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의 생사관과 노인관
2021.02.12 1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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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의 생사관과 노인관
생사(生死)라는 말이 있다. 1. 삶과 죽음 2.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동아새국어사전 제4판). 그러나 내 개인적인 견해로, 생사(生死)는 태어남(=탄생, 출생)과 죽음으로 보고 삶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기간 - 생명, 생존, 수명 - 이라고 보아야 되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태어남(탄생, 출생)은 삶의 시작이고 죽음은 삶의 끝이라고 보는 것이 철학적 사고를 해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태어남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삶은 어떻게 뜻매김 할 수 있을까? 내개인적인 소견으로 ‘삶’은 살다+알다 의 합성어로 보고 ‘삶의 뜻을 앎’-자각된 생명, 생존, 수명-이라고 뜻매김 한다.
그렇다면 삶의 뜻을 안다고 할 때 삶의 뜻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가? 역시 나 자신이 85세가 되기까지 살아오면서 체감, 체험, 체득한 바를 표백하자면 삶이란 첫째로 살(나이)을 더해온 - 나이를 먹어온 - 나이가 들어온 과정이고 둘째로는 태어날 때 하늘과 땅과 어버이로부터 받은 목숨=근원적 개체생명력(의 불꽃)을 고스란히 사르는 과정이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누구와 함께 생명력의 불꽃을 사르느냐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기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진솔하게 숙고해볼 필요가 생긴다. 첫째로 삶을 시작부터 끝으로 향해서 볼 것이냐 끝으로부터 시작으로 향해서 볼 것이냐에 따라 서로 다른 관점이 세워질 수 있다. 앞의 관점은 생사관이 될 것이고 뒤의 관점은 사생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두 가지 관점은 어떻게 다른가? 삶의 시작에 중점을 놓고 보는 입장에서는 삶의 전 과정이 무한히 열려진 가능성의 지평 위에 항상 새로운 시도와 모험이 이루어지겠지만 불안을 안고 가는 것이 되겠고 끝에 중점을 두고 보는 입장에서는 뚜렷하게 정해진 확실성=죽음을 향한 삶이 펼쳐지는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에 두려움은 있으나 불안은 없을 것이다. 결국 잘 살 수 있기 위해 잘 죽기를 바라느냐, 아니면 잘 죽을 수 있기 위해서 잘 살기를 바라느냐는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젊었을 때도 그렇고 나이든 지금도 그러한데, 끝맺음보다는 새로운 시작에 더 힘을 기울이는 삶을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따라 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되었던 남들이 하지 않은 일 또는 아직까지 없었던 일을 새로 시작해 보는 데서 흥도 나고 신도 나고 열도 생겼다. 많은 기억들 가운데서 한두 가지만 들어본다. 내가 충북대학교에서 젊은 학생들과 학문을 함께하게 되었을 때(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젊은 패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자유선택 교양과목으로 ‘인류문화와 지구사회’라는 강좌를 개설하고 당시의 충북지역사회는 물론 한국전체사회에서도 엄두내기 어려웠던 모험을 시도했다.
선배 교수들의 질책과 압력을 많이 받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2년째 되던 때부터는 매 학기의 수강생이 3백 명에서 5백 명 사이를 왔다갔다했고 가장 많을 때는 8백 명에 이르렀기 때문에 혼자 감당하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시간강사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서 여러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했으며 나중에는 신임후배교수에게 물려주고 나는 또 다른 새로운 강좌를 개설함으로써 대학교양과정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 후에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입이 불거(立而不居 = 일단 이루어 남에게 물려주었으면 거기에 머물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다)의 입장을 견지했다.
50대 초반에 한국의 대학에서의 학문하기에 더 이상의 열의를 내기가 어렵다는 깊은 폐쇄감과 좌절감을 부등겨안고 고뇌의 나날을 보내다가 홀연히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인들과 함께 아주 새로운 학문하기를 시도해보기로 결심하고 도쿄대학 법문학부 법학과에 절을 두고 자주 독립적 철학대화활동을 일본국내외에서 전개했고 나중에는 뜻있는 기업들의 재정적지원도 받게 되어 그때까지 제대로 틀이 잡힌 전례가 어디에도 없었던 공공하는 철학대화운동을 전개했다.
일본국내외에 걸쳐서 커다란 관심을 일으켰고 학문적이면서 현실적인 영향도 다양하게 끼치게 되어 지금은 젊은 학자, 언론인, 기타 여러 분야에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형태로 계속 발전, 진화되고 있다.
3년 전부터 나는 일단 주관하는 자리에서 물러났고 지금은 아주 새로운 ‘나이 들어 철학하기’를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새로운 모험에 도전 하고 있다.
나는 ‘끝이 좋으면 모두가 좋다’라는 독일속담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있지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한국 속담의 참뜻을 더 소중히 여긴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의 끝으로 보는 죽음도 나는 새로운 시작으로 뜻매김 한다. 나는 인간이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 죽음으로의 존재라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가능한 세계에서 다른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확실한 사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확고한 목표가 정해진 행정(行程)을 직선으로 감으로써 도중의 일탈과 미달과 착오를 최소화하고 마침내 깔끔하게 끝막음을 하게 되는 교과서와 같은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솔직히 그런 삶을 선호할 수 없다. 그것은 개신(開新 -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는 것)을 개체생명의 일회성 안에 가두어 버리는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삶이란 처음의 시작=태어남, 출생, 탄생으로부터 죽음=끝, 사망, 사멸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새밝, 새엶, 새앎의 체화(體化), 심화(心化), 영화(零化)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죽음도 모든 것이 끝나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개체생명의 차원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훨씬 크고 넓은 생명=우주생명으로 돌아가서 아주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으로 뜻매김 한다.
새밝, 새엶, 새앎은 근원적 우주생명력의 작동원리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개인의 개체생명 안에 폐쇄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삶은 내가 사는 것이기 보다는 우주적 근원적 생명력이 일시적으로 나의 몸과 마음과 일의 형태를 입고 나타나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젊을 때는 온전히 내가 내 삶을 산다는 생각이 강했다.
가끔 심한 병고에 시달리는 동안에는 내 삶이 내 뜻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더 큰 것이 나를 살려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다음 순간 또다시 원래의 생각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다가 70대에 들어서면서 내가 온전히 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눈이 뜨기 시작했다.
새로운 생명차원에의 개안(開眼)이요 각성이요 ‘깨달아 얻음’이다. 개체생명의 여정을 끝내고 나면 이르건 늦건 간에 생명의 본향으로 되돌아가서 또 다른 생명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는 기대와 희망에 가슴이 설렌다.
성공적 노화, 고령화 또는 나이듦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 지 오래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로써 삶의 마지막을 꽃피우는 것으로 뜻풀이하고 있다. 또 노년기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성공적으로 늙어가야 한다는 말도 있다.
성공적인 노화를 적극적으로 선양하는 것은 긍정적 노년상을 진작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성공적 노인상이 강조되면 될수록 실패의 노인상이 연상되고 성공기준에 미흡한 수많은 노년들이 마음 붙일 곳이 없게 된다. 세상사와 인간사를 성공이라는 척도로 가늠하게 되면 오늘의 한국에서 해마다 늘어나는 노년인구의 몇 퍼센트 정도가 성공적 노화를 기준대로 이룰 수 있을까?
아주 소박하게 생각하면 성공이란 뜻이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실패란 뜻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뜻이라는 것이 아주 상식적으로 이해하면 출세나 양명 또는 돈벌이가 압도적인 선호 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너무나 중장년 세대의 성취 지향적 가치관에 편향된 판단 기준으로 바람직한 노년상을 의도적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일방적으로 노년세대에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냐 라는 점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80대 중반(명실공히 노년기)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의 개인적 체감이다.
나 자신의 개인적인 노년기의 삶은 출세나 양명이나 축재라는 기준에서 볼 때 성공적이라 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하늘과 땅과 어버이로부터 부여받은 귀중한 목숨(=살아있기 위한 힘의 바탕이 되는 것, 동아새국어사전 제4판)의 불꽃을 온전히 사르는 데서 보람을 느껴왔다.
내 삶의 전성기는 60세에서 75세 (어느 유명교수의 말)가 아니라 80세로부터이고 여기까지 나이 들어온 것이 삶의 불꽃을 피울 수 있는 인생의 절정기(다시 유명 교수의 말)가 아니라 목숨의 불꽃을 다음세대의 보다 나은 새로운 지평, 차원, 세계를 함께 엶으로써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는 고장과 나라와 누리를 세우기 위해서 남김없이 사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삶이라기보다는 마지막까지 불꽃을 온전히 사르는 삶이기를 염원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의 노인상을 앞서간 분들의 언행에서 찾는다면 성호 이익(조선후기 실학자, 1681~1764)의 부정적인 것과 다산 정약용(조선조 실학의 집대성자, 1762~1836)의 긍정적인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그 두가지 관점이 지금도 대체로 통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호는 ‘노인의 열 가지 좌절’을 언급하면서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곡할 때는 눈물이 없다가 웃을 때는 눈물이 나오며 30년전 일은 모두 기억하는데 눈앞의 일은 금방 잊어버리고,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 들어가는 것이 없이 모두 이빨사이에 끼며 흰 얼굴은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도리어 희어진다’고 한탄했다.
다산은 71세때 지은 ‘늙은이의 통쾌한 일’이라는 시에서 노년의 유쾌한 일은 여섯 가지로 들고 있다.
“노인이 되어 대머리가 된 것, 이가 모두 빠진 것, 눈이 어두운 것, 귀가 먹은 것, 마음 내키는 대로 미친 듯 시를 쓰는 것, 때때로 벗들과 바둑을 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대머리가 되어 머리를 감거나 빗질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이가 모두 빠져 치통이 사라졌고, 눈이 어두워 책을 보거나 학문연구를 하지 않아도 되고, 귀먹어 세상의 온갖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성호적 노년관과 다산적 노년관은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어 있다. 구태어 거론하자면 명분론은 성호적인 것으로부터 다산적인 것으로의 대전환을 창조하고 있지만 심정론은 압도적으로 성호적인 것에 갇혀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노년층의 대우가 각광을 받고 있다. 신노년층 이라느니 액티브 시니어라느니 몇 가지 신조어가 난무한다.
요는 ‘젊은 노년층’이라는 이미지 조작을 완성한다. 그야말로 노년의 독자적 존재의미와 생명가치가 주로 중장년에 의해서 탈주체화 되어 가는 것이다. 나이듦의 깊은 뜻을 그것대로 살피고 알고 깨닫기 보다는 젊음의 상실과 삶의 퇴화라는 쪽으로 편향 이동시키고 그 틀 안에서 젊음의 유지나 회복을 바람직한 노인상의 판단기준으로 고정시키려는 것이다.
젊은 노년이 아니라 노년다운 노년이 노년에 이르러 노년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자각이 되는 것이 청소년과 중장년과 함께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는 보다 나은 사회건설을 위한 공동주관적 기초가 되지 않을까? 청소년이나 중장년에 일방적으로 맞추는 삶이 아니라 서로의 삶의 질을 함께 높여가는 일이 필요하고도 중요하다.
벽 3시에 눈이 떠졌다. 갑자기 논어 ‘위정편’에 있는 공자말씀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는 스스로 섰으며, 40세에는 좁은 테두리 안에 갇히지 않게 되었고, 50세에는 하늘의 명하심을 알았고, 60세에는 귀가 순해졌고, 70세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지금부터 약 2500년전 고대중국(춘추시대)의 공자에게 있어서 40세(나에게는 60세)은 중장년기를 끝내고 노년기로 접어드는 전환기라고 볼 수 있다. 공자의 생애에 있어서 50세부터 70세까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70대 80대 90대의 노숙년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공자의 말씀을 나 나름으로 읽어내서 동아시아의 고전적 노인상의 실상을 그려보려 한다. 종래의 중국고전전문학자들의 독법이나 주석, 해설, 해석과는 다르거나 심지어 반대되는 점이 있을 테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의 바탕이 그들의 것과는 달라서 그렇다고 너그럽게 이해해주기 바란다.
사람이 태어나서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배우는 과정을 잘 수행하면 어느 시기(15~30세)에 가서 어느 정도 스스로 터득하고 나름대로 깨닫는 바가 확실하게 될 것이다.
어려서 열심히 배우면 젊어서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입장과 관점이 잘 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가는 과정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50세부터는 노년이 처음으로 시작된다는 뜻에서 초로 또는 시로라고 부르고 거기에 이어지는 직전의 단계=전환기 또는 준비기간의 자각특성인 불혹(不惑)이라는 한 문자에 대한 뜻풀이를 한중일의 대다수 전문학자들이 ‘미혹하지 않는다=뚜렷한 자기소신이 확립된다’는데 중점을 두는 경향에 비해서 나는 스스로의 배움을 어느 틀 안에 가두어 고정시키지 않는다=영혼의 탈식민지화, 탈영토화를 통해서 명실공히 자유로운 자기형성을 이룩할 수 있게 되는 시기라고 뜻매김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만이 모처럼 스스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자기가 특정이념이나 사상의 테두리 안에 갇혀지고 그것이 굳어지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닫혀진 자기가 아니라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활짝 열린 자기가 될때만, 오직 그런 상태에서만, 나이듦의 다음단계 - 50세(내게는 70세)=초로-에 이르러 하늘의 명하심을 제대로 체감, 체험, 체득 할 수 있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닫힌 얼과는 하늘의 뜻도 통할 수 없다. 하늘의 뜻과 잘 상통할 수 있게 되면 하늘, 땅, 사람의 온갖 소리를 잘 듣고 잘 가름할 수 있는 유연한 삶의 태도도 가지게 될 수 있겠다. 그렇게 해서 나이를 더해 가보면 년공(나이에 따라 깊어가는 내공 )이 무르익어 마음이 원하는 바에 따라 행해도 사람의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어서 장로(長老) 또 숙로(宿老=경험(經驗)이 많고 사물(事物)을 잘 헤아리는 노인(老人)) 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공자의 노인상이라고 본다.
<참고문헌>
1. 김태창, "생사관과 노인관", 동양일보, 2019.7.4-2019.7.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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