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경상도 고성 선비 구상덕의 일기 승총명록
2020.06.11 15:04 |
조회 10724
18세기 경상도 고성 선비 구상덕의 일기 승총명록
조선시대 사람들은 전염병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역병의 시대’ 18세기를 산 경상도 고성의 선비 구상덕의 일기 ‘승총명록’.고성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흉년과 역병으로 숨진 자의 수가 너무 많아 모두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만고에 드문 해였다.”
경상도 고성의 처사(處士·초야에 묻혀 살던 선비) 구상덕(1706∼1761)은 1733년의 봄을 이렇게 기록했다. 질병의 원인조차 제대로 모르던 시절, 향촌의 공동체는 역병에 어떻게 대응하고 살아남았을까.
경상도 고성의 처사(處士·초야에 묻혀 살던 선비) 구상덕(1706∼1761)은 1733년의 봄을 이렇게 기록했다. 질병의 원인조차 제대로 모르던 시절, 향촌의 공동체는 역병에 어떻게 대응하고 살아남았을까.

조선시대 사람들은 전염병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역병의 시대’ 18세기를 산 경상도 고성의 선비 구상덕의 일기
‘승총명록’.고성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승총명록’.고성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김호 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53)는 계간지 역사비평 2020년 여름호에 ‘시골 양반 역병 분투기―18세기 구상덕의 승총명록을 중심으로’를 게재했다. ‘승총명록(勝聰明錄)’은 구상덕이 1725년부터 죽을 때까지 37년 동안 쓴 일기다.
이 발표문에 따르면 구상덕이 살았던 18세기 조선은 기근과 역병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1730년부터 이어진 역병과 재난으로 1733년 봄에는 들판에 나물을 뜯을 사람조차 없었다고 한다. 두창과 온역, 이질, 한질 같은 전염병이 1740년, 1748년, 1753년 등에 되풀이해 창궐했다. 구상덕도 아내와 딸, 친구와 친척을 연이어 역병으로 잃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염병 대응의 시작은 ‘사회적 거리 두기’였다. 구상덕은 자신의 마을에서 역병이 완전히 끝나지 않자 읍내 향교의 공사가 마무리되고 열린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집안에 역병이 돌자 향교에서 벌인 시회(詩會)에 불참했고, 집에서도 안채 등 정해진 곳을 떠나지 않고 스스로를 격리했다.
인적 드문 산중의 절이나 이웃집으로 몇 주씩 떠나 있기도 했다. 역병이 미치지 않은 동네의 누이 집으로 부모님을 모셨다. 구상덕은 친구가 역병에 걸려 죽게 되자 그의 아들을 거둔 뒤 데리고 암자로 피신했다. 김 교수는 “역병에 걸렸을지도 모를 사람에게 몸을 피할 공간을 제공하는 건 서로의 선의를 바탕으로 이뤄진 상호부조였다”고 설명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최근 테마전시 ‘조선, 역병에 맞서다’에 나온 무과 합격자의 초상화(1774년 제작)로 천연두로 생긴 흉터가 뚜렷하다. 이 전시는 7월 3일부터 국립대구박물관에서도 열린다. 고성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구상덕은 역병을 막고자 점술가나 승려를 불러 독경을 요청했다. 1730년 아내가 괴질에 걸리자 소고기를 먹였다. 역병에 고기를 고아 먹는 치병(治病) 풍속이 있었던 것. 1757년 여름에는 역병이 돌자 닭 한 마리 값이 원래 5, 6전에서 몇 배나 올랐다고 일기에 썼다.
조정과 지방관은 처방전을 보급하고 피막(避幕)을 설치해 환자들을 격리했지만 대부분 인적 드문 들판에 세워져 환자들은 굶거나 얼어 죽는 일이 다반사였다. 피막은 병자들보다는 아직 병이 옮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장치였다.
조정과 지방관은 처방전을 보급하고 피막(避幕)을 설치해 환자들을 격리했지만 대부분 인적 드문 들판에 세워져 환자들은 굶거나 얼어 죽는 일이 다반사였다. 피막은 병자들보다는 아직 병이 옮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장치였다.
구상덕이 가족의 안위만 살핀 것은 아니었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노파에게 죽을 먹였으며, 역병과 기근으로 버려진 아이를 노비 삼아 거두기도 했다. 또 백성의 고통을 사또에게 전하기 위해 각종 문서 작성을 도왔다.
김 교수는 “역병의 피해가 가혹한 상황에서 도덕적 삶을 유지하고 스스로 공동체를 지키려는 자발적인 ‘사(士·선비) 의식’이 역병의 시대를 헤쳐나간 열쇠였다”고 말했다. 오늘날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 역시 공동체의 안녕을 함께 도모하려는 선비의 의식과 닮아 있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김 교수는 “역병의 피해가 가혹한 상황에서 도덕적 삶을 유지하고 스스로 공동체를 지키려는 자발적인 ‘사(士·선비) 의식’이 역병의 시대를 헤쳐나간 열쇠였다”고 말했다. 오늘날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 역시 공동체의 안녕을 함께 도모하려는 선비의 의식과 닮아 있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참고문헌>
1. 조종엽, "동체 지키려는 ‘선비 정신’으로 조선시대 역병 이겨냈다”, 동아일보, 2020.6.10일자. A21면.
전체 5,456건 (355/364페이지)
146
145
봄처녀가 왔나보네요,. :D 그런데 먼지가 장난아닌듯,. 예전에 서울에 물차가 다니고 난뒤 시민들의 기관지 관련해서 병원 출입이 줄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대전에는 물차 안다니나..
2011.02.20,
조회 11753
[자유게시글]
잉어
144
143
142
삶의 향을 전해주는 말~! 멋진 말이네요~.. 어제 동지치성을 지내고,.몸과 마음을 바로 세워보려하는데, 습에 이끌려 갈까 걱정이네요..` 이제 2011년 신묘년인가..
2010.12.23,
조회 11742
[자유게시글]
잉어
141
진리를 배우려 이땅에 왔어요 허지만 눈감으면 이세상 그누가 나보다 가슴아플가 세월은저를 무정하게 합니다 태을주로 마음달래 봅니다
[3]
2010.12.21,
조회 11834
[자유게시글]
방영희
140
139
138
137
136
오늘 수원 인계도장에서 종도사님 종정님의 도훈말씀 및 태을주 동공수행 시간이 있다고 해요. 인터넷으로 시청할 거 같아요. 모두들 뜻깊은 시간 되시기를!
2010.11.17,
조회 12438
[자유게시글]
햇살좋은날
135
어제 부산 도전강연회 다녀왔습니다. 너무 감동받았고, 종정님께서 오주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인류의 모든 깨달음, 고민들, 의문들의 결론이 모두 오주(진액주)에 들어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고, 그런 주문을 읽고 기운을 받을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1]
2010.10.31,
조회 14647
[자유게시글]
박성남
134
저는 내일 대전본부도장에서 입도치성을 드리러 갑니다. 우선 시험에 합격을 하야야 겠지요. 부담감도 있구요, 기쁜 마음도 있구요, 기대가 됩니다.
제 생애에서 정말 축복 받은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3]
2010.10.30,
조회 13508
[자유게시글]
가이아
133
어제 상제님 성탄치성을 다녀왔습니다. 말씀교육을 통해서 더 많은 깨달음과 기쁨을 얻고 내려온 것 같습니다. 갑자기 추워졌는데 감기 조심하세요^^
[1]
2010.10.27,
조회 12096
[자유게시글]
박기숙
132



댓글 0
댓글 내용을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