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예전에 세미나때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에 대해 잠깐 언급하셨는데, 지금 메모가 보이길래 인터넷에서 좀 찾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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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의 이념대립을 거치면서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잊혀진 존재가 된 우당 이회영 (1867~1932) >
그는 일제의 극악무도한 고문으로 4,5일 만에 죽어서 나왔다. 자유란 무엇인가 ?
천지의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이회영 아내(이은숙)가 쓴 책 " 민족운동가 아내의 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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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SBS스페셜’은 지난 1일 '우당 이회영-애국의 길을 묻다'를 방영했다. 100년 전 한일합방 당시 거액의 재산을 처분하고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군을 길러낸 명문가 출신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삶을 재조명해 선보인 것.
대부분의 양반들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일제에 협력했다. 그러나 우당 이회영 일가는 수백억이 넘는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전 가족이 망명의 길을 떠났다.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해외에서 독립군기지를 건설하고 정예의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제작진은 "함께 망명의 길을 택했던 아내 이은숙의 회고록이 아니었다면 그가 걸어온 독립운동의 발자취는 역사 속에 묻히고 말았을 것", 이어 "한지 200장에 빼곡히 써내려간 아내의 기록에는 100년 전 이 땅의 애국지사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역경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고 밝혔다.
[스포츠서울TV 새이름 SSTV|www.ahaTV.co.kr]
그의 형제중..
6형제 중 유일하게 고국으로 돌아온 다섯째 이시영(1869~1953)은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광복 뒤 초대 부통령까지 지냈다. 하지만 이승만의 전횡에 반대하며 결국 부통령직을 사임, 시대와 타협하지 않는 가문의 전통을 보여주었다.
우당 이회영의 막내아들 규동씨(78)
규동씨는 “아버지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실 때 어머니(이은숙·1979년 작고)는 자금조달책으로 국내에 계셨다”며 “하지만 일제 지배가 공고해지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조차 힘겨웠다”고 말했다.
당시 어머니 이씨는 바느질삯, 식모일 등 온갖 궂은 일을 다 하며 모은 돈 대부분을 만주로 송금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규동씨를 먹여 살렸다고 한다. 규동씨는 “어머니는 아버지의 동지였으며 그 어려운 삶 속에서도 한번도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최근 과거사 청산 문제와 관련해 규동씨는 “친일파 후손들이 땅을 찾겠다고 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거꾸로 가는 역사가 안타까웠다”며 “누가 누구를 복수하는 문제가 아니며 과거 일의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려내야 하는 차원에서 과거사 청산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당 이회영 애국의 길을 묻다]
방송일시 : 2009년 3월 1일 (일) 밤 11시 10분 (60분간)
삼일절을 맞아서 이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 좋겠지만, 생각났을때 찾아서 올려야지 아니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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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그 당시 정치상황에 대해 몸서림쳐집니다.
때문에 얼마나 화가 났으면 국가를 외국에 넘겼을까 생각합니다.
그 썩을 정치의 밑둥을 아직도 짤려내지 못하고
\"정치 운운....\" 할때마다
참으로 개탄을 금치 못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성인같은 박정희전 대통령님은 악당으로 묘사하고
그 딸님은 부모속을 태우더니만 아직도 맴맴 (그 안에서) 맴돌고....
힘껏 일구어낸 국가 재산을 다 팔아먹고
사기꾼이 활개치는 세상.
후손들에게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게하고
과연 맘이 편할련지....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외제에 강박당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참으로 개탄스럽게 여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