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와 미사일, 양손에 쥐고 과대망상에 빠진 독재자

2026.03.12 20:48 | 조회 1339


                          관세와 미사일, 양손에 쥐고 과대망상에 빠진 독재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세계는 유라시아·오세아니아·동아시아 3대 초강대국의 세력권으로 나뉜다. 소련이 유럽을 병합해 유라시아가 되고, 미국은 대영제국·아메리카대륙을 삼켜 오세아니아가 된다. “동아시아는 10년 동안 복잡한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통일국가로 등장”하는데, 한·중·일 등이 포함된다. 세 초강대국은 중동·북아프리카 등 가난하고 인구가 밀집한 ‘나머지 지역’과 무주공산인 북극을 두고 끝없는 전쟁을 벌인다.

  오웰이 이 소설을 쓴 것은 1948년이지만, 2026년 이 가상의 미래가 현실이 되고 있는 듯하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영토 제국주의를 다시 소환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납치하고, 북극 그린란드 병합을 공공연히 시도했으며, 뒤이어 이란을 공격해 중동 전역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중국 역시 대만·남중국해를 노리고 있다. 1세기 전 힘의 논리가 지배했던 세력권 질서로 되돌아가는 징후가 뚜렷하다. 오웰은 빅브러더가 텔레스크린을 통해 전 국민을 감시하는 체제를 집요하게 묘사했다. 오늘날 강대국들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감시 체제를 완성해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 상상력에 오싹함이 느껴질 정도다.

  세력권 질서는 강대국들이 특정 지역에서 약소국·중견국을 통제하고 경쟁 강대국의 개입을 차단하는 국제질서다. 제국·식민지·조공관계 등 20세기 이전 대부분 역사가 그랬다. 이런 질서에서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약소국·중견국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국가 간 합의된 ‘규칙’에 의해 움직였지만, 세력권 질서는 무력과 강압 등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현실 세계는 힘과 무력, 권력에 의해 지배된다. 이것이 태초 이래로 존재해온 철칙”이라는 트럼프 측근 스티븐 밀러의 말은 상징적이다. 트럼프는 관세와 미사일을 양손에 들고 ‘힘이 곧 정의’인 시대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 돈이 있는 나라엔 관세를 휘둘러 자본을 약탈하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엔 미사일을 퍼부어 자원을 빼앗으려 한다. 초강대국의 군사력을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충동적으로 휘두르고 있어 더 가공할 만하다.

  국제법은 쉽게 무시되고, 공격 대상이 누구인지, 어떤 민간 피해가 발생하는지에는 무감각하다. 100명 넘는 초등학생이 오폭으로 목숨을 잃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그의 세계관을 떠받치는 건 자신만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자기 확신이다. 나아가 자신을 ‘평화의 화신’이라 착각한다. 유엔을 대체해 ‘평화위원회’를 만든 발상도 이런 맥락에서다. 사이코패스적 과대망상이 아니고서야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다.

  심리학은 이런 권력자의 성향을 ‘어둠의 3요소’로 설명한다. 마키아벨리즘(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계산과 도덕적 무관심), 나르시시즘(오만과 자아도취), 사이코패스(공감 능력 결여와 충동·공격성)다. 브라이언 클라스는 ‘권력의 심리학’에서 “대부분 사람은 이 세 요소를 아주 조금씩만 가지고 있지만, 한 사람에게 세 요소가 극단적으로 응축될 때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패권국 최고 권력자가 이런 성향을 보일 때, 그 피해는 전세계로 확산된다.

  동아시아도 머지않아 트럼프의 시야에 들어올 공산이 크다. 그는 이미 이곳에서도 세력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빌드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미국의 관세 공격에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로 맞서자 일시 후퇴했을 뿐이다. 전략광물 자립을 추진하는 동시에, 에너지·인공지능에서 중국을 옥죄려는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중국의 원유 주 수입원인 베네수엘라·이란에 친미 정권을 세우려는 시도도 그 연장선으로 읽을 수 있다. 인공지능의 군사적 활용을 가속해 군사적 우위를 점하려는 구상도 노골화하고 있다. 실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판단하고 미국 내 정치적 유인까지 있을 경우, 어떤 일을 벌일지 예측 불가다.

  새 질서는 아직 윤곽이 불분명하지만, 힘이 지배하는 질서 쪽으로 기울어 언제든 폭풍이 들이닥칠 것 같은 불길한 공기를 내뿜고 있다. 오웰은 “실력 없는 나라는 조만간 정복되는 것이 상례이거니와 환상이란 실력 투쟁에 해를 줄 뿐”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질서에서 생존하는 길은 실력뿐이다. 군사력·경제력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여 강압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이해를 공유하는 중견국들과 연대를 강화해, 세력권 질서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박현, “관세와 미사일, 양손에 쥐고 과대망상에 빠진 독재자”, 한겨레신문, 2026.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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