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복희씨의 실체

2026.01.05 22:20 | 조회 1080

                            

                                         태호복희씨는 배달국 6세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이다

                                                         태호복희의 혈통
自桓雄天皇(자환웅천황)으로 五傳而有太虞儀桓雄(오전이유태우의환웅)하시니
敎人(교인)에 必使黙念淸心(필사묵념청심)하사 調息保精(조식보정)하시니
是乃長生久視之術也(시내장생구시지술야)라.
有子十二人(유자십이인)하니 長曰多儀發桓雄(장왈다의발환웅)이시오
季曰太皞(계왈태호)시니 復號伏羲(부호복희)시라.
日(일)에 夢三神(몽삼신)이 降靈于身(강령우신)하사 萬理洞徹(만리통철)하시고
仍徃三神山(잉왕삼신산)하사 祭天(제천)이라가 得卦圖於天河(득괘도어천하)하시니
其劃(기획)이 三絶三連(삼절삼련)이오
換位推理(환위추리)에 妙合三極(묘합삼극)하야 變化無窮(변화무궁)하니라.

환웅천황으로부터 5세를 전하여 태우의太虞儀 환웅이 계셨다.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반드시 생각을 고요히 가라앉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호흡을 고르게 하여 정기를 잘 기르게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장생의 법방이다.

태우의 환웅의 아들은 열둘이었는데 맏이는 다의발多儀發 환웅이시오, 막내는 태호太皞이시니 복희伏羲라고도 불렸다. 태호복희씨가 어느 날 삼신께서 성령을 내려 주시는 꿈을 꾸고 천지 만물의 근본 이치를 환히 꿰뚫어 보시게 되었다. 이에 삼신산三神山에 가시어 하늘에 제사 지내고 천하에서 괘도를 얻으셨다. 그 획은 세 개는 끊어지고 세 개는 이어지는 음양 원리로 이루어졌다. 그 위치를 바꾸어 추리함은 오묘하게 삼극과 부합하여 변화가 무궁하였다. ( 『태백일사』 「신시본기」)



                                                        태호복희의 서방 개척
密記(밀기)에 曰(왈) 「伏羲(복희)는 出自神市(출자신시)하사 世襲雨師之職(세습우사지직)하시고
後(후)에 經靑邱樂浪(경청구낙랑)하사 遂徙于陳(수사우진)하시니
並與燧人有巢(병여수인유소)로
立號於西土也(입호어서토야)시라 後裔(후예)가 分居于風山(분거우풍산)하야
亦姓風(역성풍)이러니
後(후)에 遂分爲佩(수분위패)·觀(관)·任(임)·己(기)·庖(포)·理(리)·姒(사)·
彭(팽) 八氏也(팔씨야)오

『밀기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는 신시에서 출생하여 우사雨師 직책을 대물림하셨다. 후에 청구, 낙랑을 지나 진陳 땅에 이주하여 수인燧人, 유소有巢와 함께 서쪽 땅[西土]에서 나라를 세우셨다. 그 후예가 풍산에 나뉘어 살면서 역시 풍風으로 성을 삼았다. 후에 패佩·관觀·임任·기己·포庖·리理·사姒·팽彭 여덟 씨족으로 나뉘어졌다.

大辯經(대변경)에 曰(왈) 「伏羲出於神市而作雨師(복희출어신시이작우사)하사
觀神龍之變而造卦圖(관신룡지변이조괘도)하시고
改神市癸亥而爲首甲子(개신시계해이위수갑자)하시며
女媧(여와)는 承伏羲制度(승복희제도)하고
朱襄(주양)은 仍舊文字而始傳六書(잉구문자이시전육서)하니라.
伏羲陵(복희릉)은 今在山東魚臺縣鳧山之南(금재산동어대현부산지남)하니라.」

『대변경大辯經』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복희는 신시에서 출생하여 우사 관직을 맡으셨다. 신룡神龍의 변화를 관찰하여 괘도卦圖를 만들고, 신시 시대의 계해를 고쳐 갑자로 첫머리를 삼으셨다. 여와女媧(복희의 여동생)는 복희의 제도를 계승하고, 주양朱襄은 옛 문자를 기본으로 하여 처음으로 육서六書를 세상에 전하였다. 복희씨의 능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어대현魚臺縣 부산鳧山 남쪽에 있다. ( 『태백일사』 「신시본기」)



태호복희씨는 누구인가? 먼저 이름의 의미를 알아보자. 태호太皞는 ‘크게 밝다’는 의미이다. 복희伏羲 역시 ‘밝은 해’를 의미한다. 이름자에 ‘천지광명 정신’을 품고 있다. 복희씨는 한국인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왜냐면 대한민국의 상징 태극기의 원조元祖가 되시는 분이 복희씨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태극기에는 4개의 괘, 건곤감리乾坤坎離괘가 들어 있다. 이 4개의 괘는 ‘복희팔괘伏羲八卦’에서 유래했다. 복희팔괘 중에서 하늘과 땅, 해와 달을 상징하는 건곤감리괘를 뽑아서 국기에 담았다. 그래서 태극기는 천지일월天地日月을 품고 있는 국기로서 다른 나라들의 국기들과는 뚜렷하게 차별된다.

팔괘는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어 만물의 변화 이치를 밝혀 주는 기호이다. 복희씨가 처음으로 괘를 그었기에 그는 ‘동양 음양론의 아버지’가 되는 분이다. 그런데 우리 학계에서는 그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중국 고대의 전설상의 제왕帝王 또는 신神. 3황 5제 중 중국 최고의 제왕으로 친다. ‘복희’라는 이름은 《역경》 〈계사전〉의 복희가 팔괘八卦를 처음 만들고, 그물을 발명하여 어획·수렵狩獵의 방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 두산백과



복희伏羲는 중국의 삼황오제 중 수위로 치는 인물이다.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역경에는 팔괘八卦를 만들었고 그물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수렵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150년 동안 제왕의 자리에 있었고 뱀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달고 있는 형상을 가졌다고 한다. 백성을 잘 보살피고 은혜를 베풀어 대공大空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 문화콘텐츠닷컴 한국콘텐츠진흥원



복희씨는 우리 학계에서는 중국 고대의 제왕이며 삼황오제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중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설상의 제왕’이라고 했다.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만약 이 주장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대한민국의 국기 태극기를 만든 사람은 중국 사람이 된다. 또는 태극기는 전설의 인물이 만든 것으로, 그 기원이 불분명한 물건이 된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상징이 우리 것이 아니다’는 문화적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웃 나라 중국은 태호복희씨를 자기네 조상으로 섬기며 크게 숭배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당을 지어 놓고 그를 ‘인문시조人文始祖’로 받들고 있다. 원래 중국은 태호복희씨를 ‘동이의 조상’으로 인식했고, 또 고대 신화 속의 인물로 여겨 왔다.

東方之極(동방지극),自碣石山(자갈석산),過朝鮮(과조선),貫大人之國(관대인지국),
東至日出之次(동지일출지차), 榑木之地(부목지지),
靑土樹木之野(청토수목지야),太皞(태호),句芒之所司者(구망지소사자) 萬二千里(만이천리)
동방의 극極은 갈석산으로부터 해 뜨는 곳, 부목의 땅, 청토수목靑土水木의 들에까지 이른다. 태호太皥, 구망句芒이 다스리던 곳으로 1만 2천 리이다. ( 『회남자淮南子』 「시칙훈時則訓」)



하지만 중국은 2000년대 들어와서 자기네 역사의 시원을 하은주夏殷周 시대 이전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탐원공정探源工程’을 추진했다. 이때부터 그들은 태호복희씨를 감싸고 있던 신화의 베일을 벗기고, 그를 자기네 역사 속의 인물로 편입시켜 버렸다. 이대로 계속 시간이 흘러간다면 꼼짝없이 태호복희씨는 중국 사람이고, 한국의 태극기는 중국 사람이 만든 것이 된다.

여기서 『환단고기』의 역사적 가치가 빛을 발하게 된다. 『환단고기』에서는 태호복희씨의 혈통에 대해 너무도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배달국의 6세 태우의 환웅에게는 아들이 열두 분이 있었다. 그중 첫째 아드님은 황권皇權을 계승하여 배달국의 7세 다의발 환웅이 되었고 마지막 열두 번째 아드님이 태호복희씨이다. 다시 말해 복희씨는 배달국의 황자皇子님이었던 것이다.

『환단고기』에 의하면 이분은 배달국의 도읍 신시에서 출생하셨고, 삼신산에서 천제를 지내고 내려오는 길에 천하天河에서 괘도卦圖를 얻었다고 하였다. 삼신산은 지금의 백두산으로, 천하는 송하강으로 추정한다. 그는 천하에서 용마龍馬의 등에 그려진 상象을 보고 하도河圖를 그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가장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수의 체계를 세웠다. 종이 한 장에 다 그려지는 이 도표 하나에서 음양오행 원리가 나오고, 공간과 시간의 순환 원리가 나온 것이다.

복희씨는 또한 천지의 음과 양을 3수의 원리로 변화시켜 건乾·태兌·리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 팔괘八卦를 그어 주역의 기초를 닦았다. 이로써 인간이 천지 시공간의 변화 법칙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태호복희씨의 혈통과 출생지는 동양 우주론의 근원을 밝히는 아주 중요한 단서이다.

이쯤 되면 중국이 그를 자기네 조상으로 뺏어 간(?) 이유가 분명해진다. ‘인문시조人文始祖’ 복희씨가 중국 사람이 되면 그의 후손인 현 중국이 문명사적으로 전 세계의 어버이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문화적 열등감을 덮으려는 어리석은 행위이고, 남의 조상을 자기네 조상으로 삼는 환부역조換父易祖의 죄를 범하는 일이다.

현재 중국에는 여러 곳에 복희씨의 사당이 있다. 하남성 회남현, 신락시 인조묘, 산동성 미산현, 하남성 맹진현, 감숙성 천수시, 괘태산 복희대, 서화현 구지애 등이다. 그 가운데 최근에 크게 증축한 하남성 회양현의 복희묘가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하다. ‘천하제일묘天下第一墓’라 불리는 이곳은 그 규모도 궁궐을 연상케 할 정도로 크고, 매년 열리는 복희 추모 행사에는 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중국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복희묘인 것이다.

반면 산동성 미산현의 복희묘는 가장 규모가 작고 초라하다. 그런데 중국이 하남성 회양현에 있는 복희묘를 유독 부각시키는 데에는 목적이 있다. 복희씨가 대륙 서쪽 깊숙한 곳(현 감숙성 천수시의 구지산 근처)에서 태어나 중국의 중앙부인 하남성에 도읍을 정하고 그곳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환단고기』에 의하면 태호복희씨는 배달국의 신시에서 태어나 지금의 산동성 미산현에 묻혔다. 복희씨는 대륙의 북쪽에서 아래로 남하하면서 동방 신교문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이 회양현의 복희 사당을 내세우는 것은 복희씨의 출생지와 활동 지역을 날조하여,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살다 간 완벽한 중국인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만약 『환단고기』가 없다면 중국의 무도無道한 역사 사기극, 역사 강탈극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환단고기』만이 중국의 역사 침략을 막아 낼 수 있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역사 무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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