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과 수명, 뗄 수 없는 관계 있다”
2010.08.27 0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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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과 수명, 뗄 수 없는 관계 있다”
2008년 10월 24일(금) 2:59 [동아일보]
《캄캄한 방 안. 실험대 위에 가느다란 유리관이 촘촘히 쌓여 있다.
자세히 보면 각 유리관마다 초파리가 한 마리씩 들어 있다.
보이진 않지만 유리관 한가운데로 적외선이 관통한다.
초파리는 유리관 안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적외선이 관통하는 곳을 5분 넘게 지나가지 않으면 잠을 자고 있다는 뜻이다.
이곳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고경희 교수의 실험실.
이런 방법으로 수년에 걸쳐 자그마치 3473종의 돌연변이 초파리의 수면 패턴을 조사했다.
마리당 48시간이나 걸리는 고된 작업이었다.
이런 노력 끝에 고 교수는 최근 불면증을 일으키는 좀 더 근본적인 유전자를 찾아 학계에 발표했다.》
■ 펜실베이니아大 고경희 교수 초파리 실험 통해 확인
○ 자는 시간 조절하는 2가지 유전자
“초파리는 보통 하루에 10시간 이상 자요. 그런데 ‘슬리프리스(sleepless)’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초파리는 한두 시간밖에 자지 않죠.”
슬리프리스는 고 교수 연구팀이 처음 발견해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 7월 18일자에 발표한 수면유전자. 연구논문에서 고 교수가 제1저자로 참여했다.
가을이 되면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아진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일조량 변화이다. 낮의 일조량이 줄면 수면 촉진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많이 분비돼 낮에는 졸리고 밤에는 잠이 잘 안 오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수준에서 또 다른 원인을 찾고 있다. 고 교수는 “슬리프리스의 정확한 작용 메커니즘을 밝혀내면 불면증의 유전적 원인을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고 교수팀은 슬리프리스에 돌연변이가 생긴 초파리에서 ‘셰이커(shaker)’라는 유전자가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슬리프리스가 셰이커를 조절한다는 의미다.
셰이커는 미국 위스콘신대 키아라 시렐리 교수팀이 처음 발견한 수면유전자. 시렐리 교수팀은 셰이커에 돌연변이가 생긴 초파리는 하루에 4∼5시간밖에 자지 않고 다리를 떤다는 연구결과를 영국 과학저널 ‘네이처’ 2005년 4월 28일자에 발표했다.
슬리프리스가 셰이커보다 좀 더 강력하고 근본적으로 불면증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고 교수는 “깨어 있을 때 뇌 신경세포는 보통 흥분상태인데 슬리프리스는 이 흥분을 가라앉혀 잠이 잘 들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잠과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
슬리프리스에 돌연변이가 생긴 초파리는 일상생활이나 생식기능에는 별문제가 없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어요. 보통 초파리가 70일 넘게 사는 데 비해 슬리프리스 돌연변이 초파리는 30일 만에 죽어요. 수면이 수명과 관계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은 밤을 새우면 다음 날 잠을 더 많이 자게 마련이다. 몸을 평소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다. 초파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슬리프리스 돌연변이 초파리는 오랫동안 못 잔 다음 날에도 한두 시간밖에 안 잡니다. 몸을 회복시키는 생물체의 ‘항상성 유지’ 기능이 함께 손상된 거죠.”
시렐리 교수팀은 수면이 뇌의 건강과도 관련이 있다고 추측했다. 사람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뇌가 활동하면서 신경세포가 서로 맞닿는 부위(시냅스)가 증가하거나 활성물질을 많이 배출한다.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뇌의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돼 피곤해진다.
그래서 자는 동안 뇌는 시냅스 부위를 정리해 중요한 것만 남긴다. 잠이 부족할 때 뇌가 쉽게 피로해지는 이유는 시냅스 정리가 덜 됐기 때문이다.
“초파리는 사람과 유전자가 75% 정도 같아요. 초파리의 수면유전자와 비슷한 유전자가 사람에게도 있을 겁니다.”
고 교수는 초파리의 수면유전자 연구가 앞으로 사람의 잠과 건강, 수명의 관계를 명확히 밝혀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필라델피아=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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