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동난 시대, 우린 어디로 가는가
희망이 동난 시대, 우린 어디로 가는가
드넓고 황량한 어느 사막 한복판. 전자음악에 맞춰 무아지경으로 몸을 흔들던 이들이 춤을 멈춘다. 탱크에서 내린 군인이 “비상계엄이 선포됐다”고 알리며 레이브 파티(전자음악에 맞춰 춤추는 파티)를 중단시킨다. 피란 행렬이 이어지고, 라디오에서는 “두 국가 간 무력 충돌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시라트’의 도입부다.
‘시라트’는 아랍어로 ‘길’이란 뜻이다. 이슬람교에서 심판의 날에 천국과 지옥을 잇는 가느다란 다리를 뜻하기도 한다. 작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사운드트랙상을 받은 이 수작(秀作)은 국내에서는 “관객을 폭행하는 영화”로 입소문을 탔다.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줄거리는 생략한다. 다만 세계대전의 전조가 짙게 드리운 상황이 시작일 뿐이라는 것.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 때 더 큰 한 방이 온다.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한 상태로 상영관을 나서는데 극장 직원이 고구마튀김 과자를 건넸다. 바스러진 ‘멘탈’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주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전면적인 중동 전쟁으로 격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시라트’를 떠올렸다.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이라는 도입부 설정이 과하지 않다. 오히려 리얼리즘에 가깝다면 모를까. 한 SF 작가가 해준 말도 기억났다. “요즘은 현실이 너무 극단적이라 소설에 현실을 반영하면 개연성이 오히려 떨어지는 아이러니가 생긴다”고. 현실이 픽션(fiction)보다 더 가짜 같은 기상천외한 세상이다.
불안한 세계정세 속에서 ‘시라트’가 던진 물음을 되새김질 중이다. 예측 불가한 지뢰처럼 곳곳에서 터지는 전쟁이 인류 공동체를 절멸로 이끄는 것 아닐까. 망해가는 세상에서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은 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뭐라도 해보려는 미미한 발버둥이 무슨 소용일까. 절체절명의 순간에 예술이 필요한가. 몰락한 세상에서 춤추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고구마튀김 과자를 바사삭 먹는 것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질문이 와르르 쏟아졌다.
공교롭게도 이 물음을 깊이 탐구한 이가 작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다(스웨덴 한림원의 시의적절함에 박수를!). ‘묵시록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노벨상 수상 연설을 “희망이 동나버렸다”는 말로 시작한다. “전쟁이 있음을 알게 됐다. 자연에도 사회에도 오직 전쟁뿐이었음을.” 그는 “선(善)은 악(惡)을 붙잡을 수 없다. 둘 사이엔 어떠한 희망도 없다”고 못 박는다. 그러더니 독일 베를린에서 지하철을 탄 이야기로 연설을 끝낸다. 인간의 존엄에 대해 생각하며, 어디서도 내리지 못하고 그저 터널을 달리고 있다면서.
‘시라트’의 마지막 장면도 달리는 기차 위다. 목적지는 알 길이 없고, 카메라는 사람들의 황망한 표정을 비출 뿐. 수수께끼 같던 노벨상 연설과 채 소화하지 못했던 영화가 그림 퍼즐처럼 꼭 맞춰지던 순간, 깊은 절망을 느꼈다.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황지윤, “희망이 동난 시대, 우린 어디로 가는가”, 조선일보, 2026.3.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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