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원사화에 대하여..
규원사화 [揆園史話]
조선 숙종 2년(1675년) 3월 상순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지은 역사책이다.
고조선을 세운 왕검(王儉)부터 고열가(古列加)까지 47대 단군(檀君)의
재위기간과 치적 등을 기록하였다.
광복 직후 국립중앙도서관 직원이 서울의 한 책방에서 구입하여
1946년 5월 25일 귀중본 629번, 고서 2105-1번으로 등록하였다.
책 크기는 가로 16.5㎝, 세로 24.7㎝이다.
1972년 11월 3일 이가원(李家源), 손보기(孫寶基), 임창순(任昌淳) 등
고서심의위원 3명이 심의를 하여 숙종 때 쓰여진 진본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이병도(李丙燾), 조인성(趙仁成), 송찬식(宋贊植) 등의
실증사학자들은 제작연도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살았던 효종~숙종 시대에는
책에 표현된 천주(天主)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책이 처음 선보인
1920년부터 1930년 사이에 천도교도들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문에서 북애노인은 자신이 과거에 떨어진 선비로서 전국을 방랑하던 중
어떤 산골에서 발견한 《진역유기 震域游記》를 바탕으로 이 책을 지었다고
설명하였다. 고려시대 말 청평(淸平) 이명(李茗)이 쓴 《진역유기》는
발해의 역사책 《조대기 朝代記》를 참조한 것으로 전하여진다.
[출처 두산백과 사전]
위의 내용 중에 조선의 [효종~숙종]때에 천주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라는 부분은 잘못되었습니다. 이때 중국에는 마테오 리치 신부가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천주]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고 [천주실의]
가 1603년에 나왔습니다. [천주실의]가 나오기전부터 [천주]라는
말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천주실의]에는 [天主何 上帝也]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참고로 효종부터 숙종까지의 재위기간은 1649~1720년 입니다.
따라서 규원사화가 출간된 조선 숙종 2년(1675년) 3월에 [천주]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규원사화]에 [천주]라는 단어가 들어갔다고
해서 위서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병도(李丙燾), 조인성(趙仁成), 송찬식(宋贊植)
등은 친일사학자들입니다.
2008년 2월 8일 금요일 저녁 11시 09분에 씀.
2차수정 2010년 9월 30일 오전 4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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