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재앙 앞에서-다시 신의 존재를 묻다

2011.03.16 11:19 | 조회 11097
[곽병찬 칼럼] 다시 신의 존재를 묻는 이유 2010.3.16
한겨레 곽병찬 기자
» 곽병찬 편집인
2004년 서남아시아 지진해일 때 종교계는 다음과 같은 난제에 직면했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2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이유 없이’ 죽어간 사실을 신은 과연 용인했을까.”
지진해일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신실한 신앙인들이 밀집한 지역을 휩쓸었다. 불교의 타이와 스리랑카, 무슬림의 인도네시아, 힌두교의 인도. 유럽 기독교국가에서 온 여행객 수천명도 포함돼 있었다.

‘양심적인’ 종교인이라면 먼저 고백해야 할 물음이었다. 영국 성공회의 지도자 로언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 한 명의 뜻하지 않은 죽음도 믿음을 뒤흔드는데, 대재앙에 직면해 ‘이런 엄청난 고통을 허용한 신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캔터베리의 제임스 주교도 그랬다.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있는 지역에, 그것도 성탄절 직후에 미증유의 대재앙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신의 존재에 대한 답하기 어려운 신학적 의문을 남겼다.”

<아에프페> 통신은 이런 성찰적 논의를 이렇게 정리했다. “유럽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신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지만, 대부분의 기독교, 유대교 및 기타 종교 지도자들은 ‘지진이 신의 분노였다’는 말을 거부했다.”

예외가 없을 리 없다. 근본주의 개신교계다. 미국 남침례신학교의 앨버트 몰러 총장은 <시엔엔>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재앙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죄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개신교계는 압권이었다. “쓰나미 희생자들은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은 자들이다. 그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다. …태국 푸켓에서 놀러 갔던 유럽인들이 많이 죽었는데, 예수 제대로 믿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김홍도 목사)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예수의 불호령이 떨어질 법하다.

하지만 이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신이 있다면, 신은 이웃의 고통을 제 장삿속에 이용하려는 그런 자들부터 징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도호쿠 대재앙 앞에서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운운했던 조용기 순복음교회 원로목사도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신의 존재를 묻는다는 것은 단지 신의 존재를 따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삶의 의미, 나아가 인간 존재의 의미를 따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철학이건 신학이건 서구에서 신이란 인간 존재의 의미의 원천이다.

인종학살 등 잔인한 살상이 되풀이될 때마다 철학과 신학이 절규하듯이 신의 존재를 물었던 까닭은 여기에 있다. 왜 던져놓고, 짓밟는가! 인간이란 무슨 의미인가.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라면, 신의 선택에 대한 물음은 나의 실존적 결단에 대해 스스로 던지는 물음일 터이다. 그 의미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종교의 본질은 이해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펼쳐진 상황을 아주 조금이라도 바꿀 방법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다”고 윌리엄스 대주교는 말했다. 결국 헌신을 위한 삶의 결단에 그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1755년 11월, 포르투갈 리스본이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었을 때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희생자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력에 대한 충격을 이렇게 토로했다. “리스본은 폐허로 널브러져 있고, 우리는 파리에서 춤을 추고 있다!”

일본 도호쿠 대재앙은 인간이 이룬 문명을 일거에 휩쓸었다. 해일은 노아의 방주 같았던 8m 둑을 삽시간에 무너뜨렸고, 원자로에서 새나오는 하얀 연기 앞에서 세계인은 숨죽인다.

이보다 더 무력하고 허망할 수 있을까. 오로지 연어떼처럼 죽음의 땅으로 역류하는 헌신의 행렬만이 인간 존엄의 빛을 희미하게 빛낼 뿐이다. 신은? 바로 그 결단에 있지 않을까.

--- 편집인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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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곽병찬 칼럼
기사등록 : 2011-03-15 오후 08:01:32 기사수정 : 2011-03-16 오전 10: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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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손경희 15년 전
서양에서 보는 신은, 창조주로서의 신(creator)이니까, 이런 대자연의 재앙 앞에서 \"과연 신은 계시는가?\"라고 의문을 가지는 게 당연합니다. \"왜 우릴 만들어놓고 또 이렇게 파괴하느냐\" 와 같은 논조일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주재자(governor)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천지자연에는 이법이 있습니다. 그 \'이법과 하나 되어\' 그 \'이법을 가지고 천지인 삼계를 다스리시는\' 분이 하느님이라고 인식한 것이죠... 이법과 하느님. 서양의 신학과 철학이 가진 한계를 벗어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참마음을 깊이 깨닫기는 힘들 것입니다.
진성조 15년 전
2천5백년의 플라톤 이후~칸트헤겔 까지의 서양의 관념론 철학역사를 문닫게 만들었다는, 망치를 든 파괴와 창조의 철학자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서 초인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하여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신은 없다\"가 아니라, 신이 \'참된 신\' 으로서의 창조적 문명창조와 구원을 해낼수 없는 <무기력한 신의 무능함,기복적 신앙으로 인한 인간정신의 퇴화와 퇴폐성>을 말한것 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의 예언적 철학선언 후에 1차,2차 세계대전의 대살육이 일어나면서, 그떄 \"신이 과연 있다면 왜 이런 참혹한 재앙인가?\" 라고 절규했던 당시 세계지성인들은 니체가 얼마나 소름 끼칠만큼 뛰어난 미래 예언적 통찰력을 가진 대사상가 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철학책을 보면,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얘기한듯한 글이 많은데, 그의 통찰력이 실로 놀라울 뿐 입니다.

20세기 이후 지금까지의 서양 현대철학과 문화예술,인간심리학 전반에 걸쳐 거대한 영향력을 을 끼쳤던 원조 라 그런지 몰라도, 그는 너무나 신기하게도 19세기를 마감하고 20세기를 여는 1900년에 사망합니다.

독일가극의 아버지라는 \'바그너\'와 한때 서로간에 깊은 우정과 존경을 나누었던 대천재 예술적 철학자 였던, 니체(1844~1900) 의 영향력은 한 철학자 로서는 너무나 광범위한 문화적 영향력을 끼쳤는데요

피카소,칸딘스키 등등의 미술계,
말러,리차드슈트라우스 등의 음악계,
샤르트르,들뢰즈,푸코등의 철학계,
틸리히,본회퍼 등의 진보적 신학계,

처음엔 \'적그리스도=니체\'로 오해했던 독일 카톨릭계가 최근엔
\'니체의 심연속에 내재한 그리스도교적 성품을 발견하려는 시도!

지본주의에 절대영향을 끼친 사회과학의 원조- 막스베버 에게 끼친 그의 영향,
루카치 등의 정치학계,
프로이드,융 등의 심리학계,
우리나라의 신채호,이육사 등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 독립투쟁가 들에게 끼친 그의 초인사상!
토마스만,막심 고리끼, 헷세,카잔차스키 등의 문학계.... 등등 ( 책- [니체,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참조)

이들 모두가 니체에게 그 사상을 빚졌다고 합니다.그의 사상에 영감을 많이 받았다는 얘기죠.
실로 서양 정신(사상)사상에 나오기 힘든, 평가하기 힘들정도의, 위대한 사상가 임에 틀림없습니다.

20~21세기 현대 서양문화 전체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아직도 그 영향력은 계속된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그는 - \" 너무나 \'신 중심\'으로 확 쏠려 \'인간의 기복주의,정신적 퇴화\'를 부추킨 서양정신의 퇴폐성을 ㅡ 역전시켜 인간정신의 고귀함을 초인사상으로 다시 일깨운 인존(인간의 위대핟)사상의 틀을 제대로 만들어본 위대한 사상가\' 라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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