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허브 국가로 인도가 뛴다
AI 허브 국가로 인도가 뛴다
지난 일요일 인도 뉴델리의 거리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였다. 열악한 도로 위로 이륜 오토바이와 삼륜차 ‘릭샤’, 승용차들이 엉켜 있고 보행자들까지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경적은 처음에는 견디기 힘든 소음이었지만 점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종의 ‘교신’으로 느껴졌다. 겉보기엔 통제 불능의 무질서(chaos)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고 없이 물 흐르듯 나아가는 ‘조직화된 무질서(organized chaos)’가 인도를 움직이고 있었다. 신호등은 장식에 불과했지만 법보다는 눈치껏 양보하며 전진하는 에너지가 지배하는 풍경, 그것이 오늘날 인도의 무서운 역동성을 상징했다.
젊은 층이 다수인 15억 인구 대국
‘글로벌 사우스’ 중심국으로 우뚝
한국의 반도체·원자력 등에 관심
전략적 동반자로 협력 강화해야
필자가 인도의 실리콘밸리인 뱅갈루루에 첫발을 디뎠던 2003년으로부터 벌써 23년이 흘렀다. 당시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로서 삼성 이건희 장학생으로 선발하기 위해 만났던 반짝이는 눈망울의 인도공과대학(IIT) 4학년생 판카지 아가르왈은 이제 한국과 인도의 전략적 협력을 잇는 에듀테크 스타트업 ‘태그하이브’의 창업자로 성장했다. 서울대에서 공학석사를 딴 뒤 삼성전자에서 일하면서 하버드 경영학석사(MBA)까지 받았다. 가장 훌륭한 외교는 양국을 잇는 인재에 대한 투자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지난주 뉴델리에서 열린 ‘인도 AI 임팩트 서밋’에 참석했다.
인도는 현재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인구 대국이다. 총인구 15억 명에 육박하는 ‘글로벌 사우스’의 주축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구 구성의 질이다. 인도의 중위 연령은 28.4세로, 중국보다 무려 10살 이상 젊다. 늙어가는 세계 경제 속에서 유일하게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젊은 국가’인 것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800달러 수준으로 여전히 경제적 취약층이 많지만, 상위 중산층 5000만 명을 포함해 잠재적 소비층인 넓은 의미의 중산층이 5억 명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 거대한 내수시장이 AI 기술과 결합할 때 발생할 폭발력은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뱅갈루루는 뉴델리와는 또 다른 세상이다. 일단 해발 고도 1000m에 위치해 날씨가 쾌적했다. 이곳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와 인포시스(Infosys), 위프로(Wipro) 같은 인도 IT 거물들이 포진해 있다. 게다가 뱅갈루루는 연간 3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쏟아져 나오는 인도 혁신의 산실이기도 하다. 최근 앤스로픽(Anthropic)이 인포시스와 손잡고 이곳에 센터를 세우며 협력을 강화한 것은 인도 소프트웨어 인재들의 가치를 증명하는 사례다.
이번 서밋에서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주목할 인물은 미국의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39세의 마이클 크라치오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이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거물인 피터 티엘 팔란티어 공동창업자 밑에서 성장했다. 그가 인도에 온 목적은 명확하다. 미래의 AI 허브 잠재력을 가진 인도를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미국은 인도의 풍부한 인재와 데이터가 필요하고, 인도는 미국의 자본과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하드웨어 인프라가 필요하다. 여기에 실리콘밸리를 주름잡는 인도 출신 과학자와 경영자들이 양국 사이를 이어주고 있다. 이러한 이해관계는 인도를 단순한 신흥국이 아닌 ‘지정학적 요충지 위의 테크 강국’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인도의 전략은 단순히 서구 기술을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초 SAP의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인포시스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던 비샬 시카가 인도의 모디 총리와 독대를 한 뒤 인도의 IT 서비스 산업을 AI 서비스 산업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1년 전부터 인도는 AI로 거대한 테스트베드를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그 데이터와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AI 서비스 시장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구상을 해온 것이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이나 구글의 데미스 허사비스가 기술적 이상을 외칠 때, 인도는 바닥에서부터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논의했다. 서밋에서 만난 오픈 AI의 첫 번째 벤처 투자자 비노드 코슬라의 부인은 비샬 시카의 부인과 함께 AI를 활용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전 세계 2억7100만 명의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로서 인도가 보여주는 AI의 실용적 가치다.
인도는 이제 막 뛰기 시작했다. 거친 도로 위에서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질서를 만들어내던 그 유기체는 이제 AI라는 지정학적 레버리지를 갖춘 날개를 달았다. 미국이 자국이 가지고 있지 않은 산업을 한국이 채워 주길 원하는 것처럼, 인도 역시 자신들의 AI 허브 꿈을 완성하기 위해 한국의 기술력에 주목하고 있다.
AI 연산의 핵심인 반도체, 에너지 공급을 위한 원자력과 전력 설비 제조업, 그리고 조선과 방산 등을 보유한 한국은 인도의 가장 매력적인 파트너다. 인도는 우리가 함께하지 않으면 위협으로 다가올 존재다. 한국은 이제 인도를 단순한 시장이 아닌 전략적 동반자로 재정의하고 이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양국이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운명적 파트너임을 인식하고, 지금이야말로 미래를 향한 동행을 본격화할 때다.<차상균, “AI 허브 국가로 인도가 뛴다”, 중앙일보, 중앙선데이, 2026.2.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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