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일사』를 지은 이맥

2025.12.21 22:12 | 조회 2296

   이맥은 9천 년 한민족사의 왜곡 날조된 국통맥을 확고히 바로 세운 불멸의 공덕을 세웠다. 그는 신교 문화의 원전인 『천부경』과 『삼일신고』에 정통한 역사학자이다. 그의 호 일십당一十堂은 『천부경』의 “일적십거一積十鉅(하나가 생장 운동을 하여 십까지 열린다)”에서 따 온 것으로 , 그가 우주의 본체인 일(一太極)과 십(十無極)의 정신에 관통하였음을 나타낸다. 

   『태백일사』를 지은 이맥은 한민족의 신교 삼신 문화와 원형 역사관의 화신인 것이다. 한마디로 신교문화 역사서의 완결본인 『태백일사』를 지은 이맥은 한민족 신교문화의 집대성자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위서론자들이 환단고기를 읽으면서 제대로 해석을 못하고 위서로 몰아붙이는 이유는 이런 우주관. 역사관, 상수철학, 천부문화, 신관과 유불선과 기독교이 모체인 한민족의 신교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단편적 안목으로 보고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조선 개국 이후 성리학 이념이 국시가 되고 선도와 불교가 이단시 되면서도 고성이씨 가문의 후손이 자주적 역사인식은 계승되어 이맘의 현손인 중종때 이맥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암의 아들중 4남  李岡(이강)은 15살에 과거에 급제한후 그 능력을 인정받아 관직이 경상도 안렴사와 밀직부사에 이르럿으며 이색,염흥방,완수등과 교유하였다. 이강은 공민왕의 12년 어명으로 마니산 참성단에서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사』열전에도 충신으로 수록되어있는 인물이다. 

   이강의 아들인 李原(이원)은 부친 이강이 죽은 해에 태어나 어려서 姊兄(자형)인 양촌 권근에게서 공부를 하였다. 이원은 우왕8년(1382)에 성균시에 급제하였다. 이원은 태종의 문과급제 1회 후배이고 나이로는 한 살 아래인데 아듯셋 이질, 이비, 이장이 태종의 친위 무신으로 왕권강화에 공헌하여 이원가족 대부분이 태종의 최 측근 공신들이었다. 

   이원은 태종의 측근 신하이면서 충녕의 세자 사빈을 거쳐 세종때도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여 가림토 문자가 포함된 『단군세기』를 세종에게 소개하였다는 설도 있는 인물이다. 이원이 왕실과 가깝자 그를 시기하는 유림들이 많아서 결국 세종 때에 귀양을 간 적도 있다. 

   이원의 막내 아들인 사암공 이지는 네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이육은 성종 때에 병조참판에까지 올랐으며 『청파집』,『청파극담』,『철성연방문집』을 저술하였다. 이지는 장남 이육과 막내 이맥으로 하여금 서거정등과 함께 철성 연방집과 『단군세기』복원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서거정은 세조때 권신 한명회,권람과 함께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인물인데 경국대전 서문에 조선의 정치가 주나라보다 융성할 것이고 동국여지승람 서문에서는 단군이 처음 개국한 것을 강조하는 등 선가사학자의 일면도 보였다. 서거정은 이원의 묘비명을 쓸 정도로 선가사학의 중심인 고성이씨 가문과도 가까운 사이였다. 세조때의 권신 권람도 어린시절부터 한명회의 벗이었으며 그가 쓴 응제시주에는 한국 고대사에 대한 이암사학의 영향이 엿보인다. 즉 세조의 측근 신료 세 사람이 모두 조선초의 이암사학을 숙지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고대 사서류의 수서령을 내릴 정도로 고대사에 깊이 있는 이해를 한 인물들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지의 4남 이맥은 44세 (1498,연산군4)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장령에 이르렀는데, 이때에 장숙용이 연산군의 은총을 기화로 호화주택을 짓는 것을 지적하다가 연산군의 미움일 받아 괴산에 유배된다. 이지는 증조부 이암의 역사의식 계승에 남다른 의지를 가지고 장남 이육과 막내 이맥에게 『단군세기』원본의 복원을 지시했다고 고성이씨 문중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맥은 중종과 어린시절 외가 친척으로서 친구처럼 지내 서로 조정에서 사담을 나눌 정도로 측근 신료로 알려져 있다. 중종실록에는 조정의 신료들이 집요하게 이맥을 탄핵하려 하지만 중종이 비호하는 내용이 발견되는 바, 이맥의 역사관이 중종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사대 모화 모화유림의 경계심이 그 이유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가 말년에 왕실사고의 찬수관 벼슬을 했다는 것은 비장 사서를 종합해서 남긴 『태백일사』의 저술이 가능했던 환경이었을 것이다. 이맥은 일찍이 1504년 괴산에서 귀양하고 있을 당시부터 부친 이지의 유지를 염두해 두고 연구하다 1520년 찬수관 벼슬을 하면서 한국 고유의 찰학과 숨겨진 역사사실을 종합한 태백일사를 저술하였다고 고성 이씨 문중은 전한다. 

   이처럼 이존비로부터 행촌 이암과 그 현손 이맥까지 이어지는 고성이씨 가문은 고려말 영향력 있는 학자 문벌이자 조선초 왕실의 친위세력이라는 독특한 배경을 통해 선가계 사학의 전승자 역할을 수행하였다.태백일사의 저자 이백은 찬수관으로 한민족 정통문화와 역사, 우주관, 신관 등을 두루 정통한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역사학자였다.

(환단고기 안경전역주본,세계환단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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