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냐 자멸이냐 (경향신문 칼럼)
2013.05.16 11:08 |
조회 11007
[김종철의 수하한화]변화냐 자멸이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마침내 400ppm을 넘어섰다. 하와이의 관측소에서 측정된 결과를 과학자들이 엊그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그렇다. 예견된 수치이지만, 매우 두려운 측정결과이다. 이대로 가면, 그래도 인류문명의 존속이 가능할 것으로
믿어지는 섭씨 2도 상승이라는 한계치를 훨씬 넘어서 지구 평균기온이 빠르게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기후변화는 우리
모두가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감하는 현실이 되었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전면적인 혼돈상태가 곧 밀어닥칠 것을
경고하는 과학적 예견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의 권력엘리트들과 주류 미디어가 기후변화 현상에 대하여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뻔질나게 열리는 엘리트들 간의 국제회의는 최근 들어 기후변화 문제를 거의 단골주제로 삼고 있다.
실제로 금년 초 다보스포럼에서도 경제위기와 지구온난화의 관련성이 핵심의제의 하나였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이 회의에
참석한 영국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의 발언이었다. 영국정부 경제자문이자 한때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였던 스턴은
2007년에 영국정부의 의뢰로 ‘기후변화의 경제학’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고, 그 보고서는 영국뿐만 아니라 여러 정부와
환경운동가들의 지침서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 다보스포럼에서 수년 전 자신의 평가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즉,
리스크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스턴보고서’에서는 지구 기온이 장기적으로 섭씨 2도 내지 3도까지 상승할 확률이
75%라고 예견했으나 지금은 4도 이상으로 상승할 수 있는 트랙에 접어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것은 지금 “인류가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므로 시급한 대응이 필요하다(‘가디언’ 2013·1·27).
다급한 우려의 목소리는 같은 포럼에 참석한 김용 세계은행 총재에게서도 나왔다. 김용 총재는 기후변화로 인해 “세계 도처에서 물과 식량을 둘러싼 싸움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5년 임기 중 자신의 우선적 과제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중요한 것은 세계은행의 공식적 견해로는 최초로, 기후변화가 인간의 산업소비활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김용 총재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잊고 있다면 그것을 상기시켜주는 일이 자신의 임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이 이 명백한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의지도 용기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실효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국제협약이 성사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자국의 경제성장에 그 협약이 방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9년에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 관련 정상회담에서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 차베스가 명확히 지적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기후가 은행이라면 기후는 벌써 구제되었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차베스는 오늘날 세계를 급속도로 망가뜨리고 있는 금권정치의 본질을 날카롭게 폭로했던 것이다.
나아가서 차베스는 지구환경을 살리려면, 문제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생명을 끝장내는 파괴적인 개발·발전 모델”, 즉 자본주의시스템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는 오늘날 지구를 위험에 빠트려온 책임은 낭비적인 사치와 소비생활을 배타적으로 누리고 있는 세계의 7% 부유층에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생각하면, 차베스는-그리고 몇몇 라틴아메리카 국가 지도자들은-오늘의 정치현실에서 매우 예외적인 존재이다.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정치지도자, 엘리트들은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경제성장 논리에 붙들려 있다. 경제학자 스턴이나 김용 총재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해결방안도 결국은 “녹색경제를 위한 투자 증가” 혹은 “환경친화적 기술개발을 통한 성장”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끝없는 성장이 아니라 물질대사가 원활히 진행되는 순환경제만이 장기적 지속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게 농업현실이다. 오늘날 미국의 경우, 곡물 1칼로리의 생산에 사용하는 화석연료가 10칼로리이다. 비료, 농약, 기계 없이는 안되는 게 근대식 농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먹는 것은 밥이 아니라 석유라고 해야 옳다.
가장 비참한 것은 북한의 경우이다. 북한은 오늘날 가장 폐쇄적이고 빈곤한 천민국가로 떨어져 결국 자위를 위해 핵무장까지 한다는 매우 불합리하고 위험한 길을 선택했다. 이것은 어떤 점에서 강요된 선택이기도 했다. 핵심적 요인의 하나는 1990년대 초 소비에트사회주의권 붕괴 이래의 전면적 농업 괴멸 현상이다. 원래 1970~1980년대 북한은 집약적 화학농업·기계농업이 중심이 된 ‘농업선진국’이었다. 문제는 그게 과도한 석유 의존 농업체제였다는 점이다. 그 결과 소비에트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값싼 석유 공급이 중단되자 순식간에 농업기반이 붕괴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극심한 기아상황, 천민국가, 체제붕괴의 위협, 마침내 핵개발이라는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북한의 곤경은 근대식 농법을 일방적으로 추구해온 산업사회 전체가 조만간 직면할 사태를 미리 앞질러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맹목적인 도시화·산업화 논리에 빠져 극도로 무분별한 방식으로 농민과 농촌을 파괴해온 남한사회의 장래는 심히 불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한한 지구환경에서 무한한 성장이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건만, 사람들이 성장논리를 탈각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한마디로 상상력의 빈곤 때문일 것이다. 기존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바랄 리 없는 기득권자·권력 엘리트들의 마음에 상상력이 싹틀 공간은 사실 협소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변화보다는 자멸”을 택하고 싶을지 모른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큰 비극이자 재앙이다. 지금은 인류사 전체를 통해서도 가장 파괴적이고 어리석은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사회는 자신의 생존
이런 상황에서 세계의 권력엘리트들과 주류 미디어가 기후변화 현상에 대하여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뻔질나게 열리는 엘리트들 간의 국제회의는 최근 들어 기후변화 문제를 거의 단골주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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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르면, 이것은 지금 “인류가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므로 시급한 대응이 필요하다(‘가디언’ 2013·1·27).
다급한 우려의 목소리는 같은 포럼에 참석한 김용 세계은행 총재에게서도 나왔다. 김용 총재는 기후변화로 인해 “세계 도처에서 물과 식량을 둘러싼 싸움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5년 임기 중 자신의 우선적 과제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중요한 것은 세계은행의 공식적 견해로는 최초로, 기후변화가 인간의 산업소비활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김용 총재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잊고 있다면 그것을 상기시켜주는 일이 자신의 임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이 이 명백한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의지도 용기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직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실효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국제협약이 성사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자국의 경제성장에 그 협약이 방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9년에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 관련 정상회담에서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 차베스가 명확히 지적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기후가 은행이라면 기후는 벌써 구제되었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차베스는 오늘날 세계를 급속도로 망가뜨리고 있는 금권정치의 본질을 날카롭게 폭로했던 것이다.
나아가서 차베스는 지구환경을 살리려면, 문제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생명을 끝장내는 파괴적인 개발·발전 모델”, 즉 자본주의시스템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는 오늘날 지구를 위험에 빠트려온 책임은 낭비적인 사치와 소비생활을 배타적으로 누리고 있는 세계의 7% 부유층에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생각하면, 차베스는-그리고 몇몇 라틴아메리카 국가 지도자들은-오늘의 정치현실에서 매우 예외적인 존재이다.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정치지도자, 엘리트들은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경제성장 논리에 붙들려 있다. 경제학자 스턴이나 김용 총재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해결방안도 결국은 “녹색경제를 위한 투자 증가” 혹은 “환경친화적 기술개발을 통한 성장”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끝없는 성장이 아니라 물질대사가 원활히 진행되는 순환경제만이 장기적 지속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게 농업현실이다. 오늘날 미국의 경우, 곡물 1칼로리의 생산에 사용하는 화석연료가 10칼로리이다. 비료, 농약, 기계 없이는 안되는 게 근대식 농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먹는 것은 밥이 아니라 석유라고 해야 옳다.
가장 비참한 것은 북한의 경우이다. 북한은 오늘날 가장 폐쇄적이고 빈곤한 천민국가로 떨어져 결국 자위를 위해 핵무장까지 한다는 매우 불합리하고 위험한 길을 선택했다. 이것은 어떤 점에서 강요된 선택이기도 했다. 핵심적 요인의 하나는 1990년대 초 소비에트사회주의권 붕괴 이래의 전면적 농업 괴멸 현상이다. 원래 1970~1980년대 북한은 집약적 화학농업·기계농업이 중심이 된 ‘농업선진국’이었다. 문제는 그게 과도한 석유 의존 농업체제였다는 점이다. 그 결과 소비에트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값싼 석유 공급이 중단되자 순식간에 농업기반이 붕괴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극심한 기아상황, 천민국가, 체제붕괴의 위협, 마침내 핵개발이라는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북한의 곤경은 근대식 농법을 일방적으로 추구해온 산업사회 전체가 조만간 직면할 사태를 미리 앞질러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맹목적인 도시화·산업화 논리에 빠져 극도로 무분별한 방식으로 농민과 농촌을 파괴해온 남한사회의 장래는 심히 불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한한 지구환경에서 무한한 성장이라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건만, 사람들이 성장논리를 탈각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한마디로 상상력의 빈곤 때문일 것이다. 기존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바랄 리 없는 기득권자·권력 엘리트들의 마음에 상상력이 싹틀 공간은 사실 협소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변화보다는 자멸”을 택하고 싶을지 모른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큰 비극이자 재앙이다. 지금은 인류사 전체를 통해서도 가장 파괴적이고 어리석은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사회는 자신의 생존
발판을 밤낮없이 파괴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락으로
떨어질 순간이 왔는데도 이른바 엘리트들은 여전히 전도몽상(顚倒夢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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