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과 통일 영웅 이야기
2015.09.10 03:55 |
조회 10453
독립과 통일 영웅 이야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1898년 경남 밀양 출생의 김원봉(金元鳳, 1898~1958)과 1901년 경북 칠곡 출생의 이명건(李命鍵), 그리고 1893년
경남 동래 출생의 김두전(金枓全) 세 친구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뛰어들기로 하고, 김원봉의 고모부인 백민(白民) 황상규(黃尙奎,
1890-1931)를 찾아갔다. 백민 황상규는 친일모리배 처단으로 유명한 대한광복단 단원이었다. 백민 황상규는 ‘조국을 잊지 말라’며 세
친구에게 이런 이름을 주었다. 若山(산처럼, 김원봉), 若水(물처럼, 김두전), 如星(별처럼, 이명건). 그 자신이 조국의 한 줌 흙이고자 했던
백민 황상규 다운 작명이었다.
이듬해 이들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모색할 때 3·1운동이 일어났다. 민중의 거대한 힘은 세 친구를 전율케 했고, 일제의 악랄한 진압은 피를 끓게 했다. 약수 김두전과 여성 이명건은 “국내에서 인민 대중을 조직해 싸워야 한다”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약산 김원봉은 “무장력을 갖추지 못하면 독립은 이뤄질 수 없다”며 길림의 의군부를 거쳐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한다.
약산 김원봉은 6개월간 무기와 폭탄 제조 및 조작법과 군사훈련 등을 받고 백민 황상규의 지도 아래 의열단을 결성한다. 백민 황선규에 이어 약산 김원봉은 일제의 고위관료, 장교, 매국자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의열단 의백이 되었다. 이후 약산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임시정부의 2인자인 군무부장을 역임했다.
여성 이건명은 대구에서 혜성단을 조직해 친일파들을 겁박해 독립자금을 갹출하려 하다가 체포돼 3년간 복역했다. 노동자 조직화에 관심이 컸던 약수는 조선노동공제회를 결성했다가 구속된다. 출소 후 일본으로 건너간 약수 김두전은 무정부주의를 거쳐 사회주의 노선을 걷게 되고, 여성 이명건은 민족통일전선 노선을 걷는다. 약수 김두전은 1924년 귀국해 조선노농총동맹을 창설하고, 이듬해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하다가 붙잡혀 6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여성 이명건은 조선의 현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숫자조선연구>(1~5권)를 출간하고, 1936년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돼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다.
해방이 되었다. 세 친구는 서울에서 만나, 따로 또 같이 완전한 해방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길을 나섰다. 형세는 또 다른 식민체제였고, 정세는 일찌감치 분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 친구의 선택은 달랐다. 그러나 좌우합작이라는 중간목표와 완전한 통일국가라는 최종목표는 같았다.
약산 김원봉은 좌우합작을 기피하는 임시정부 쪽에서 떠나 인민공화당을 창당해 합작의 고리 구실을 하려 한다. 여성 이명건은 몽양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 등 중도노선을 걸었으며 좌우합작을 위해 좌파 3당의 합당에 가담하지 않았다. 1947년 몽양의 암살과 함께 좌우합작 노선은 피살당했다. 약산 김원봉과 여성 이명건은 좌절했다. 설상가상 약산 김원봉은 일제의 고등경찰이었던 노덕술(盧德述, 1899-1968)에게 체포돼 능욕을 당한다. 약산 김원봉과 여성 이명건은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때 북으로 가 돌아오지 않았다.
약수 김두전은 우파인 한국민주당에 가담했다. 오른쪽에서 좌우합작의 불씨를 살리려 했다. 그러나 한민당은 좌우합작을 거부했고 약수 김두전은 당을 떠나 합작을 추구했던 우사 (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의 진보적 민족주의 노선에 합류했다. 5·10 총선 때 동래에서 당선되고 초대 국회부의장에 올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에 앞장선다. 그러나 이승만 일당이 조작한 남로당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엮여 투옥된다. 사실 약수는 박헌영의 남로당과는 물과 기름 사이였다. 6·25 때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출옥해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 권력도, 세 친구의 꿈이 두려웠다. 외세로부터 완전한 독립과 평화통일! 게다가 셋은 김일성에게 전쟁 도발 책임도 물으려 했다. 약산 김원봉은 국가검열상, 내각 노동상 등을 역임했지만, 결국 1958년 11월 숙청당했다. 김일성대 역사강좌장을 역임했던 여성 이명건도 약산 김원봉과 함께 공식 역사에서 사라졌다. 두 사람은 무덤조차 모른다. 약수 김두전은 평화통일을 촉구하다가 1959년 반당반혁명분자로 몰려 숙청됐다.
윤동주(尹東柱, 1918-1994)와 늦봄 문익환(文益煥, 1918-1994)은 중국 연변자치주 용정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함께 명동소학교를 다녔고, 은진중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용정 광명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릿쿄대로, 늦봄 문익환은 일본 니혼신학교로 유학을 갔다. 장공 張俊河(1918-1975는 평안북도 의주 고성면에서 태어나 숭실중학교를 거쳐 신성중학교를 졸업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먼저 온 늦봄 문익환과 함께 니혼신학교에서 수학했다.
불운은 윤동주에게 먼저 찾아왔다. 그는 1943년 ‘재쿄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에 걸려들어 후쿠오카감옥에 수감됐다. 그곳에서 생체실험이 의심되는 주사를 지속적으로 맞던 끝에 1945년 2월 옥사했다. 장공 장분하는 요시찰 대상인 부친에게 피해가 우려돼 학병에 입대했고, 중국 전선에 배치되자마자 탈출해 6천리 장정 끝에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해방 후 장공 장준하는 목회자의 길을 가려 했지만 이승만, 박정희 독재 체제는 그냥 놔두지 않았다. 장공 장준하는 이번엔 이승만, 박정희에 맞서 민주화의 장정에 올랐다. 결국 1975년 8월 경기 포천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저명한 신학자가 되었던 늦봄 문익환은 장준하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강단에서 내려왔다. “이제 내가 죽을 차례”, “네가 가다가 못 간 길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1994년 1월 별세하기까지 19년 동안 그는 모두 8차례 11년간 수감됐다. 1989년엔 죽음을 무릅쓰고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까지 했다. 그러나 북쪽은 범민련 남쪽본부 재편 문제를 놓고 그를 안기부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통일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그의 신념도 그렇게 남과 북에서 거부를 당했다.
그래도 남행한 세 친구는 다행히 유택이라도 마련했다. 윤동주는 용정의 동산 기독교인 묘지에 안장됐다. 장례예배를 집전한 이는 늦봄 문익환의 부친 문재린 목사였다. 학교 동창들은 아쉬움을 이렇게 비명에 새겼다. “춘풍도 매정하여라, 열매도 맺기 전에 꽃이 지었네….” 늦봄은 일흔을 앞두고 이런 글을 보냈다. “…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 너마저 늙어간다면 / 이 땅의 꽃잎들 /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동주야’에서)
늦봄 문익환은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그의 작고 소식을 듣고 이번엔 고은 시인이 주저앉았다. “…오로지 당신은 조국과 겨레가 하나됨을 위하여 온몸의 세월을 다 바쳤으니 당신의 이름은 어느덧 겨레의 가슴이 되어, 이윽고 먼동 트는 아침으로 열리고 있거니….” 찢어지게 가난했던 장공 장준하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으로 경기도 파주 천주교공원묘지에 유택을 마련했다. “…비록 말 못 하는 돌부리 풀뿌리여,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증언하리라.” 지인들은 사고 현장에 세운 추모비에서 이렇게 속울음을 삼켰다.
남북한의 불의한 권력은 세 친구들을 죽게 했고, 지금도 지우려 한다. 그러나 어찌 어둠이 빛을 가릴까. 비록 만남은 보잘것없었지만, 그들이 걸어간 길은 위대했다. 그들의 운명은 비극적이었지만, 우정은 창연하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세 친구들의 독립과 통일 유지를 잘 받들어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반드시 쟁취하기를 기원해 본다.
<참고문헌>
1. 곽병찬, “조국의 시와 별이 된 세 친구들”, 한겨레신문, 2015.9.9일자. 29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2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이듬해 이들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모색할 때 3·1운동이 일어났다. 민중의 거대한 힘은 세 친구를 전율케 했고, 일제의 악랄한 진압은 피를 끓게 했다. 약수 김두전과 여성 이명건은 “국내에서 인민 대중을 조직해 싸워야 한다”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약산 김원봉은 “무장력을 갖추지 못하면 독립은 이뤄질 수 없다”며 길림의 의군부를 거쳐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한다.
약산 김원봉은 6개월간 무기와 폭탄 제조 및 조작법과 군사훈련 등을 받고 백민 황상규의 지도 아래 의열단을 결성한다. 백민 황선규에 이어 약산 김원봉은 일제의 고위관료, 장교, 매국자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의열단 의백이 되었다. 이후 약산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임시정부의 2인자인 군무부장을 역임했다.
여성 이건명은 대구에서 혜성단을 조직해 친일파들을 겁박해 독립자금을 갹출하려 하다가 체포돼 3년간 복역했다. 노동자 조직화에 관심이 컸던 약수는 조선노동공제회를 결성했다가 구속된다. 출소 후 일본으로 건너간 약수 김두전은 무정부주의를 거쳐 사회주의 노선을 걷게 되고, 여성 이명건은 민족통일전선 노선을 걷는다. 약수 김두전은 1924년 귀국해 조선노농총동맹을 창설하고, 이듬해 조선공산당 창당을 주도하다가 붙잡혀 6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여성 이명건은 조선의 현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숫자조선연구>(1~5권)를 출간하고, 1936년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연루돼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다.
해방이 되었다. 세 친구는 서울에서 만나, 따로 또 같이 완전한 해방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길을 나섰다. 형세는 또 다른 식민체제였고, 정세는 일찌감치 분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 친구의 선택은 달랐다. 그러나 좌우합작이라는 중간목표와 완전한 통일국가라는 최종목표는 같았다.
약산 김원봉은 좌우합작을 기피하는 임시정부 쪽에서 떠나 인민공화당을 창당해 합작의 고리 구실을 하려 한다. 여성 이명건은 몽양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 등 중도노선을 걸었으며 좌우합작을 위해 좌파 3당의 합당에 가담하지 않았다. 1947년 몽양의 암살과 함께 좌우합작 노선은 피살당했다. 약산 김원봉과 여성 이명건은 좌절했다. 설상가상 약산 김원봉은 일제의 고등경찰이었던 노덕술(盧德述, 1899-1968)에게 체포돼 능욕을 당한다. 약산 김원봉과 여성 이명건은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 때 북으로 가 돌아오지 않았다.
약수 김두전은 우파인 한국민주당에 가담했다. 오른쪽에서 좌우합작의 불씨를 살리려 했다. 그러나 한민당은 좌우합작을 거부했고 약수 김두전은 당을 떠나 합작을 추구했던 우사 (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의 진보적 민족주의 노선에 합류했다. 5·10 총선 때 동래에서 당선되고 초대 국회부의장에 올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에 앞장선다. 그러나 이승만 일당이 조작한 남로당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엮여 투옥된다. 사실 약수는 박헌영의 남로당과는 물과 기름 사이였다. 6·25 때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출옥해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 권력도, 세 친구의 꿈이 두려웠다. 외세로부터 완전한 독립과 평화통일! 게다가 셋은 김일성에게 전쟁 도발 책임도 물으려 했다. 약산 김원봉은 국가검열상, 내각 노동상 등을 역임했지만, 결국 1958년 11월 숙청당했다. 김일성대 역사강좌장을 역임했던 여성 이명건도 약산 김원봉과 함께 공식 역사에서 사라졌다. 두 사람은 무덤조차 모른다. 약수 김두전은 평화통일을 촉구하다가 1959년 반당반혁명분자로 몰려 숙청됐다.
윤동주(尹東柱, 1918-1994)와 늦봄 문익환(文益煥, 1918-1994)은 중국 연변자치주 용정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함께 명동소학교를 다녔고, 은진중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용정 광명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릿쿄대로, 늦봄 문익환은 일본 니혼신학교로 유학을 갔다. 장공 張俊河(1918-1975는 평안북도 의주 고성면에서 태어나 숭실중학교를 거쳐 신성중학교를 졸업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먼저 온 늦봄 문익환과 함께 니혼신학교에서 수학했다.
불운은 윤동주에게 먼저 찾아왔다. 그는 1943년 ‘재쿄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에 걸려들어 후쿠오카감옥에 수감됐다. 그곳에서 생체실험이 의심되는 주사를 지속적으로 맞던 끝에 1945년 2월 옥사했다. 장공 장분하는 요시찰 대상인 부친에게 피해가 우려돼 학병에 입대했고, 중국 전선에 배치되자마자 탈출해 6천리 장정 끝에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해방 후 장공 장준하는 목회자의 길을 가려 했지만 이승만, 박정희 독재 체제는 그냥 놔두지 않았다. 장공 장준하는 이번엔 이승만, 박정희에 맞서 민주화의 장정에 올랐다. 결국 1975년 8월 경기 포천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저명한 신학자가 되었던 늦봄 문익환은 장준하의 죽음 소식을 듣고는 강단에서 내려왔다. “이제 내가 죽을 차례”, “네가 가다가 못 간 길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1994년 1월 별세하기까지 19년 동안 그는 모두 8차례 11년간 수감됐다. 1989년엔 죽음을 무릅쓰고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회담까지 했다. 그러나 북쪽은 범민련 남쪽본부 재편 문제를 놓고 그를 안기부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통일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그의 신념도 그렇게 남과 북에서 거부를 당했다.
그래도 남행한 세 친구는 다행히 유택이라도 마련했다. 윤동주는 용정의 동산 기독교인 묘지에 안장됐다. 장례예배를 집전한 이는 늦봄 문익환의 부친 문재린 목사였다. 학교 동창들은 아쉬움을 이렇게 비명에 새겼다. “춘풍도 매정하여라, 열매도 맺기 전에 꽃이 지었네….” 늦봄은 일흔을 앞두고 이런 글을 보냈다. “…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 너마저 늙어간다면 / 이 땅의 꽃잎들 /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동주야’에서)
늦봄 문익환은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됐다. 그의 작고 소식을 듣고 이번엔 고은 시인이 주저앉았다. “…오로지 당신은 조국과 겨레가 하나됨을 위하여 온몸의 세월을 다 바쳤으니 당신의 이름은 어느덧 겨레의 가슴이 되어, 이윽고 먼동 트는 아침으로 열리고 있거니….” 찢어지게 가난했던 장공 장준하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으로 경기도 파주 천주교공원묘지에 유택을 마련했다. “…비록 말 못 하는 돌부리 풀뿌리여,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증언하리라.” 지인들은 사고 현장에 세운 추모비에서 이렇게 속울음을 삼켰다.
남북한의 불의한 권력은 세 친구들을 죽게 했고, 지금도 지우려 한다. 그러나 어찌 어둠이 빛을 가릴까. 비록 만남은 보잘것없었지만, 그들이 걸어간 길은 위대했다. 그들의 운명은 비극적이었지만, 우정은 창연하다.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세 친구들의 독립과 통일 유지를 잘 받들어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반드시 쟁취하기를 기원해 본다.
<참고문헌>
1. 곽병찬, “조국의 시와 별이 된 세 친구들”, 한겨레신문, 2015.9.9일자. 29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2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전체 5,456건 (294/364페이지)
1061
이어령 박사의 임진년 특강을 듣고서...
2012.01.26,
조회 9831
[자유게시글]
진성조
http://video.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video&ie=utf8&query=%EC%9D%B4%EC%96%B4%EB%A0%B9%EC%9E%84%EC%A7%84%EB%85%84%ED%8A%B9%EA%B0%95클릭하면 동영상 2개(1분,3분짜리)...
1060
"신앙은 전하기보다 삶으로 증거하는 것"--한겨레
2012.01.19,
조회 11105
[자유게시글]
진성조
한겨레홈 > 뉴스 > 사회 > 종교
‘재난’ 겪고 나서 사랑·나눔 더 절실히 깨달았죠
난민 구호 개척자들 삶터 `샘터공동체’ 화재로 잃어 주변인 쌀 등 도움 손길…“고통...
1059
대한민국 정치계, 여성 대표시대가 열렸다
[1]
2012.01.15,
조회 10922
[자유게시글]
진성조
여야 정치권 '여성 대표 시대' 열렸다
| 기사입력 2012-01-15 19:18
[채송무기자] 15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전시장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지도부 선출대회에서 올해 총선과 대선을 이끌 새 대표로 한...
1058
문제는 경제다 -서울신문
2012.01.15,
조회 10273
[자유게시글]
진성조
[서울광장] 문제는 경제다 /오병남 논설실장 -서울신문
▲ 오병남 논설실장
임진년 벽두부터 나라가 시끄럽다. 정치가 용틀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열리...
1057
불출마선언한 괜찮은 국회의원, 홍종욱의 말
2012.01.14,
조회 11381
[자유게시글]
진성조
바른정치란 무엇일까? ...
불출마 선언을 일찍한, 괜찮은 국회의원, 홍종욱의 말 ~~
새겨 들을만한 ...
-----------------------------------------------------
## 국회 몸싸움, 죽기보다 싫었다―기자 왈...
1056
현실이 된 예언, 휴대전화 초고속열차 등
2012.01.12,
조회 11807
[자유게시글]
진성조
현실이 된 예언, 휴대전화 초고속열차 등 '다 이루어졌다? 소름이...'
기사입력 2012-01-12 14:27:38
[TV리포트 황소영 기자] ‘현실이 된 예언’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각종 온...
1055
고구려 사신도의 비밀을 밝힌다.
2012.01.12,
조회 21506
[자유게시글]
우주의꿈
배달국 이후 단군조선(BCE2267)때 오행치수(五行治水)법이 적힌 금간옥첩(金簡玉牒)을 초대단군의 맏아들 부루(扶婁)태자가 중국의 치수사업을 주관하던 우를 도산(塗山)[양자강 남방]이라는 곳에서 만나 이를 전...
1054
인터넷보다 책과 사색이 집중력에 더 필요
[1]
2012.01.09,
조회 9121
[추천도서]
진성조
홀로움의 미학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로 점철된 소통의 시대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우리의 뇌는 혹사당하고 있고, 지성은 침식되고 있다는 위기론이 싹트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마음은 행복할까?...
1053
올해는 세계 정권교체의 해
2012.01.08,
조회 9640
[자유게시글]
진성조
[세계는 지금] 올해는 세계 정권교체의 해
| 기사입력 2012-01-08 18:02 | 최종수정 2012-01-08 20:57
14일 대만 ‘선거의 서막’ 열어…친중성향 마잉주 현 총통 우위10월엔 中 시진핑 시대 개...
1052
2012 - 토끼와 거북이 경주의 우화?
2012.01.08,
조회 9365
[자유게시글]
진성조
20년만에 처음 찾아왔다는 총선,대선 동시선거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계에 마치 태풍이 불어 오는듯한 느낌인데요많은 국민들이 정치라면 염증낼정도로 돌아섰는데...그래서 새인물 찾고..안철수 신드롬도...
1051
그대 영혼의 날을 세워라!
2012.01.08,
조회 12401
[자유게시글]
우주의꿈
올해 임진년이 시작한지도 벌써 8일째다.
2012년은 다른 어느 해 보다도 가장 희망과 불안이 교차되는 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며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려고 한...
1050
[노트북을 열며] 종교계 신년사와 수사학
2012.01.04,
조회 10417
[자유게시글]
만국활계
[노트북을 열며] 종교계 신년사와 수사학
신준봉문화스포츠 부문 차장레토릭(rhetoric), 즉 수사학(修辭學)의 역사는 길다. 그 뿌리가 기원전 2000년, 지금의 중동 지역에 번성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까지...
1049
새 인문주의 (네오 휴머니즘)'시대,틀과 판이 바뀐다.
2012.01.04,
조회 11036
[자유게시글]
만국활계
월요아침]‘새 인문주의(네오 휴머니즘)’ 시대, 틀과 판이 바뀐다.
새전북신문
[0호] 2012년 01월 01일 (일) 17:02:37
김도종 원광대 철학과 교수 APSUN@sjbnews.com
역사를 보면...
1048
녹두장군 전봉준께서 남긴 시
2012.01.03,
조회 11589
[자유게시글]
만국활계
녹두장군 전봉준께서 남긴 시
전봉준은 일찌기 서울을 오르내리며 흥선대원군을 만난 일이 있었다.
대원군은 늘 무리들 틈에 끼여 말 없이 앉아 있는 전봉준이 궁금해서 먼저 말을 붙여보았는데, 전봉준은...
1047
효녀심청이 이야기 설화일까? 실화일까?
2012.01.03,
조회 13390
[자유게시글]
만국활계
http://blog.daum.net/jhmost/17346426효녀심청이 이야기 설화일까? 실화일까?백령도에 효녀 심청을 기리는 심청각과 효녀 심청 상(像)이 있다는 사실을아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심청은 실존 인...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