자. A28면.
전체 5,456건 (47/364페이지)
4766
<특별기고> 한국어 국제 위상과 해외 한글교육 현황과 과제
2024.06.22,
조회 9014
[역사공부방]
신상구
&nbs...
4765
105세 김형석 교수가 고교 1학년 학생들에게 조언한 내용
2024.06.22,
조회 8222
[역사공부방]
신상구
105세 김형석 교수가 고교 1학년 학생들에게 조언한 내용 지난 늦은 봄이...
4764
이화여대 초석 놓은 엘리스 아펜젤러
2024.06.21,
조회 9570
[역사공부방]
신상구
앨리스 아펜젤러가 이화학당 대학과 8회 졸업생 두 명(맨 왼쪽·오른쪽)과 이화학당 선교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가운데 앞쪽에 있는 사람이 앨리스 아펜젤러예요. /이화역사관© 제공: 조선일보 미국 하와...
4763
이장우 대전시장 취임 2주년 주요성과 및 시정 방향 발표
2024.06.20,
조회 8782
[역사공부방]
신상구
이장우 대전시장 취임 2주년 주요성과 및 시정 방향 발표 이장우 대전시장은 18일 "민선 8기 전반기는 미래를 향해 힘차게 발돋움한 역동과 도전의 시...
4762
한국 국제경쟁력 20위 역대 최고 독일 일본 제쳤다
2024.06.20,
조회 9008
[역사공부방]
신상구
한국 국제경쟁력 20위 역대 최고, 독일과 일본 제쳤다 한국...
4761
인간 김해경 회고
2024.06.18,
조회 8462
[역사공부방]
신상구
인간 김해경 회고 공유 댓글 글자크기조정 인쇄  ...
4760
한글문화도시 세종에 거는 기대
2024.06.18,
조회 8837
[역사공부방]
신상구
한글문화도시 세종에 거는 기대이전 기사보기 다음 기사보기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nbs...
4759
숨은 독립운동가 백용성 스님 이야기
2024.06.18,
조회 10159
[역사공부방]
신상구
숨은 독립운동가 백용성 스님 이야기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해방을 맞았다. 석 달 뒤인 11월 23일 백범 김구와 김규식 등 상하이 임시정부 요인 1진이 귀국...
4758
서울대 관악캠퍼스 설립자 박정희 전 대통령 망각 너무한 것 아닌가
2024.06.18,
조회 9045
[역사공부방]
신상구
서울대 관악캠퍼스 설립자 박정희 전 대통령 망각 너무한 것 아닌가1970년대는 조국 근대화 시기근대국가는 곧 지식국가서울대 종합캠퍼스 탄생은경부고속·포항제철 버금관악캠퍼스 산파는 박 대통령...
4757
몽골 울란바토르에 이태준 기념관 세운다
2024.06.18,
조회 8826
[역사공부방]
신상구
몽골 울란바토르에 이태준 기념관 세운다2대암 이태준 지사.(국가보훈부 제공)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로 몽골에서 ‘한국...
4756
2024 세계대학평가
2024.06.17,
조회 9256
[역사공부방]
신상구
2024 세계대학평가서울대학교 전경. /조선일보 DB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 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5일 발표한 ‘2024...
4755
설봉 강백년의 삶과 문학
2024.06.17,
조회 8657
[역사공부방]
신상구
&nbs...
4754
변화의 바람 부는 동구 대전역세권 옛 명성 되찾는다
2024.06.14,
조회 8561
[역사공부방]
신상구
변화의 바람 부는 동구 대전역세권 옛 명성 되찾는다이전 기사보...
4753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별세
2024.06.14,
조회 8050
[역사공부방]
신상구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별세2007년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은 본지 인터뷰 때 “모든 재산을 우리나라의 기술 발전을...
4752
이중섭 미공개 편지화 3장 서울미술관 특별전서 공개
2024.06.14,
조회 8875
[역사공부방]
신상구
이중섭 미공개 편지화 3장 서울미술관 특별전서 공개5이중섭이 1954년 일본에 있는 큰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화.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양피 잠바를 입고 왼손엔 팔레트를, 오른손엔 붓...










/cloudfront-ap-northeast-1.images.arcpublishing.com/chosun/Z2UXRPSLXNDO3DCLYIYE7PTLFQ.jpg)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