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 칼럼--- 한.중.일의 정립을 생각하다(경향)

2011.12.16 07:09 | 조회 9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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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칼럼]한·중·일의 정립(鼎立)을 생각한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핵심이 될 한·중·일 관계에 틈이 벌어지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의 알력은 과거사에서 비롯된 중대한 사태이며,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문제도 응어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

피해자인 한국은 가해자인 일본에 대국적인 입장에서 양국 및 동아시아의 미래와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라며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일본은 한·일조약을 내세워 이미 해결된 사안이라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한·중 간에는 해양경찰이 중국 선원에게 살해된 사건과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공기총탄이 날아든 사건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양국 간 국민감정이 험악해지고 있다. 국경을 지키는 공무원을 민간인 어부가 살해한 사건과 이에 대한 중국 내 일부 여론에 한국여론과 언론이 격앙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국과 육지로 이어져 역사적으로 여러 숙연(宿緣)이 있는 한국에 중국과의 관계는 늘 미묘한 것이었다. 대국의 그림자를 느끼며 대립을 피하되 비굴하지 않게 독립을 유지하는, 그러면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동시에 냉전적인 대중국 봉쇄정책에는 거리를 둔다. 이처럼 절묘한 균형을 취하면서 나라의 안전과 평화, 번영의 길을 찾으려 노력해온 것이다.

한국에 중국은 최대 무역상대국이고, 안보·방위상 북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중국과의 관계는 한국의 사활적인 이익과 연계돼 있다. 한국이 지금까지 미·일이 주도하는 미사일방어 체제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것이나 한·일 간의 안보협정에 거리를 두려 해온 것은 국민감정도 있겠지만 이웃의 대국인 중국을 섣불리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지정학적 배려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역학을 둘러싼 ‘국가이성’ 및 안전보장상의 배려와 국민감정은 종종 대립하곤 한다. 국민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언론이 이를 부추기게 되면 한·중 간에 제동이 풀린 내셔널리즘 경쟁이 가열되고 정부나 정치인들도 결국 타협의 여지를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 하물며 소셜미디어 네트워크에 의해 순식간에 군중이 즉석으로 생겨나는 시대다. 신문과 TV, 라디오나 잡지 등 기존 미디어와 다른 네트워크에 몰리는 젊은이들이 과격한 언동과 메시지를 공유하고 얼마 안가 거대한 익명의 여론이 정부를 움직이는 힘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한·중 양국 내 미디어 공간에서 여론의 풍향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한·일 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도탄의 고난을 겪은 이들이 1000회에 걸쳐 일본대사관에 항의했음에도 일본이 무대응해 많은 한국 국민들이 한편으로는 분노하면서 ‘할머니’들에 대해 공감을 키워온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반면 일본의 국민 대부분은 이에 무관심하거나 흥미가 없고, 역사적인 사실관계조차 모른 채로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할머니들의 고난에 깊은 동정과 공감을 느끼고, ‘일본군 위안부’를 성폭력인 동시에 심각한 인권침해로 간주하면서 명예회복과 사죄, 배상을 위해 분주히 움직여온 시민과 학자, 문화인과 여성단체가 일본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들의 움직임이 큰 여론이 돼 정부를 움직이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어찌됐든 한·일 간의 과거사와 독도 문제는 앞으로도 양국 우호관계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확실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나 독도에 대한 인식의 정도에서 한·일 두 나라 국민 간에 압도적인 비대칭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본 국민 다수는 독도 영유권을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반면 한국 국민 다수는 절대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민이 압도적인 관심과 가치를 두고, 상대방에게 이 문제를 주장하려 해도 일본 국민이 관심도 가치도 두지 않는다면 한국은 김이 빠질 것이다. 지금 한·일 간에는 이런 엇갈림이 점점 커지려 하고 있다.

게다가 사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중국의 위협을 두려워하는 일본이 미국과 공동으로 대중 방어에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의 딜레마를 안고 있다. 대중무역은 경제의 사활이 걸릴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과거 대소련 포위망처럼 가담하면 그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더 확대·심화하고, 미·일 미사일방어 체제와 호주, 인도 및 한국과의 안보협력을 심화해 중국의 해양진출을 막고 미·일 주도의 아·태 신질서에 중국을 편입시키려는 전략에 급격히 기울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러한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이번 한·중 간의 마찰은 일본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 그것이 한·일 간의 준(準)안보협력을 강화하는 모멘텀이 될지, 어떨지 확실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숙명’을 플러스로 활용할지, 그 반대가 될지는 한국과 한국민의 두 어깨에 달려 있다.

<강상중 | 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환 교수>


입력 : 2011-12-15 20:58:17수정 : 2011-12-15 22: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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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진성조 14년 전
베스트 셀러-[고민하는 힘]의 저자, 재일교포로 일본 동경대 교수인 강상중교수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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