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150년, 한국문명의 개화와 정수

2026.02.20 20:28 | 조회 1881


                           개항 150년, 한국문명의 개화와 정수

 

  한국 역사의 전환점인 개항 150년을 맞는다. 1876년 2월이었다. 개항을 전후로 한국은 대륙과 해양을, 지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와 문명적으로도 전면 대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양과의 대면은 세계로의 최초의 전면 진입이었다. 전통과 근대, 중화와 세계가 갈라지는 분기점이기도 하였다. 지각이 뒤집히는 격변이었다. 처음으로 ‘반도’라는 지리적 위치가 등장하였고, 주체적으로도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반도’는 지리와 관계는 물론 언어와 인식에서도 처음 등장한 범주였다. 그때까지는 ‘변방’으로서 대륙이 중심 문제였다면 이후는 ‘반도’로서 해양이 중심 문제였다.

 

                                 개항 후 경계국가 한국다움 선명

                                 밖과의 섞임·공존과 자기 번영

                                 혼돈의 세계, 한국다움 공유 절실

                                 안의 타협·통합·상생이 선결 요소

 

   곧이어 ‘경계’로서 둘 모두가 중심 문제가 되었다. 개항을 전후로 한국은 비로소 대륙과 해양, 동과 서, 세계의 경계국가가 되었다. 게다가 그때까지와는 반대로 문명은 뒤집혀 다가왔다. 서구는 ‘서양 오랑캐’(洋夷)에서 새것·문명·근대로 전변되었다. 반대로 ‘문명 중국’은 옛것·전통·고루로 바뀌었다.

   태평양·서양·서구는 지리와 장소를 넘어 문명과 근대, 세계관과 체제를 의미했다. 개항은 비록 타율적이었지만 한국민으로서는 주체적으로 세계를 대면하는 계기였다. 한국은 늘 그러하였다. 타율적 수입도 자율적 계기로 만들어가는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고래로 종교도, 과학기술도, 시장경제도, 자유와 민주도 그러하였다. 그러니 생존과 지속, 주권과 주체성을 포함해 경계로서 역할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세계 어디서나 경계·교량의 위치와 인식은 문명 창출과 선도의 근본 요소였다. 고난을 포함해 그렇다. 고대 시기부터 한국은 자신들을 대륙의 변방이자 바다 건너로 인식하였다. 고래의 한국 기록들은 ‘우리’ ‘우리나라’를 동방(東方)과 함께 해동(海東)으로 인식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들을 문명 중국·화하(華夏)·중화에 맞선 또 다른 문명 동국(東國)·동하(東夏)·소중화로 인식하였다. 동사(東史)·동문(東文)·동산(東算)·대동여(大東輿)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 맞선 독자적 동(東)이었다.

   개항 이후는, 인식 방식은 동일하나 대상은 급변한다. 동도(東道)·동학·동양·동아(東亞)는 중국·중화가 아닌 서학·서구·서양에 맞선 동이었다. 개항으로 세계지평의 새 동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 일제 강점, 3·1운동, 건국과 한국전쟁, 냉전을 거치며 한국은 관념·주권·문명·체제에서 뚜렷이 서(西)를 추구하였다. 동서 겸비였다. 한국에게 두 개의 동, 그리고 동서 길항의 본질은 보편에 대한 맞섬과 버팀, 수용과 공존을 통한 한국다움의 창출이었다. 한국다운 보편을 말한다.

   문명은 다름과 높음이 합쳐진 ‘다움’을 뜻한다. 유사 이래 이것을 가장 잘 깨달은, 그리하여 문명의 새 주체로 나선 단위들은 경계지대·경계국가였다. 세계가 혼돈에 빠져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경계를 넘어 다름과 높음의 자기다움을 세계다움으로 확장하기 때문이다.

   세계화로 하나가 되어가던 동서가 다시 멀어지고, 동과 동, 서와 서도 멀리 갈라지고 있다. 기존의 보편이 해체되는 이 세계혼돈의 시대에 개항 이래 다져온 한국다움과 경계다움을 세계다움과 보편으로 고양하고 공유할 때다. 동서조우 이래 세계경계의 위치를 거치며 벼려온 한국다움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한국다움을 그리스다움, 유대-이스라엘다움, 로마다움, 인도다움, 중국다움, 로마다움, 영국다움, 유럽다움, 미국다움과 견주고 펼칠 때다. 각 문명은 또는 이성과 개인을, 또는 영성과 구원과 사랑을, 또는 인문과 질서를, 또는 공화와 법제를, 또는 민주와 상식을, 또는 단결과 관용을, 또는 개척정신과 민주공화를 세계와 공유한 바 있다.

   이제 한국다움의 정수를 가려내어 세계와 공유하자. 인류가 혼돈에 빠져들 때 역사는 늘 몇몇 국가나 문명을 불러내어 공통의 미래를 향한 새 범례와 새 푯대로 삼곤 하였다. 한국다움이 공유할 요체는 공존과 통합과 상생이다. 상통(相通)·상류(相流)·종합·융섭… 무엇으로 표현하든 안과 밖의 긴장된 만남과 깊은 섞임과 자기다운 보편은 한국다움의 골간이었다. 불교·유교·기독교, 중국·일본·서양 모두 밖으로부터 다가왔지만 주체적 내면화를 통해 끝내 지양하고 끝내 함께 하였다. 자아가 강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한국다운 반복이었다.

   한국은 경계국가로서 중도와 중용의 관념과 세력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내외 갈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립과 갈등의 - 극단적인 파열로 인한 초단기적 주권 상실을 제외한다면 - 산물과 결과로서 타협과 공존은 한국을 평화롭고 장구하게 생존·지속·발전시킨 핵심 요소였다. 내외 경쟁의 반복으로 인해, 극단을 벗어버리나 중간에 매몰될 수 없고, 중도에 다다르나 또 다른 갈등과 타협을 계속 요구받았던 것이다.

   세계로의 펼침과 공유에 앞서 안에서 먼저 최고의 통합과 상생 방식을 정련하고 궁구할 때다. 문명은 다른 높음이기 때문이다.

                                       <1분 만에 더 쉽게 이해하기>

  질문-1,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인한 개항이 150년이 지난 지금,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나요?

  질문-2, 글에서 강조하는 '경계국가'와 '한국다움'이라는 개념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나요?

  질문-3, 한국이 '경계국가'이기에 겪는 어려움과, 오히려 그로 인해 얻게 된 긍정적인 결과는 무엇인가요?

  질문-4, 세계가 다시 분열되는 혼돈의 시대에, 한국이 '한국다움'을 바탕으로 세계에 기여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와 나아갈 방향은 무엇으로 제시되고 있나요? <박명림, “개항 150년 : 한국문명의 개화와 정수”, 중앙일보, 20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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