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내려와 사람이 되다

얼마전 NGC에서 방영한 '유다복음서'에 관한 다큐를 보다가 재미있는 구절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예수가 태어날 당시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 보고 찾아온 별, 그리고 이스라엘의 국기에 그려진 별이 바로 '유다의 별'입니다. 유다에게 예수가 배반(?)의 일을 꾸미게 할 때도 '너의 별은 다른 제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빛날 것이다' 라고 얘기하는 대목이 나오죠.
(재미있게도 석가모니 부처가 탄생할때의 일화에도 금성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자세히 쓰지는 못하지만,
고대인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한민족은 '하늘의 이상이 땅에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天門을 그대로 地理에 옮겨놓는 일들을 많이 벌입니다.


< 화순 운주사의 칠성바위 >
대표적인 예가 청동기시대에 별자리를 옮겨놓은 고인돌이고,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의 무덤과 건축물들도 천문을 그대로 땅에 새겨놓았습니다.
또한 각 종교의 성자 출현과 성자들의 가르침을 전하는 성서의 기록들에 많은 별들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듯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백보좌 하나님의 모습에도 칠성이 등장하죠..)
이것은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지 자신들의 이상을 기록하고 남겨두는 의미' 뿐만 아니라, 곧 이들이 칠성에 임어해계시는 상제님을 비롯한 천문에 거해있었던 천상신명계로부터 내려와 인간이 되었음을 드러내는 아이덴티티를 밝히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칠성이니라"하신 증산상제님 말씀이 그래서 더욱 신비롭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근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 나는 마상에서 득천하
1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2 나는 미륵(彌勒)이니라.
3 나는 남방 삼리화(三離火)로다.
4 나는 칠성(七星)이니라.
5 나는 천지일월(天地日月)이니라.
6 내가 장차 불로 오리라.
7 나는 마상(馬上)에서 득천하(得天下)하느니라.
[道典6:7]
* 상제님 등의 북두칠성
1 상제님께서 섭다리골에서 성도들과 목욕을 하실 때 성도들의 가운데를 보시며 “도둑놈 다리 같구나.” 하시고
2 웃으시며 “이놈들아, 저 아래 내려가서 목욕해라.” 하시거늘 듣는 사람들 모두 아무 꺼림 없이 아래로 내려가니라.
3 하루는 필성이 상제님과 목욕을 하는데 상제님께서 “필성아, 내 등 좀 밀어라.” 하시는지라
4 필성이 등을 밀려고 보니 붉은 점으로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선명하게 박혀 있거늘
5 “자네 이게 뭔가?” 하고 물으니 상제님께서 손을 어깨 너머로 짚으시며 “간밤에 모기가 물어서 그랬다.” 하시니라.
칠성이 내 별이니라
6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북두칠성이 내 별이니라.” 하시니라.
[道典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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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공식홈에서 검색을 해보니 홈페이지내에도 몇가지 자료가 눈에 띄네요 도움이 될듯 합니다.
칠성(七星)과 칠성경(七星經)
http://www.jsd.or.kr/jeungsando/masters.php?mid=467&r=view&uid=5236
칠성七星 문화의 자취와 기능
http://www.jsd.or.kr/jeungsando/masters.php?mid=299&r=view&uid=2572
종교속에서 나타나는 칠성에 대해서도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독교는 구약성서에서는 천지창조가 7일 만에 이뤄졌고, 성전에는 7개의 촛대를 놓았으며, 7마리의 양을 제물로 바쳤다고 했다. 이와같은 상징성은 신약 성서에서도 발견됩니다. 사도행전에는 교회에서 7명의 집사(執事)를 두었다고 했고, 요한 계시록에는 7개의교회, 7개의금촛대, 7개의 별 등 수 많은 7의 상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정신의 기본틀은 3수 외에 7수(7성령의 7수사상)도 선명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즉 생명(우주신 하나님)의 창조법도에 있어 한 본체신(우주의 유일신)이 작용할 때에는 3→7로 작용한다는 말입니다. 우주의 1신이 7신으로 전개되어 이 변화원리를 주재한 일곱신이 神道에 자리 잡게 될 때 우주창조의 신성(神聖)이 모두 드러나는 것이죠.
불교에서는 석가가 태어나 일곱 걸음을 걷고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깨달음의 외침을 발한 데서 성스러운 수로 여깁니다. 수도(修道)에 있어서의 일곱 가지 요건을 칠각(七覺)이라 하고, 중생 교화를 위해 일곱 가지로 변화하는 관음을 칠관음(七觀音)이라 합니다. 또 일곱가지 보물을 칠보(七寶),깨달음의 지혜를 돕는 7행법(行法)을 칠보리,과거에 나타난 7부처를 칠불(七佛),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수를 칠생(七生)이라 하는 등 중요한 법수(法數)에 7이라는 숫자가 사용됩니다.
도교는 사람의 몸에 있는 일곱 넋을 칠백(七魄)이라 합니다. 몸 안의 탁한 영혼인 시구(尸狗),복시(伏矢),작음(雀陰), 탄적 (呑賊), 비독(非毒), 제예(除穢), 취폐(臭肺)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도교에서는 북두칠성을 자미대제라 부르며 섬겼으며, 삼태성도 매우 중요시 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유교는 예기(禮記) 내칙에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動席)’ 이라 하여, ‘남녀가 일곱 살이 되면 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 음식을 같이 먹지 않는다. ‘고 했습니다. 일곱 살을 철부지에서 벗어나는 시점으로 보아, 남녀가 함부로 만나는 것을 금지시키고 성인으로서 갖췌야 할 예의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부녀자가 범(犯)해서는 안 될 일곱 가지 패덕을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 하는데, 조선 유교 사회의 악습 중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민중속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불교의 대웅전 뒤편에 칠성각(또는 칠성당, 칠성전)이라는 전각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불교 사찰내에만 존재하며, 원래 불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것입니다. 이 전각은 한 민족의 칠성신앙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사찰내에 수용되었던 것입니다. 옛날 마을에 있던 칠성당도 바로 북두칠성의 성신을 모셔 놓고 기원하던 사당입니다. 민가에서는 앞에서 설명했듯 이 장독대 한 옆이 칠성당(칠성단) 자리가 되어 정안수를 떠놓고 소원을 빌던 터전이었습니. 과거에는 사람이 죽으면 ‘칠성판’ 이라는 널판을 관 밑바닥에 깔고서 그 위에다 시신을 눕혔습니다. 여기서 죽는 것을 ‘칠성판 짊어지고 간다’고 표현하게 된 것이죠. 이 칠성판은 널판에다 북두칠성의 모양을 형상화하여 아래와 같이 7개의 구멍을 뚫거나 먹으로 표시를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장례풍습은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민족만의 독특한 풍습입니다. 이것은 그 영혼이 본래 온 고향별인 북두칠성으로 돌아가라는 염원을 답고 있습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면서 맨 먼저 지내던 초례(醮禮)는 칠성님께 드리는 인사였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임금들이 지내던 초재(醮齋)도 칠성님께 올리는 인사와 기원이었습니다. 이 칠성신앙인 초재는 조선 중종, 명종조에 유명무실해졌다고 하네요. 민간에서 아이가 태어났을때, 출생 후 사흘 후와 초이렛날, 둘째 이렛날, 세째 이렛날 등 7일을 한 주기로 하여, 삼신할머니에게 아이의 건강과 장수를 비는 제의(祭儀)를 지냅니다. 대부분 셋째 이렛날까지 행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일곱 이렛날까지 계속하기도 합니다
무속에서는 가옥을 신축했거나 이사하여 새 집에서 가옥주(大主)가 성주신을 봉안할때, 가옥주의 나이가 27,37,47등으로 일곱 수에 드는 해의 음력 10월에 날을 잡아 무당을 불러 봉안식을 가집니다. 일곱은 양(陽)의 수중에서 아홉 외에 가장 큰 길수(吉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관을 만들때, 송판에다 7개의 구멍을 북두칠성처럼 뚫어 칠성판을 만듭니다. 이칠성판은 ‘모든 사귀를 없애는 것으로 방상시와 무덤 앞의 석노(石奴)와 같은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남도지방에서는 당산목(堂山木)을 7수 심는데, 생사의 운명신인 칠성신(七星神)의 주력(呪力)을 나타냅니다. 전남 여수의 용왕맞이 풍어굿에서는 무명천을 일곱 매듭으로 묶습니다. 바다에 나가 죽은 넋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는 이 제차(第次)는, 대렴(大殮)때에 시신을 일곱번 묶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곱이라는 숫자가 지닌 주력에 의해 넋을 달랜다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인간의 탄생과 건강, 무병장수,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도가 칠성으로부터 내려온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민족에게 전통적으로 칠성신앙이 존재해 왔죠.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이 우주에서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아서 태어나야 합니다. (얼굴에는 일곱개의 구멍이 있다) 우주의 모든 별을 주장하는 별이 또한 칠성입니다. 별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칠성신앙은 배달-(고)조선 이래 동방 한민족 고유의 정통신앙인 신교의 세계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 할머니들은 장독대 위에 정안수를 떠 놓고 “칠성님“에게 소원을 빌어 왔죠. 우리 조상들은 인간의 길흉화복은 물론 수명까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칠성님이 주관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북두칠성은 우리 조상들이 믿던 삼신 상제님을 별로 나타낼 때 붙여지는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중국 문화권에서도 이 신앙의 자취는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표현들로서는 칠성님 외에도 칠성신, 칠성여래(如來), 칠원성군(七元星君) 등이 있으며 우리조상님들은 고대때부터 북두칠성을 섬겨왔으며 신앙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천문을 살펴 기록으로 남긴 가장 큰 이유도 거기에 있었던 것이죠.또한 칠성은 기우(祈雨)의 대상신 또는 인간의 장수와 재물을 관장하는 신 등으로 다양하게 신앙되는 존재입니다. 조정에서 태일(太一)을 지낼 때 칠성신에게 제사지냈고, 무속에서도 칠성당등 칠성신을 모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규보의 노무편(老巫篇)』에도 칠성원군을 모셨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이 칠성신이 어떤 기능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태일초(太一醮)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점에서 기우의 대상신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우에서 칠성신을 모신 것은 고려 조선을 통해서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