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제주 4.3사건 78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추념식 현황

2026.04.06 09:40 | 조회 376


                     <특별기고> 제주 4.3사건 78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추념식 현황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향토사학자) 신상구

 

                                        1. 제주 4.3사건의 역사적 의의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서 경찰이 발포하여 민간인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남로당이 주도한 총파업, 경찰·서북청년단의 검속·탄압, 남로당의 무장봉기, 계엄령선포 및 중산간 지역 초토화, 6·25전쟁으로 인한 예비검속 및 즉결처분 등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다수 희생되었다. 사건은 1954년에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막을 내렸다.

   1980년대 이후 4·3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각계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00년 1월에「4·3특별법」(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공포되고, 이에 따라 8월 28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설치되어 정부차원의 진상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2003년 10월 정부의 진상보고서(『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 4·3평화공원 등이 조성되었다.

   진상보고서에 의하면, 4·3사건의 인명 피해는 당시 제주도민 30만명 중 25,000∼30,000명으로 추정되고, 강경진압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으며, 가옥 39,285동이 소각되었다. 4·3사건진상조사위원회에 신고 접수된 희생자 및 유가족에 대한 심사를 마무리한 결과 2011년 1월 26일 현재 신고된 희생자 14,032명(남로당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는 1,764명)과 희생자에 대한 유족 31,255명이 결정됐다.

   제주 4·3사건으로 인해 제주지역 공동체는 파괴되고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었으며, 무엇보다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참혹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4·3특별법 공포 이후 4·3사건으로 인한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21세기를 출발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며, 제주도는 2005년 1월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다.

                             2. 제주 4·3사건 당시 활약한 군경 의인들 이야기

   제주 4·3사건 당시 무고한 주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선 의인들이 있다. 제주주둔 해병대 정보참모 김두찬 해군 중령은 1950년 8월30일 성산포경찰서에 예비검속자를 총살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문형순(文亨淳, 1897-1966) 성산포경찰서장은 무고한 주민을 죽이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해당 공문에 ‘부당함으로 미이행’이라고 쓴 후 명령을 거부했다. 덕분에 강순주 씨를 포함해 200여명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문형순 서장은 성산포서장으로 부임하기 전인 1949년 모슬포 경찰서장으로 근무할 때도 주민 100여명을 훈방했다.

                                        

                  문형순(文亨淳, 1897-1966) 강순주(94세)옹 김익렬(金益烈, 1919-1988)

 

      강순주 씨는 “계엄이 선포된 시절 본인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셨다”면서 “문형순 서장님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애국자로 당시 우리를 풀어주면서 “나라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여러분의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평안남도 출신인 문형순 서장은 1953년 경찰 퇴직 후 제주에서 대한극장 매표원 등으로 일하다가 1966년 향년 70세 나이로 유족 없이 제주도립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시신은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평안도민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경찰청은 2018년 문형순 서장을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하고 추모 흉상을 제주경찰청에 세웠다. 하지만 국가유공자로는 선정되지 못했다.

   그간 네 차례에 걸쳐 문형순 서장에 대한 국가유공자 신청이 접수됐지만 입증자료 부족 등을 이유로 통과하지 못했다. 김익렬(金益烈, 1919-1988) 9연대장은 남조선로동당 제주도당 군사부장 겸 유격대 사령관무장대 총책인 김달삼(金達三, 본명: 李承晉, 1923-1950)과 평화협상을 진행하며 유혈사태를 막고 4·3의 평화적 해결에 나서려고 노력한 군인이다. 하지만 방해 세력에 의해 평화협정은 깨졌고 강경 진압작전을 거부한 김익렬 연대장은 미군정으로부터 해임됐다.

   이외에도 1948년 11월1일 함덕리 평사동 모래밭에서 주민 6명을 총살하려는 토벌대에게 ‘신원을 보증할 테니 죽이지 말라’고 만류하다 함께 희생된 한백흥·송정옥 씨가 있다. 경찰이지만 최대한 주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노력한 장성순·김순철·방상규·강계봉 씨 등도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건 ‘4·3 의인’들이다.

   4.19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민주화가 되기 이전에 4.3사건 피해자들은 ‘빨갱이 가족’으로 낙인 찍혀 간첩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찰서로 불려가 모진 고문을 받아 인권 탄압을 받았고, 연좌제에 묶여 취업이 막혀 일평생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 강순주 씨와 독립유공자 한백흥 지사의 후손들은 의인들의 뜻을 받들고, 4·3이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확산시키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며 자신들이 받은 국가보상금을 4·3 유족회에 기부했다. 이들 외에도 4·3의 완전한 해결과 미래세대를 위해 국가보상금을 유족회와 마을 등에 쾌척하는 기부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3. 제주 4.3사건 78주년 추념식

   제78주년 4·3희생자추념식은 2026년 4월 3일 10시부터 1분간 제주도 내 전역에 묵념 사이렌이 울림과 함께 본행사가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시작되었다.

                          

             2026년 4월 3일 10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개최된 제주 4.3사건 78주년 추념식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제주도가 주관한 본 행사는 ‘4·3의 역사는 평화를 품고, 역사의 기록은 인권을 밝히다.’를 주제로 4·3 생존 희생자와 유족, 도민, 정부 인사, 정치인 등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에 종교의례 등 식전행사 이후에 4·3희생자 영령을 위한 묵념, 헌화 및 분향, 국민의례, 도지사와 유족회장의 인사말씀, 경과보고, 추념사, 유족 사연, 추모 공연, 대합창 순으로 거행됐다. 주제에는 4·3 기록물이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고 4·3 정신인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의미가 담겼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추념사에서 “2024년 12월 3일 불법계엄의 망령이 되살아났을 때 제주도의회는 지방의회 가운데 가장 먼저 대통령 탄핵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고 제주인들은 단호한 목소리로 계엄 반대를 외쳤다”며 “4·3의 역사를 잊지 않은 제주도민이,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주셨다”고 말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4·3의 역사를 끝까지 기억하고 기리고 되새기면서 평화와 인권의 가치 위에 더 큰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 나가겠다”며 “결코 제주4·3과 작별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제주4·3사건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이자 잊어서는 안 될 비극”이라면서, “정부는 앞으로도 희생자분들의 신원확인 및 유해봉환 등에 힘써 유가족분들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보듬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제주 4·3사건이 후대에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제주에서 추진 중인 4·3기록물 아카이브 사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현재까지 4·3희생자 15,218명, 유족 128,022명 등 전체 143,240명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국무총리)’의 심의·의결을 거쳐 인정했다고 밝혔다.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은 “강요된 침묵의 세월을 견뎌내며 처절하게 몸부림쳐온 절규는 4·3이 진실을 깨우는 원천이 됐고, 함께 흘린 피눈물의 외침은 세계인이 공감하는 역사가 됐다”며 “모진 풍파 속 쌓인 피눈물을 어루만져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4·3 희생자 추념일은 지난 2014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정상회담 일정으로 추념식을 찾지 못한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제주를 찾아 4·3에 대한 왜곡과 폄훼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이번 추념식 현장에서는 4·3을 왜곡하는 극우 단체와 유튜버들이 고성을 지르고 소란을 피우며 경찰과 충돌했다.

                                       <필자 신상구 국학박사 약력>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향토사학자, 칼럼니스트, 민속학자)

.1950년 6월 26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에서 부 신종순(辛鍾淳)과 모 유옥임(兪玉任) 사이의 5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학교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2019),『한민족의 원대한 꿈, 노벨상 수상전략』(2024) 등 다수.

.주요 논문 :「윤동주 민족시인의 생애와 문학세계」(2010),「눈물과 정한의 시인 박용 래의 문학세계」(2012) 등 137편

.수상 실적 : 국사편찬위원장상, 통일문학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2회) 교육부장관상(푸른기장),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문학 21』시부문 신인작품상,『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 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 <시도(詩圖)> · <백수문학>· <대덕문학> 동인,『천안교육사』 집필위원,『태안군지』집필위원,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동양일보포럼 연구위원, 평화대사, 천손민족중앙회본부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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