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용수비대
2023.11.16 17: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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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용수비대
독도의용수비대는 홍순칠 외 32명의 대한민국제대장병보도회 및 대한상이용사회 울릉군 분회 주민들이 독도를 방위하고자 자발적으로 결사 · 조직한 민간인 경비대이다.
1953년 4월 이후 한·일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독도 영유권이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일본 측의 순시선과 어선, 실습선 등이 독도 인근에 자주 출현함으로써 울릉도 주민들의 중요한 생계수단인 어로활동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태가 전개되었다.
일본 해안보안청은 독도에 순시선을 파견하여 1953년 5∼7월 중에 수차례 경고판을 설치하였고, 10월 23일에는 일본영토 표지를 설치하기까지 하였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6·25전쟁 참전 경력이 있었던 홍순칠을 중심으로 1953년 4월 20일에 결성되었으며, 독도에 주둔하여 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4년 8월 중순 경까지 독도 서도에 독자적으로 주둔하였고, 8월 중순 이후 정부가 독도 동도에 경비초소와 등대를 설치하자 이에 협력하여 그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파견된 경찰병력과 함께 주둔하였다.
1954년 8월 독도에 접근한 일본 순시선을 격퇴시켰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독도 인근을 침범한 일본 순시함 3척 및 항공기와 격전을 벌여 일본군 십수명을 살상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독도를 사수하였던 독도의용수비대는 1956년 12월 30일 경찰에게 경비업무와 장비 일체를 인계하면서 공식적인 수비대 활동을 종료하였다. 다만 독도의용수비대원 가운데 9명이 울릉경찰서 경찰로 특채·임용되어 독도경비업무에 계속 임하였다.
정부는 1966년 위와 같은 독도의용수비대의 공적을 평가하여 대장 홍순칠에게 근무공로훈장을 서훈하였고, 대원 11명에게 방위포장을 수여하였다. 정부는 1996년 고인이 된 독도의용수비대장 홍순칠에게 국가보훈 삼일장을, 그 외의 대원들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을 추서하였다. 이후 2005년 정부에서 「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을 제정하였고, 이 법령에 의거하여 2008년에는 독도의용수비대 기념사업회가 공식 출범하였다.
<참고문헌>
1. 『아, 독도수비대』(김교식, 제이제이북스, 2005)
2. 『이 땅이 뉘 땅인데: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 수기』(홍순칠, 혜안, 1997)
3. 「독도의용수비대의 활동시기에 대한 재검토」 (김윤배·김점구·한성민,『내일을 여는 역사』43, 2011)
4. 「독도의용군수비대」, (한연호 외, 『무명용사의 훈장』, 신원문화사, 1985)
5. 『동아일보』(1996.3.1)
6. 『동아일보』(1956.8.20∼25)
7. 「독도의용수비대 서훈 공적 재조사 업무처리 부적정(통보)」(감사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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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새날 , 새벽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더군요. 성급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이젠 가을인가 봅니다. 기분좋은 가을바람이 새 기운이 나게 하네요. ㅎㅎ
201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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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으로 찾아가자 우리들의 백두산으로 신선한 겨레의 숨소리 살아 뛰는 백두산으로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만주벌판 말을 달리던 투사들의 마음의 고향 백두산으로 찾아가자.^^ 이번겨울엔 모두 백두산에서 만나요~*
201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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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엔 전쟁영웅이나 어떤 위대한 시인이나 부자보다도 큰바위얼굴을 진심으로 기다려온 평범한 청년의 꿈이 더 진정한 열매를 맺는것을 보았습니다. 큰바위얼굴이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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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밤에만 꿈꾸지 않습니다. 낮에 꾸는꿈은 비전이라고 합니다. 평소 항상 생각하고 계획하는것은 꿈이되고 이뤄야 할 비전이 됩니다. 비전은 열정이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줍니다. 오늘도 아자!~
201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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