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의 양녀 자처… "여자 친일파 거두" 배정자

2026.02.27 09:50 | 조회 1779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 자처… "여자 친일파 거두" 배정자

 

   1949년 2월 18일 반민특위 특경대는 서울 돈암동 가정집에서 80대 할머니를 체포했다.

   “지난 18일 오후 2시 반경 특위 특경대는 정진용 조사관 지휘하에 시내 돈암동 자택에서 배정자(82) 노파를 체포하여 왔다. 이 노파야말로 66년 전 일한 합병 당시 나라를 팔아먹기에 몸을 아끼지 않튼 일황의 충녀이였으며 당시 이등(伊藤博文·이토 히로부미)의 수양 딸로 귀염을 혼자 받었으며 더욱 해아(海牙·헤이그) 평화회의에 밀사로 갔든 이준 열사의 행동을 밀정하야 일일이 보고한 그야말로 나라를 파라먹은 여자 친일 거두였다 한다.”(1949년 2월 20일 자 조간 2면)

   기사는 일부 오류가 있다. 일제의 한국 강제 병합은 기사를 쓴 1949년으로부터 39년 전이다. 기사의 주인공 배정자(裵貞子·1870~1952)의 나이도 다소 착오가 있지만 호적이 정확하지 않았던 당시 두어 살 차이를 오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배정자는 연일 취조를 받고 3월 10일 특검에 송치됐다. 4월 28일 오전 10시 30분 제1회 공판이 열렸다.

   “작 28일 반민 재판은 이등박문의 양녀로 이름이 높았던 반민자 중의 일점홍인 배정자의 제1회 공판을 신(申泰益·신태익) 재판장 주심으로 오전 10시 반에 개정하였다. 이미 노쇠하여 자기 몸을 이기지 못하는 피고는 피고석에 앉아서 사실 신문에 진술하였다. 피고 배는 한국 말엽에 그의 아버지가 민비에게 역적으로 몰리어 사형을 받은 후 갑신년에 일본인 송미(松尾·마쓰오)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그 후 동경의 김옥균씨한테 가서 있던 중 이토(이등박문)가 다려다 길렀으며…재판장은 피고가 윤(尹)모를 시켜서 쓴 자서전 ‘배정자 실기(實記)’에 의하여 심리를 시작하자 피고는 순순히 이를 시인하는 동시에 재판장에게 오히려 보충 설명까지 하고 있었다. 피고는 전일을 후회하며 마땅히 죽어도 좋다고 말하고 다만 나의 아들 전유화(田有花) 무덤 앞에서 죽는 것이 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1949년 4월 9일 자 조간 2면, 일부 구절 생략)

   배정자는 이튿날 보석으로 석방됐다. 보석 이유는 “노쇠로 인하여 감방 생활에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2회 공판은 5월 12일 오후 1시에 열렸다.

   “12일 오후 반민공판은 배정자의 제2회 사실 심문이 신 재판장 주심으로 오후 1시부터 개정되었는데 피고 배는 재판장으로부터 피고가 일본으로 건너간 동기는 피고의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리어 참살을 당한데 대해 원한을 먹은 것이 아닌가 하고 뭇자 피고는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간 것이라고 답변하였으며 고종왕이 피고를 정비로 삼으려 할때 피고의 아버지를 역적의 누명에서 버서나게 하였다는 말에 방청객들의 주목을 끌게 하였으며 오후 2시반 체정되였다.”(1949년 5월 14일자 조간 2면)

   반민특위 재판장이 심문 자료로 삼은 ‘배정자 실기’는 1927년 구술을 바탕으로 펴낸 배정자의 자서전이다. 아래 같은 내용을 담았다.

   “어릴 때 대원군의 측근이었던 부친이 명성황후 집권 후 처형되자 모친과 함께 유랑 생활을 하다가 밀양부 관기를 거쳐 통도사에서 출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통도사를 떠나 1885년 부친의 친구였던 밀양부사 정병하의 소개로 일본인 밀정 마쓰오를 만나 도일(渡日)해 망명 정객 안경수에게 맡겨졌고 그의 도움으로 학교에도 다녔다. 1887년 안경수의 주선으로 김옥균 문하에 들어갔고, 그의 소개로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되어 스파이 교육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수영·승마·사격·벽장술 등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 자처한 배정자는 1894년 귀국 후 황실과 국정을 농간했다. 엄비와 고종에게 접근한 뒤, 황실과의 친분, 타고난 미모, 현란한 화술을 이용해 일본의 밀정 역할을 수행했다. 한일 강제합병 후에는 호화사치 생활과 엽색행각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만주 일대를 떠돌며 독립운동가를 정탐·밀고해 생계를 유지했다.”(2010년 3월 2일자 A33면)

   ‘배정자 실기’는 자기 과시가 많고 사실이 혼동되어 있어 학계에선 모두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배정자가 일제 편에서 적극 활동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1920년 배정자를 ‘죽여야 할 요녀(妖女)’로 규정했다.

   “배정자는 작년 합이빈(하얼빈)에서 다수의 동포를 적에게 잡아주고, 협잡을 하고 봉천으로 도망하여 와서 봉천 동포의 사정을 적(敵) 영사관에 고하야 동포의 받는 곤란이 막심하외다. 아아 언제까지나 이 가살(可殺)의 요녀(妖女) 배정자의 명(命)을 그대로 두겠습니까.”(‘독립신문’ 1920년 5월 8일)

배정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이라고 했으나 근거는 없다. 덕수궁 정문인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大漢門)’으로 바꾼 까닭은 한자 ‘안(安)’ 자가 갓 쓴 여자인 배정자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라는 풍설이 있지만 이 역시 확인되지 않는다.

   배정자의 삶은 영화·드라마·연극으로도 다뤄졌다. 1966년 김지미 주연 ‘요화 배정자’, 1973년 윤정희 주연 ‘요화 배정자 2’가 상영됐다. 1984년 KBS 대하 드라마 ‘독립문’에서 정윤희가 배정자 역할을 맡았다. 2000년 배정자의 삶을 다룬 연극 ‘메이드 인 재팬’이 무대에 올랐다.<이한수,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 자처… "여자 친일파 거두" 배정자”, 조선일보, 2026.2.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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