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계승과 통일운동에 헌신한 청명 임창순 선생
2015.03.13 0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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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계승과 통일운동에 헌신한 청명 임창순
선생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 1914-1999) 선생은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법화리(法禾里) 버구실에서 아버지 임원재(任元宰)와 어머니 김영례(金永禮)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4세 때 조부 임경호(任敬鎬)로부터 천자문을 배웠고, 14세 때 보은의 서당 관선정(觀善亭)에 들어가 겸산(兼山)홍치유(洪致裕)선생에게 6년간 한학을 수학하였다. 이후 대구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해방 후 중등교원 자격시험에 응시, 국사·국어 두 과목의 교사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경북중학교·경북고녀(경북여중)의 교사를 거쳐 대구사범 동양의약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1954년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재직 중에 4·19혁명이 일어나자 ‘4·25 교수데모’를 주도해 성명서에 “대통령은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문구를 넣을 것을 주장하고,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 글씨를 직접 썼다.
4·19혁명 이후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에 통일방안 심의위원으로 참가해 활동하였다.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직후 이 단체에 참가한 것이 문제가 되어 구속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해직되었다. 1964년에는 ‘인민혁명단’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한차례 옥고를 치렀다.
1963년 11월 3일 강만길·성대경 교수 등의 채근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동에 한문교육기관인 ‘태동고전연구소’를 창설하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문강좌를 개설하였다. 수표동, 당주동 등 독지가가 내주는 공간을 전전했다. 이 시기 강습소를 거쳐 간 강만길(국사), 성대경(한문학) 교수 이외에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국사), 조동일 서울대 교수(국문학), 정옥자 서울대 교수(조선사상사), 변영섭 고려대 교수(고고미술사학), 은정희 서울교대 교수(불교철학) 등은 훗날 국학의 기초를 놓았다.
임창순 선생은 1972년에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에 살림집인 지곡정사를 건립했다. 그리고 1976년에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지원을 받아 전문가 과정의 기숙학당(지곡서당)을 설립했다. 지곡서당은 매년 10명씩 연수생을 선발해 3∼5년간 가르치고 먹이고 재우고, 장학금까지 주면서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사서삼경을 비롯한 고전의 암송이 유일한 과제였다. 서당에서 강(講)은 송(頌)이었다.
연수생들의 소망은 개인방을 갖는 것이었다. 2인1실만 써도 원이 없었다. 앞선 시간에 배운 것은 반드시 다음 시간에 암송해야 했다. 1학년의 경우 사서(대학·논어·맹자·중용)를 암송하지 못하면 출교당했다. 여럿이 한방을 쓰다 보니 소리내어 글 읽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연수생들은 필사적으로 외웠다.
1981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 지원은 끊겼다. 그렇지만 전통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1985년에 태동고전연구소 부지와 서적 등 일체를 한림대학교에 기증하고, 연구소의 운영을 학교에 맡겼다. 이로써 한림대학교 부설태동고전연구소로 발족하고, 1999년 4월 12일 작고할 때까지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연구인재를 배출하였다.
그런데 한림대가 지원을 포기하고 신입생도 뽑지 않아 서당에선 2014년 말부터 글 읽는 소리가 끊겼다.
임창순 선생의 제자들은 국학 개척의 간성이 되었다. 230여명 가운데 100여명이 대학에서 역사, 문학, 미술사, 사상사, 경제사 등 각 분야에서 후학들을 가르친다. 30여명은 연구소나 박물관에서 근무하며, 70여명은 석·박사 과정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임창순 선생은 1971년 문화부 문화재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1997년 사임하기까지 두 차례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국서지학회를 재창립해 두 번에 걸쳐서 회장을 맡아 계간 『서지학보』를 발행하였다. 그리고 세 차례 서예전시회를 가졌으며, 1990년도 제2회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하였다.『한국금석집성(韓國金石集成)』을 비롯해 금석학에 대한 저술을 남겼으며,『한국의 서예』 등 서예 및 서예사에 관한 여러 편의 저술을 남겼다.
『당시정해(唐詩精解)』·『한문강좌(漢文講座)』를 저술했고, 「무술오작비소고(戊戌塢作碑少考)」 등 한국사 관련 논문과 약 30여 편의 해제를 썼다. 민족문화추진회 고전번역사업에 참여해 『동문선(東文選)』 등을 공역했으며, 『국역성호질서』 등을 감수하였다.
1979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1995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으로부터 명예문학박사를 받았다. 1998년에는 사재를 모두 출연해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통일운동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청명문화재단을 설립하였다.
<참고문헌>
1. 이이화,「이 사람이 사는 법-학자 임창순씨」,『샘이 깊은 물』, 1986년 4월호.
2. 김재영,「특별기획 원로서예가탐방-청명 임창순 선생」,『서통』26, 1991년 9월호.
3. 이이화,「4·25교수데모에 앞장선 한학·금석문의 대가」,『역사비평』, 1992년 여름호.
4. 청명선생추모사업회,『학의 몸짓으로 높이 멀리』, 한길사, 2000.
5. 곽병찬, “이제는 끊긴, 지곡서당 글 읽는 소리”, 한겨레신문, 2015.3.11일자. 29면.
<필자 신상구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등 60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 1914-1999) 선생은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 법화리(法禾里) 버구실에서 아버지 임원재(任元宰)와 어머니 김영례(金永禮)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4세 때 조부 임경호(任敬鎬)로부터 천자문을 배웠고, 14세 때 보은의 서당 관선정(觀善亭)에 들어가 겸산(兼山)홍치유(洪致裕)선생에게 6년간 한학을 수학하였다. 이후 대구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해방 후 중등교원 자격시험에 응시, 국사·국어 두 과목의 교사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경북중학교·경북고녀(경북여중)의 교사를 거쳐 대구사범 동양의약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1954년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되었다.
성균관대학교 재직 중에 4·19혁명이 일어나자 ‘4·25 교수데모’를 주도해 성명서에 “대통령은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문구를 넣을 것을 주장하고,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 글씨를 직접 썼다.
4·19혁명 이후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에 통일방안 심의위원으로 참가해 활동하였다.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직후 이 단체에 참가한 것이 문제가 되어 구속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해직되었다. 1964년에는 ‘인민혁명단’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한차례 옥고를 치렀다.
1963년 11월 3일 강만길·성대경 교수 등의 채근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동에 한문교육기관인 ‘태동고전연구소’를 창설하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문강좌를 개설하였다. 수표동, 당주동 등 독지가가 내주는 공간을 전전했다. 이 시기 강습소를 거쳐 간 강만길(국사), 성대경(한문학) 교수 이외에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국사), 조동일 서울대 교수(국문학), 정옥자 서울대 교수(조선사상사), 변영섭 고려대 교수(고고미술사학), 은정희 서울교대 교수(불교철학) 등은 훗날 국학의 기초를 놓았다.
임창순 선생은 1972년에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에 살림집인 지곡정사를 건립했다. 그리고 1976년에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지원을 받아 전문가 과정의 기숙학당(지곡서당)을 설립했다. 지곡서당은 매년 10명씩 연수생을 선발해 3∼5년간 가르치고 먹이고 재우고, 장학금까지 주면서 다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사서삼경을 비롯한 고전의 암송이 유일한 과제였다. 서당에서 강(講)은 송(頌)이었다.
연수생들의 소망은 개인방을 갖는 것이었다. 2인1실만 써도 원이 없었다. 앞선 시간에 배운 것은 반드시 다음 시간에 암송해야 했다. 1학년의 경우 사서(대학·논어·맹자·중용)를 암송하지 못하면 출교당했다. 여럿이 한방을 쓰다 보니 소리내어 글 읽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연수생들은 필사적으로 외웠다.
1981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 지원은 끊겼다. 그렇지만 전통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1985년에 태동고전연구소 부지와 서적 등 일체를 한림대학교에 기증하고, 연구소의 운영을 학교에 맡겼다. 이로써 한림대학교 부설태동고전연구소로 발족하고, 1999년 4월 12일 작고할 때까지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연구인재를 배출하였다.
그런데 한림대가 지원을 포기하고 신입생도 뽑지 않아 서당에선 2014년 말부터 글 읽는 소리가 끊겼다.
임창순 선생의 제자들은 국학 개척의 간성이 되었다. 230여명 가운데 100여명이 대학에서 역사, 문학, 미술사, 사상사, 경제사 등 각 분야에서 후학들을 가르친다. 30여명은 연구소나 박물관에서 근무하며, 70여명은 석·박사 과정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임창순 선생은 1971년 문화부 문화재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1997년 사임하기까지 두 차례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국서지학회를 재창립해 두 번에 걸쳐서 회장을 맡아 계간 『서지학보』를 발행하였다. 그리고 세 차례 서예전시회를 가졌으며, 1990년도 제2회 대한민국서예대전 심사위원장을 역임하였다.『한국금석집성(韓國金石集成)』을 비롯해 금석학에 대한 저술을 남겼으며,『한국의 서예』 등 서예 및 서예사에 관한 여러 편의 저술을 남겼다.
『당시정해(唐詩精解)』·『한문강좌(漢文講座)』를 저술했고, 「무술오작비소고(戊戌塢作碑少考)」 등 한국사 관련 논문과 약 30여 편의 해제를 썼다. 민족문화추진회 고전번역사업에 참여해 『동문선(東文選)』 등을 공역했으며, 『국역성호질서』 등을 감수하였다.
1979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1995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으로부터 명예문학박사를 받았다. 1998년에는 사재를 모두 출연해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통일운동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청명문화재단을 설립하였다.
<참고문헌>
1. 이이화,「이 사람이 사는 법-학자 임창순씨」,『샘이 깊은 물』, 1986년 4월호.
2. 김재영,「특별기획 원로서예가탐방-청명 임창순 선생」,『서통』26, 1991년 9월호.
3. 이이화,「4·25교수데모에 앞장선 한학·금석문의 대가」,『역사비평』, 1992년 여름호.
4. 청명선생추모사업회,『학의 몸짓으로 높이 멀리』, 한길사, 2000.
5. 곽병찬, “이제는 끊긴, 지곡서당 글 읽는 소리”, 한겨레신문, 2015.3.11일자. 29면.
<필자 신상구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등 60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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