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와 중국

2026.01.08 09:41 | 조회 1271

일제의 탄압으로 중국 곳곳을 전전하던 김구의 임시정부는 1940년 충칭으로 옮겨 그해 9월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1941년 12월엔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종전 후 한국의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한 올바른 정세 판단이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대한민국 국가 원수 명의로 임시정부 승인을 촉구하는 서한도 발송했다. 일본 패전 후 장제스는 임시정부의 조속한 환국을 지원하는 한편 1억 위안과 20만 달러라는 거액의 특별지원금을 건넸다. 임시정부가 해방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 친중 정부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한반도 분단과 국공 내전으로 장제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런데 임시정부와 무관한 중국 공산당이 이제 와 김구 선생을 고리로 일본에 맞선 반파시즘 공유 운운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군사 개입’ 발언으로 중일 갈등이 고조되자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으로 봐야 한다. 중국의 말과 행동을 잘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김충남, "김구와 중국", 조선일보, 2026.1.8일자.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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