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애국지사 백암 박은식

2026.04.02 09:53 | 조회 528

  

                                  신복룡의 신 영웅전 애국지사 백암 박은식

 

  정치지리학에 따르면 풍토가 인성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풍토학이 많이 퍼져 있다. 정조 때 규장각 제학이었던 윤행임(尹行恁)의 글이 대표적이다. 그는 서울 사람이었는데, 경상도를 제외하고서는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특히 황해도에 관해서는 “자갈밭에 쟁기를 끌고 가는 황소(石田耕牛)”라는 평가를 남겼는데 그곳 사람들이 들어서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3·1운동의 경우 해주·안악·수안 등의 시위가 격렬하여 서울 다음으로 피해가 컸다. 북경로(北京路)에 자리 잡아 신앙심도 깊고 학구열도 높았다. 그들은 임시정부의 국가수반 여덟 분 가운데 이승만(李承晩)·김구(金九)·박은식(朴殷植·사진) 등 세 분이 황해도 출신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박은식은 황주 출신이다. 호학(好學)했던 그는 독립투사가 아니라 역사학자로 나갔어도 크게 될 분이었다. 그는 망국과 3·1운동의 실패에 대한 자괴감이 깊어 백암(白巖)이라는 호(號) 이외에도 태백광노(太白狂奴)니 무치(無恥)라는 호를 썼다. 1911년에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고구려의 기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주로 썼다.

  박은식의 역사학을 학계에서는 역사주의 또는 영웅사관이라 평가한다. 역사를 바로 쓴 민족은 멸망하지 않는데, 조선의 멸망은 선대 영웅들의 유산을 이어받지 못한 탓이라고 여겨 연개소문(淵蓋蘇文), 동명성왕(東明聖王), 대조영(大祚榮), 안중근(安重根), 이준(李儁) 등의 정신을 회복할 때 독립의 기회도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역사학의 화두가 망국과 독립이기 때문에 그의 글에는 “피로 쓴 역사(血史)”라든가, “슬픈 역사(痛史)”라는 용어를 썼다. 어제가 그의 대통령 취임 100주년 되는 날이었다. 독립유공자 서훈심사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그와 몇 분의 서훈이 2·3등급이었던 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나온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신복룡, “애국지사 백암 박은식”, 중앙일보, 2026.4.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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