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과 통일 영웅 이야기
2015.09.10 03:55 |
조회 10449
독립과 통일 영웅 이야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1898년 경남 밀양 출생의 김원봉(金元鳳, 1898~1958)과 1901년 경북 칠곡 출생의 이명건(李命鍵), 그리고 1893년
경남 동래 출생의 김두전(金枓全) 세 친구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뛰어들기로 하고, 김원봉의 고모부인 백민(白民) 황상규(黃尙奎,
1890-1931)를 찾아갔다. 백민 황상규는 친일모리배 처단으로 유명한 대한광복단 단원이었다. 백민 황상규는 ‘조국을 잊지 말라’며 세
친구에게 이런 이름을 주었다. 若山(산처럼, 김원봉), 若水(물처럼, 김두전), 如星(별처럼, 이명건). 그 자신이 조국의 한 줌 흙이고자 했던
백민 황상규 다운 작명이었다.
이듬해 이들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모색할 때 3·1운동이 일어났다. 민중의 거대한 힘은 세 친구를 전율케 했고, 일제의 악랄한 진압은 피를 끓게 했다. 약수 김두전과 여성 이명건은 “국내에서 인민 대중을 조직해 싸워야 한다”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약산 김원봉은 “무장력을 갖추지 못하면 독립은 이뤄질 수 없다”며 길림의 의군부를 거쳐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한다.
약산 김원봉은 6개월간 무기와 폭탄 제조 및 조작법과 군사훈련 등을 받고 백민 황상규의 지도 아래 의열단을 결성한다. 백민 황선규에 이어 약산 김원봉은 일제의 고위관료, 장교, 매국자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의열단 의백이 되었다. 이후 약산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임시정부의 2인자인 군무부장을 역임했다.
여성 이건명은 대구에서 혜성단을 조직해 친일파들을 겁박해 독립자금을 갹출하려 하다가 체포돼 3년간 복역했다. 노동자 조직화에 관심이 컸던 약수는 조선노동공제회를 결성했다가 구속된다. 출소 후 일본으로 건너간 약수 김두전은 무정부주의를 거쳐 사회주의 노선을 걷게 되고, 여성 이명건은 민족통일전선 노선을 걷는다. 약수 김두전은 1924년 귀국해 조선노농총동맹을 창설하고, 이듬해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하다가 붙잡혀 6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여성 이명건은 조선의 현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숫자조선연구>(1~5권)를 출간하고, 1936년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돼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다.
해방이 되었다. 세 친구는 서울에서 만나, 따로 또 같이 완전한 해방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길을 나섰다. 형세는 또 다른 식민체제였고, 정세는 일찌감치 분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 친구의 선택은 달랐다. 그러나 좌우합작이라는 중간목표와 완전한 통일국가라는 최종목표는 같았다.
약산 김원봉은 좌우합작을 기피하는 임시정부 쪽에서 떠나 인민공화당을 창당해 합작의 고리 구실을 하려 한다. 여성 이명건은 몽양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 등 중도노선을 걸었으며 좌우합작을 위해 좌파 3당의 합당에 가담하지 않았다. 1947년 몽양의 암살과 함께 좌우합작 노선은 피살당했다. 약산 김원봉과 여성 이명건은 좌절했다. 설상가상 약산 김원봉은 일제의 고등경찰이었던 노덕술(盧德述, 1899-1968)에게 체포돼 능욕을 당한다. 약산 김원봉과 여성 이명건은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때 북으로 가 돌아오지 않았다.
약수 김두전은 우파인 한국민주당에 가담했다. 오른쪽에서 좌우합작의 불씨를 살리려 했다. 그러나 한민당은 좌우합작을 거부했고 약수 김두전은 당을 떠나 합작을 추구했던 우사 (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의 진보적 민족주의 노선에 합류했다. 5·10 총선 때 동래에서 당선되고 초대 국회부의장에 올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에 앞장선다. 그러나 이승만 일당이 조작한 남로당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엮여 투옥된다. 사실 약수는 박헌영의 남로당과는 물과 기름 사이였다. 6·25 때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출옥해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 권력도, 세 친구의 꿈이 두려웠다. 외세로부터 완전한 독립과 평화통일! 게다가 셋은 김일성에게 전쟁 도발 책임도 물으려 했다. 약산 김원봉은 국가검열상, 내각 노동상 등을 역임했지만, 결국 1958년 11월 숙청당했다. 김일성대 역사강좌장을 역임했던 여성 이명건도 약산 김원봉과 함께 공식 역사에서 사라졌다. 두 사람은 무덤조차 모른다. 약수 김두전은 평화통일을 촉구하다가 1959년 반당반혁명분자로 몰려 숙청됐다.
윤동주(尹東柱, 1918-1994)와 늦봄 문익환(文益煥, 1918-1994)은 중국 연변자치주 용정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함께 명동소학교를 다녔고, 은진중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용정 광명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릿쿄대로, 늦봄 문익환은 일본 니혼신학교로 유학을 갔다. 장공 張俊河(1918-1975는 평안북도 의주 고성면에서 태어나 숭실중학교를 거쳐 신성중학교를 졸업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먼저 온 늦봄 문익환과 함께 니혼신학교에서 수학했다.
불운은 윤동주에게 먼저 찾아왔다. 그는 1943년 ‘재쿄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에 걸려들어 후쿠오카감옥에 수감됐다. 그곳에서 생체실험이 의심되는 주사를 지속적으로 맞던 끝에 1945년 2월 옥사했다. 장공 장분하는 요시찰 대상인 부친에게 피해가 우려돼 학병에 입대했고, 중국 전선에 배치되자마자 탈출해 6천리 장정 끝에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해방 후 장공 장준하는 목회자의 길을 가려 했지만 이승만, 박정희 독재 체제는 그냥 놔두지 않았다. 장공 장준하는 이번엔 이승만, 박정희에 맞서 민주화의 장정에 올랐다. 결국 1975년 8월 경기 포천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저명한 신학자가 되었던 늦봄 문익환은 장준하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강단에서 내려왔다. “이제 내가 죽을 차례”, “네가 가다가 못 간 길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1994년 1월 별세하기까지 19년 동안 그는 모두 8차례 11년간 수감됐다. 1989년엔 죽음을 무릅쓰고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까지 했다. 그러나 북쪽은 범민련 남쪽본부 재편 문제를 놓고 그를 안기부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통일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그의 신념도 그렇게 남과 북에서 거부를 당했다.
그래도 남행한 세 친구는 다행히 유택이라도 마련했다. 윤동주는 용정의 동산 기독교인 묘지에 안장됐다. 장례예배를 집전한 이는 늦봄 문익환의 부친 문재린 목사였다. 학교 동창들은 아쉬움을 이렇게 비명에 새겼다. “춘풍도 매정하여라, 열매도 맺기 전에 꽃이 지었네….” 늦봄은 일흔을 앞두고 이런 글을 보냈다. “…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 너마저 늙어간다면 / 이 땅의 꽃잎들 /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동주야’에서)
늦봄 문익환은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그의 작고 소식을 듣고 이번엔 고은 시인이 주저앉았다. “…오로지 당신은 조국과 겨레가 하나됨을 위하여 온몸의 세월을 다 바쳤으니 당신의 이름은 어느덧 겨레의 가슴이 되어, 이윽고 먼동 트는 아침으로 열리고 있거니….” 찢어지게 가난했던 장공 장준하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으로 경기도 파주 천주교공원묘지에 유택을 마련했다. “…비록 말 못 하는 돌부리 풀뿌리여,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증언하리라.” 지인들은 사고 현장에 세운 추모비에서 이렇게 속울음을 삼켰다.
남북한의 불의한 권력은 세 친구들을 죽게 했고, 지금도 지우려 한다. 그러나 어찌 어둠이 빛을 가릴까. 비록 만남은 보잘것없었지만, 그들이 걸어간 길은 위대했다. 그들의 운명은 비극적이었지만, 우정은 창연하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세 친구들의 독립과 통일 유지를 잘 받들어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반드시 쟁취하기를 기원해 본다.
<참고문헌>
1. 곽병찬, “조국의 시와 별이 된 세 친구들”, 한겨레신문, 2015.9.9일자. 29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2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이듬해 이들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모색할 때 3·1운동이 일어났다. 민중의 거대한 힘은 세 친구를 전율케 했고, 일제의 악랄한 진압은 피를 끓게 했다. 약수 김두전과 여성 이명건은 “국내에서 인민 대중을 조직해 싸워야 한다”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약산 김원봉은 “무장력을 갖추지 못하면 독립은 이뤄질 수 없다”며 길림의 의군부를 거쳐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한다.
약산 김원봉은 6개월간 무기와 폭탄 제조 및 조작법과 군사훈련 등을 받고 백민 황상규의 지도 아래 의열단을 결성한다. 백민 황선규에 이어 약산 김원봉은 일제의 고위관료, 장교, 매국자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의열단 의백이 되었다. 이후 약산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임시정부의 2인자인 군무부장을 역임했다.
여성 이건명은 대구에서 혜성단을 조직해 친일파들을 겁박해 독립자금을 갹출하려 하다가 체포돼 3년간 복역했다. 노동자 조직화에 관심이 컸던 약수는 조선노동공제회를 결성했다가 구속된다. 출소 후 일본으로 건너간 약수 김두전은 무정부주의를 거쳐 사회주의 노선을 걷게 되고, 여성 이명건은 민족통일전선 노선을 걷는다. 약수 김두전은 1924년 귀국해 조선노농총동맹을 창설하고, 이듬해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하다가 붙잡혀 6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여성 이명건은 조선의 현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숫자조선연구>(1~5권)를 출간하고, 1936년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돼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다.
해방이 되었다. 세 친구는 서울에서 만나, 따로 또 같이 완전한 해방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길을 나섰다. 형세는 또 다른 식민체제였고, 정세는 일찌감치 분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 친구의 선택은 달랐다. 그러나 좌우합작이라는 중간목표와 완전한 통일국가라는 최종목표는 같았다.
약산 김원봉은 좌우합작을 기피하는 임시정부 쪽에서 떠나 인민공화당을 창당해 합작의 고리 구실을 하려 한다. 여성 이명건은 몽양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 등 중도노선을 걸었으며 좌우합작을 위해 좌파 3당의 합당에 가담하지 않았다. 1947년 몽양의 암살과 함께 좌우합작 노선은 피살당했다. 약산 김원봉과 여성 이명건은 좌절했다. 설상가상 약산 김원봉은 일제의 고등경찰이었던 노덕술(盧德述, 1899-1968)에게 체포돼 능욕을 당한다. 약산 김원봉과 여성 이명건은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때 북으로 가 돌아오지 않았다.
약수 김두전은 우파인 한국민주당에 가담했다. 오른쪽에서 좌우합작의 불씨를 살리려 했다. 그러나 한민당은 좌우합작을 거부했고 약수 김두전은 당을 떠나 합작을 추구했던 우사 (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의 진보적 민족주의 노선에 합류했다. 5·10 총선 때 동래에서 당선되고 초대 국회부의장에 올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에 앞장선다. 그러나 이승만 일당이 조작한 남로당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엮여 투옥된다. 사실 약수는 박헌영의 남로당과는 물과 기름 사이였다. 6·25 때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출옥해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 권력도, 세 친구의 꿈이 두려웠다. 외세로부터 완전한 독립과 평화통일! 게다가 셋은 김일성에게 전쟁 도발 책임도 물으려 했다. 약산 김원봉은 국가검열상, 내각 노동상 등을 역임했지만, 결국 1958년 11월 숙청당했다. 김일성대 역사강좌장을 역임했던 여성 이명건도 약산 김원봉과 함께 공식 역사에서 사라졌다. 두 사람은 무덤조차 모른다. 약수 김두전은 평화통일을 촉구하다가 1959년 반당반혁명분자로 몰려 숙청됐다.
윤동주(尹東柱, 1918-1994)와 늦봄 문익환(文益煥, 1918-1994)은 중국 연변자치주 용정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함께 명동소학교를 다녔고, 은진중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용정 광명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릿쿄대로, 늦봄 문익환은 일본 니혼신학교로 유학을 갔다. 장공 張俊河(1918-1975는 평안북도 의주 고성면에서 태어나 숭실중학교를 거쳐 신성중학교를 졸업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먼저 온 늦봄 문익환과 함께 니혼신학교에서 수학했다.
불운은 윤동주에게 먼저 찾아왔다. 그는 1943년 ‘재쿄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에 걸려들어 후쿠오카감옥에 수감됐다. 그곳에서 생체실험이 의심되는 주사를 지속적으로 맞던 끝에 1945년 2월 옥사했다. 장공 장분하는 요시찰 대상인 부친에게 피해가 우려돼 학병에 입대했고, 중국 전선에 배치되자마자 탈출해 6천리 장정 끝에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해방 후 장공 장준하는 목회자의 길을 가려 했지만 이승만, 박정희 독재 체제는 그냥 놔두지 않았다. 장공 장준하는 이번엔 이승만, 박정희에 맞서 민주화의 장정에 올랐다. 결국 1975년 8월 경기 포천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저명한 신학자가 되었던 늦봄 문익환은 장준하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강단에서 내려왔다. “이제 내가 죽을 차례”, “네가 가다가 못 간 길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1994년 1월 별세하기까지 19년 동안 그는 모두 8차례 11년간 수감됐다. 1989년엔 죽음을 무릅쓰고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까지 했다. 그러나 북쪽은 범민련 남쪽본부 재편 문제를 놓고 그를 안기부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통일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그의 신념도 그렇게 남과 북에서 거부를 당했다.
그래도 남행한 세 친구는 다행히 유택이라도 마련했다. 윤동주는 용정의 동산 기독교인 묘지에 안장됐다. 장례예배를 집전한 이는 늦봄 문익환의 부친 문재린 목사였다. 학교 동창들은 아쉬움을 이렇게 비명에 새겼다. “춘풍도 매정하여라, 열매도 맺기 전에 꽃이 지었네….” 늦봄은 일흔을 앞두고 이런 글을 보냈다. “…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 너마저 늙어간다면 / 이 땅의 꽃잎들 /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동주야’에서)
늦봄 문익환은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그의 작고 소식을 듣고 이번엔 고은 시인이 주저앉았다. “…오로지 당신은 조국과 겨레가 하나됨을 위하여 온몸의 세월을 다 바쳤으니 당신의 이름은 어느덧 겨레의 가슴이 되어, 이윽고 먼동 트는 아침으로 열리고 있거니….” 찢어지게 가난했던 장공 장준하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으로 경기도 파주 천주교공원묘지에 유택을 마련했다. “…비록 말 못 하는 돌부리 풀뿌리여,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증언하리라.” 지인들은 사고 현장에 세운 추모비에서 이렇게 속울음을 삼켰다.
남북한의 불의한 권력은 세 친구들을 죽게 했고, 지금도 지우려 한다. 그러나 어찌 어둠이 빛을 가릴까. 비록 만남은 보잘것없었지만, 그들이 걸어간 길은 위대했다. 그들의 운명은 비극적이었지만, 우정은 창연하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세 친구들의 독립과 통일 유지를 잘 받들어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반드시 쟁취하기를 기원해 본다.
<참고문헌>
1. 곽병찬, “조국의 시와 별이 된 세 친구들”, 한겨레신문, 2015.9.9일자. 29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2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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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5
우리나라의 낙태 현황
2012.07.06,
조회 18513
[자유게시글]
환단스토리
(네이트 지식인 답변)
우리나라의 낙태조사 결과와 외국의 조사결과를 궁금해 하고 있군요. 먼저, 우리나라에서 낙태되는 아기의 수는 1년에 최소한 150만 명은 낙태된다고 합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200만 명까지...
1134
구한말 갑신정변을 주도한 고우 김옥균 선생의 출생지 논쟁
2012.07.04,
조회 11771
[자유게시글]
신상구
구한말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고우 김옥균의 생애와 출생지 논쟁
충청문화역사연구소 소장(천안중 교사, 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신상구(辛相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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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 도전 어플 개선사항
2012.07.04,
조회 12794
[자유게시글]
봉황빛
인천00도장 라병영성도님이 만드셨다고 하더군요.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그런데 조금 개선을 하면 좋겠더군요.1. 00편 000장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습니다.2. 갤럭시탭에서 화면이 작게 보입니다. 꽉찬...
1132
도전 안드로이드 앱이 개발되어 있다는데 마켓에 빨리 올려주세요
[2]
2012.06.28,
조회 11460
[자유게시글]
봉황빛
개별적으로 인터넷팀으로 연락하여 앱을 받으면 번거롭지 않을까요?혹시라도 완성도가 떨어져서 마켓에 안올리는 것이면 일단 올려놓고 버전업시키면 되리라 생가됩니다.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심지어 대순진...
1131
공부하다 땅에 떨어지면...
[2]
2012.06.26,
조회 10696
[자유게시글]
초가집
증산도를 만나고 나서 조상님을 알게되었고 증산도를 만나서 인류의 진리를 알게되었고 증산도를 만나서 우주의 진리을 알게되었습니다. 태사부님, 사부님의 진리의 가르침으로 냇가의 송사리떼처럼 단지 먹기위해서...
1130
상담 신청합니다.
[1]
2012.06.21,
조회 9988
[자유게시글]
엘리
제가 지금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4년동안 영적인 고문을 받고 있습니다.
2009년 어느수녀회에서 기도모임중 이상한 영이 4번이나 제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 후사람들 안에 있는 영...
1129
불완전한 지식들..
2012.06.12,
조회 12192
[자유게시글]
우주의꿈
아이폰3Gs가 생긴 이후로 메모를 이용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머리속에 거품처럼 떠오른 생각들 중에 그래도 괜찮다 싶은
것들을 메모에 옮기다 보니 많이도 적었다.
며칠전 지식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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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 안드로이드 앱으로 만들어 주세요.
[2]
2012.06.01,
조회 11695
[자유게시글]
봉황빛
스마트폰 대중화시대를 맞이하여
도전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미 늦은 감이 있습니다.
1127
좋은공부 많이합니다.
[2]
2012.06.01,
조회 10501
[자유게시글]
다정불심
증산도 방송을 통해서 좋은공부를 많이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상고사에 대한 공부는 아주 흥미가 진진합니다, 감사합니다.
1126
천부경해석의 기본 틀 2
2012.05.29,
조회 8207
[역사]
하심
4>천부경 해석의 기본 틀
1)개요
천부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려운 경전이 아니라고 본다.
그 해석방법만 알면 우주의 진리를 너무도 쉽고 간단한 원리로 고도로 압축해 놓은 매우 아름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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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무령왕, 日 역사를 뒤집다
2012.05.26,
조회 5844
[역사]
만국활계
최종편집 2012.05.25 10:00:43 [뉴델리]
죽은 무령왕, 日 역사를 뒤집다
진실의 기록 ‘묘지석’의 한글자 ‘붕(崩)’의 힘!그것은 우연이었다.
벌써 41년전 1971년 여름 7월 5일, 공주 송산리 고분단지에...
1124
팔괘와 역은 고대한국인들의 기호문자다.
2012.05.19,
조회 5829
[역사]
하심
계절이 옵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계절이 옵니다.
빼앗긴 산들에도
봄은 오느냐고
그렇게 가슴알음 새로 노래하던
육사의 연가는
먼 날의 이야기처럼 되었지요
예나 지금이나
어김없는 계절은...
1123
서양으로 건너간 팔괘의 원리
[1]
2012.05.16,
조회 11186
[자유게시글]
만국활계
서양으로 건너간 팔괘의 원리아인슈타인이 자기의 학설에 붙일 명칭을 고심하다가 팔괘의 효를 구성하는 음양(陰陽)개념에서 힌트를 얻어 ‘Relativity’(상대성) 이라는 단어를 가려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1122
칭키스칸의 인생속에서 역경
2012.05.16,
조회 4783
[역사]
만국활계
역경아, 이번엔 어떤 선물을 내게 주려고 왔느냐? 칭기즈칸의 일생을 돌아보면 그는 늘 역경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인다. 마치 "역경을 달라. 역경이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경만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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