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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역사학자 기경량 교수는 한국인이 아닌가?

2025.12.25 21:56 | 조회 1160

                 사이비역사학자 기경량 교수는 한국인이 아닌가?

 

「한국사이비역사학의 계보와 학문 권력에의 욕망」을 읽고  

                                       선조들이 물려주신 민족문화에 대한 감사함

학창 시절 내게 국사는 정말 재미없고 싫은 과목이었다. 워낙에 외우는 걸 싫어했던 데다 국사하면 조선시대 당파싸움부터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랬었던 내가 나이 들어 어느 날 ‘KBS 역사스페셜’을 마치 빨려 들어가듯 넋을 잃고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역사 프로를 이렇게 열심히 보고 있다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그런 내가 참 의아하고 신기했다. 이제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 역사를 만나며, 내 몸속에 피가 돌고 있음을 느끼는 체험을 하였던 것이다. 물론 피는 언제나 돌고 있었지만 그걸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 후 국학 연구 전문대학원으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바로 입학하여 지금까지 민족사상과 철학,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민족 고유의 사상과 그에 바탕을 둔 민족종교에 관한 논문들을 집필하였고, 동 대학원 국학연구원이 발행하는 학술지 『선도문화』(KCI 등재지, 2006년 이래 연 2회 간행)에도 실었다. 현재는 민족 철학인 삼원사상으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우리가 민족 고유의 전통을 오랜 세월 잊고 살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핏속에는 선조들의 DNA가 흐르고 있고,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홍익정신으로 외국인들이 부러워하는 높은 시민의식에 바탕을 둔 사회를 이룰 수 있었다. 지금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도 결국 밑바탕에 인종과 국경을 넘어 모든 사람을 다 품어 안는 우리 고유의 정신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연구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경쟁과 지배’가 아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홍익과 공생’의 전통을 물려주신 선조들께 감사하는 마음 더 깊어짐을 느낀다.

                 민족문화에 무지함을 넘어 무례하기까지 한 사이비역사학자 기경량 교수

며칠 전 기경량 교수의 「한국사이비역사학의 계보와 학문 권력에의 욕망」(『역사비평』 2024년 여름호)이란 글을 접하고, 한국인으로서 큰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우리 대학원에서 공부해 온 우리 민족의 철학·역사·문화, 또 그에 대한 연구 성과를 담은 학술지 『선도문화』를 싸잡아 ‘사이비역사학’이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교수와 연구자들의 민족과 나라를 위한 피땀 어린 연구를 자신과 시각이 다르다 하여 어찌 감히 ‘사이비’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나? 그의 글은 참으로 오만방자하고 편협하며 독선적이다.

국제뇌교육대학원은 2003년에 개교하여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고 민족의 문화·역사·철학 등 우리 고유의 것과 관련된 수많은 연구 업적을 쌓아왔으며, 그 연구 결과를 학술지 『선도문화』에 실어왔다. 나 또한 꽤 긴 기간 동안 나의 온 에너지를 쏟아 논문을 쓰고 『선도문화』에 실어온 사람으로서, 우리 대학원과 『선도문화』를 ‘사이비’라 매도하는 기경량 교수의 글을 읽고 그가 마치 내 얼굴에 침을 뱉기나 한 것 같은 큰 모욕감을 느꼈다.

그는 우리 대학원의 재학생·졸업생들과 교수님들, 『선도문화』에 글을 내신 모든 교수님들과 연구자들까지 다 모욕한 것이다. 더하여 『선도문화』가 사이비라고 하였으니, 이를 등재 학술지로 인정한 KCI 한국연구재단까지 모욕하였다. 연구자가 같은 연구자를 사이비로 매도하고, 또 국가연구기관이 사이비학술지를 허용한다고 매도하는 이러한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이처럼 몰상식하고도 무례한 발언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분명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는 미국 역사학자 로널드 프리츠의 말을 인용하여 “사이비역사가들이 자기 생각과 어긋나는 증거를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강화해 주는 것만을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특성”을 보인다고 하였고, 또 미국 철학자 로버트 캐럴의 말을 빌려 “자신의 의제에 적합하지 않은 고대 문서들을 무시하거나 해석하지 않는 등 기록들을 사용하는 데 선택적인 역사”라 했다. 기경량 교수 본인이야말로 그런 ‘선택적인 역사’를 하고 있기에 나는 그를 ‘사이비역사학자 기경량 교수’라 부르게 되었다.

                  겸허한 학자의 기본 태도를 갖추어야 할 사이비역사학자 기경량 교수

나는 2021년 11월 1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지』(인터넷판)에 발표되었던 언어학·고고학·유전학 세 학문의 교차연구 결과 탄생한 ‘트랜스유라시아어(알타이어)의 기원과 확산’에 관한 논문을 번역했던 적이 있다.(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역사과학연구소 마르티너 로베이츠박사 주도로 언어학·고고학·유전학 3개 분야의 10개국 35개 연구소가 참여하여 연구 결과를 발표한 “트랜스유라시아어(알타이어)의 기원과 확산‘에 관한 논문. 트랜스유라시아어는 서쪽은 터키에서부터 몽골을 거쳐 동쪽 한국과 일본, 캄차카반도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에 걸쳐 있는 대규모 언어그룹. 투르크어, 몽골어(중앙아시아), 퉁구스어(시베리아), 한국어, 일본어로 구성되어 있다. )

이 논문에 의하면 이제까지 학계에서는 트랜스유라시아어(알타이어)가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 중앙아시아 동스텝 지대 유목민들에게서 기원하였으며, 이 유목민들이 동서로 이동하며 세계에서 가장 넓은 범위에 걸쳐 이 언어를 퍼뜨렸을 것이라는, 소위 말하는 ‘유목민 가설’을 믿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문은 그 가설을 무너뜨리고 알타이어가 초기 신석기시대인 약 9천 년 전 서요하 일대 기장 경작자들에게서 시작되어 인구 증가로 인구가 분산되면서 이들의 이동으로 농경과 함께 언어가 확산되었다는 새로운 가설을 주장하였다. 주인공이 유목민에서 농경인으로 바뀌었고, 기원이 5천 년이나 올라간 것이다.

이 논문을 읽고 내가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진실이라 알고 있는 지식들이 다만 가설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든지,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된다든지, 유전학이나 고고학처럼 기술의 발전으로 시야가 넓어져 이제까지 알던 범위를 넘어 더 깊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면 얼마든지 이제까지 알던 가설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학문에서의 진실이란 것이 꼭 그렇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바뀌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런 시각에서 보면 그가 중요시하는 ‘정통 역사학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다는 것’은 이런 가설들로 이루어진 정보체계- 말하자면 기존의 선입견들을 전수받은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네이처』지에 실렸던 언어학·고고학·유전학 교차연구논문의 그림 자료를 참고로 올린다. 그는 지금의 연구가 이렇게 나아가고 있음을 알기나 할까?

                   <언어학 자료>

출처 : Martine Robbeets, Remco Bouckaert, Matthew Conte, etc.,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Nature, Published online: 10 November 2021, pp. 1-6.
출처 : Martine Robbeets, Remco Bouckaert, Matthew Conte, etc.,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Nature, Published online: 10 November 2021, pp. 1-6.

 

                                   <고고학 자료>

출처 : Martine Robbeets, Remco Bouckaert, Matthew Conte, etc.,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Nature, Published online: 10 November 2021, pp. 1-6.
출처 : Martine Robbeets, Remco Bouckaert, Matthew Conte, etc.,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Nature, Published online: 10 November 2021, pp. 1-6.

 

                                                    <유전학 자료>

출처 : Martine Robbeets, Remco Bouckaert, Matthew Conte, etc.,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Nature, Published online: 10 November 2021, pp. 1-6. 출처 : K스피릿(http://www.ikoreanspirit.com)
출처 : Martine Robbeets, Remco Bouckaert, Matthew Conte, etc.,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Nature, Published online: 10 November 2021, pp. 1-6. 출처 : K스피릿(http://www.ikoreanspirit.com)

 

                                             <종합>

출처 : Martine Robbeets, Remco Bouckaert, Matthew Conte, etc.,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Nature, Published online: 10 November 2021, pp. 1-6.
출처 : Martine Robbeets, Remco Bouckaert, Matthew Conte, etc.,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Nature, Published online: 10 November 2021, pp. 1-6.

 

                           학문적 융합과 교차연구를 위한 열린 자세가 필요한 기경량 교수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한 주제에 대해 한 학문 단독으로보다 여러 학문이 함께 더불어 해답을 찾아가는 시대라는 것이다. 한 학문의 고착된 시각에서 보지 못하던 것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여 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경량 교수는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역사학 비전공자들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경직화된 시각에서 고정관념에 매여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른 새로운 시각에서 오히려 더 잘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강단 사학의 행태를 볼 때 민족사학에 역사 비전공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중국 동북공정 연구자들에도 못 미치는, ‘경직된’ 한국의 주류 강단사학의 ‘부끄러운’ 얼굴 기경량 교수

중국은 1980년대 이후 동북공정을 위해 고고학 발굴에 박차를 가한 결과, 이제까지 중국이 자랑하던 황허문명을 과감하게 버리고 요하문명의 흥륭와문화(B.C, 6200~B.C.5200)를 중국 문명의 시원으로 발 빠르게 바꾸었다. 새로이 발굴된 문명이 훨씬 앞서니 바로 받아들이고 이제까지 자기네들을 지탱해 왔던 역사의 기원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고고학으로 역사를 바꾼 것이다. 요하문명이 중국 역사의 시원인지에 대해서는 논박이 있겠으나 중국 역사학자들의 유연성 하나는 부러워할 만하다.

두루 연구는 해보았는가?

기경량 교수는 민족사학은 “학문으로 인정될 수 없으며”, “그들이 그려내어 주장하는 역사상은 지금까지 확인된 합리적 증거 자료들을 통해 보았을 때 논란의 여지없이 명백한 거짓이자 망상이다. 즉 사실이 아닌 ‘사이비역사’이다”고 하였다. 본인이 전문적으로 연구한 분야도 아닐 뿐더러 그 진위를 두루 실증해 낸 논문도 제출한 바 없는 분이 ‘명백한 거짓이며 망상’이라고 확신하게 한 그 ‘합리적 증거자료들’이란 도대체 어떤 것들인지 참 궁금하다.

신채호는 그 어려운 시대에도 역사의 진실을 찾아 온 만주를 헤매고 다녔다. 지금 살아있는 우리 기성세대가 직접 겪었던 현대사에서조차도 몰랐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고,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시류에 따라 해석이 바뀌는 판국에 수천 년 전 역사에 대한 연구가 ‘망상이고 거짓’이라고 어찌 함부로 내뱉을 수 있나? 당신이 수천 년 전의 만주에서 살아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갈릴레이 당시 천동설을 믿던 대다수의 학자들에게 지동설은 ‘거짓’이고 ‘망상’이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무엇이 두려운가?

요즘 미디어에서 ‘다르다(異, different)’와 ‘틀리다(誤, wrong)’를 혼용해서 쓰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기경량 교수에게는 본인과 다른 생각은 바로 ‘사이비’로 처단되고 만다. 본인이 비판해 마지않는 폐쇄적인 사고와 행동을 본인 스스로 자행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인지를 못하는 모양새다. 다른 사람 눈의 가시는 보면서 내 눈의 대들보는 못 보는 격이다.

말년의 아인슈타인이 연구를 계속하는 것을 본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은 이미 그렇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데 어째서 배움을 멈추지 않으십니까?” 이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원이라고 하면 원 밖은 모르는 부분이 됩니다. 원이 커지면 원의 둘레도 점점 늘어나 접촉할 수 있는 미지의 부분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지금 내 원은 여러분 것보다 커서 내가 접촉한 미지의 부분이 여러분보다 더 많습니다. 모르는 게 더 많다고 할 수 있지요. 상황이 이런데 어찌 내가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아는 게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은 더 많아진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말씀이시다. 진정한 학자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되는가? 대학자의 ‘열려있음’과 ‘겸손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자신만 옳고 상대방은 ‘사이비’라고 단정 짓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이다. 과격하고 무례한 말을 공격적으로 내뱉으며 스스로의 강함을 과시하는 사람은 사실 자기 안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함일 때가 많다. 기경량 교수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그렇게 자기 잣대로 상대를 사이비로 내몰다가 그 사이비함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임이 밝혀지게 되었으니, 작용이 과하면 반작용도 과하게 일어나는 법. 뉴턴의 제3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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