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천재 여류 서예가 불화당 김진민의 생애와 업적

2026.02.01 19:32 | 조회 1637


                       일제강점기 천재 여류 서예가 불화당 김진민의 생애와 업적

 

  불화당(不瑕堂)·몽연(夢蓮)·목련 김진민(金瑱珉, 1912~1991)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 태흥리 376번지의 김해김씨(金海金氏) 가문에서 천석꾼의 대지주인 가산(迦山) 김수곤(金水坤)의 외동딸로 태어나 활약한 천재 여류 서예가이다. 7세에 서당을 다니기 시작하여 9세에『맹자』를 익혔다. 그의 집안에는 이당(以堂)김은호(金殷鎬), 성당(惺堂)김돈희(金敦熙) 등 당대의 유명한 서화가들이 드나들었는데, 9세부터 부친의 권유로 김돈희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서예를 익혔다. 김진민은 고법(古法)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자신의 독창적인 서풍(書風)이 나와야 한다는 김돈희의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왕희지(王羲之) 법첩(法帖)과 안진경(顔眞卿), 황정견(黃庭堅) 등의 서첩(書帖)을 공부하였고 나아가 금석문(金石文)을 익힌 후 장천비(張遷碑)와 조전비(曹全碑) 등의 한예(漢隸)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정읍시립박물관, 천재 서예가 '김진민' 유물 전시 작품 - 전민일보, 2021.9.26일자

 

  11세부터 전남 영광의 불갑사의「불갑사(佛甲寺)」와 백양사의「우화루(雨花樓)」, 금산사 대자보전(大慈寶殿) 등의 현판 글씨를 쓰면서 소녀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다. 12세에는 조부 김기섭의 묘비명을 썼고, 같은 해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당시(唐詩)」를 행서(行書)로 출품하여 조선미술전람회에 사상 최연소로 입선하면서 서예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김진민은 이 때부터 서예부가 폐지되는 1931년 10회 조선미술전람회까지 총 16점의 작품을 출품하였고, 그 가운데 「유란부(幽蘭賦)」(1926년), 「독서락(讀書樂)」(1927년), 「누실명(陋室銘)」(1929년), 「연인군화(燕人群花)」(1930년),「난정집자(蘭亭集字)」(1931년)의 5점이 특선을 차지하는 등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였다. 그리고 김진민은 금강산 유점사 53불을 비롯하여 금산사, 법주사, 관촉사 등 전국의 유명사찰에 불사(佛事)를 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백양사 우화루, 영광 불갑사, 금산사 대자보전 등 주요 사찰의 편액(현판) 글씨와 내장사 부도전의「학명선사사리탑명(鶴鳴禪師舍利塔銘)」등 비명(碑銘)을 남겼다.

  17세에 서울 휘문중, 경동고 체육교사를 지낸 이진형(李珍亨, 1904-1990)과 결혼했다. 이 무렵부터 불하(不瑕), 또는 불하자(不瑕子)로 쓰던 호를 몽연(夢蓮)으로 바꾸었다. 김진민은 결혼 후 12남매를 두어 양육에 몰두하였으나 4명은 일찍 여의였다. 수행의 방편으로 사경(寫經) 작업에 열중하기도 하였으나 30세 이후에는 가사와 건강상의 이유로 붓을 놓았다. 50대 이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외출을 삼가며 방생원에서 방생하는 일과 부처님 설법 듣는 일로 소일하다가 79세에 운명하여 속리산 법주사에서 다비식을 거행하여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2021년 11월 23일 정읍시청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김진민 재조명 세미나


  김진민은 행서⋅해서⋅예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를 구사하였고, 안진경과 황정견의 서체(書體)를 선호한 김돈희의 영향을 받아 여류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성 서예가 특유의 부드러운 필치와 달리 강건하고 웅장한 남성적 필치를 구사하여 당시 서단에서 주목받던 인물로 지금 학술적인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전북 정읍 태인 출신인 서예가 ‘몽연 김진민(1912~1991)’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한 학술 세미나 ‘소녀명필, 붓으로 세상을 홀리다’가 2021년 11월 23일 정읍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국사편찬위원회 이용엽 위원의 <10대에 천재성을 발의한 여류 서예가 김진민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발표를 시작으로 전북대학교 김병기 명예교수의 <몽연 김진민 서예 연원 연구> 발표가 진행됐다. 이어 3부 종합토론 시간에는 향토문화연구소 서혁기 연구위원을 좌장으로 앞서 발표한 연구자들과 정읍선비문화관 류승훈 서예 강사, 전북과학대학교 유종국 교수가 나서 주제 발표에 관한 추가적인 질의와 답변의 시간을 가졌다. 유진섭 시장은 “이번 세미나를 통해 우리 고장 출신인 천재 서예가 김진민 선생의 삶과 업적을 널리 홍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정읍시를 대표하는 역사 인물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재조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전하는 묵서(墨書)로는「난정서(蘭亭序)」(1925년),「서보절록(書譜節錄)」(1926년),「낙지론10곡병(樂志論十曲屛)」(1933년) 등이 있다. 당시 호남에는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석전(石田) 황욱(黃旭, 1898-1991) 등 서예 대가들이 살고 있었다. 석전 황욱은 악필법으로 유명하다.

                                             <참고문헌>

  1. 윤범모,, 「일제 강점하의 서예와 김진민」, 윤범모,『동악미술사학』9, 2008.

  2. 최남선,『심춘순례』, 신아출판사, 2014.5.6.

  3. 김예진, “일제 강점기 여류 천재서예가 김진민의 생애와 업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6.2.1.

  4.『동아일보』(1929. 9. 5./ 1931. 5. 28일자.)

  5.『전북중앙』(2003. 5. 12./ 2006. 5. 31일자.)

  6. 김진엽, “정읍시립박물관, 천재 서예가 ‘김진민’ 유물 전시”, 전민일보, 2021.9.26일자.

  7. 황광욱, “정읍 출신 천재 서예가 ‘몽연 김진민’ 재조명 학술 세미나”, 새만금일보, 2021.11.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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