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은 신화다?" 송호정 교수 유감

2025.11.24 09:20 | 조회 2240

환단고기 위서론 반박

"단군조선은 신화다?" 송호정 교수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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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 ・ 2018. 10. 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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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EBS <질문 있는 특강쇼-빅뱅>에는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이자 고조선 박사 1호 송호정 교수가 출연해서 강연을 했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생긴 의문점들을 반박해보겠습니다.

단군조선은 신화 vs 역사

 

송교수 : 고조선을 최초로 기록한 <삼국유사>는 실재한 역사라기보다는 국가출현과정을 설명하는 건국신화다. 신神들의 이야기이고, 고조선이 시작된 지역의 원시신앙을 잘 통합하여 만든 건국신화다.

 

(신화인 이유는) 하느님(환인)의 아들인 환웅을 묘사했고 풍백, 우사, 운사 등 지배계급이 형성되는 것을 신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으로 변하는 것은 농업기반사회,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라는 선진 문물 집단이 곰이라는 토착문화와 결합하는 국가출현과정을 신화로 설명하고 있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고 역사는 인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단군신화는 신화다. (이 부분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음. 궤변?)

 

반론: <삼국유사> 고조선조는 일연이 세간에 전하는 원시신앙을 쓴 것이 아니라 <고기>와 <위서>라는 문헌자료를 인용해서 기록한 것이다.

 

주장대로라면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문헌자료도 해석에 따라 신화가 될 수 있고 기록이 없으면 역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진실을 찾는 역사학자의 태도일까? 깨진 기왓장에서도 역사를 찾아가는 것이 학자의 태도는 아닐까.

 

백번 양보해서 <삼국유사>에 건국의 과정이 신화처럼 묘사되었다고해서 고조선은 역사가 아니라 신화라는 것은 궤변이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화 때문에 신라는 신화다" 라는 논리와 같다. 우실하 교수의 강연처럼 시간이 지날 수록 신화도 역사가 된다. 아니, 역사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신화가 된다. 건국신화는 건국의 과정을 신화적으로 서술한 것이지 건국이 신화라는 얘기는 아니다.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를 신화로 보면 어벤져스 환타지가 되고, 역사로보면 "웅족과 호족이 환웅천왕이 전해준 삼신수행법으로 비로소 사람의 본성을 찾았다"가 된다.

또한 풍백 우사 운사와 무리 3천명을 역사로 보면 (경주대 이강식 교수님의 논문처럼) 입법 사법 행정 의 3부체제 국가조직으로 해석되고 인간 360여사를 관장하게 했다는 것은 행정과 법률을 갖춘 국가경영 조직으로 볼 수 있다.

 

"단군신화는 원시신앙을 잘 통합하여 만든 건국신화"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또 무엇인가? 왜 <위서>와 <고기>의 근거는 부정하고, 근거 없는 자신의 주장은 그리도 확신하는지.. 처음부터 신화로 결론짓고 <삼국유사>를 부정하려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고조선은 실체 없는 신화 이야기가 된다. 고조선의 건국을 부정하는 것은 지금의 대한민국과 그 이전의 모든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고조선은 언제 나라를 세웠을까요?

 

송교수: 삼국유사의 기록에 '여고동시'라는 표현이 있는데, 요임금과 같은시기로 해석된다. 중국역사의 초기 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우리의 역사도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 그런데 연대기에 우리가 연연할 필요가 없다.

 

기원전 7~8세기에 청동기 문화가 발달했을 때 고조선도 그 어느 지역에서 국가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중국 문헌 <관자>에도 고조선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시기가 춘추시대, 기원전 7~8세기경이다.

 

반론: 방송과 여론을 의식해서 그렇게 말했겠지만, 연대기에 연연하지 말라는 건 합리적인 역사학자의 태도가 아니다.

 

<삼국유사>의 '여고동시'라는 네 글자만으로 우리는 고조선의 건국연대가 BC 2333년으로 알고 있고,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천년~1500년 경에 시작된 것으로 국사교과서에 쓰여있다. 국사교과서를 부정하는 분이 역사교사를 양성하는 교원대 교수님이란 것이 우려스럽다.

 

또한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계급이 발생하고 국가로 발전했다는 것은 기존의 실증사학(=일제 식민시대에 만들어진)의 주장일 뿐이다.

 

송교수는 "국가는 지배계급과 상비군, 법률 등의 제도를 갖춰야한다"는 프리드리히 앵겔스의 국가기원설을 인용했다.

 

앵겔스는 역사는 "인간이 생산수단을 발전시킴에 따라 야만시대-미개시대-문명시대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이론은 문제가 있다. 고대 국가와 현대 국가를 비교해서 고대 국가는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국가가 아니다 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문자나 도구를 발명하기 이전의 선사先史시대를 야만으로 보는 것은 서구가 선진문물을 핑계로 식민지배를 위해 내세웠던 논리에 불과하다.

 

그리스나 동아시아의 역사관에서는 오히려 역사가 흐를 수록 정신문명은 퇴보했다고 말한다.

 

기자나 위만에 의해서 고조선이 발전하고 국가 틀을 갖췄다는 것은 조선시대에 사대주의 사관에서 비롯된 역사왜곡이고 일제가 지배하면서 문명화되고 발전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다르지 않다.

 

아래 사진처럼 제정일치 사회의 국가체제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송교수: 고조선사에 관한 유일한 사료는 사마천 <사기>이다.

 

그 중 조선열전에는 단군조선 내용이 없고 위만조선부터 기록되어 있는데 철기시대 강력한 중국세력에 의해 요녕성으로부터 압록강 이남까지 고조선 세력이 축소되고 지배체제는 더욱 견고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에도 국가가 형성될 수 있으나 고조선의 경우 요하문명이 일어난 지역과 떨어져있고, 권력관계 형성 유적이 없어 고조선을 신석기시대로 볼 수는 없다.

 

반론: 중국의 사서인 <사기>에 단군조선의 기록이 없다고해서 단군조선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논리일까?

 

그러면 연나라 사람 위만은 (최소한 연나라와 대등했던) 고조선을 찬탈하고 어떻게 그 짧은 시기에 위만조선이라는 국가와 문명을 세웠다는 것인지?

 

(송교수 본인도 말했듯이) 역사는 자기 민족의 입장에서 기술한다. 이웃 나라에서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우리 역사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로서 오히려 역사의 진실을 찾아야하는 것 아닌가. 우리 국사책에 일본 고대사 기록이 없다고해서 일본 역사가 없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고조선(번조선)을 찬탈하고나서야 선진문물이 유입되어서 고조선에 철기시대가 열렸다는 것은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요하문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송교수: 중국 요하지역에서 발달한 문화를 요하문명이라고 한다. 2002년부터 동북공정 사업을 펼치고 있는 중국은 2005년경 요하문명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그리고는 이른 시기의 문화흔적을 중국문명의 원류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에 우리나라도 고구려가 요하지방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단군시대에 사용된 비파형동검이 요하지방에서 다량 발견되었으니 우리 역사의 시작이 요하문명과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현재 문헌으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역사는 과학이므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문화와 문명은 분명한 차이를 갖는다. 문화는 일반적 생활기록이지만 문명은 고도로 발달된 사회체계, 권력관계가 나타나야 한다. 신석기 시대에는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요하문명을 문명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반론: 요하문명에 대한 문헌 자료가 없는게 아니다.

 

<삼국유사>에 환웅천왕이 신시개천하셨다는 기록이 있고, <환단고기>에 고조선 이전의 배달국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배달국 시기와 요하문명은 많이 겹친다. 송교수를 비롯한 주류사학에서 그런 기록을 신화나 위서로 부정할 뿐이다.

 

요하문명이 문명이 아니라는 것은 요하문명에서 나온 유물과 유적을 제대로 연구하지 못한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거리나 연대 차이를 두고 한민족과 연관성이 없다는 대목은 역사학계의 카르텔적인 역사관과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하가점 하층, 조보구, 홍산 문화 등 고조선 이전의 시대는 기존의 역사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중국은 (겉으로는) 요순시대를 신화로 보고 하상주 이후를 역사로 본다. 우리는 단군조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중국도 '신비의 왕국'이라는 말로 홍산문명을 표현하겠는가.

 

옥기문화 시대를 열었던 그들은 누구인가? 여신상, 신전, 통치자로 보이는 무덤, 분업화 흔적, 옥상투, 적석총, 홍산유골의 mtDNA 분석을 통한 한민족과의 친연성 등 많은 자료를 봤을때, 요하문명은 한민족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주류 사학계는 침묵하고 있다.

 

단군조선 이전의 기록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때문이다. 단군 조선도 신화로 만들었는데 그 이전의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결국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서 황하문명의 원류로 요하문명을 편입시켰다. 눈 뜨고 빼앗긴 우리 역사의 단면이다. 동북아에서 생겨난 문명과 그곳에서 수천년간 살아온 우리 민족이 연관 없다는 모순. 끝으로 우실하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왜 새로운 연구를 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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