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왕궁 조경
2022.07.28 18:04 |
조회 10561
백제 왕궁 조경
충남 부여의 ‘궁남지’(宮南池)에서 지난 14일부터 나흘간 열린 부여서동연꽃축제에 40여 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왔다고 해요. 이곳은 백제의 옛 도읍 사비(지금의 부여)에 있었던 궁남지의 위치를 추정해 1960년 복원 사업으로 인공 조성한 곳인데요. 33만㎡(약 10만평) 부지에 50여 종의 연꽃 약 1000만 송이가 피어나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해요. 백제는 언제부터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고 만들었는지 알아볼까요?
◇왕궁 속의 백제 정원
고대 국가에서는 국왕이 거주하는 왕궁 둘레에 높은 담장과 성곽을 겹겹이 쌓았어요. 국왕의 안전을 위해서였지요. 이런 ‘구중궁궐’(九重宮闕·겹겹이 막힌 깊은 궁궐) 안에는 인공적으로 산과 연못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가꾸며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러 통치자가 휴식을 취하고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삼국의 왕궁이나 사찰에 관한 발굴에서 공통적으로 정원이나 조경과 관련된 여러 흔적이 발견되지만, 유독 백제에서는 정원과 관련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요. 백제가 한성(서울)을 도읍으로 삼았던 진사왕 7년(391)에는 왕궁을 수리하며 연못을 파고, 연못을 만들면서 파낸 흙으로 산을 만들어 새와 특이한 꽃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고요.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동성왕 22년(500)에는 왕궁 동쪽에 높이가 5장(약 12.5m)이나 되는 누각인 임류각(臨流閣)을 세우고, 또 연못을 판 다음 그 주변에 진기한 짐승을 길렀다고 해요.
이렇게 백제의 왕들은 수도를 옮길 때마다 왕궁에 정원을 만들었어요. 궁남지는 사비를 도읍으로 삼던 시절 무왕(재위 600~641년)이 만든 백제의 대표적인 정원인데요. 기록에 따르면, 무왕은 634년 왕궁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리(약 7.85㎞)나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왔어요. 연못 사방 기슭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한가운데 인공섬을 만들었는데, 이 섬의 모습이 마치 ‘방장산’(方丈山) 같았다고 해요. 도교에서 방장산은 봉래산(蓬萊山), 영주산(瀛洲山)과 함께 신선이 사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불려요. 궁남지에 신선들이 사는 방장산을 본뜬 섬을 만든 것은 백제 정원에 도교 사상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죠. 이렇게 백제의 왕들은 기이한 동물과 식물이 모인 정원을 만들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과시하려고 했어요.
◇사각 연못과 특이한 돌로 꾸며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 정원 내부의 연못은 네모난 형태가 대부분이에요. 부여 부소산성 남쪽에 위치한 관북리 유적에서는 땅속 약 1.5m 깊이에 파묻혀 있던 연못이 발견됐는데요. ‘깬돌’(돌을 깨서 만든 인공적인 자갈)을 이용해 동서 10.6m, 남북 6.2m, 깊이 1.2m 규모로 쌓은 석축 연못이었어요.
이 연못 바닥에서는 연꽃 줄기와 뿌리가 확인돼 백제 당시에 이미 연꽃이 조경용으로 이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연못 내부에서는 물품에 다는 꼬리표나 문서 행정에 이용된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을 비롯해 눈금 간격이 약 2.5㎝인 나무로 만든 자, 토기와 기와, ‘개원통보’(開元通寶·중국 당나라 동전) 등이 발견됐죠. 이 연못은 크기가 작고 건물 사이의 중정(中庭·마당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서 각종 의례나 잔치의 보조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생각돼요.
익산 왕궁리 유적은 7세기 백제 정원의 모습을 좀 더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왕궁리 유적은 나지막한 구릉을 깎아 땅을 평평하게 만든 다음, 그곳에 동서 폭 31m가 넘는 대형 건물을 비롯한 각종 기와 건물을 세우고 뒤쪽으로는 대규모 수로가 있는 후원(後苑)을 만들었어요.
후원이 시작되는 유적 중앙 부분에서는 정원과 관련된 시설이 발견됐는데요. 물을 공급하고 저장하거나 배수하는 시설, 정원을 장식하던 특이한 모양의 돌 조경석(造景石), 정원을 감상하기 위한 소형 건물의 흔적, 둥글고 넓적한 돌을 깔아 정원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든 통로 등이었어요.
정원 가운데 부분에는 움푹 파인 커다란 돌을 설치해 이 돌을 타고 물이 흘러 직사각형 수조 안에 고이도록 했어요. 독특하게 생긴 괴석(怪石)을 이용해 인공산을 만들기도 했고요. 이곳에서는 물고기 비늘처럼 생겼다고 해서 ‘어린석’(魚鱗石)으로 불리는 2점의 조경석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되기도 했어요. 이 어린석은 중국의 왕궁이나 국가적인 제사 시설에서 주로 사용했는데, 백제가 왕궁의 정원을 꾸미기 위해 특별히 중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한 것이랍니다.
◇일본 정원 문화 기초 닦은 노자공
백제의 왕궁이나 사찰·관청에서는 이처럼 크고 작은 정원을 만들었는데요. 많은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조경 전문가가 필요했어요. 국내에는 이와 관련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지만, 일본에는 백제에서 건너간 노자공(路子工)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어요.
기록에 따르면, 그는 612년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해요. 그는 얼굴과 몸에 흰 반점이 있어서 병든 사람처럼 보였대요. 사람들은 그의 용모를 싫어해서 추방하려 했지만, ‘산악(山岳·솟은 산) 모형을 만드는 재주’가 있음을 인정받아 일본에 체류하게 됐어요. 그는 당시 일본의 왕궁인 오하리다궁(小墾田宮) 남쪽 뜰에 수미산(須彌山·불교관에서 세계의 중앙에 있다는 산) 모형과 오교(吳橋·중국 남조 양식의 다리)를 축조했어요. 일본 왕궁의 정원에 놓인 핵심적인 석조물을 백제에서 건너간 조경 전문가인 노자공이 만들어 준 거예요.
실제 1902년 오하리다궁 남쪽 지역인 이시가미(石神) 유적에서는 수미산 모형으로 보이는 석조물이 우연히 발견됐어요. 일본 학자들은 이를 기록에 남아있는 것처럼 노자공이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이 석조물은 높이 100㎝, 지름 106㎝ 크기인데, 표면에는 얕은 부조(浮彫·글자나 그림 등을 새기는 것)가 장식돼 있어요.
일본에서는 이를 ‘수미산상’(須彌山像)이라고 부르는데요. 일본 연구자들은 이를 광장 같은 데 분수 용도로 설치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정해요. 수미산상 하단부 사방에 뚫린 구멍은 지름 0.5~1㎝ 정도로 가느다란 것이어서 현재 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워요. 그래서 백제에서 건너간 노자공 같은 전문 기술자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거지요.
이처럼 일찍부터 정원을 만들기 시작한 백제에서는 많은 조경 기술자가 양성됐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정원 문화의 기초를 닦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답니다.
[궁남지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에]
기록에 나오는 백제 궁남지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주변 지역에서 10여 차례 발굴을 했지만 정원으로 추정할 만한 흔적은 나오지 않았고, 6~7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도로와 수로, 논 등만 발견됐어요. 궁남지가 만들어지고 2년 뒤인 636년 “망해루(望海樓)를 세우고 여러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연구자들은 사비 도성 남쪽에 살짝 솟아있는 화지산 일대에 누각인 망해루가 세워진 것으로 추정해요. ‘바다를 조망한다’는 뜻의 망해루는 ‘궁남지를 바라본다’는 의미도 함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화지산 주변에서 백제 무왕이 만들었다는 진짜 궁남지가 발견될지도 몰라요.
<참고문헌>
1. 이병호, "연못 만들고 인공섬 세우기도...일본 문화에도 영향 미쳤죠", 조선일보, 2022.7.28일자. A30면.
전체 5,456건 (28/364페이지)
5051
<특별기고> 4.19혁명 65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행사
2025.04.23,
조회 6146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 4.19혁명 65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행사 1. 4.19혁명 65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평가 &...
5050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
2025.04.22,
조회 5253
[역사공부방]
신상구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 서울 중구 명동성당으로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신자들은 성당 곳곳에서 묵주를 손에 든 채 기도하거나 눈물을 훔쳤다.22일 명동성당 대성전에는 무릎을 꿇고...
5049
막스 플랑크 물리학 연구소
2025.04.22,
조회 5320
[역사공부방]
신상구
구소최근 수정 시각: 2025-04-18 18:58:38막스 플랑크 물리학 연구소1편집 요청토론역사분류막스 플랑크 협회물리연구소Max Planck Institut für Physik막스 플랑크 물리학 연구소설립1917년 10월 1일분류...
5048
세월호 참사 11주기, 전국 추모행렬…&quot;더 관심 가져야&quot; 장유하 기자, 서지윤 기자
2025.04.17,
조회 5200
[역사공부방]
신상구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길을 멈추고, 노란 리본에 하나둘 쪽지를 붙였다. 쪽지에는 '11년 전 약속 잊지 않겠습니다',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요' 등 참사를 기리는 메시지가 담겼다. 기억공간 입구에 마련된 조화를 들...
5047
1927년 “조선은 야만인”에 맞선 청주고의 동맹휴학
2025.04.14,
조회 5380
[역사공부방]
신상구
청주중학교와 청주고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두 학교는 교정과 청주실내체육관에서 잇따라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청주중과 청주고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4월 19일, 설립을 인가받아 5년제 10학급을 편성했...
5046
충북민속문화연구 분야의 대부 김영진 민속학자의 학문성과
2025.04.13,
조회 5774
[역사공부방]
신상구
“선생님 중요 업적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안타깝다”기자명김정애 기자입력 2017.07.24 20:47댓글 0공유인쇄본문 글씨 키우기본문 글씨 줄이기故 김영진(金榮振) / 민속학자충북민속문화연구 분야의 대부방언연구 시...
5045
한성백제 500년 역사’찾아낸 이형구 선문대 교수
[1]
2025.04.13,
조회 5699
[역사공부방]
신상구
‘한성백제 500년 역사’찾아낸 이형구 2001년 어느 날이었다. 기자가 어느 고고학자를 취재하다가 “이형구 교수는 이렇게 생각하던데…”하고 묻자 그 교수는 한마디 툭 던졌다. “이형구 교수가 누구죠?”....
5044
<특별기고>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수립 제106주년을 경축하며
2025.04.12,
조회 5360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g...
5043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수립 제106주년을 경축하며
2025.04.12,
조회 5245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수립 제106주년을 경축하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대산 신상구1.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수립 제106주년의 역사적 의의 2024년 4월...
5042
<특별기고> 서해수호의 날 10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행사
2025.03.30,
조회 5497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 서...
5041
서해수호의 날 10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행사
2025.03.28,
조회 5241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 서해수호의 날 10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행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향토...
5040
울산천부경연구원
2025.03.27,
조회 6607
[역사공부방]
신상구
협력단체(사)천부경연구원참한역사신문 21-01-06 18:28 (사)천부경연구원 안녕하십니까? 사단법인 천부경 연구원 이사장 최동원입니다. 우리의 국조이신 단군님께서 말씀하시...
5039
안동 천년고찰 고운사 전소
2025.03.27,
조회 5448
[역사공부방]
신상구
산불로 전소된 ‘천년사찰’ 고운사···신도들 “허망하고 참담” 눈물입력 : 2025.03.26 13:40 수정 : 2025.03.26 17:11경향신문,이삭 기자뉴스플리공유하기글자크기 변경인쇄하기의성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이 닷새...
5038
의성군 산불 상황에 대해
2025.03.26,
조회 10222
[자유게시글]
dud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닷새째 이어지며 피해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18명에 이르며, 강풍으로 인해 불길이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5037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