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과 통일 영웅 이야기
2015.09.10 03:55 |
조회 10446
독립과 통일 영웅 이야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1898년 경남 밀양 출생의 김원봉(金元鳳, 1898~1958)과 1901년 경북 칠곡 출생의 이명건(李命鍵), 그리고 1893년
경남 동래 출생의 김두전(金枓全) 세 친구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뛰어들기로 하고, 김원봉의 고모부인 백민(白民) 황상규(黃尙奎,
1890-1931)를 찾아갔다. 백민 황상규는 친일모리배 처단으로 유명한 대한광복단 단원이었다. 백민 황상규는 ‘조국을 잊지 말라’며 세
친구에게 이런 이름을 주었다. 若山(산처럼, 김원봉), 若水(물처럼, 김두전), 如星(별처럼, 이명건). 그 자신이 조국의 한 줌 흙이고자 했던
백민 황상규 다운 작명이었다.
이듬해 이들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모색할 때 3·1운동이 일어났다. 민중의 거대한 힘은 세 친구를 전율케 했고, 일제의 악랄한 진압은 피를 끓게 했다. 약수 김두전과 여성 이명건은 “국내에서 인민 대중을 조직해 싸워야 한다”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약산 김원봉은 “무장력을 갖추지 못하면 독립은 이뤄질 수 없다”며 길림의 의군부를 거쳐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한다.
약산 김원봉은 6개월간 무기와 폭탄 제조 및 조작법과 군사훈련 등을 받고 백민 황상규의 지도 아래 의열단을 결성한다. 백민 황선규에 이어 약산 김원봉은 일제의 고위관료, 장교, 매국자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의열단 의백이 되었다. 이후 약산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임시정부의 2인자인 군무부장을 역임했다.
여성 이건명은 대구에서 혜성단을 조직해 친일파들을 겁박해 독립자금을 갹출하려 하다가 체포돼 3년간 복역했다. 노동자 조직화에 관심이 컸던 약수는 조선노동공제회를 결성했다가 구속된다. 출소 후 일본으로 건너간 약수 김두전은 무정부주의를 거쳐 사회주의 노선을 걷게 되고, 여성 이명건은 민족통일전선 노선을 걷는다. 약수 김두전은 1924년 귀국해 조선노농총동맹을 창설하고, 이듬해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하다가 붙잡혀 6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여성 이명건은 조선의 현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숫자조선연구>(1~5권)를 출간하고, 1936년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돼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다.
해방이 되었다. 세 친구는 서울에서 만나, 따로 또 같이 완전한 해방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길을 나섰다. 형세는 또 다른 식민체제였고, 정세는 일찌감치 분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 친구의 선택은 달랐다. 그러나 좌우합작이라는 중간목표와 완전한 통일국가라는 최종목표는 같았다.
약산 김원봉은 좌우합작을 기피하는 임시정부 쪽에서 떠나 인민공화당을 창당해 합작의 고리 구실을 하려 한다. 여성 이명건은 몽양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 등 중도노선을 걸었으며 좌우합작을 위해 좌파 3당의 합당에 가담하지 않았다. 1947년 몽양의 암살과 함께 좌우합작 노선은 피살당했다. 약산 김원봉과 여성 이명건은 좌절했다. 설상가상 약산 김원봉은 일제의 고등경찰이었던 노덕술(盧德述, 1899-1968)에게 체포돼 능욕을 당한다. 약산 김원봉과 여성 이명건은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때 북으로 가 돌아오지 않았다.
약수 김두전은 우파인 한국민주당에 가담했다. 오른쪽에서 좌우합작의 불씨를 살리려 했다. 그러나 한민당은 좌우합작을 거부했고 약수 김두전은 당을 떠나 합작을 추구했던 우사 (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의 진보적 민족주의 노선에 합류했다. 5·10 총선 때 동래에서 당선되고 초대 국회부의장에 올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에 앞장선다. 그러나 이승만 일당이 조작한 남로당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엮여 투옥된다. 사실 약수는 박헌영의 남로당과는 물과 기름 사이였다. 6·25 때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출옥해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 권력도, 세 친구의 꿈이 두려웠다. 외세로부터 완전한 독립과 평화통일! 게다가 셋은 김일성에게 전쟁 도발 책임도 물으려 했다. 약산 김원봉은 국가검열상, 내각 노동상 등을 역임했지만, 결국 1958년 11월 숙청당했다. 김일성대 역사강좌장을 역임했던 여성 이명건도 약산 김원봉과 함께 공식 역사에서 사라졌다. 두 사람은 무덤조차 모른다. 약수 김두전은 평화통일을 촉구하다가 1959년 반당반혁명분자로 몰려 숙청됐다.
윤동주(尹東柱, 1918-1994)와 늦봄 문익환(文益煥, 1918-1994)은 중국 연변자치주 용정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함께 명동소학교를 다녔고, 은진중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용정 광명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릿쿄대로, 늦봄 문익환은 일본 니혼신학교로 유학을 갔다. 장공 張俊河(1918-1975는 평안북도 의주 고성면에서 태어나 숭실중학교를 거쳐 신성중학교를 졸업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먼저 온 늦봄 문익환과 함께 니혼신학교에서 수학했다.
불운은 윤동주에게 먼저 찾아왔다. 그는 1943년 ‘재쿄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에 걸려들어 후쿠오카감옥에 수감됐다. 그곳에서 생체실험이 의심되는 주사를 지속적으로 맞던 끝에 1945년 2월 옥사했다. 장공 장분하는 요시찰 대상인 부친에게 피해가 우려돼 학병에 입대했고, 중국 전선에 배치되자마자 탈출해 6천리 장정 끝에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해방 후 장공 장준하는 목회자의 길을 가려 했지만 이승만, 박정희 독재 체제는 그냥 놔두지 않았다. 장공 장준하는 이번엔 이승만, 박정희에 맞서 민주화의 장정에 올랐다. 결국 1975년 8월 경기 포천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저명한 신학자가 되었던 늦봄 문익환은 장준하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강단에서 내려왔다. “이제 내가 죽을 차례”, “네가 가다가 못 간 길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1994년 1월 별세하기까지 19년 동안 그는 모두 8차례 11년간 수감됐다. 1989년엔 죽음을 무릅쓰고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까지 했다. 그러나 북쪽은 범민련 남쪽본부 재편 문제를 놓고 그를 안기부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통일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그의 신념도 그렇게 남과 북에서 거부를 당했다.
그래도 남행한 세 친구는 다행히 유택이라도 마련했다. 윤동주는 용정의 동산 기독교인 묘지에 안장됐다. 장례예배를 집전한 이는 늦봄 문익환의 부친 문재린 목사였다. 학교 동창들은 아쉬움을 이렇게 비명에 새겼다. “춘풍도 매정하여라, 열매도 맺기 전에 꽃이 지었네….” 늦봄은 일흔을 앞두고 이런 글을 보냈다. “…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 너마저 늙어간다면 / 이 땅의 꽃잎들 /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동주야’에서)
늦봄 문익환은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그의 작고 소식을 듣고 이번엔 고은 시인이 주저앉았다. “…오로지 당신은 조국과 겨레가 하나됨을 위하여 온몸의 세월을 다 바쳤으니 당신의 이름은 어느덧 겨레의 가슴이 되어, 이윽고 먼동 트는 아침으로 열리고 있거니….” 찢어지게 가난했던 장공 장준하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으로 경기도 파주 천주교공원묘지에 유택을 마련했다. “…비록 말 못 하는 돌부리 풀뿌리여,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증언하리라.” 지인들은 사고 현장에 세운 추모비에서 이렇게 속울음을 삼켰다.
남북한의 불의한 권력은 세 친구들을 죽게 했고, 지금도 지우려 한다. 그러나 어찌 어둠이 빛을 가릴까. 비록 만남은 보잘것없었지만, 그들이 걸어간 길은 위대했다. 그들의 운명은 비극적이었지만, 우정은 창연하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세 친구들의 독립과 통일 유지를 잘 받들어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반드시 쟁취하기를 기원해 본다.
<참고문헌>
1. 곽병찬, “조국의 시와 별이 된 세 친구들”, 한겨레신문, 2015.9.9일자. 29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2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이듬해 이들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모색할 때 3·1운동이 일어났다. 민중의 거대한 힘은 세 친구를 전율케 했고, 일제의 악랄한 진압은 피를 끓게 했다. 약수 김두전과 여성 이명건은 “국내에서 인민 대중을 조직해 싸워야 한다”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약산 김원봉은 “무장력을 갖추지 못하면 독립은 이뤄질 수 없다”며 길림의 의군부를 거쳐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한다.
약산 김원봉은 6개월간 무기와 폭탄 제조 및 조작법과 군사훈련 등을 받고 백민 황상규의 지도 아래 의열단을 결성한다. 백민 황선규에 이어 약산 김원봉은 일제의 고위관료, 장교, 매국자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의열단 의백이 되었다. 이후 약산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임시정부의 2인자인 군무부장을 역임했다.
여성 이건명은 대구에서 혜성단을 조직해 친일파들을 겁박해 독립자금을 갹출하려 하다가 체포돼 3년간 복역했다. 노동자 조직화에 관심이 컸던 약수는 조선노동공제회를 결성했다가 구속된다. 출소 후 일본으로 건너간 약수 김두전은 무정부주의를 거쳐 사회주의 노선을 걷게 되고, 여성 이명건은 민족통일전선 노선을 걷는다. 약수 김두전은 1924년 귀국해 조선노농총동맹을 창설하고, 이듬해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하다가 붙잡혀 6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여성 이명건은 조선의 현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숫자조선연구>(1~5권)를 출간하고, 1936년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돼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다.
해방이 되었다. 세 친구는 서울에서 만나, 따로 또 같이 완전한 해방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길을 나섰다. 형세는 또 다른 식민체제였고, 정세는 일찌감치 분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 친구의 선택은 달랐다. 그러나 좌우합작이라는 중간목표와 완전한 통일국가라는 최종목표는 같았다.
약산 김원봉은 좌우합작을 기피하는 임시정부 쪽에서 떠나 인민공화당을 창당해 합작의 고리 구실을 하려 한다. 여성 이명건은 몽양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 등 중도노선을 걸었으며 좌우합작을 위해 좌파 3당의 합당에 가담하지 않았다. 1947년 몽양의 암살과 함께 좌우합작 노선은 피살당했다. 약산 김원봉과 여성 이명건은 좌절했다. 설상가상 약산 김원봉은 일제의 고등경찰이었던 노덕술(盧德述, 1899-1968)에게 체포돼 능욕을 당한다. 약산 김원봉과 여성 이명건은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때 북으로 가 돌아오지 않았다.
약수 김두전은 우파인 한국민주당에 가담했다. 오른쪽에서 좌우합작의 불씨를 살리려 했다. 그러나 한민당은 좌우합작을 거부했고 약수 김두전은 당을 떠나 합작을 추구했던 우사 (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의 진보적 민족주의 노선에 합류했다. 5·10 총선 때 동래에서 당선되고 초대 국회부의장에 올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에 앞장선다. 그러나 이승만 일당이 조작한 남로당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엮여 투옥된다. 사실 약수는 박헌영의 남로당과는 물과 기름 사이였다. 6·25 때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출옥해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 권력도, 세 친구의 꿈이 두려웠다. 외세로부터 완전한 독립과 평화통일! 게다가 셋은 김일성에게 전쟁 도발 책임도 물으려 했다. 약산 김원봉은 국가검열상, 내각 노동상 등을 역임했지만, 결국 1958년 11월 숙청당했다. 김일성대 역사강좌장을 역임했던 여성 이명건도 약산 김원봉과 함께 공식 역사에서 사라졌다. 두 사람은 무덤조차 모른다. 약수 김두전은 평화통일을 촉구하다가 1959년 반당반혁명분자로 몰려 숙청됐다.
윤동주(尹東柱, 1918-1994)와 늦봄 문익환(文益煥, 1918-1994)은 중국 연변자치주 용정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함께 명동소학교를 다녔고, 은진중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용정 광명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릿쿄대로, 늦봄 문익환은 일본 니혼신학교로 유학을 갔다. 장공 張俊河(1918-1975는 평안북도 의주 고성면에서 태어나 숭실중학교를 거쳐 신성중학교를 졸업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먼저 온 늦봄 문익환과 함께 니혼신학교에서 수학했다.
불운은 윤동주에게 먼저 찾아왔다. 그는 1943년 ‘재쿄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에 걸려들어 후쿠오카감옥에 수감됐다. 그곳에서 생체실험이 의심되는 주사를 지속적으로 맞던 끝에 1945년 2월 옥사했다. 장공 장분하는 요시찰 대상인 부친에게 피해가 우려돼 학병에 입대했고, 중국 전선에 배치되자마자 탈출해 6천리 장정 끝에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해방 후 장공 장준하는 목회자의 길을 가려 했지만 이승만, 박정희 독재 체제는 그냥 놔두지 않았다. 장공 장준하는 이번엔 이승만, 박정희에 맞서 민주화의 장정에 올랐다. 결국 1975년 8월 경기 포천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저명한 신학자가 되었던 늦봄 문익환은 장준하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강단에서 내려왔다. “이제 내가 죽을 차례”, “네가 가다가 못 간 길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1994년 1월 별세하기까지 19년 동안 그는 모두 8차례 11년간 수감됐다. 1989년엔 죽음을 무릅쓰고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까지 했다. 그러나 북쪽은 범민련 남쪽본부 재편 문제를 놓고 그를 안기부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통일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그의 신념도 그렇게 남과 북에서 거부를 당했다.
그래도 남행한 세 친구는 다행히 유택이라도 마련했다. 윤동주는 용정의 동산 기독교인 묘지에 안장됐다. 장례예배를 집전한 이는 늦봄 문익환의 부친 문재린 목사였다. 학교 동창들은 아쉬움을 이렇게 비명에 새겼다. “춘풍도 매정하여라, 열매도 맺기 전에 꽃이 지었네….” 늦봄은 일흔을 앞두고 이런 글을 보냈다. “…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 너마저 늙어간다면 / 이 땅의 꽃잎들 /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동주야’에서)
늦봄 문익환은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그의 작고 소식을 듣고 이번엔 고은 시인이 주저앉았다. “…오로지 당신은 조국과 겨레가 하나됨을 위하여 온몸의 세월을 다 바쳤으니 당신의 이름은 어느덧 겨레의 가슴이 되어, 이윽고 먼동 트는 아침으로 열리고 있거니….” 찢어지게 가난했던 장공 장준하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으로 경기도 파주 천주교공원묘지에 유택을 마련했다. “…비록 말 못 하는 돌부리 풀뿌리여,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증언하리라.” 지인들은 사고 현장에 세운 추모비에서 이렇게 속울음을 삼켰다.
남북한의 불의한 권력은 세 친구들을 죽게 했고, 지금도 지우려 한다. 그러나 어찌 어둠이 빛을 가릴까. 비록 만남은 보잘것없었지만, 그들이 걸어간 길은 위대했다. 그들의 운명은 비극적이었지만, 우정은 창연하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세 친구들의 독립과 통일 유지를 잘 받들어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반드시 쟁취하기를 기원해 본다.
<참고문헌>
1. 곽병찬, “조국의 시와 별이 된 세 친구들”, 한겨레신문, 2015.9.9일자. 29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2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전체 5,456건 (287/364페이지)
1166
택시기사 아저씨 2인의 다른 삶
2012.11.17,
조회 7488
[좋은글]
참마음
택시기사 아저씨 2인의 다른 삶지난주 토요일에 경영지원본부와 수유동지점이 함께 Fun과정의 일환으로 레프팅을 다녀왔다.오랜만에 즐거운 나들이에 한창 들떠있었고, 나 또한 2001년 자산관리영업을 시작하면서 트...
1165
바르게, 순리대로 살아라
2012.11.16,
조회 8004
[좋은글]
참마음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의 이익을 위해서 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건 천벌을 받는 짓이다. 아니, 세상 사람이 누가 저 위해서 생겨난 사람 하나나 있나?...
1164
지금은 대자연이 원시반본 하는 때
2012.11.15,
조회 7768
[좋은글]
참마음
지금은 대자연이 원시반본 하는 때 * 우주 변화 법칙으로 묶어서 지금은 호호탕탕한 대자연이 원시로 반본을 하는 때다.이와 더불어 상제님 진리 역시 원시반본原始返本이다.상제님 진리가 대자연 진리요, 대자연 둥...
1163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지혜
2012.11.15,
조회 7348
[좋은글]
참마음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지혜 바구니를 건네며 어머니는 말씀하셨지요.매끈하고 단단한 씨앗을 골라라.이왕이면 열매가 열리는 것이 좋겠구나.어떤걸 골라야 할 지 모르겠더라도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아라.고르는...
1162
회사 이직을 하지 않는 사람
2012.11.14,
조회 7105
[좋은글]
참마음
K 회사 영업부 김대리는 리더십, 성실성등을 무기로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우리회사로오세요~ 라는 회사의 사장은 김대리를 영입하려 마음먹고 김대리를 보고 프로젝트를 준다. 그러면서 김대리를 구...
1161
실재와 현상의 갈등
2012.11.14,
조회 10553
[자유게시글]
개벽정신
진리란 현상의 실재에 대한 순응이다. - 화이트헤드 무슨 소리냐 하면 동서양 철학의 고민이란 뭐냐? 신앙의 갈등이 있거든.. 본래의 진리 세게에서 전하는 우주의 본래 모습 실상...
1160
김제동 - 시작할 때 마음을 잊으면 돌아갈 때 갈 곳이 없다
[1]
2012.11.14,
조회 11411
[자유게시글]
개벽정신
[쿠키 연예] 김제동이 23일 밤 여의도 KBS 별관 공개홀에서 열린 ‘2006 KBS 연예대상’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연예가중계’‘해피선데이’‘스타 도전 골든벨’등을 진행하고 있는 김제동은 재치넘치는 입...
1159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1]
2012.11.13,
조회 4536
[좋은글]
이성구
내가 만족하고 기뻐하는 일을 행하면 즐거운 일이 생깁니다.
행복은 이순간에 있고 행운은 이순간을 즐기면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옵니다.
먼저 도전과 소책자를 전해주신 영등포도장에...
1158
고래잡이 반대에 힘을 실어주세요!
2012.11.09,
조회 10152
[자유게시글]
김지환
http://www.greenpeace.org/korea/get-involved/petition/stop-scientific-whaling/ 그린피스의 활동인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절대반대입니다.
1157
1156
1155
이영돈PD의 먹거리X파일 '긍정의 힘'
2012.10.24,
조회 12616
[자유게시글]
환단스토리
이영돈PD의 먹거리X파일 '긍정의 힘'채널A 9월 28일 밤11이영돈PD의 먹거리X파일
#01 긍정의 힘을 기억하십니까?. → http://youtu.be/8ayjOMc0KQE
#02 소주 맛의 변화를 실험하다 → http:/...
1154
한국도 일본처럼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하려면
2012.10.22,
조회 9292
[자유게시글]
신상구
한국은 왜 노벨상 수상자를 단 1명밖에 배출하지 못 하는가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신상구
2012년 깊어가는 가을, 스웨...
1153
홍범구주 란 무엇인가요?
2012.10.22,
조회 9925
[질문과 답변]
홍범구주
저희 집안은 고려때 원나라의 공주를뫼시고 고려왕과 결혼식을하려고 고려에왔다가 완으로부터 귀향하여 벼슬할것을 제안받아 황해도 풍천을 거점으로 왕르 로부터풍천 하사밭은 땅의 본향으로 임씨가되여 이어...
1152
RE:홍범구주란
2013.01.02,
조회 14485
[질문과 답변]
진리수호
는 서경(書經) 32편에 나오는 내용으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으로 전합니다. 일명 상서 라고도 말하며 중국의 요순시절부터 주(周)나라 때까지 사관(史官)들이 군주(君主)의 언동(言動)을 중심으로 정사(政事...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