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왕궁 조경
2022.07.28 18:04 |
조회 10638
백제 왕궁 조경
충남 부여의 ‘궁남지’(宮南池)에서 지난 14일부터 나흘간 열린 부여서동연꽃축제에 40여 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왔다고 해요. 이곳은 백제의 옛 도읍 사비(지금의 부여)에 있었던 궁남지의 위치를 추정해 1960년 복원 사업으로 인공 조성한 곳인데요. 33만㎡(약 10만평) 부지에 50여 종의 연꽃 약 1000만 송이가 피어나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해요. 백제는 언제부터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고 만들었는지 알아볼까요?
◇왕궁 속의 백제 정원
고대 국가에서는 국왕이 거주하는 왕궁 둘레에 높은 담장과 성곽을 겹겹이 쌓았어요. 국왕의 안전을 위해서였지요. 이런 ‘구중궁궐’(九重宮闕·겹겹이 막힌 깊은 궁궐) 안에는 인공적으로 산과 연못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가꾸며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러 통치자가 휴식을 취하고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삼국의 왕궁이나 사찰에 관한 발굴에서 공통적으로 정원이나 조경과 관련된 여러 흔적이 발견되지만, 유독 백제에서는 정원과 관련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요. 백제가 한성(서울)을 도읍으로 삼았던 진사왕 7년(391)에는 왕궁을 수리하며 연못을 파고, 연못을 만들면서 파낸 흙으로 산을 만들어 새와 특이한 꽃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고요.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긴 동성왕 22년(500)에는 왕궁 동쪽에 높이가 5장(약 12.5m)이나 되는 누각인 임류각(臨流閣)을 세우고, 또 연못을 판 다음 그 주변에 진기한 짐승을 길렀다고 해요.
이렇게 백제의 왕들은 수도를 옮길 때마다 왕궁에 정원을 만들었어요. 궁남지는 사비를 도읍으로 삼던 시절 무왕(재위 600~641년)이 만든 백제의 대표적인 정원인데요. 기록에 따르면, 무왕은 634년 왕궁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리(약 7.85㎞)나 떨어진 곳에서 물을 끌어왔어요. 연못 사방 기슭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한가운데 인공섬을 만들었는데, 이 섬의 모습이 마치 ‘방장산’(方丈山) 같았다고 해요. 도교에서 방장산은 봉래산(蓬萊山), 영주산(瀛洲山)과 함께 신선이 사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불려요. 궁남지에 신선들이 사는 방장산을 본뜬 섬을 만든 것은 백제 정원에 도교 사상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죠. 이렇게 백제의 왕들은 기이한 동물과 식물이 모인 정원을 만들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과시하려고 했어요.
◇사각 연못과 특이한 돌로 꾸며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 정원 내부의 연못은 네모난 형태가 대부분이에요. 부여 부소산성 남쪽에 위치한 관북리 유적에서는 땅속 약 1.5m 깊이에 파묻혀 있던 연못이 발견됐는데요. ‘깬돌’(돌을 깨서 만든 인공적인 자갈)을 이용해 동서 10.6m, 남북 6.2m, 깊이 1.2m 규모로 쌓은 석축 연못이었어요.
이 연못 바닥에서는 연꽃 줄기와 뿌리가 확인돼 백제 당시에 이미 연꽃이 조경용으로 이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연못 내부에서는 물품에 다는 꼬리표나 문서 행정에 이용된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을 비롯해 눈금 간격이 약 2.5㎝인 나무로 만든 자, 토기와 기와, ‘개원통보’(開元通寶·중국 당나라 동전) 등이 발견됐죠. 이 연못은 크기가 작고 건물 사이의 중정(中庭·마당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서 각종 의례나 잔치의 보조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생각돼요.
익산 왕궁리 유적은 7세기 백제 정원의 모습을 좀 더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왕궁리 유적은 나지막한 구릉을 깎아 땅을 평평하게 만든 다음, 그곳에 동서 폭 31m가 넘는 대형 건물을 비롯한 각종 기와 건물을 세우고 뒤쪽으로는 대규모 수로가 있는 후원(後苑)을 만들었어요.
후원이 시작되는 유적 중앙 부분에서는 정원과 관련된 시설이 발견됐는데요. 물을 공급하고 저장하거나 배수하는 시설, 정원을 장식하던 특이한 모양의 돌 조경석(造景石), 정원을 감상하기 위한 소형 건물의 흔적, 둥글고 넓적한 돌을 깔아 정원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든 통로 등이었어요.
정원 가운데 부분에는 움푹 파인 커다란 돌을 설치해 이 돌을 타고 물이 흘러 직사각형 수조 안에 고이도록 했어요. 독특하게 생긴 괴석(怪石)을 이용해 인공산을 만들기도 했고요. 이곳에서는 물고기 비늘처럼 생겼다고 해서 ‘어린석’(魚鱗石)으로 불리는 2점의 조경석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되기도 했어요. 이 어린석은 중국의 왕궁이나 국가적인 제사 시설에서 주로 사용했는데, 백제가 왕궁의 정원을 꾸미기 위해 특별히 중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한 것이랍니다.
◇일본 정원 문화 기초 닦은 노자공
백제의 왕궁이나 사찰·관청에서는 이처럼 크고 작은 정원을 만들었는데요. 많은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조경 전문가가 필요했어요. 국내에는 이와 관련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지만, 일본에는 백제에서 건너간 노자공(路子工)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어요.
기록에 따르면, 그는 612년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해요. 그는 얼굴과 몸에 흰 반점이 있어서 병든 사람처럼 보였대요. 사람들은 그의 용모를 싫어해서 추방하려 했지만, ‘산악(山岳·솟은 산) 모형을 만드는 재주’가 있음을 인정받아 일본에 체류하게 됐어요. 그는 당시 일본의 왕궁인 오하리다궁(小墾田宮) 남쪽 뜰에 수미산(須彌山·불교관에서 세계의 중앙에 있다는 산) 모형과 오교(吳橋·중국 남조 양식의 다리)를 축조했어요. 일본 왕궁의 정원에 놓인 핵심적인 석조물을 백제에서 건너간 조경 전문가인 노자공이 만들어 준 거예요.
실제 1902년 오하리다궁 남쪽 지역인 이시가미(石神) 유적에서는 수미산 모형으로 보이는 석조물이 우연히 발견됐어요. 일본 학자들은 이를 기록에 남아있는 것처럼 노자공이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이 석조물은 높이 100㎝, 지름 106㎝ 크기인데, 표면에는 얕은 부조(浮彫·글자나 그림 등을 새기는 것)가 장식돼 있어요.
일본에서는 이를 ‘수미산상’(須彌山像)이라고 부르는데요. 일본 연구자들은 이를 광장 같은 데 분수 용도로 설치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정해요. 수미산상 하단부 사방에 뚫린 구멍은 지름 0.5~1㎝ 정도로 가느다란 것이어서 현재 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워요. 그래서 백제에서 건너간 노자공 같은 전문 기술자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거지요.
이처럼 일찍부터 정원을 만들기 시작한 백제에서는 많은 조경 기술자가 양성됐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정원 문화의 기초를 닦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답니다.
[궁남지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에]
기록에 나오는 백제 궁남지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주변 지역에서 10여 차례 발굴을 했지만 정원으로 추정할 만한 흔적은 나오지 않았고, 6~7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도로와 수로, 논 등만 발견됐어요. 궁남지가 만들어지고 2년 뒤인 636년 “망해루(望海樓)를 세우고 여러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연구자들은 사비 도성 남쪽에 살짝 솟아있는 화지산 일대에 누각인 망해루가 세워진 것으로 추정해요. ‘바다를 조망한다’는 뜻의 망해루는 ‘궁남지를 바라본다’는 의미도 함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화지산 주변에서 백제 무왕이 만들었다는 진짜 궁남지가 발견될지도 몰라요.
<참고문헌>
1. 이병호, "연못 만들고 인공섬 세우기도...일본 문화에도 영향 미쳤죠", 조선일보, 2022.7.28일자. A30면.
전체 5,456건 (81/364페이지)
4256
한국 영화 첫 월드 스타 강수연 별세
2022.05.10,
조회 12484
[역사공부방]
신상구
한국 영화 첫 월드 스타 강수연 별세 장례식장에 놓인 강수연의 영...
4255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참여시인 김지하 타계
2022.05.10,
조회 10493
[역사공부방]
신상구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참여시인 김지하 타계[김지하 1941~2022]1970년 풍자시 ‘오적’으로 구속돼 1974년 민청학련 연루 사형선고1980년대이후 생명사상에 몰...
4254
[영어성구] 처세(46) 수승화강의 몸 개벽이 되어야
2022.05.09,
조회 11334
[오늘의영어성구]
한곰
The Pure Spiritual State Before Birth수승화강의 몸 개벽이 되어야
1 Sangjenim revealed, “Babes in the womb and newborns understand the ways of the world.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기가 뱃속에 있...
4253
문재인 정부의 대선 패배 원인
2022.05.06,
조회 10396
[역사공부방]
신상구
카카오스토리 공유 문...
4252
한국 아동 삶의 질 OECD 최하위권
2022.05.06,
조회 11004
[역사공부방]
신상구
한국 아동 삶의 질 OECD 최하위권 카...
4251
충청 으뜸고장 내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2022.05.05,
조회 12518
[역사공부방]
신상구
충청 으뜸고장 내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천혜의 자연조건, 풍부한 물산백제부터 구한말까지 찬란한 역사충남 중심에서 환황해...
4250
‘재야학자’ 학계 이방인인가 자유인인가
2022.05.04,
조회 11483
[역사공부방]
신상구
‘재야학자’ 학계 이방인인...
4249
위기의 충청언론
2022.05.04,
조회 9894
[역사공부방]
신상구
위기의 충청언론 &nb...
4248
일본의 끈질긴 근대화 시도, 결국 성공, 동양 3국 지배
2022.05.04,
조회 11393
[역사공부방]
신상구
일본의 끈질긴 근대화 시도, 결국 성공, 동양 3국 지 300. 갑오년 삼국지 운명의 청일전쟁⑧/끝 시모노세키조약과 종전일본 야마...
4247
<특별기고>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90주년을 경축하며
2022.05.04,
조회 10098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90주년을 경축하며 충청문화...
4246
<특별기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업적과 리더십의 국제화
2022.05.04,
조회 14557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업적과 리더십의 국제화 ...
4245
[영어성구] 처세(45) 언습을 삼가라
2022.05.03,
조회 10076
[오늘의영어성구]
한곰
Be Wary of Everyday Sayings언습을 삼가라
1 Sangjenim one day instructed the disciples, “Be wary of everyday sayings. After eating a nourishing meal, you blurt out, ‘My stomach is so full it’s k...
4244
우크라 살던 유대인 대가족, 러시아 추방령에 고향 떠났죠
2022.05.03,
조회 11964
[역사공부방]
신상구
우크라 살던 유대인 대가족, 러시아 추방령에 고향 떠났죠 &...
4243
히틀러 나치정권 프로파간다의 천재 괴벨의 주요 어록
2022.05.02,
조회 11220
[역사공부방]
신상구
히틀러 나치정권 프로파간다의 천재 괴벨의 주요 어록 “거리를 지배하는 자가 대중을 지배한다. 대중을 지배하는 자는 국가를 지배한다.” “물고기가 물을 원하듯 베를린은...
4242
정조의 사상 통제로 조선 학문은 몰락했다
2022.05.02,
조회 11868
[역사공부방]
신상구
정조의 사상 통제로 조선 학...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