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칼럼2- [이덕일의 고금통의] "만가"
2011.04.13 07:25 |
조회 15171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만가
진(晉)나라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註)』는 해로가를 “풀잎 위의 이슬은 쉽게 마르지만/마른 이슬은 내일 아침이면 다시 생기는데/사람 죽어 한 번 가면 언제 돌아오나(薤上朝露何易晞/露晞明朝還復滋/人死一去何時歸)”라고 전한다. ‘호리(무덤 속)가’는 “무덤 속은 누구의 집 자린가/혼백을 거둘 땐 똑똑하고 어리석음 따지지 않네/귀신은 어찌 그리 재촉이 심한가/인명은 잠시도 머물지 못하네(蒿裏誰家地/聚斂魂魄無賢愚/鬼伯一何相催促/人命不得少踟躕)”라는 노래다.
『고금주』는 원래 한 노래였는데 한(漢) 무제 때 가객(歌客) 이연년(李延年)이 둘로 나누어 해로가는 왕족들의 장사 때, 호리가는 사대부와 서인(庶人)들의 장사 때 불렀는데, 세상에서 이를 만가라고 칭했다고 적고 있다. 『예기(禮記)』 『단궁(檀弓)』편은 외사(畏死)·염사(厭死)·익사(溺死)는 조문하지 않는다고 전한다. 후한(後漢) 때의 학자 정현(鄭玄) 등의 주석에 따르면 외사는 죄가 두려워서 죽은 자살이고, 염사는 압사(壓死)인데 바위나 남의 담 밑에 서지 않아야 할 군자가 잘못 처신하다 죽었기 때문이다. 효자는 배 타고 멀리 가지 않아야 하기에 익사도 조문하지 않는다.
형식은 자살이지만 내용은 타살도 있다. 정조 때 편찬된 『심리록(審理錄)』에는 풍덕(豊德) 사는 과부 김씨가 겁탈당할 뻔하자 수치와 분노로 17일 동안 곡기를 끊고 죽은 사건이 나온다. 정조는 “칼로 찌르고 발로 찬 것과는 다르지만 정녀(貞女)를 욕보여 죽게 했으니 살인과 마찬가지”라면서 범인을 사형시켰다. KAIST 학생들의 자살도 형식은 자살이지만 내용은 타살이다.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은 문제의 본질을 지적한 것이다. 철학도 없이 경쟁체제로 내몬 것이 삶의 목적을 잃게 한 것이다. 삶의 목적이 뚜렷하면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 철학이 부재한 현재의 한국 교육 시스템 자체를 관에 넣고 만가를 부르는 것이 그들의 억울한 영혼을 위로하는 길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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