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처럼 트럼프에 기대하지 말라

2026.03.26 13:43 | 조회 1224

 

                                    대만처럼 트럼프에 기대하지 말라

 

  지난해 대만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중국과의 긴장으로 가끔 훈련경보가 울리긴 했지만 사람들은 평온하고 거리는 평안했다.

  2025년 8%가 넘는 고도 성장을 이루고도 물가가 별반 오르지 않는 것이 이런 태평함을 만든 일등 공신이다. 지난해 대만의 물가상승률은 1.66%. 노인들도 별로 걱정이 없다. 법률상 65세였던 정년 규정도 없어져, 회사와의 협의에 따라 65세 이상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만난 한 은행원도 67세까지 베트남에서 활기차게 일한 뒤 퇴직해 여유 있게 살고 있었다. 연금제도가 꽤 안정화되어 있는 데다가 꾸준히 성장하는 기업들이 많아 이런 회사들의 주식을 저축처럼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마음 편한 대만인들이 요즘 걱정하는 게 하나 있다. 다름 아닌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다. 수굿하기만 한 것 같은 이들도 트럼프 얘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높아진다. 걱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만을 지켜주겠다는 얘기를 트럼프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트럼프는 '그 일이 생기면 알게 될 것'이란 식으로 애매한 답변만 반복한다. 대만을 방어하겠다는 조 바이든과는 명료하게 대조된다. 둘째, 트럼프가 대만을 너무 무시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실제 참모와 대화하면서 "책상 전체가 중국이라면 대만은 자기가 들고 있는 펜의 끝부분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셋째, 트럼프의 장사꾼 기질이 언제 발휘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은 중국과 알력관계지만 중국과 '빅 딜'이 성사된다면 언제 대만을 버릴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핵심 우방국에 대해서도 이처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대만인들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한국 사회의 인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우리는 트럼프의 협상가 기질에 북핵문제 타결을 기대하고 있다.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북핵문제 해결에 진심인가? 트럼프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영변의 핵단지 폐기와 대북제재 일부 해제를 교환하자는 김정은의 제안을 거부했다.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 존 볼턴은 트럼프가 하노이까지 간 것은 '사진 찍기'를 위해서라고 직격했다. 지금은 바뀌었을까?

  또 북핵문제라는 게 트럼프가 "대화하자" 한다고 해서 술술 풀릴 일인가? 김정은은 지금 대화할 생각이 없다. 2023년 12월 '적대적 두 국가론'을 제기한 이후 한국과 미국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의 협력과 북중교역 재개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여 있는 상황이다. 핵과 장거리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 고도화 작업도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

  '트럼프만 나서면 된다, 트럼프의 노벨상 욕심을 이용하면 된다' 이런 접근으로 될 일이 아니다. 북한이 우선 원하는 것, 북한을 회담장으로 불러올 수 있는 방안, 트럼프의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도를 디테일하게 고안해 양측을 설득하는 게 지금 해야 할 일이다. 트럼프의 선의에 기대를 걸고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안문석, 2026.03.25. 41지면 A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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