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종교계 신년사와 수사학
2012.01.04 06:40 |
조회 10879
[노트북을 열며] 종교계 신년사와 수사학
신준봉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이런 ‘관록’에 비하면 수사학은 많은 경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특히 ‘화려한’ 같은 형용사와 함께 쓰일 때 알맹이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말잔치쯤으로 간주되기 일쑤였다. 수사학에 대한 푸대접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으로부터 비롯됐다. 그는 수사학이 실재(reality)보다 외양에 만족하고, 지식보다는 여론을 전달하려 하며, 말을 교묘히 사용해 권력을 쟁취하려는 정치적 도구라고 공격했다.
수사학을 두둔한 건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인간 세상이 필연보다는 우연(contingency)으로 가득 차 있다고 봤다. 수없이 마주치는 선택의 순간에 사람은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어서다. 수사학이 중요한 건 그래서다. 수사학은 여론에 바탕을 둔 논의를 통해 선택을 앞둔 사람의 심사숙고 과정에 개입하는, 열린 가능성의 언어 전략이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공들여 말을 선택하고 배열한다. 플라톤이 지적한 약점은 이래서 오히려 강점이 된다.
새해 벽두부터 수사학 얘기를 꺼낸 이유는 지난해 말 잇따라 발표된 국내 종교 지도자들의 신년사 때문이다. 종교 지도자가 사용하는 언어는 종교별로 크게 다르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신년사가 한자를 적절히 사용해 고풍스러우면서도 푸근하다면, 천주교 정진석 추기경의 신년사는 보다 일상 언어에 가까워 자상한 느낌을 준다. 종교계 신년사의 수사적 습관은 각 종교가 품고 있는 사상 체계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다채롭다.
올해 신년사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한반도의 주요 현안에 대한 언급이 많다는 점이다. 김정일의 사망에 따른 남북관계의 향방,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등이 자주 거론됐다.
증산도의 신년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은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하추교역기(夏秋交易期)”라고 진단했다. “천지의 질서가 바뀌고 사람개벽을 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원불교의 신년사는 제목이 아예 ‘지도자의 길’이었다. 종교 지도자는 물론 새로 뽑힐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품성과 덕목을 밝혔다. 조계종의 신년사는 밝은 지혜의 눈으로 일궤십기(一饋十起), 한 끼 밥을 먹다가도 필요하다면 열 번이라도 기꺼이 일어나는 부지런한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주교는 현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특별히 새해에는 우리가 모두 지혜로운 삶을 살기를 기원한다”며 에둘러서 할 말을 했다.
종교 지도자들의 신년사가 반드시 해당 종교의 신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의 영적·정신적 지도자로서 그들의 언어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다. 그들의 신년사가 알맹이 없는 플라톤의 수사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유권자인 우리가 그걸 결정할 수 있다.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전체 5,456건 (73/364페이지)
4376
[도전 영어성구] 처세(48) 제 일을 제가 해야 하느니라
2022.10.17,
조회 8769
[오늘의영어성구]
한곰
You Must Conduct Your Work Yourself제 일을 제가 해야 하느니라3 나 살고 남 살리는 공부니 사람 잘되기를 바라소. 4 지난 일은 생각 말고 오는 일을 되게 하라. 5 제가 제 마음을 찾아...
4375
제576돌 한글날의 역사적 의미와 경축행사
2022.10.12,
조회 13100
[역사공부방]
신상구
제576돌 한글날의 역사적 의미와 경축행사 &nbs...
4374
[도전 영어성구] 처세(47) 죽고 살기를 뜻대로 하노라
2022.10.12,
조회 9455
[오늘의영어성구]
한곰
I Live and Die at Will죽고 살기를 뜻대로 하노라
1 Sangjenim revealed, “Death is never far away, for the hereafter lies just beyond the doorstep.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죽음길이 먼 곳이...
4373
윤한주 국학박사, 한국의 단군 사묘 46곳 조사
2022.10.11,
조회 13089
[역사공부방]
신상구
윤한주 국학박사, 한국의 단군사묘...
4372
2022 노벨문학상, 佛작가 아니 에르노
2022.10.10,
조회 12249
[역사공부방]
신상구
2022 노벨문학상, 佛작가 아니 에르노한림원 “사적 기억 덮개 벗긴 용기” 여성으로는 17번째 수상자언제나 1인칭, 고백형 자전 작가...
4371
연세대 사학과 김동길 명예교수 별세
2022.10.04,
조회 12939
[역사공부방]
신상구
연세대 사학과 김동길 명예교수 별세 보수진영 원로 인...
4370
<특별기고> 제4354주년 개천절의 역사적 의의와 경축행사
2022.10.03,
조회 12931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 제4354주년 개천절의 역사적 의의와 경축행사 ...
4369
2022년 노벨상 수상 예상자 명단 발표, 한국 '0명'
2022.09.27,
조회 13822
[역사공부방]
신상구
&nbs...
4368
항일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예관 신규식 선생의 생애와 업적과 추모사업
2022.09.26,
조회 13900
[역사공부방]
신상구
항일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예관 신규식 선생의 생애와 업적과 추모사업신상구 국학박사 | 기사입력 2022/09/25 [20:37] &...
4367
죽은 엘리자베스2세가 가르쳐 준 것
2022.09.25,
조회 12621
[역사공부방]
신상구
죽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가르쳐 준 것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이 엄수된 9월 19일(현지 시각) 여왕의 관이 해군 장병들이 이끄는 포차에 실려 런던 버킹엄궁 인근 거리를 지나고 있다....
4366
‘금빛 날개 장식’에 담긴, 신라의 실리 외교
2022.09.22,
조회 14315
[역사공부방]
신상구
‘금빛 날개 장식’에 담긴, 신라의 실리 외교 4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신라는 그리 대단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랬던 신라는 5세기 이후 거대한 왕릉을 만들고 영역을 확장하는 등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
4365
중국, 20년째 역사왜곡
[1]
2022.09.21,
조회 13558
[역사공부방]
신상구
중국, 20년째 역사왜곡 역사부터 문화까지 계속되는 동북공정15일 중국 베이징 국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동...
4364
운초 계연수 선생의 생애와 업적(실존인물)
2022.09.15,
조회 11581
[역사공부방]
신상구
<특별기고> 운초 계연수 선생의 생애와 업적 충청문화역사연구소...
4363
한국전통문화대 崔英成 교수, 목은 이색 문집서 ‘天符經’ 언급 발견
2022.09.15,
조회 14004
[역사공부방]
신상구
한국전통문화대 崔英成 교수, 목은 이색 문집서 ‘天符經’ 언급 발견...
4362
친일 귀족들의 땅 북촌에 조선인 마을 만든 정세권
2022.09.11,
조회 15015
[역사공부방]
신상구
입력 2022.09.07 03:00 친일 귀족들의 땅 북촌에 조선인 마을 만든 정세권서울 북촌한옥마을. ‘북촌5경’과 ‘6경’이 있는 북촌로11길 옆 골목 ‘...



/cloudfront-ap-northeast-1.images.arcpublishing.com/chosun/FXAGUPVI45POZESHKA5KVQOEUA.jpg)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